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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부자의 넉넉한 인심 운조루

허영꺼멍 2010. 8. 18. 09:45

 

 

 

 

 

 

 

 

 

 

운조루는 남한 삼대 길지인 금락환지에 자리 잡은 조선 양반가의 전통적인 가옥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 사랑채로 지금은 전체를 운조루라 부른다. 구름 속에 나는 새가 사는 집으로 불리는 운조루는 중국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 혜사에서 첫머리인 운과 조를 따서 만든 "루"각으로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명당자리의 증거로 운주루에서 거북돌이 출토되었지만 1989년 도난을 당하고 지금은 운을 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운조루는 명당 터임에도 불구하고 걸쭉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10대손이 관리를 하고 있는데 운조루의 주인인 유이주가 평북 병마절도사로 부임하여 산을 넘는 과정에서 호랑이를 만나 채찍으로 호랑이를 잡아 가죽은 영조대왕께 받치고 뼈는 잡귀를 막기 위해 운주루 홍살문에 걸었는데 이를 안 사람들이 뼈를 민간요법과 민간신앙에 의하여 조금씩 탐을 내다보니 지금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임금이 백 칸에 살기에 아무리 벼슬이 높아도 99칸이 최고였던 당시 운조루도 아마 99칸의 대저택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60여 칸이 전해져 오며, 굴뚝을 건물보다 낮게 배치하여 바깥에서 굶주리는 사람이 볼 수 없도록 하여 그들의 배고픔을 같은 아픔으로 느끼며 쌀 두지(뒤주)로 불리는 통나무 원형에 쌀을 담아 놓고 누구라도 항상 쌀을 퍼 갈 수 있도록 아래에 구멍을 내어 두는 넉넉함을 통해 운조루 주인의 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운조루 쌀통은 퍽 재미있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 표기해 놓고 언제라도 쌀을 가져 갈 수 있도록 입구에다 내 놓고 있다는 점은 주인장 과 굳이 얼굴을 대면하지 않아도 쉽게 찾아와 가져 갈 수 있도록 한 주인장의 세심한 배례가 엿보이며, 쌀이 줄어들지 않으면 주인은 며느리를 불러 크게 꾸짖었다 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야박하게 하거나 얼마나 인심을 얻지 못하면 쌀을 퍼가지 않느냐는 것으로 당시 이곳 운주루의 주인은 인접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넉넉함을 누렸을 것으로 보인다.

 

1776년 무관 유이주(1726-1797)가 만든 사랑채 운주루는 비록 주인은 떠났지만 그 날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것은 덕을 베풀고 살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