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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트레킹 - 남해 다초지 튤립 찍고 다랑이마을 턴하여 두모마을 유채 마무리

허영꺼멍 2016. 4. 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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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이시더 남해군 이시더~

| 여행일자 : 2016년 04월 01일

 


남해 다초지(장평소류지) - 다랑이마을(가천암수바위) - 두모마을



어서 오이시더 여기가 다초못뚝이시더~

  

남해대교를 지나 남해읍으로 접어든 후 남해 금산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왼편에 작은 소류지 하나를 만나는데 봄이면 벚꽃과 튤립이 유명한 이동면 장평소류지(다초지)이다. 주민들에게는 시골 농사짓기 위해 만든 다초못뚝에 오래전부터 뿌리내리고 자라는 벚꽃나무로 오늘날 튤립 이전에는 벚꽃 반영이 먼저 알려진 곳이다.

▲ 다초지못뚝에 만개한 벚꽃

▲ 올해부터 다초지 튤립식재라인이 변했다.

장평소류지에서 벚꽃이 피다

경남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 857-1

★★★★★

장평소류지(네비 입력: 경남 남해군 이동면 초음리 1570) 19번 국도변에 위치한 작은 소류지로 정식 명칭은 남해다초지이다. 소류지 주변으로 남해군 농업기술센터와 남해마늘연구소, 보물섬마늘나라가 위치해 있어 축제기간 주차장을 활용하고 있다. 남해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이동방향으로 약 3.7km 진행하면 도로변 오른편에 주차장이 있으며, 왼편이 소류지이다.


2016년 새롭게 달라진 튤립정원


▲ 유채가 더 많이 공간을 확보하고 양 옆으로 튤립 라인이 형성되어 있다.

초곡마을 이정표를 만난다. 장평소류지 아래 자리한 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초곡마을은 풀밭의 그늘에 위치한다하여 초음(草陰)으로 부르다 1953년 분동되어 초곡마을이 되었다. 초곡마을은 음력 10124시에 뒷산 큰 바위에서 마을 동제를 지내는 4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동제는 일제강점기 잠시 5년간 중단되었는데 당시 많은 사람과 가축이 이유 없이 죽는 일이 생겼고 다시 동제를 하면서부터 마을은 평안을 되찾았다 한다.


형형색색의 튤립이 피어나고 있다. 해마다 보던 튤립의 꽃라인이 올해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유채꽃이 상당부분을 차지하였고 튤립이 그려내는 아름다운도 잃어 버렸다. 튤립과 유채의 조화로움이 많이 엉성하여 예전같지 않음이 안타깝다. 튤립은 매년 1만여대지에 약 10만여 송이 이상의 종구를 심어 봄소식을 전하는데 레드아펠톤(빨강), 골든아펠톤(노랑), 키스넬리스(빨강. 노랑), 린반덴마크(흰색), 젠더랩소디(핑크), 돈키호테(분홍. 자주색)등이 선보이고 있다.


▲ 다초지 벚꽃


올해도 빠지지 않고 19번 국도변 작은 소류지 주변은 원색 그림으로 채색된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작품 중 단연 으뜸은 50년 된 벚꽃나무가 만개하여 그려내는 반영이며, 소류지 주변을 따라 형형색색 8만 여 송이의 튤립이 줄지어 저마다 색을 뽐낸다. 특히 올해는 수면 위 거위 떼가 봄을 만끽하며 탐방객을 반겨 준다. 매년 벚꽃이 피어나는 4월 첫 주를 시작으로 약 3주간 이어진다. 올해는 41일부터 24일까지 축제기간이다.


"가천 암수바위"가 있는 "다랑이 마을"


세월은 변화를 통해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가천암수바위가 있는 남해다랑이 마을 역시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 중에서도 여행을 위한 길이 새로 열리면서 마을 지붕을 함석으로 새로 개량하고 꽃그림을 그려 놓았다. 연예인의 커피전문점도 다랑이 마을 내 생겨나는가 하면 많은 주택이 민박집으로 음식점으로 밀려드는 탐방객을 위해 시골스러운 농촌마을이 점점 상업화되어 가니 안타까운 곳이기도 하다.


▲ 다랑이마을 전경

▲ 다랑이 마을 입구에 벚꽃이 만개하였다.

원시농업의 현장 다랑이마을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8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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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신문에서 소개 된 가천암수마을을 접하고 남해를 향해 달렸던 기억이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당시에 만난 마을의 모습은 오늘날과 큰 변화가 없는 옛 모습을 간직한 다랭이논과 정자나무 그리고 가천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가천암수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세월은 미륵신앙의 가천암수마을 보다 원시농업의 현장 가천마을로 그리고 다랑이마을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남근석을 보고 얼굴 붉히며 주변을 돌기만 하던 시절은 이제 옛 이야기다.

