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 역사축제
전국 최고의 축제라 자부하고 추천하는 배우는 축제공간이다.
이번 주말 무조건 이곳으로 찾아가 보시라.
시내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올해도 어김없이 동래읍성 역사축제가 10월 10일 금요일 동래구국악관현악단 공연을 시작으로 개막식과 함께 야간에 동래성전투 재현공연을 펼쳤다. 오는 12일 일요일까지 동래문화회관 일원에서 펼쳐지는 행사에는 토요일 동래부사 집무재현 마당극과 전통 줄타기공연, 동래읍성 성곽밟기 및 동래온천용왕제 길놀이 외 동래전투재현공연이 3회 연출된다. 일요일은 보기 드문 동래학춤과 고무 그리고 평양예술단 공연과 씨름대회, 동래읍성 가요제를 끝으로 이번 행사를 종료한다.
동래는 동쪽의 내산(箂山) 즉,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의 줄임말로 해석하고 있다. 동래는 삼한시대 변진독로국을 시작으로 신라 경덕왕 16년(757) ‘동래군’으로 최초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동래현으로 되었다가 임진왜란 패전지라는 이유로 현으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그후 오늘날 남구, 해운대구, 금정구, 연제구로 분리되고 남은 지역이 동래구이다.
▲ 마안산 정상에 위치한 동래읍성 북장대
동래 읍성지는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호로 동래구 복천동, 안락동, 명륜동, 칠산동, 명장동 일대로 조선시대 동래부를 둘러싸고 있던 읍성이다. 안내글에 의하면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의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 형식으로 쌓았다 한다.
▲ 북장대에서 바라 본 충렬사 동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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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만세를 부르는 모습
부산 3.1 독립운동기념탑은 국가지정 현충시설로 1919년 부산에서 일어났던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세거리가 보이는 마안산 중턱에 1995년 8월 15일 착공하여 1996년 3월 1일 완공하였다.
탑은 전체높이 21.6m로 독립운동 모습을 새긴 높이 6m 원추형 군상에는 기미독립선언서 공약3장이, 탑 기둥에는 건립취지문과 독립운동 약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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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건지게 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인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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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성문 안과 밖
인생문은 동래읍성 6개 성문 중 하나로 문루 1칸이고, 웅성 한 곳에 보루가 1칸의 시설로서 일제강점기 없어진 것을 2005년 복원작을 통해 동래구 칠산동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를 성 아래로 두고 복원하였다. 인생문은 임진왜란 당시 이 문을 통해 피난 간 사람은 모두 살아남아 사람을 살린 문이라는 뜻이라 한다.
인생문을 떠나 복천고분군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나는 작품
▲ 작가: 나인주. 작품명: 골목길
동래에서 가야 재발견하기 프로젝트로 만든 작품이다. 제목 ‘골목길’은 작가 나인주 작품으로 아크릴 컬러를 사용하여 낡은 건물 외관을 채색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을 그려냈다. 좁은 길과 창문을 경계로 여러 주택으로 분이된 서민들의 일상공간을 착시효과를 통해 호기심과 흥미를 제시하였다고 안내하고 있다.
▲ 복천동 수호신 / 문병탁 |
▲ 복천동 매화 / 조영희 |
▲ 선인장 / 이영희 |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2기의 말은 작품명 ‘복천동 수호신’이며, 작가는 문병탁 이다. 말 2기가 서 있는 지역은 복천동 고분군으로 복천동박물관 소장 유물 중 말과 관련된 부장품이 많이 있어 착안한 작품으로 가야인의 기상과 용명을 상징하고 있다. 담벼락에 매화가 사철 피어 있다. 작품명 ‘복천동 매화’ 작가 조영희로 동래구 구화인 매화를 수묵화적 느낌으로 스테인레스 스틸, 아크릴 우레탄 도장을 사용하여 표현해 놓았다. 담벼락에 선인장이 표현되어 있다. 작품명 ‘선인장’은 작가 이영희로 스테인레스 스틸, 아크릴 우레탄 고장을 사용하여 옹벽에서 자라고 있는 선인장 옆에 그대로 작품을 연출해 놓았다.
▲ 영보단 비
영보단비는 복천동박물관에서 복천동고분으로 가는 다리 앞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 1909년 중앙정부에서 호적대장을 거두어들이려 하자 주민들은 조상들의 성명이 적힌 호적대장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을 우려하여 마안산 기슭에 동래지역 13개면의 호적대장을 모아 불태우고 이 위에 단을 쌓아서 영보단이라 하였다. 이후 매년 음력 4월 23일 이 단에 모여 동래기영회 주관으로 제사를 지내며 천지를 빌었으며, 1915년 일제침탈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다짐하며 영보단이라는 비석을 세웠다.”고 안내하고 있다.
복천고분군
▲ 사적 제273호 복천동 고분군
사적 제273호 복천동 고분군은 부산의 대표적인 고분군이다. 1969년 주택공사 당시고분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알려진 후 1995년 부산대학교와 시립박물관 팀이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총 130여기의 유구와 9천여점의 출토유물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에는 토기류를 비롯 철기류, 장신구류, 인골, 말 이빨 등 동물의 일부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가야시대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유물중 보물 제598호 아구식 각배와 오리모양 토기가 복천동 고분군의 대표적인 발굴 유물이다.
