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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트레킹 - 부산 금정산성 병풍암 석불사

허영꺼멍 2017. 9. 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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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마애불 그곳 - 부산광역시 북구

"금정산 평풍암 석불사"

⊙  2017.08.30 ⊙




금정산을 오르기 위해 병풍암 석불사 입구 도로변에 홀로 내린다. 병풍암 석불사 입구에서 병풍암 석불사까지 약 800m이며, 중간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남문까지 약 1.9km 거리이지만 굳이 먼 길을 돌아 병풍암을 거쳐 뒤편 등산로를 택한 것은 간만에 병풍암 석불사에 들렀다 가기 위함이었다. 병풍암 석불사까지 800m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거나 체육공원에서 곧장 수직으로 오르는 지름길을 올라도 된다.


▲ 평풍암 석불사 마애불


▲ 석불사 범종각

여행별점 : ★★★★☆

온통 돌로 이루어진 신비한 사찰

석불사 주차장 : 부산 북구 만덕동 산 2


병풍암 석불사는 불국정토를 염원하며 서방극락세계를 현실로 이끌어 내기 위한 마애불군이 부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사찰입구가 워낙 협소하여 여행객으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이 아니다. 병풍사는 1926년 조용선 선사가 일제에 의하여 사라져버린 만덕사를 생각하며 창건된 사찰로 1층은 대웅전, 2층은 천불전으로 사용하며, 뒤편 암벽 위에 칠성각을 모시고 그 사이에 석불을 새겨놓았다.


▲ 병풍사 초입 전경

병풍암 석불사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듯 자연이 베푼 자리에 새겨진 조각 역시 긴 역사는 아니지만 불사 당시 조각공으로 신상균, 권장학, 원덕문이 현장감독하고 불교석 조각장인 김석담 및 박판암이 6.25때 피난 와서 제작하였다. 일본에서 조각기술을배운 김석담, 박판암의 기술은 병풍사를 통해 목조건축양식을 석조로 바꾸어 놓고 전각을 2층 구조로 만드는 획기적인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평풍암 평풍사


평풍암 석불사로 향한다. 오후 늣은시간 잠깐 다녀오기 좋은곳을 물색하다 금정산 탐방로 중에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평풍암 석불사-1망루-상계봉-파리봉 순으로 원점회귀를 결정하고 첫 들머리를 평풍암 석불사로 잡았다.


▲ 등산 하산길에 들러 참배하는 등산객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말사인 금정산 평풍암(屛風岩) 또는 석불사(石佛寺)로 알려져 있다. 금정산 등산하는 사람들이 가끔 오다가다 들러 가던 조용하던 절간이 싸이 말춤 열풍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일이 생겼다. 인터넷에 싸이 말춤을 닮은 금강역사 사진 한 장 알려지면서 부산사람들 마저 그곳이 어디야?” 할 만큼 궁금해 하던 곳이 바로 석불사이다. 석불사는 단순 그것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사찰이 하나의 돌집으로 만든 독특한 사찰이자 거대한 석불을 새겨놓은 독특한 사찰이다.


▲ 외부에서 바라 본 석문

▲ 안에서 바라 본 석문


대다수의 절집은 잠금잠치를 한 대문이 없다. 그런데 석불사 옛 출입구는 고성으로 들어가는 성문처럼 돌을 쌓고 11개의 돌을 따로 다듬어 아치형을 만들어 놓았다. 회색 철대문 아래 첫 계단에는 원숭이로 추정되는 얼굴을 돌출조각 해 놓았다. 아치성문에는 석불사(石佛寺)와 평풍암(屛風岩)을 새겨 놓았다. 글 순서로 보면 평풍암 석불사로 절 뒤편 바위가 병풍을 펼쳐 놓은 듯 하여 병풍암이라 부르며, 그곳에 돌로 만든 절집이 바로 석불사라는 것이다.




