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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김종직의 부관참시와 얽혀있는 학사루

허영꺼멍 2010. 8. 17. 18:25

 

 

 

 

최치원 선생이 자주 찾아 시를 읽던 학사루는 어느 날 사화의 피바람에 내몰려 조선의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계기가 된 비극의 장소가 되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함양 군수로 부임할 당시 유자광(柳子光, ?-1512)은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와 있던 어느 날 유자광은 함양에 들러 김종직 군수를 만나려 했으나 김종직은 남이 장군을 모함하여 죽임에 내몰았던 유자광을 바쁜 공무핑계로 피해버리자 상림을 둘러보고 학사루에 올라 시를 한수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김종직은 학사루에 걸린 시판을 보고 노하여 불쏘시개로 사용했고 유자광의 귀에 들어가게 되자 분노한 유자광은 조의제문을 트집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고 말았다.

 

함양 학사루(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는 김종직과 유자광의 피바람을 일으킨 현장으로 함양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이 학사루로 부른 후 조선 숙종 18년(1692)에 다시 세우고, 1979년 현 함양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인 함양군청 정문 앞에 옮겨 세운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구조 누각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학사루와 함께 김종직에 관해 전해지는 일화로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천연기념물 407호)가 있다. 노모를 가까이서 공양하기 위해 조정에 청하여 김종직은 함양군수로 부임하게 되고 임기가 끝나갈 1474년 무렵 마흔이 넘어 얻은 5살 먹은 아들 목아(木兒)는 홍역으로 먼저 떠나게 되는 슬픔에 잠기지만 1475년 정3품 통훈대부로 승진하여 함양을 떠나게 되자 아들을 잃은 슬픔을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학사루 앞에 심어 대신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노거수가 된 느티나무는 나무 뿌리목 근방에 흡사 두꺼운 책을 옆으로 세워 나무를 받치는 형상을 하며 자라는 이적현상이 확인되고 있어 김종직의 부관참시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비의 심정을 대신하는 느낌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