 

가천마을을 조망하기 위해 전망대부터 달려가 본다. 도로변 주차공간을 확보하였지만 봄을 맞이한 다랑이 마을은 여전히 혼잡하다. 주차를 한 후 전망대에서 바라 본 다랑이 마을의 봄은 일부 계단식 논에 유채꽃이 피어 있어 안타까웠다. 이랑을 따라 조금 더 많은 공간에 유채꽃을 심어 준다면 보기는 좋겠지만 사실 마늘보다 돈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보니 마늘을 심는 농가를 어찌 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 유채꽃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지금의 가천마을은 다랑이 논으로, 그 유명세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로 점점 관광화되어 버린 곳이지만 입소문이 나기 그 이전에는 아들하나만 점지해 주길 지성으로 기원하는 아낙네가 남의 눈을 피해 골목을 내려선 후 득남하기를 빌던, 남해군에서 득남 소원돌로 유명한 미륵신앙이 모셔져 있던, 우리 백의민족의 전통적인 무속신앙 근원지가 가천마을 이었다.

다랑이마을의 지명은 산비탈을 이용하여 농사짓기 위해 돌담을 세우고 좁은 공간을 확보하다보니 언덕계단식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흡사 갓을 벗어놓은 모습을 닮았다하여 유례된 것이다. 다랑이마을은 가천마을로 남해지역을 살펴보면 애기가 안고 있는 여자의 형상으로 가천이 회음부에 위치하지만 아쉽게도 양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두 개의 산에서 겨우 입술을 적실정도로 작은 물줄기만 흐르니 언어비보책으로 가천이라 불렀다 한다.


▲ 개량된 마을 전경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전경

남근석 전설


가천마을을 유명하게 한 것은 가천마을 아래에 위치한 남근석과 밥무덤 그리고 원시농업 현장이었다.

그 중에서 남근석은 전국에서 최고의 형상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남근석은 영조27(1751)에 고을 현령인 조광장이 꿈속에서 현몽을 받게 되었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길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하니 나를 일으켜 세워 주면 반드시 좋은 일이 마을에 생길 것이 다며 사라졌다. 뒷날 현령은 꿈이 기이하여 찾아 나서니 가천이 꼭 꿈속에서 말한 그곳이라 관원을 동원하여 주변을 파보니 과연 땅속에서 남자성기를 닮은 높이 5.8m, 둘레1.5m 의 남근석과 아기를 잉태한 배부른 산모를 닮은돌이 나왔다.


남근석이 1023일 발견되어 해년 1023일이면 제사를 마을에서 지내며, 남근석에 흰 창호지를 가늘게 띠처럼 둘러둔다. 가천 암수바위 위에는 헛제사밥무덤이 있다. 높이 150cm, 길이 158cm로 입구를 만들고 그 안에 밥그릇처럼 생긴 돌을 엎어 놓았는데 새나 동물이 헛제사밥을 가로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헛제사는 바다로 나간 남정네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부녀자의 소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남해여행에서 이제는 가천마을과 그 주변이 하루를 묵었다가는 여행길목이 될 만큼 많은 펜션과 휴식공간이 남면 평산항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면 평산항을 시작하여 남해팔경 중 제6경 가천암수바위가 있는 가천마을까지를 잇는 남해바랫길 제1구간 지겟길로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이곳은 약 16km 구간이다.


관광업계 CEO 추천 관광명소 BEST20에 선정된 남해군 바래길 제1코스 다랭이지겟길은 평산1리에 위치한 평산항을 시작으로 사촌해수욕장까지 해안길을 따라 걸어가며 남해안의 숨겨져 있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날에야 길이 좋아져 편하게 다니지만 밭을 일구고 바다와 함께 살아가던 옛 사람들에게는 수레가 들어갈 수 없어 지겟길을 통해 모든 일을 하여야만 했던 곳이다.


유배지 노도를 거쳐 두모마을에 도착하다.


다랑이마을에서 유채언덕으로 알려진 두모마을까지 가는 길에서 서포 김만중이 유배를 와 죽음으로 묻혔던 노도를 잠시 조망해 본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언제 서포 김만중을 찾아 뱃길로 노도를 한번 찾아 갈 기회를 가져보려 한다.


▲ 해안길에서 안개속에 갇혀 있는 노도

남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유배객이 한시를 남긴다. 그 중에서 자암 김구와 서포 김만중 관해 짤막하게 알아본다. 남해군에는 이순장군 외 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자암 김구가 유배를 갔던 고독한 섬이기도 하다.


김만중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늙으면 모친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직접 한글 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쓴 작가이기도 하다. 1665년 과거 급제 후 판의금부사, 장악원 제조까지 거쳤으나 숙종과 장희빈 사이 아들 세자 책봉에 반대하자 남인출신 박진규, 이윤수의 탄핵으로 1689년 남해로 유배길 에 오른 후 배소에서 병사한다. 노도에서는 중죄인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귀향살이 형벌 중 위리안치(圍籬安置)령이 내려졌다. 위리안치는 죄인을 집 안에 가두고 외부를 탱자나무로 둘러 가두고 입구를 사람출입을 금하는 나무를 박고 조석거리를 10일에 한번 주며, 스스로 우물을 파서 자급하게 하는 오늘날 가택연금형이다.

