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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동래읍성 역사축제 | 여행일자 : 2016년 10월 07일-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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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死易 假道難(전사이 가도난) 2016년 제 22회 역사의 충절의 고장 ‘동래읍성역사축제’가 10월 7일 금요일을 시작으로 10월09일 일요일까지 동래문화회관, 읍성광장, 온천장 일원에서 진행된다. 특히 매년 축제현장을 통해 공연되는 동래읍성전투 실경 뮤지컬은 여느 축제현장에서 만나기 힘든 교육장의 장이자 진정한 축제의 면모를 보여준다. ▲ 명예 고을 사또를 모시고 행차(동래구청 앞)
일본의 전국시대를 무력으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의 안정과 영토욕을 채우기 위하여 조선을 침략한다. 조선은 혼란스러운 정국과 맞물려 무기력하기만 하였으니 왜적과 대항하여 싸우기 보다 도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모두가 도주를 한 것이 아니었다. ▲ 거리행진 중 도로에서 공연을 펼친다. 부임한 충렬공 송상헌 부사에게 길을 내 놓으라 압박하는 왜군 충렬공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은 자(字)는 덕구(德求), 호(號)는 천곡(泉谷),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명종 6년(1551)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여 15세 나이로 승보시(陞補試)에 장원, 20세 진`사를 거쳐 조선 선조9년(1576) 당시 26세였던 송상현은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선조24년(1591) 동래부사로 부임 그리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에 동래성이 함락되자 갑옷 위에 조복을 덮어 입고 선조가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왜병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후 충렬공 묘소는 선조 28년(1595) 흥덕구 수의동으로 이장되었고 부산 동래구에서 배향하였으며, 충렬사 내 송상현공명언비를 세워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있다. ▲ 죽음으로 싸우는 결사항전 1592년 5월 25일(음력 4월15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동래성을 향해 진격하자 동래성은 한순간 긴장감에 빠져들었다. 1576년 별시문 급제하여 1590년 동래부사로 내려온 송상헌(宋象賢 1551-1592 부사 그리고 조영규 양산군수는 죽음을 각오하고 항쟁을 결의한다. 이때 일본 왜장 고니시유키나가는 송상헌 부사에게 협상을 제시한다. 戰則戰矣 不戰則假道(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즉,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고 하자 송상헌은 戰死易 假道難(전사이 가도난) 싸우다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는 대답을 하였다. ▲ 동래성 공격하는 왜군 동래성 전투는 임진년 1592년 04월 14일~15일 이틀간 동래읍성 남문에서 결사항전을 하였으나 동북쪽 성벽을 공략하고 성 안으로 왜군이 입성하면서 성안에 있던 군,관,민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전세가 기울자 송상헌 부사는 갑옷 위 조복(朝服)을 입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4번 절을 하고 부채를 펼쳐 부친에게 편지를 남긴 후 최후를 맞이한다. 편지에는 孤城月暈(고성월운) 列鎭高枕(열진고침) 君臣義重(군신의중) 父子恩輕(부자은경) 즉, ‘외로운 성은 달무리처럼 포위되었는데 여러 다른 진영에서는 도와줄 기척이 없습니다.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무거우니 부모와 자식의 은정을 가벼이 하오리다.’라며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고을 수령 거리 행차 재현 동래부 동헌에서 동래문화원장 허창석 씨가 올해의 명예 사또가 되셨다. 그리고 시작된 행차는 동래부 동헌을 시작으로 동래구청 앞에서 고을 사또 환영식 축하 뮤지컬 공연이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 명예 고을 사또 동래문화원 허창석 씨 4년 연속 유망축제 선정 및 부산시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부산 동래읍성역사축제 그 첫날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출정식에 약간의 혼선이 생기나 싶었다. 거리 행진을 할 고사리 손 취악대를 비롯하여 여러팀들은 지급해 준 비옷을 입고 동래구청까지 축소 진행하여 하였지만 고맙게도 중간에 솟아지던 빗방울이 멈추어 행진이 더 이어졌다. 동래구청 앞 거리 뮤지컬 ▲ 극단 '끼리' 공연 새로 부임한 사또를 환영하는 동래 백성들 축제행사로 금요일 동래부사행차 시가행진을 시작으로 읍성광장과 북문언덕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금요일 오후 2시부터 동래읍성 성곽밟기, 오후 4시 동래부사행차 길놀이, 오후 7시 불꽃축제, 그리고 이어서 동래성전투재현 뮤지컬이 진행된다. 토요일에는 동래읍성전투가 오전과 오후 두차례 진행되며 다양한 민속공연이 펼쳐진다. 또한 10월08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온천장 허심청 앞에서 동래세가닥줄다리기가 펼쳐진다. ▲ 동래읍성 역사축제 거리 행진
동래는 동쪽의 내산(箂山) 즉,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의 줄임말로 해석하고 있다. 동래는 삼한시대 변진독로국을 시작으로 신라 경덕왕 16년(757) ‘동래군’으로 최초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동래현으로 되었다가 임진왜란 패전지라는 이유로 현으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그후 오늘날 남구, 해운대구, 금정구, 연제구로 분리되고 남은 지역이 동래구이다. 동래문화회관 도로에서 펼쳐진 뮤지컬 공연 북문에서 진행하는 동래성전투 실경 뮤지컬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평화, 제2장 침략, 제3장 결의, 제4장 항전, 제5장 최후 등으로 주관공연보다 야간공연을 추천하고 싶다. 야간공연에는 특수조명과 음향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 북문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일부를 거리행차에서 보여주고 있다. 북문에서 재현되는 동래성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키다 전사한 송상현 동래부사와 동래읍성민의 전투장면을 재현한 퍼포먼스가 애잔함과 감동을 불러온다. 총 5부작으로 평화롭던 동래읍성에 왜군이 진격하면서 격돌하게 되고 마지막 5장에서는 동래부사 송상현의 장렬한 최후로 마무리한다.
