[경남 남해] 민간신앙의 절정 가천암수바위와 다랭이마을
아들하나만 점지해 주길 지성으로 기원하는 아낙네의 마음을 누가 알 것인가. 시골마다 하나쯤 있기 마련인 미륵사상의 대표적인 남근석과 당산목은 민간신앙에 의존하는 우리 백의민족의 전통적인 무속신앙이다.
우리의 전통 무속신앙을 사찰에서 흡입하기 위해 불교에서 그 전례가 없는 삼신당, 칠성당이 사찰에 하나의 부속암자로 자리매김 하고 전북 내소사의 경우는 아예 당산나무가 사찰입구와 사찰 안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남해대교를 건너 한 시간 가량 달리면 가천암수바위(다랭이마을)이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 잡고 마을 제일 밑자락에 남근석을 모시고 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발정난 변강쇠의 물건하고 같으니 여자들이 그 앞에서 점점 붉어지는 얼굴과 황당함에 어쩔 줄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미륵 신앙은 소외된 민중들을 통해 급속도로 번져가는 정치적, 사회적 모순을 해결 짓는 새로운 전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불교에서는 미륵을 통해 이상세계 구현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것 같지만 민중의 마음을 한곳으로 집약시키는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미륵에 관하여 살펴보면 전남 화순 운주사 와불은 누워있던 와불이 일어나면 염원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강하게 원하는가 하면, 나라의 통치수단으로 스스로 미륵불을 자칭하던 과거의 역사도 있다.
한반도에 많은 남근석 중 전남 칠보면 백암리 백암마을 남근석/ 전북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 남근석/ 전북 창덕리 남근석, 전북 사곡리 남근석/ 전북 귀신사 석수/ 경기도 안양 삼막사 등 많이 있지만 일부는 가공한 석재를 이용하였지만 가천암수바위는 자연석으로 남근석과 여근석이 자리 잡고 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남근석이 있는 위쪽 밭을 서성이다 넌 저시 말을 건넨다. "억수로 잘 빠졌니더.." 정말 할아버지 말씀처럼 더럽게 억수로 잘 빠진 남자 성기모양은 허공을 찌르고 임신한 여자바위는 약간 비스듬하게 누워져 있다.
한때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여성들이 찾아와 아들을 점지해 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는데 낮보다는 밤을 주로 이용할 정도로 남근석 그 자체만으로도 낮 뜨거울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언젠가부터 이 마을은 가천암수마을에서 다랭이 마을로 불러지기 시작했다. 다랭이란 산비탈을 이용하여 농사짓는 그 모습이 한 뼘의 땅이라도 버림 없이 언덕을 만들고 계단식 논, 밭이 자리 잡는데 흡사 그 모습이 갓을 벗어놓은 모습을 닮았다 하여 유례된 것으로 전국에서 가장 원시적인 농업을 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다랭이마을로 불린다.
마을로 내려서면 비탈진 골목길 바깥은 외양간이 거의 차지한다. 집집마다 농작을 위해 소를 한두 마리 키워야 밭을 같고 논을 갈아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천암수바위의 전설을 살펴보면 당시 이곳에 얼마나 많은 소가 있었는지 짐작 할 수 있다.남근석은 영조27년(1751)에 고을 현령인 조광장이 꿈속에서 현몽을 받게 된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길 "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하니 나를 일으켜 세워주면 반드시 좋은 일이 마을에 생길것이다며 사라졌다. 뒷날 현령은 꿈이 하도 기이하여 찾아 나서니 가천이 꼭 꿈속에서 말한 그곳이라 관원을 동원하여 주변을 파보니 과연 땅속에서 남자성기를 닮은 높이 5.8m, 둘레1.5m의 남근석과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석이 나왔다 한다.
남근석이 10월23일 발견되어 해년 10월23일이면 제사를 마을에서 지내며 성기 귀두부분에 흰 창호지를 가늘 게 띠처럼 둘려 붙혀둔다.
다랭이 마을 천수답은 자연곡선미를 한층 살려낸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될 정도이다. 천수답인 이곳 지역은 100단 계단식 농사로 바다 바로 코앞까지 농사를 짓기 위해 언덕을 만들고 소가 쟁기질을 한다. 가천마을이 알려지면서 원시농업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찾지만 정작 농사짓는 농부의 허리는 휘어질 지경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젊은 사람은 도시로 떠나 버리고 나이든 주민이 겨우 농업에 종사할 뿐인 작금에는 누가 그 심정을 알겠는가.
다랭이 마을은 가천마을로 한문으로 풀면" 加川 " 즉 남해지역을 살펴보면 애기를 안고 있는 여자의 형상으로 가천이 회음부에 위치하지만 아쉽게도 양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두 개의 산에서 겨울 입술을 적실 정도로 작은 물줄기만 흐르니 "川"은 어울리지 않지만 언어비보책으로 사용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풍수지리적인 이유에서 본다면 가천암수바위 역시 그냥 어쩌다 그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풍수에 의하여 그곳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랭이 마을회관앞에 보면 작은 봉화대를 연상케 하는 돌이 쌓여있고 안쪽을 살펴보면 납작 돌이 하나 놓여 있다. 뱃길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어민의 마음으로 헛제사밥무덤이란 것. 일반가정에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조금씩 떼서 물에 말은 후 종이를 깔고 집밖에 내 놓는다.
일반 가정집과 달리 헛제사밥무덤은 높이 150cm, 길이 158cm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입구를 만들고 그 안에 음식물을 넣은 후 밥그릇처럼 생긴 돌을 엎어 놓음으로서 새나 동물이 헛제사밥을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헛제사는 바다로 나간 남정네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부녀자의 소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바다의 용왕을 자연스레 섬기면서 공양을 통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길 바랐을 것이다.해년 이 마을에서는 음력 10월23일이면 헛제사밥을 만들고 제를 올린다. 가천암수마을에서 일출을 만날 수 있으며 여름철이면 푸른 녹음과 함께 다랭이 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여행을 할 수 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놀리지 않고 돌을 쌓고 논으로 일구어 해마다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다랭이마을 논, 밭은 시대가 변해도 길이 협소하여 소가 아니면 쟁기질이 어렵고 민간신앙의 하나인 가천암수바위가 마을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무사안녕을 비는 헛제사밥 무덤이 마을 중심에 있어 사라져가는 전통의 대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