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5호 흥륜사지는 경주시내로 들어서는 길목인 사정동에 있는 옛 흥륜사 터로 천년고도 신라에서 가장 일찍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진흥왕 5년(544) 창건된 흥륜사는 창건 후 한 달 뒤 사람들이 출가하여 승려나 비구니가 되는 것을 왕명으로 허락하였다 한다. 전하는 설에 의하면 신라 13대 미추왕 3년 성국공주의 병을 고승 아도가 완치해 주자 왕은 그 보상으로 사찰을 허락하였고 아도는 억새로 엮은 움막집을 짓고 강설을 하니 하늘에서 꽃이 떨어져 대왕흥륜사로 불렀다 한다.
1910년 금당터 및 토단과 석조 석불이 출토되어 흥륜사 터로 추정하며, 경주를 상징하는 인면무늬와당이 이때 발견되었다. 흥륜사를 창건한 아도는 5세 때 출가하여 19세에 고구려로 돌아와 어머니의 명을 받아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미추이사금 2년(263)에 신라로 왔다 박해를 받자 지금의 경북 선산에 있던 모례의 집에 기거하다 미추이사금의 딸 성국공주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하자 궁궐로 가 공주의 병을 고쳐주고 불교 전파를 허락 받았다가 미추이사금이 죽자 다시 박해를 받아 모례의 집으로 피신하여 무덤을 파고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한다.
홍륜사지가 확인되면서 흥륜사가 사지 바로 옆에 자리 잡았지만 이 일대에서 발견되는 기와조각 파편에서 선덕여왕 당시 창건된 영묘사 지명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수습되어 영묘사인지 흥륜사인지 알 수 없다.
흥륜사는 고려시대까지 왕실의 지원 아래 번창했지만 조선시대 화재로 소실된 후 폐사되고 일제강점기 당시 토단과 석조가 발견되면서 흥륜사지로 알려져 왔지만 1970년대 발굴조사에서 영묘사라는 글이 새겨진 기왓조각이 확인됨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는 학자들이 나왔다.
1072년 경부고속도로 공사 당시 절터(흥륜사지 또는 영묘사지) 서북쪽 서측 회랑지로 추정되는 건물터를 시작으로 1981년 까지 절터와 구조, 축조시기, 규모를 조사한 결과 절터가 무려 4천여 평으로 추정하고 있어 황룡사 약 9천여 평, 미륵사 8천여 평 다음으로 큰 규모로 대부분 사찰이 2천여 평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국찰이 이 일대에 존재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2015년 이전여행 > 08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북 경주] 정혜사지13층석탑 (0) | 2010.08.10 |
---|---|
[경북 경주] 하늘의 별을 관측했다는 첨성대 (0) | 2010.08.10 |
[경북 경주] 왕실의 냉장고 경주 석빙고 (0) | 2010.08.10 |
[경북 경주] 나정 (0) | 2010.08.10 |
[경북 경주] 동부사적지 고분군 (0) | 2010.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