뮤지컬로 재현된 동래성 전투 2011년부터 주제 공연으로 극단 "끼리"프로젝트에서 공연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기존 90여명의 동원인원에서 100명이 넘는 참가자와 전투장면시 음향효과를 대신하는 전통문화연구회 얼쑤에서 타악단체가 참여하여 한층 더 현장감을 더해주었으며, 야간공연을 위해 특수조명이 동원되었다.
동래읍성 역사문화축제 식전, 식후 행사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축제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실외 야외공연무대에서 급히 실내 동래문화원 대강당으로 바뀌었다. 굿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였고 대강당에서는 식전 공연과 식후 공연을 이어갔다. ▲ 식전 공연 동래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외국팀의 공연
축제가 깔끔하다. 난잡한 먹꺼리 장터가 없다. 자원봉사로 이루어 지는 저렴한 가격의 음식과 각설이 타령으로 흥을 내는 그런 축제가 아니다. 동래읍성 역사축제는 가족과 함께 역사를 체험하고 배우며 느끼다 돌아가는 말 그대로 배움의 축제이다. ▲ 개막식 축하 불꽃쇼 축제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목숨을 잃은 송상현 동래부사와 그 휘하에 있던 장졸 그리고 읍성민의 죽음을 통해 지켜온 동래성 사람들의 이야기로 1996년부터 시작하여 2005년 동래읍성 전투장면을 재현하면서 경쟁력 갖춘 축제로 자리 잡았다. 동래복천박물관 고분군 사적 제273호 복천동 고분군은 부산의 대표적인 고분군이다. 1969년 주택공사 당시고분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알려진 후 1995년 부산대학교와 시립박물관 팀이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총 130여기의 유구와 9천여점의 출토유물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에는 토기류를 비롯 철기류, 장신구류, 인골, 말 이빨 등 동물의 일부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가야시대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유물중 보물 제598호 아구식 각배와 오리모양 토기가 복천동 고분군의 대표적인 발굴 유물이다. ▲ 복천동 고분군 능선길에는 발굴된 고분의 위치를 회양목 나무로 식재하여 표기해 놓았다.
동래복천동고분을 한바퀴 따라 도는 길이 이어져 있다. 동래복천동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선 후 도로를 통과하여 한바퀴 걷거나 동래시장으로 내려서도 된다. 보행로를 따라 걷다보면 옛 고분의 흔적과 동래 칠산동, 복산동, 복천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야외고분 전시장에는 복천동 53호, 54호를 재현 해 놓았다. 복천동 54호는 4세기 말에 축조된 대형 덧널무덤(목곽묘)으로, 주곽과 부곽을 갖춘 형식이다. 후대에 교란으로 무덤이 훼손되기도 하였으나 무덤이 깊어 부장유물은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복천동 53호 무담과 출토유물은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 대형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으로, 덧널무덤(목곽묘)형식의 부곽이 딸려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동래읍성지 동래 읍성지는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호로 동래구 복천동, 안락동, 명륜동, 칠산동, 명장동 일대로 조선시대 동래부를 둘러싸고 있던 읍성이다. 안내글에 의하면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의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 형식으로 쌓았다 한다. ▲ 읍성지 북문 동래성은 선조 25년(1529) 4월 14일 임진왜란과 함께 왜군의 1차 공격지로 동래부사 송상현을 위시하여 군,관,민이 죽음으로 싸웠던 현장이다. 성은 약 3.8km로 읍성 사방으로 성문을 두고 인생문과 암문을 만들었지만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비를 이유로 들어 평지성은 철철거되고 산지 성곽만 세월에 노출되어 있다가 북문과 인생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를 복원하였다. ▲ 동래산성 북문 앞 내주축성비 동래읍성 북문 앞에 도착하면 오른편에 비석 1기 왼편으로 장영실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내주축성비는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16호이다. 영조 7년(1731) 동래부사 정언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1735년 건립한 비석으로 동래읍성 남문 밖에 있던 것을 1930년경 금강공원 독진대어문 뒤쪽으로 옮겨졌다. 2012년 10월 북문 앞으로 옮겨 두었다. 비석에 의하면 읍성 둘레가 약 1.4km, 높이 3.9m 로 1731년 1월 성터를 측량하고 경상도 65개 군에서 52,00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연인원 417,050명, 쌀 4,585석, 배 1,552필, 돈 13,454냥으로 4월에 성벽을 쌓고, 5월에 성문을, 7월에 문루를 완공하였는데 당시 완성된 성의 둘레가 3.8km, 높이 5.1m 로 엄청난 공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북문 앞 장영실 공원 ▲ 장영실 공원 장영실은 동래출신으로서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그 출신지에 흔적을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모형이라도 전시함으로 과학자이신 장영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과학 대한민국의 꿈을 키우기 위해 선생이 관여하여 만든 해시계를 비롯 고천문의기 등 19점을 전시하고 2009년 11월 문을 열었다. 많은 지역축제가 있지만 동래읍성축제는 매우 유익한 축제이다. 부산시가 아닌 부산 동래구에서 치러는 행사로 먹거리 장사행렬로 축제의 의미가 전도되거나 비싼 입장료와 추가적 비용 부담도 없다. 그냥 찾아와 눈과 귀를 열어 놓고 때로는 가슴을 열어 놓고 즐기면 된다. 축제의 현장을 통해 우리의 전통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좋은 기회이자 동래전투의 재현장면을 통해 임진왜란사를 자녀에게 들려 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동래박물관과 고분군을 통해 소중한 가야사 역사속으로도 여행이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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