▲ 복천동 야외고분 전시장
▲ 복천동 고분 54호 |
▲ 고분에서 바라본 복천 박물관 |
▲ 복천동 고분 53호 |
야외고분 전시장에는 복천동 53호, 54호를 재현 해 놓았다. 복천동 54호는 4세기 말에 축조된 대형 덧널무덤(목곽묘)으로, 주곽과 부곽을 갖춘 형식이다. 후대에 교란으로 무덤이 훼손되기도 하였으나 무덤이 깊어 부장유물은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복천동 53호 무담과 출토유물은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 대형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으로, 덧널무덤(목곽묘)형식의 부곽이 딸려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 고분에서 바라 본 북문 방향 |
▲ 박물관에서 고분군으로 향하는 길 |
▲ 복천박물관 |
▲ 어둠에 잠든 복천동고분군 야외전시장과 동래구
▲ 고분에서 바라 본 능선이 동래산성이다. 오른쪽으로 북문이 보인다.
축제의 현장 동래산성을 향하다
▲ 북문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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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주축성비
내주축성비는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16호이다. 영조 7년(1731) 동래부사 정언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1735년 건립한 비석으로 동래읍성 남문 밖에 있던 것을 1930년경 금강공원 독진대어문 뒤쪽으로 옮겨졌다 2012년 10월 북문 앞으로 옮겨 두었다.
비석에 의하면 읍성 둘레가 약 1.4km, 높이 3.9m 로 1731년 1월 성터를 측량하고 경상도 65개 군에서 52,00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연인원 417,050명, 쌀 4,585석, 배 1,552필, 돈 13,454냥으로 4월에 성벽을 쌓고, 5월에 성문을, 7월에 문루를 완공하였는데 당시 완성된 성의 둘레가 3.8km, 높이 5.1m 로 엄청난 공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
▲ 올해도 작년 그 자리에 어김없이 찾아온 뻥~이요.
▲ 북문 옆에 자리한 동래명품 파전
▲ 장영실 과학동산
영실은 동래출신으로서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그 출신지에 흔적을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모형이라도 전시함으로 과학자이신 장영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과학 대한민국의 꿈을 키우기 위해 선생이 관여하여 만든 해시계를 비롯 고천문의기 등 19점을 전시하고 2009년 11월 문을 열었다.
▲ 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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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성곽
동래성은 선조 25년(1529) 4월 14일 임진왜란과 함께 왜군의 1차 공격지로 동래부사 송상현을 위시하여 군,관,민이 죽음으로 싸웠던 현장이다.
성은 약 3.8km로 읍성 사방으로 성문을 두고 인생문과 암문을 만들었지만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비를 이유로 들어 평지성은 철철거되고 산지 성곽만 세월에 노출되어 있다가 북문과 인생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를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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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마당에서 바라 본 칠산동
▲ 동래구국악관현악단 공연
▲ 환상적인 연주를 자랑하고 있다.
▲ 개막식과 함께 불꽃이 하늘을 밝혔다.
▲ 북문 야간조명
송상헌 동래전투 재현 공연
축제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목숨을 잃은 송상현 동래부사와 그 휘하에 있던 장졸 그리고 읍성민의 죽음을 통해 지켜온 동래성 사람들의 이야기로 1996년부터 시작하여 2005년 동래읍성 전투장면을 재현하면서 경쟁력 갖춘 축제로 자리 잡았다.
북문에서 재현되는 동래성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키다 전사한 송상현 동래부사와 동래읍성민의 전투장면을 재현한 퍼포먼스가 애잔함과 감동을 불러온다. 총 5부작으로 평화롭던 동래읍성에 왜군이 진격하면서 격돌하게 되고 마지막 5장에서는 동래부사 송상현의 장렬한 최후로 마무리한다.
동래성전투(1592년 4월 14일 ~ 15일)는 부산진성이 함락되자 경상좌병사 이각은 도망을 치게 되었고 성안에는 송상현 동래부사만 남게 되었다. 송상현 부사는 1592년 4월 14일 길을 빌려 달라는 왜장을 향해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 어렵다"는 글을적 은 나무판자를 적진에 던졌고 15일 전투가 시작 그리고 군관민의 처참한 죽음을 본 송상현 부사는 전세가 기울자 임금이 계신곳을 향해 네 번 절하고 부채에 글을 남긴 후 최후를 맞이하였다.
부채에는 “고성월운(孤城月暈) 열진고침(列鎭高枕) 군신의중(君臣義重) 부자은경(父子恩輕)”으로 적에게 침탈당한 성을 아무도 구원하로 오지 않으니 임금에게 죽음으로 의미를 지키면서 부모님에게 자식 된 도리를 못함을 미안해하는 심정을 적었다.
뮤지컬로 재현된 동래성 전투 2011년부터 주제 공연으로 극단 "끼리"프로젝트에서 공연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기존 90여명의 동원인원에서 100명이 넘는 참가자와 전투장면시 음향효과를 대신하는 전통문화연구회 얼쑤에서 타악단체가 참여하여 한층 더 현장감을 더해주었으며, 야간공연을 위해 특수조명이 동원되었다.
축제가 깔끔하다. 난잡한 먹꺼리 장터가 없다. 자원봉사로 이루어 지는 저렴한 가격의 음식과 각설이 타령으로 흥을 내는 그런 축제가 아니다. 동래읍성 역사축제는 가족과 함께 역사를 체험하고 배우며 느끼다 돌아가는 말 그대로 배움의 축제이다.
많은 지역축제가 있지만 동래읍성축제는 매우 유익한 축제이다. 부산시가 아닌 부산 동래구에서 치러는 행사로 먹거리 장사행렬로 축제의 의미가 전도되거나 비싼 입장료와 추가적 비용 부담도 없다. 그냥 찾아와 눈과 귀를 열어 놓고 때로는 가슴을 열어 놓고 즐기면 된다. 축제의 현장을 통해 우리의 전통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좋은 기회이자 동래전투의 재현장면을 통해 임진왜란사를 자녀에게 들려 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동래박물관과 고분군을 통해 소중한 가야사 역사속으로도 여행이 가능하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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