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고 승하한 조선 제6대 임금 단동의 흔적을 찾아 강원도 영월군을 찾았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 단종은 부왕이신 문종이 일찍 승하하여 단종 나이 12세에 임금이 되지만 숙부였던 수양대군은 왕권을 찬탈하고 상왕으로 물러나게 하였으나 상왕복위 움직임을 알게된 수양대군은 노산군으로 강봉하여 결국 영월 청령포로 귀향을 보내게 된다. 국가지정 명승 제 50호로 지정된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암벽이 위치하여 육지속에 섬이나 다름없었다.
옛날에야 나룻배로 건넛을 강위에는 작은 배가 여행객을 청령포로 내려놓는다. 울창한 송림과 단종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청령포에서 가장먼저 만나는 곳이 단종어소로 단출하지만 제법 위엄은 갖춘 형식을 하고 있는데 당시 송정원 일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연한 건물이다. 건물 내 단묘재본부사유지 비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1763년 영조대왕의 친필이 음각된 비석으로 높이 162cm로 단종이 계셨던 옛터 그리고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해 원감영에서 청령포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종어소를 나오면 주변은 울창한 송림으로 접어든다.
청렴포에 발을 딛는 순간 울창한 소나무숲에 시선을 뺏기기 마련이다. 단종의 유배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수림지는 수백년은 족히 넘는 노송이 늘어서 있는데 그 중에서도 관음송이란 설화를 간직한 노송은 천년기념물 제349호로 단종이 유배생활 할 당시 두 갈래로 뻗은 소나무에 걸터않아 쉬며 오열하며 울었는데 그 대 소나무가 들었다하여 관음송이라 부른다. 관음송은 높이 30m, 둘레 5m, 600년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로 지상에서 두갈래로 뻗어 있다.
관음송을 거쳐 청령포 뒷산 육육봉과 노산대로 오르는 언덕길 오른편에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주변 돌을 주워 쌓았다는 망향탑이 있는데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절벽을 내려서 다시 나루터로 향하면 작은 비석하나와 마주하게 되는데 영조 2년(1726) 세운 금표비이다.
1441년 7월 23일(세종 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 원자로 태어난 홍위 즉 단종은 8세(세종 30년/1448) 왕세손으로 책봉, 1450년 2월(세종 32년)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 왕세자로 그해 책봉 후 1452년 5월18일 문종이 승하하자 12세 어린나이로 제6대 왕에 오르지만 계유정난 후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15세에 상왕이 되었지만 박팽년, 성삼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자 세조3년 노산군으로 강봉 후 1457년 윤6월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간 긴 여정을 6월 28일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고, 다시 복위가 발각되어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등 결국 17세였던 1457년 10월 24일 유시에 당시 청령포가 홍수로 잠기자 옮겨와 머물던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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