절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에 종무소로 보이는 건물과 보광전이 있다. 흔히 약사유리광여래를 모시기 때문에 약사전이라 한다. 보광전과 대웅전 중간에 삼층석탑을 세워두었는데 금강역사 모습이 독특하다. 절집 입구에서 만나야 하는 금강역사가 탑에 그려져 있는데 이곳 금강역사는 악귀를 발로 짖누른 모습을 새겨 놓았다는 것이다.


▲ 석불사 대웅전 전경

탑에 금강역사가 새겨지는 것은 신라시대 탑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악귀를 밟고 있는 것은 천황문 목각 사천왕상에서나 보던 것이다. 또한 이 탑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싸이 말춤의 원조라는 웃지못할 주장이 나와 한때 이를 보려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기도 했던 곳이다.




석불사 중심법당 대웅전 앞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선 대웅전이 있는 건물은 2층 구조를 하고 있다. 전부 화강암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다듬어 절집을 표현하고 있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문은 나무문과 그 위에 다시 철문을 닫는 이중문을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유행하던 철구조로 만든 문을 바라보니 너무 돌로 만든 절집도 차가운데 철문까지 너무 차갑다. 1층은 대웅전으로, 2층은 천불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 할 수 없는 파격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대웅전 위에 천불전이라는 것은 한국불교 정서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칠성각이 독립구조로 있다. 대웅전과 칠성각 사이에 길을 열고 뒤편 석불로 가는 길을 터어 놓았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으로 상징되는 칠원성군을 모시는 곳이다. 도교의 영향이 강한 칠성각은 소원, 장수, 재물을 관장하는 곳으로 보통 산신각과 같이 있는 반면 대웅전 옆 독립건물로 있다는 것이 이 사찰을 만든 창건주의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나 싶다.




병풍암 석불사 안내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금정산에서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 중허리에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누워있는 병풍암 아래 석불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일명 병풍사라 부른다. 석불사는 1927년에 일현당 용선선사가 창건하였다. 대웅전과 칠성각 사이의 돌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다가오는데 좌우에 사천왕이 바로자나불과 약사여래불을 호위하고 중앙에 11면 관세음보살이 정남을 향해 서 있으며 그 위에 미륵존불이 모셔져있다.’



서편 계단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 서편 암벽 한 가운데에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리고 양옆에는 미륵보살과 제화가라보살이 모셔졌으며 그 양 옆으로 16나한과 마지막 끝에는 감재사자, 직부사자가 16나한을 협시하며 도량을 수호하고 있다. 전체 29위의 불상들은 완벽한 석불 만다라를 구성하고 있으며 또한 그 조각 수법과 예술성이 불교의 신앙심에 맞추어 3280종호의 원칙을 잘 표현한 돋을새김 마애불상은 국내에서 단위 사찰로는 가장 많은 29위의 석불을 모시고 있는 국내 최고의 유일한 마애불군 사찰이며 우리의 자랑거리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인 1926년 석불사를 조성할 무렵 동래는 온천장까지 전차가 다녔다. 석불사로 오르는 길목은 동래기생집을 찾던 사람들이 모여들던 그 시절 조용선 (일부는 조일현 스님이라 한다) 스님이 유명한 조각공을 불러 모아 은밀한 절집 불사를 시작했다. 불사 당시 조각공으로 신상균, 권장학, 원덕문이 참여하여 작품을 남겼으며,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내려 온 일본에서 조각기술을 배운 석조각 장인 김석담, 박판암이 참여하였다. 조각은 1940년부터 1960년까지 개조 및 새로운 불상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미륵존불(신상균/ 1950), 11면 관음보살(1940년 신상균 작품을 1959년 권정학 개조), 동방지국천왕(1960) 등 시대를 계속 이어간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불전을 벗어나 뒤편 석불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 넓은 공간을 따라 위 아래 할 것없이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부처가 다 모셔져 있다. 중앙에 관세음보살입상이 좌우 석벽을 깎아 사천왕상을 조각해 두고, 돌계단 길 위에 나한상과 독성 산신각을 두었다. 그 옆 바위틈으로 겨우 사람 한사람 들어서는데 비집고 들어서면 암벽 사이로 용왕당을 조성해 놓고 있다.