김만중이 유배된 곳은 섬 중에서 섬이었다. 남해군이 남해대교 개통으로 육지화 되었지만 유배지는 아직도 섬인 노도이며, 노도 선착장에서 0.85km 이동하면 서포 김만중의 흔적인 초옥터와 우물지, 병사하며 만든 허묘가 남아 있다.


남해 유배를 와 한시를 남긴 또다른 인물로 자암 김구(金絿, 1488-1534)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07년 생원과 진사에 모두 장원 급제하는 정치 유망주였지만 1519년 기묘사화로 남해에 유배되면서 70여 편의 한시를 남긴다.


두모마을에서 곡선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두모 봄소식은 남해 금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바다로 흘러들기 전 계곡을 따라 다랭이 논밭을 만들어 놓은 곳으로 5년 전 마을 관광 사업으로 다랑이 논 69필지 5.2ha에 유채를 심은 후 해마다 계속 이어오고 있다.


▲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식 논에 가득핀 유채

▲ 남해 금산 못미처 도로변 아래 위치한 유채밭이랑

곡선의 아름다움 '남해 두모마을'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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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한 국내 봄꽃 나들이 농촌체험휴양마을 10선이 발표되었다. 유채꽃 여행지로 삼척 맹방유채꽃마을(4월 중순), 완도 느림보마을(4.1~30). 남해 두보마을(4.1~4.30), 제주 가시리마을 그리고 벚꽃으로 속초 하도문쌈채마을, 하동 의신마을. 매화 여행지로 임실 구담마을과 순천 향매실마을 그 외 양평 산수유마을과 김천 이화만리마을 등이 소개되었다. 그 중 오늘의 여행지는 남해 두모마을 유채꽃 여행으로 2014년 농림부에서 발표한 농촌관광사업장 품질평가 4개 부분 모두 1등급을 받았다.


두모마을 유채밭은 좁은 땅에 곡식을 심기위해 돌담을 올리고 농사지을 공간을 확보하면서 층층이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다랑이 논이다. 다랑이 논의 특징은 정교한 멋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라인의 아름다운인데 그기에 샛노란 유채꽃까지 황금빛 물결을 이루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가. 어디 그뿐인가 유채 물결 너머 떡 버티고 배경이 되어주는 금산의 자태는 이곳 두모마을의 장점이기도 하다.


유채꽃하면 평지에 드넓게 피어난 샛노란 물결을 떠올릴 것이지만 유독 그 많은 봄 여행지를 제쳐두고 남해까지 찾아간 것은 좀 특별한 유채단지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계곡을 따라 좁디좁은 다랑이 밭을 만들고 돌담을 쌓아 층을 이루며 해안까지 내려서는데 바다에서 육지로 쏙 들어온 형상이라 하여 드므게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마을의 독특한 지형으로 태풍이 불어도 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곳이며, 주민 9가구에서 민박 및 캠핑장 그리고 2인승 카약 체험도 할 수 있다. 체험 예약은 전화(010-8500-5863) 홈페이지(www.du-mo.co.kr)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내가 처음 찾은 두모마을은 30대 초반 우리나라 암각화를 찾아 전국을 여행하던 시절 남해상주리석각(기념물 제5)을 찾아가면서 첫 인연을 맺었던 마을이다.


오늘날에야 상주리암각화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등산로가 생겨 있지만 십여 년 전에만 하여도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는지 주민조차 몰랐고 그렇게 두모마을 비탈진 계곡을 따라 바위라는 바위는 다 헤매고 다녔다. 그 당시의 기억으로 지금 유채밭 고랑 어디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작은 크기의 암각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유채밭 뒤로 보이는 산이 남해금산이다.

두모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남해금산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바위를 올려다 볼 수 있다. 특히 두모마을에서 바라보는 부소대는 인상적이다. 부소대는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유배되어 머물면서 부소대라는 이름이 생겼고 그 속에 암자가 부소암이라는 것이다. 부소대로 향하기 위해 철난간을 지나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부소대 부소암과 철난간이 조망된다.


여행마치고 돌아 나오면서 저녘식사를 하다.


▲ 동천식당

남해군을 여행하면서 많은 먹거리가 있다. 남해에 왔으니 남해 죽방멸치로 보글보글 끊여내는 멸치찌게도 좋지만 흔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젊은층의 지갑 부담도 있기 마련이고, 여행하면서 모처럼 고급 음식을 먹고 폼생폼사도 하고 싶지만 굳이 좋은 식당을 두고 고급요리를 찾아다닐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남해 독일 마을에서 조금 내려서면 삼동면 갈림길에서 동천식당(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천리 1029-1 )을 만난다. 들어가 보면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흔한 순두부찌개는 가격이 저렴하다. 하지만 순두부 맛을 먹어보지 않고는 논하지 말라 할 만큼 깔끔한 밑반찬과 두부찌개는 추천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식당을 잘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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