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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트레킹 - 경주 오릉 배롱나무 필 적에

허영꺼멍 2016. 8. 2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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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년고도 신라 탄생지 오릉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바람이 불어주길 바라며 경주 오릉(신라 오릉)으로 들어선다. 찾는 탐방객이 많지 않아 조용하게 산책하듯 오랜 숲길을 따라 거닐 수 있는 곳이자 신라 천년의 역사가 시작된 그 출발점의 인물이 잠들어 있다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초창기 왕을 거서산(居西干 )’으로 불렀고 첫 번째 거서간이 바로 계림 숲 알에서 태어났으며, 오늘날 박씨의 시조가 되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 오릉 홍살문. 오늘날 홍살문을 통과하는 입구는 닫혀 있다.

▲ 오릉 앞 재단

경북 경주 신라 오릉(五陵)이야기

경북 경주시 탑동 393-1

★★★★☆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매표를 하려니 매표소에서 아예 입장료부터 주차비까지 혼자서 다 해결하신다. 신라오릉이 위치한 공간은 오릉과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인 숭덕전 영역으로 구분되며, 오릉을 거쳐 알영부인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알영지를 돌아 신도비가 있는 방향으로 탐방 코스가 이어진다.



▲ 삼문을 통과하면 진입로 끝자락 오릉 정화사업 기념비

매표소를 통과하여 삼문으로 들어서면 일직선상 숲길이 열리며 정면에 배롱나무와 함께 신라 오릉 정화사업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 기념비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오릉이며, 오른쪽이 숭덕전 방향이다. 신라는 992년을 이어온 왕조국가였고 총 56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다. 오늘날 경주에서는 56명의 왕릉 중 38기를 추정하고 있으며, 신라의 시작 그 첫 번째 왕이 박혁거세 거서간(* 초기 왕 명칭)이 잠들어 있다는 곳이 바로 경주 오릉이다.


▲ 오릉으로 향하는 소나무 숲길


경주 오릉(慶州 五陵)’은 사적 제172호이며, 경주 남산 자락 서북쪽 평야에 위치한 신라 초기 능묘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 오릉 또는 신라 오릉으로 불리기도 하며, 삼국사기 문헌의 기록에는 사릉(蛇陵)으로 부르며, 묘는 총 5기로 조사되었다.




오릉 내 위치한 연못에는 부레옥잠이 수 놓고 있었다.


가을이 임박한 계절 오릉에는 제법 큰 연못을 품고 있다. 연못 주변을 따라 아름드리나무가 자라며, 몇몇 그루의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기도 한다. 연지에는 부레옥잠이 물을 정화시키며 간간히 보랏빛 꽃이 초록잎사귀 위 피어나 있다.


▲ 연못 위 부레옥잠


후투티가 잔디밭 위에서 먹이를 찾아 무리지어 날아다닌다. 봄날 경주 황성공원에서 육추(毓雛)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는데 벌써 자라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며 텃새처럼 굴림하고 있었다. 소나무 숲 길목에는 배롱나무가 마지막 꽃봉우리는 열어 보이며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못에는 부레옥잠이 수면을 뒤덮고 꽃을 피우고 있다.




오릉을 만나다.


오릉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소나무 숲이 주변을 호위하며 잘 정리된 왕릉 그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은 엄숙하기만 하다.


▲ 오릉으로 들어서는 삼문


사릉(蛇陵) 즉 뱀사()를 사용하여 뱀무덤이란 의미이다. 왕릉이 왜 뱀무덤으로 불렀을까?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 혁거세신화조에 61년간 왕으로 있다 승천한 뒤 7일 만에 왕의 유체(遺體)가 흩어져 떨어지고(世傳王升天七日後五體散落), 알영왕후도 따라 돌아가니 신하들이 각각 흩어진 유체를 모아 장사를 지내려니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하여 흩어진 대로 매장하니 5개의 오릉이 되었다 하며, 구렁이 관련된 능이라 하여 사릉(蛇陵)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 오릉 제단석에서 바라 본 전경

19690827일 오릉(五陵)의 크기를 측정하는 작업 결과 크기순으로 높이가 제110m, 29m, 37.2m, 43.6m, 51.8m로 확인되었다. 측정 당시 1기의 고분 형태가 표주박형 모습이다. 삼국사기에는 시조 혁거세를 담암사(曇岩寺 *삼국유사는 담엄사(曇嚴寺)로 기록하고 있다.) 북쪽 사릉(蛇陵)에 장사지냈으며, 2대 남해차차웅, 3대 유리이사금, 5대 파사이사금을 사릉원(蛇陵園) 내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담암사는 오늘날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왕릉으로 향하는 첫 문은 아름드리 숲 사이 버티고 있는 삼문이다. 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 5칸에 맞배지붕을 올린 규모가 큰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인 삼도가 릉 앞에 자리 잡고 앞으로 오릉 중 가장 큰 묘가 보인다. 국내 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소나무이다. 특히 오릉에서 만나는 소나무의 모습은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릉을 향해 알현하는 듯 자라는 소나무는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릉의 모습도 다양하게 그려져 경이롭기까지 하다.


▲ 오릉 주변 소나무 전경

묘가 이처럼 함께 모여 있는 경우는 초기 신라 매장 풍습으로 유복한 사람이 묘 곁에 매장하면 후손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가족장이 당시 성행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안탑깝게도 경주에서 만나는 신라 경주의 수많은 고분 대부분이 누구의 무덤인지 표시석이 없어 정확하게 누구의 무덤인지 혼란을 주고 있다.