이야기로는 석조건물이 된 이유로 조각을 하고 남은 석재를 다듬어 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이지만 창건시기와 조각의 시기가 다소 간격이 있는 것과 일부 석재가 외부에서 가공된 돌로 추정해 보면 처음부터 돌로 절을 만들려고 한 것으로 보여진다.

 

미륵존불(신상균/사망 1950년 제작) 은 오른손을 결가부좌 한 상태에서 바위 위 왼손을 높이 들어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11면 관음보살은 1940년 신상균이 조각한 것을 1959년 구포에 살던 권정학이 11개월에 걸쳐 직접 새롭게 조명하였다, 팔 한쪽이 동편 암벽 아래 걸쳐져 있고 가장 늦게 제작된 동방지국천왕(1960)은 보석을 들고, 남방천왕은 노한 것 같은 눈을 새겼지만 어찌된 일인지 웃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계단위쪽으로 쭉 이어지는 모습은 악한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한결같이 선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조각된 불상은 좌우로 사천왕이 있고 해태상이 모셔진 벽면은 남방천왕, 서방천왕, 비로자나불이 계시고 반대편으로 동방천왕, 북방천왕, 약사여래불이, 선명한 선과 윤곽을 들어내고 정면에는 11면 관세음보살이, 관세음 보살상 위에 미륵존불이 벽면에 고정되어져 있다. 비로나자불 위편 벽면에는 월직사자와 8나한, 보현보살이 새겨져 있는가 하면 계단을 하나 더 올라가면 석가모니불이 있고 그 위로 문수보살, 8나한상 일직사자가 독성각 앞까지 조각되어져 있다.

 

창건 후 195011면의 관음보살을 개조하여 완성하며 총29채의 불상이 양쪽벽면을 따라 모셔져 있다. 그중 신상균에 의해 미륵존불, 16나한, 석가여래가 만들어 졌고 권장학은 11면 관음보살, 북방천왕을 제작하였으며, 원덕문은 서방, 남방천왕, 비로자나불을 완성했다.


▲ 11면관음보살 

우리나라에 많은 일제강점기 흔적이 남아져 있다. 그 중에서도 사찰로는 군산에 있는 동국사로 일본 전통식 건축수법을 답습하고 있지만 석불사는 국내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석재로 만들었는가 하면. 문살마저 철재로 만들고 문살에 조각도 철재로 만들어 다소 이질감이 있다. 부산 여행가이드에서도 이곳은 안내하지 않는다.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부산 사람도 모르는 사찰이 바로 이곳으로 일제강점기 창건된 사찰이라 하여 관심밖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풍사에 관한 사찰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나 역시 10여 년 전 우연하게 들른 후 병풍사를 알게 되었고 자료를 얻게 되었지만 창건의 역사는 알 수 없었다.


▲ 석가여래상

병풍사 인근에는 최근 불사한 많은 사찰이 있고, 많은 신도가 길을 막아 둘 만큼 찾지만 병풍사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찰을 조성 할 정도면 상당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은 틀림없다. 또한 일본에서 조각기술을 배운 조각공이 만든 불상이란 이유로 외면당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식 사찰로 꾸며진 것도 아니고 보면 근대사 문화재로 지정되어도 좋을 작품들임은 틀림없다.


▲ 16나한상


미남교차로에서 구 만덕터널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구 만덕터널 입구 150m 못 미쳐 오른편으로 만덕고개길이 이어진다. 산길을 따라 3.2km 오르면 성불암 입구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주차를 하고 다시 산길을 약 850m 오르거나 차량으로 800m 까지 오르면 소형주차장이 나온다. 금정산 대륙봉과 상개봉 사이 돌출된 능선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기암괴석이 수직 절벽을 이루는데 이를 병풍처럼 바위가 펼쳐져 있다하여 평풍암이라 부르며, 절을 석불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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