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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트레킹 - 수행과 기도의 청정정법 도량 김천 수도암

허영꺼멍 2017. 8. 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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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 유서 깊은 전통 도량 - 경북 김천시

"수도산 수도암"

⊙  2017.00.00 ⊙




일전에 김천 청암사를 다녀간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는 수도암이란 사찰을 알지 못했다. 수도산(불령산. 1,317m) 자락 위치한 수도암을 창건하신 도선국사는 이 터를 찾고 기뻐서 7일간 춤을 추었고,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을 예언하고 산을 수도산, 절을 수도암이라 하였다 한다. 그래서 일까? 비록 절집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천이백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의 정신적 맥을 잇는 영남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전통 도량 서원 중 한 곳임은 틀림없다.


▲ 수도암 최고법당인 대적광전으로 오르는 계단.(시설이 노후하여 약간 위험하다.)


▲ 수도암 입구 전경

여행별점 : ★★★★☆

수행과 기도의 청정정법도량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2


수도암 창건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청암사 기록을 통해 도선국사가 같이 창건했다하여 그 맥을 청암사와 같이 보고 있다. 수도암(修道庵)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수도암은 청암사와 함께 도선국사가 쌍계사의 소속 암자로 창건한 이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1900년에 포응화상이 건물을 중수하였다. 근래에 많이 퇴락하였으나 1969년이래 법전화상이 건물을 중수하고 선원을 개설하는 등 많은 불사를 이룩하였다.’


▲ 대적광전 그리고 약광전 그 앞으로 2기의 석탑과 1기의 석등, 석비  

 

현재 본당인 대적광전, 약광전, 나한전, 관음전, 선원 등이 있다. 선원은 1975년에 창건되었는데 85평에 이르고 창건 직후 외국인 수도자도 많았다. 마한전은 나한님의 신통력으로 여러 가지 영험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동.하안거를 실시하는데 수도를 하려는 스님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지정문화재로는 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보물 제296), 수도암삼층석탑(보물 제297), 수도암석조비로나자불좌상(보물 제307)가 있다.’


청암사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307

 

대적광전 석조 비로자나불상의 시선은 가야산 연화봉을 향하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이 불상은 청암사 수도암 대적광전에 본존불로 모셔진 비로자나불 좌상이다. 사각형에 가까운 풍만한 얼굴은 비만한 편으로, 가늘게 치켜 뜬 긴 눈과 평평한 코, 굳게 다문 입술과 턱 밑으로 짧은 주름이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 두 눈을 지긋하게 감고 있는 비로자나불







불상의 몸체는 거구이면서도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의는 형식적이고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반복을 피하여 변화감을 주고 있다. 손모양은 가슴 앞에서 왼손의 검지를 감싸 쥔 지권인을 취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려 준다. 불상의 받침대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된 8각 연꽃대좌이다. 특히 상대에는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로 보이는 조각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불상으로 추정된다.’

 


청암사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

보물 제296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불상은 청암사 약광전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좁은 이마의 중앙에 커다란 백호가 박혀 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풍만한 모습으로 눈과 코는 가늘고 잛으며, 입술은 두툼하게 표현되어 온화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주고 귀는 길에 늘어져 있고, 목에는 세 줄의 삼도가 나타나 있다.


▲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석불좌상




몸에는 선으로 표현된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좁은 어깨는 굴곡이 없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준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 보살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형태나 손가집으로 볼 때 여래상에 가깝다. 또 약광전이라는 전각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로 보인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경직된 신체에 도식적인 옷주름이 표현되고 광배나 앉아 있는 모습이 형식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0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

보물 제297


대적광전 그리고 약광전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잡고 있다. 2기의 탑과 1기의 석등은 두 건물을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탑을 하나씩 나눠 가지고 있으며, 탑과 탑 사이 석등을 배치해 두고 있다.


▲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서탑)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동탑 3.76m, 서탑 4.25m로 수도암 대적광전 앞에 마주 보고 서 있다. 동탑은 단층기단으로 면석에는 큼직한 눈 모양이 새겨져 있다. 1층 몸돌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로 모서리 기둥을 표현하고 각면의 모서리기둥에는 5cm 정도 깊이로 감실을 마련하고 그 안에 조각된 연꽃대좌 위에 여래좌상을 돋을새김하였다.’


▲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동탑)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서탑은 이중 기단으로, 중석 각 면에 모서리기둥, 안기둥 1주가 모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몸돌 지붕돌이 층마다 1매씩이며, 1층 몸돌에만 연꽃대좌 위에 여래좌상 1구를 돋을새김하였다. 두 탑의 형식이 서로 다르고, 법당과는 가까우나 탑 사이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쌍탑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수도암은 풍수지리적으로 玉女織錦形(옥녀직금형) , 여인이 베틀에 앉아 옷을 짜는 형국으로, 법당에는 대불을 안치하고 2기의 탑은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며, 선방 앞에는 실을 감는 도토마리석이 있다 한다.