 

오릉은 제1호 봉분을 전방으로 자리 잡고 뒤편에 표주박형 봉분이 2개인 무덤, 그리고 뒤편에 작은 봉분 2기가 있으니 총 5기이다. 그럼 이곳에 묻혀 있다고 추정되는 인물로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이라면 각각의 무덤으로 추정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정확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 잡풀과 뒤썩여 있는 소나무 숲

고분군 옆 소나무 숲이 수풀로 무성하다. 왜 고분 주변을 말끔하게 단장하지 않느냐 반문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역대 시조의 능침(陵寢)에 밭을 일구거나 나무하는 것을 금했다 하는데 조선 영조36(1760)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당시 경주부 관하에서 혁거세왕릉역에 관하여 赫居世陵(혁거세능) 官禁田柴(관금전시)” , 나무를 베거나 밭갈이 하거나 땔나무 벌채를 일절 금지한다.




알영부인 탄생지 알영정 터


오릉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 시원한 대나무 숲과 함께 작은 건물을 만나게 된다. 신라시조왕비 탄강지로 알려진 알영정이 있는 곳으로 비와 연못이 있다.


▲ 신라 시조왕비 탄강지 비가 있는 건물 알영지



오릉을 지나면 시조왕의 위패를 모신 숭덕전과 알영부인의 탄생지로 알려진 알영정 터가 자리 잡고 있다. 숭덕전은 조선 세종 11(1429) 지어졌지만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후 선조 33(1600) 재건, 숙종 20(1694) 수리, 경종 3(1723) 숭덕전 사액을 받았으며, 영조 35(1759) 혁거세왕과 숭덕전 내력을 세긴 신도비를 세웠다. 숭덕전 뒤로 박혁거세 부인인 알영부인이 태어났다는 전설의 알영정이 자리하고 있다.


알영정(閼英井)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알영정은 신라시조왕비 알영(閼英)부인께서 탄생한 곳이다. 기원전 69년에 한 노구가 이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가에 큰 용이 있어 놀랐다. 그 용 옆구리에서 귀녀가 탄생하기에 수양(修養)한바 용모가 단미(端美)하고 총명. 지혜하여 시조왕비가 되었다. 신라 시조왕 재위 61년간 내보(內輔)가 지대하였고 권유농상(勸諭農桑)하고 무흘빈민(撫恤貧民)하여 이성(二聖)으로 존경을 받았다. 천강성배(天降聖配)하였다.” 안내하고 있다.




숭덕전을 돌아 나오다


알영정을 지나 건물로 들어선 후 동재와 서재 그리고 숭성각 출입문으로 빠져 예빈관(禮賓館)을 거쳐 숭덕전 외삼문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문이 닫혀 지는 날이 있으므로 참고하여야 한다)


▲ 홍살문에서 바라 본 숭덕전 방향 전경


숭덕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4호이다. 숭덕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숭덕전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로 조선 세종 11(1429)에 지었으나 선조 25(1592)에 불탔다. 동왕 34(1601)과 광해군 1(1618)에 다시 지었고 숙종 30(1704)에 고쳤다. 경종 3(1723) 숭덕전이라 편액을 걸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영조 11(1735)에 고친 것이다.


▲ 숭덕전 외삼문인 영숭문

▲ 숭성각

▲ 숭덕전 전경

홍살문 안쪽으로 영승문과 숙경문을 지나면 숭덕전이 위치하고 있다. 숭덕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인 맞배집이다. 왼쪽에 상현재, 오른쪽에 동재가 있다. 영숭문의 왼쪽에 시조왕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숭덕전 옆에는 연못이 있고 그 뒤에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라는 비와 비각이 있으며 뒤에는 알영정이 있다.”





돌아 나오면서


▲ 숭덕전 앞 홍살문 주변 숲 전경


오릉을 돌아 나오며 한편으로 씁쓸하다. 박씨의 시조이자 신라의 창시자 묘역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허술하다. 정확한 매장자의 확인 없이 자료에 의하여 누군가의 사후 공간으로 추정 할 뿐이다. 일부 찾은 방문객은 거의 단정적으로 신라오릉은 초기신라 왕의 무덤이라 말한다. 아직까지 고분에 관하여 발굴기록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통해 단지 담암사(曇岩寺)에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에 의존 할 뿐이다.




멸치육수 국물맛 끝내주는 잔치국수 먹으로 가자!

교동 '놋전분식'


경주 여행은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할 만큼 넓은 공간 곳곳에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경주 여행의 시작을 오릉에서 한 후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우선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오릉에서 가장 가까운 맛집이 다리건너 자리한 교동지역이다.


▲ 교동 놋전분식 파전, 가격은 한접시 7,000원

▲ 낡은 건물의 놋전분식

경주 교동 또하나의 맛집 '놋전분식'

주차장: 경북 경주시 황남동 381

★★★★★


교동하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교동계란김밥이 유명하다. 이미 유명세를 탄 만큼 주말이면 김밥을 주문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그래도 경주 여행에서 맛보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교동에는 김밥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교동 주차장 옆 허름한 물에서 만나는 김밥과 다양한 부침개의 맛을 보려면 놋전분식을 추천한다.



▲ 시원한 잔치국수. 가격은 4천냥

놋전분식 골목으로 들어서면 뒤편에 넉넉한 주차공간이 있다. 요리는 비빔국수와 잔치국수이며, 잔치국수는 시원하게 또는 따뜻하게 주문을 해야 한다. 가격은 잔치국수가 4천냥, 비빔국수 5천냥, 콩국수 5천냥, 회국수 6천냥이며, 도토리묵, 김치전, 빈대떡, 파전, 부추전, 굴전 등 다양한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주문할 수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주말과 공휴일에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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