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ad의 韓, 中, 美 체험기
박웅 (Sanf) / wungpark@gmail.com
“짐을 싸야 해? -관 만들어 놨어?”
“진짜 미국으로 떠나자는 거야? -미국 화장터로?”
“죽어도 자식 있는 데로 갑시다. -제사 받자고?”
중국에서 사업을 꾸린 지 10년으로, 자식들과 떨어져 살다가 병세가 악화된 2008년 4월 어느 날이었다.
죽을 때는 다들 빈손으로 간다는데 내 팔자는 마지막 길 갈 채비를 하면서도 짐 보따리를 꾸린다. 지난 10년간 동고동락했던 중국인 도우미까지 합세해서 한 개, 두 개씩 여행 가방을 늘리고 있다. 입던 옷들은 미제라 좋아하고, 사용하던 가구나 식기는 한국산이라 좋아하고, 먹다 남은 식량까지, 이웃 중국인들은 B형 간염 말기 간암환자의 물건임을 알면서도 안타까운 표정만 잠깐 지을 뿐, 하나 둘씩 잘도 가져간다. 죽은 자의 고물 모두는 산 자를 위한 재활용품으로 태초부터 생산적이라 했었다. 그 동안 함께했던 의리도 없이 모두가 생긴 모양대로 새 주인들을 따라 나선다. 네모진 침대는 4명이 영차~, 길쭉한 소파는 2명이 번쩍, 각자의 준비된 용달차에 실려 나간다.
이젠 전화 받을 기력조차 없다. 마지막 앉아 있던 단골 소파까지 들어낼 때는, “아~ 내 생애 마지막 10년의 마감을 칭다오 소파에서 하는구나.” 했다. 며칠 더 살아보자는 심정으로 삼성병원과 칭다오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준 약봉지를 큰놈 핸드백에 넣고 또 확인한다. 칭다오 국제공항은 샌프란시스코까지 연결편이 없다. 베이징,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18시간의 비행은 환자로서 배려를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말기 간암환자가 과연 18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동방항공과 TWA를 열심히 저울질하는 아내의 울음 섞인 통화 목소리가 옆방에서 들린다. 30년 이상의 적지 않은 탑승 경험으로 보아 지금 상태로 TWA 태평양 고공비행은 생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칭다오 대학병원에서 작성해 준 ‘무지 건강하다’ 책임증서(?)로 비상시를 대비했으며, 인민폐 500위안과 책임증서를 핸드백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릴 적 기억에 상여 나갈 때 ‘어영차’ 하던 뒷걸음에 비하면 500위안은 공짜나 다름없다.
'그토록 원하던 자연사를 태평양 상공에서 한다면야…….'
우선 자살충동으로부터 자유스럽게 되고, 처자식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주는 상황이니 그들에게도 한이 되지는 않겠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항공기에서의 죽음은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스스로 자평도 해 본다.
'이 상황이 될 줄 알았으면 비행 사망보험 티켓이나 제일 비싼 것을 구입해서 탑승할 걸…….'
이곳 사람들과 이승에서의 이별식이 끝났다. 칭다오 공항서 국내선 베이징공항, 다시 그곳서 국제항공 라스베이거스 행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별것도 아닌 7개의 가방 화물들은 왜 그리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던지. 열 발자국도 딛기 힘든 몸이었으므로 국내선과 국제선의 거리는 더욱 더 멀게만 느껴진다. 이승과의 이별이 이렇게 질기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야만 하는 걸까. 정말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든다.
이륙과 동시에 임산부 배만큼 차오른 복수는 고공에서 더더욱 지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피곤에 지쳐 잠시 눈을 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한없이 불쌍해 보인다. 남다른 성장과정을 통해 경주마처럼 질주하듯 살아온 내 삶의 결과가 말기암환자 지금의 모습이라니, 내 꾐에 넘어가 32년간 동서양 고향도 없이 타향살이를 해 온 그녀, 옆 지기로 가족을 지켜주며 든든한 안방이었던 그녀는 나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을 후회하기도 할까, 아니면 그리워하면서 살아갈까?
60년 인간사 여정도 끝난 듯하고, 영원히 잠들기로 예약된 장소를 찾아가는 18시간이 삶의 마지막 비행이려니 하니 잠도 오지 않는다. 이 시간 동안 지난 60년간의 내 모습을 반성해 봐야 하고,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아비를 데리러 나왔던 큰놈이 내년에는 손자를 보게 해 드리겠다고 약속하면서 할아버지가 건강하셔야 손자도 안아보시지 않겠느냐고 지난 주에 너스레를 떨며 다녀갔다. 내친김에 작명가로 나섰다. 굳세고 건강 하라는 의미로 ‘朴健’이라 지어 보았다. Dylan Gunn. Park은 현재 15개월째 나의 친구다.