청암사에서 수도암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무흘구곡 제8곡 와룡암, 제9곡 용추


수도암으로 향하는 길은 무흘구곡(武屹九曲) 8곡 와룡암과 제9곡 용추폭포를 거쳐 수도마을 가파른 산길을 낑낑꺼리면 올라서면 수도암을 만나게 된다. 무흘구곡이란 조선 중기 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1543~1620)라는 분이 중국 송나라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빗대 이름 짓고 정구 선생과 그 후예들이 대가천의 아름다운 계곡을 오르내리며 한시를 지어 무흘의 절경을 노래했다 한다.




수도산에서 발원해 가야산 복사면을 따라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하여 옛 가야 땅을 흐르는 천 즉, 대가천이며 대가천(大伽川)을 따라 1곡에서 9곡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는데 이를 무흘구곡이라 한다. 무흘구곡은 제1곡 봉비암(회연서원)을 시작으로 제2곡 한강대, 3곡 배바위(무학정), 4곡 선바위, 5곡 사인암, 6곡 옥류동, 7곡 만월담, 8곡 와룡암, 9곡 용추폭포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1곡부터 5곡까지는 성주군이며, 6곡부터 9곡까지는 김천시이다.


 

한강 무흘강도지

경상북도 기념물 제168


7곡 만원담과 제8곡 와룡암 사이 옛 무흘정사의 터가 있다. 한강 정구 선생이 선조 37(1604)에 터를 잡고 인근 청암사에 기거하면서 직접 공사를 지휘하였다 한다. 또한 이곳에서 수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고 주자학에 심취하여 많은 제자를 양성한 곳이라 한다.



세월이 흐른 흔적이 역력하다. 많은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왔을 공간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무너져 가는 건물을 보면서 스승이 떠난 그 자리 제자들의 발길 조차 끊어져 버린 듯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8곡 와룡암


무흘구곡 경관가도 제8곡 와룡암에 도착한다.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계곡에는 마른 나무로 불을 지피는가 하면 고기굽는 연기가 계곡을 뒤덮고 있었다. 9곡 용추폭포에서 흘러 내린 수도계곡 물이 흡사 한 마리의 용을 닮은 바위를 적시고 흘러가는데 이를 와룡암이라 한다,


▲ 와룡암 전경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바위의 모습이 길게 누운 한 마리의 용과 같다고 하여 와룡암이라고 합니다. 한강 정구 선생은 이곳에서 맑은 마음을 갖기 위하여 자기 수양을 철저히 하는 한편, 와룡지를 만들어 이 지역의 문화를 정리하기도 하였습니다.’

 

八曲披襟眼益開 川流如去復如廻 煙雲花鳥渾成趣 不管遊人來不來(팔곡피금안익개 천류여거복여회 연운화조혼성취 불관유인래불래) 팔곡이라 가슴 헤치니 시애 더욱 트이는데 / 시냇물은 흐르는 듯 다시 돌아오는 듯 / 안개와 구름 속의 꽃과 새들 다 정취 이루니 / 노니는 사람들 오든 말든 상관치 않네



제9곡 용추폭포


무흘구곡 제9곡 용추에 도착한다. 인현왕후길 들머리에서 만나는 흔들다리를 건너 숲길을 조금 내려서면 흡사 협곡으로 들어 선 기분이 묘하게 감싸는 그곳에 한 마리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듯 폭포와 마주하게 된다. 전설에는 이곳 용추폭포(용담폭포)에 수도산 물을 관장하는 이무기가 승천했다고 한다.


▲ 용추 입구





구곡이라 머리 돌려 다시 탄식하노니/ 이내 마음 산천만 좋아함이 아니라네/ 샘의 근원에는 절로 형언 못할 묘리 있어/ 이를 버려두고 어찌 별천지를 찾으리/ 九曲回頭更喟然 我心非爲好山川 源頭自有難言妙 捨此何須問別天([구곡회두갱위연 아심비위호산천 원두자유난언묘 사차하수문별천)












대부분 팔경을 이야기 하지만 이곳 대가천은 구경을 이야기 한다. 불교에서 8을 상징적 숫자로 생각하는데 이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깨달음의 세계인 열반으로 가는데 여덟 가지 수행 즉, 팔정도(八正道)처럼 숫자 8에 의미를 두지만 중국 남송대의 학자 주희(朱熹)의 영향을 받은 유학자는 9를 중시하여 무흘구곡이 생겨난 것인데 청암사에는 청암팔경을, 한강 정구 선생은 무흘구곡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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