갑자기 지난 성장과정이 주마등처럼 공중곡예를 한다. 나는 48년 삼팔선 장단 태생으로 1․4후퇴 시절에 가족 전체가 경남 밀양으로 피난을 왔다. 중학교 3학년 나이에 가출을 했을 정도로 정체성이 서지 않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결국 가출소년은 종로바닥을 휘저으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그 상황에서 행한 100가지 행위 모두는 용서받지 못할 망나니 행동이었다. 지금 그 시절의 반성과 후회를 모두 거두어 가지 못함에 더더욱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때늦지 않게 중․고등 과정을 검정고시로 이어오며 가져온 생활방식과, 월남전에서 ‘내 차례는 언제일까?’ 하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전투하는 수많은 청룡 동지들의 주검들을 지켜봐야 하는 임무는 양가적인 감정으로 모진 가슴앓이를 하게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사라호 태풍으로 뒤집힌 학교운동장(6․25때 제16육군 병원)에서는 장렬하게 싸우다 순국한 수백 명 용사들의 유골을 발견했으며 발굴 작업이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발굴 작업의 가이드를 해야 했으며, 그러한 체험들은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항체를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중국 301병원, 텐진 제일병원, 칭다오 대학병원, 일원동 삼성병원 12층에서 만난 적지 않은 간암 환우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가는 쓸쓸한 모습들을 보면서 더욱 단단한 면역체를 보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60년간의 생애 중 죽음과 연관된 세월이 15년쯤이라면 죽음이라는 정해진 코스에 편승하여 닫힌 세월을 산지는 한 150년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잊고 싶어도 잊어버릴 수 없는 죽음의 각인이었기에 지난 세월 죽은 자들과의 고공대화 18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미안함에 한없는 참회와 가슴 저린 눈물들을 부족하지 않게 쏟은 날이기도 했다. 이런 죽음에 깊이 관련된 삶의 경험은 70년대 말 가전담당 주재원시절, 낯선 세계를 떠도는 삶을 선택하게도 했다. 극한대의 죽음과 비교하면서 두려움을 떨쳐버렸고 삶의 한바탕, 한바탕에 승부수를 두고 배팅을 하며 nomad(유목민)의 세계를 즐기기도 하였다. 지금 되돌아보니 세계를 떠돌며 산 세월은 나름대로 행복했고 보람도 있었으므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라스베이거스 미국 내 첫 단기입원
기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네바다병원으로 실려 갔다. 무슨 영문인지 흰 가운의 펠로우가 엉성한 한국말로 물어 온다.
“한국 사람이요?” 끄덕이는 대답에,
“거주지 샌프란시스코로 가시오.”라고 한다.
<이식 수술전의 UCSF 병원생활과 외부 나들이 때의 복수천사 >
주별 거주지(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따라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장기 치료, 전 간이식 예후치료 등은 거주지 병원을 찾는 것이 월등하게 편하다는 설명과, 간이식, 신장이식으로는 UCSF병원이 좋으니 그 곳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우선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으로 복수 뽑는 시술을 해야 했다. 중국이나 서울 같았으면 2시간 안에 걸어 나올 수 있는 복수 뽑기 시술을 3일이나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복용 중인 처방약에 대해서도 Hepsera?, Humlog?(Insulin)만 아는 척하고 우루사 등 비싼 홍삼엑기스는 아예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도 조상이 한국인이라 한다. 희귀 성씨로 바로 알게 되었지만, 그는 사원 시절 바로 직장 상관의 아들이었다. 복수로 인해 한국병원에서 처방하여 복용 중인 이뇨제(알탁톤, 라식스) 등은 안 된다기에 그 자리에서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중국, 서울에서 발병한 초기부터 환자가 같고 병명이 똑같은데도 미국 병원에서의 처방은 완전히 다르다. 질기기도 한 것이 생명이라고는 하지만, 1박 후 회진에서 당신은 하루 이틀 사이에 죽지 않으니 엄살 좀 피우지 말라고 경고장을 준다. 3주전 84㎏ 체중이 66㎏으로 18㎏이나 팍, 자동 다이어트가 됐는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원인을 묻지도 않는다. 미국에서의 첫 진료는 15분 정도는 의사의 진료진찰이고 15분 이상은 환자 질문시간이 되어서 40분 가량 진료 후 입원실로 직행했다. “왜 복수란 넘은 왼쪽으로만 찔러 빨아 퍼내느냐?”라는 질문에 바로 3자 전화통역으로 갖다 붙인다. 한국인끼리 3자 전화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요령을 터득해서 간호사, 영양사, 목사, 청소 미화원, 채혈 임상관리사, 대소변 화장실 검사원, TV 전기 맨, 방문자 족족 모두 3자 전화통화로 시간제한 없이 한국과 중국에서 누리지 못했던 의사와의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의사 수준의 펠로우는 백인과 중국인, 간혹 가뭄에 콩 나듯 한국인이 있고, 간호사 등 서비스 직분을 가진 이는 백인과 필리핀 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다. 행정요원 대다수는 남미 쪽 사람으로서, 3교대로 매일 30명 정도가 내 방을 드나드는 것 같다. 병실에서 틈만 나면 한글로 질문서 작성하는 것이 나의 본업으로 변했고, ‘6개월은 살아 버틸까?’ 하며 고민도 해 보는 밤이었다. 이곳은 한국, 중국과 마찬가지로 친절한 서비스도 훌륭하지만, 먹는 것과 책, TV(케이블) 등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물자 공급 서비스가 더욱 돋보인다.
3일 후 샌프란시스코, LA에서 날아온 두 아들과 칭다오에서 헤어진 후 2주일 만에 반가운 부자 간 악수를 나누고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그들은 아비 미국 행을 설득하고자 2주 전에도 중국에 왔었다). 모두가 아내의 지략(?)대로 아들들은 참모요, 하던 사업 모두 포기하고 빈 몸에 빈사 상태가 되어 돌아 온 나는 패자인 것 같다. 큰아들의 준비된 스케줄대로 나는 UCSF에 실려 갔고, 둘째 놈의 법무 노력으로 앞으로는 병원진료 모두가 일생 공짜라 한다. 그 넘은 UCSF 등록 후 간암에서 죽어나간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아비를 안심시킨다. 장가가더니 이젠 거짓말도 하는구나, 했더니, 역시나 주치의도 “죽어 나간 자 없으니 향후 내 집이려니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나 계획을 잡으시오.”라고 한다. UCSF는 라스베이거스와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보이는 대다수 사람들은 근무자이거나 서비스 클릭들이다.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이는가 싶으면 빨강 비상벨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간호사가 직행으로 찾아오고, 잠시 후에는 내과의가 손 흔들며 나타난다. “어디 불편하냐?”는 당연한 첫 질문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엉뚱하게도 서울 이야기부터 꺼낸다.
“서울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는데…”로 시작이다.
“서울은 우루사를 으뜸으로…”
“우루사가 언제 때 왕궁이냐?”
“헵세라와 동시대 한국형 왕자다.”
그제야 한바탕 웃는다. 환자 웃기는 방법도 교육이 있었는지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자금성이 좋다’고 하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분명 김치와 갈비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아내가 출근 때마다 홍삼 캔디를 들고 와 모둠 나누기를 하는데도 항상 한 봉지가 모자란다.
내․외과 협진제도
중국이나 서울과 다른 점은 간암환자의 경우 내과 외과가 같이 진료를 한다는 것이다. 오전에 내과의가 다녀가면 오후에 외과의가 다녀가고, 더구나 찾아오는 펠로우는 80%는 다른 사람이고 꼬부랑 명찰표기로는 그 많은 소속감을 알 길이 없다. 아침 정기 회진 때는 내․외과의, 약사, 수간호사 포함 12~3명의 회진군단이 찾아 드는데 환자 한 사람을 두고 회진군단 모두가 질문 하나씩을 하는 상황에 한계가 있었는지 3자 통역이 아닌 직접통역사까지 준비시켜 온다. 역시 이방인 환자가 많은지 안내판에는 8개국 언어가 준비되어 있다. 아래 7번째 글자판에는 한글이 쓰여 있는데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고 한국 사람들이 간이식 수술을 위하여 알게 모르게 빈번한 출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한국, 중국과 마찬가지로 의료진의 개인 의술은 미국도 평균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확실한 차이점은 진료시스템이 아닐까 한다. 내․외과가 동시로 하는 진료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한국, 중국에서 기억해온 부서 선택은 환자가 죽기 전에는 간경화, 간암 환자를 책임지는 내과가 “외과로 가시오.”라는 진료의뢰는 환자 당신이 죽어 화장이 끝날 쯤일 거다. 무슨 과별로 매상 금메달 쟁탈전이 있거나 잘못된 진료기록에 문제가 있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스템의 현대화는 병원 관계자나 환자들 모두를 위해서도 절실하다고 느꼈다.
병원까지는 25마일로 왕복 50마일 거리를 매 주마다 실려 다녀야 한다. 오는 길에 처방전 수납 처에서 스위스 제 잭나이프 열 십자에서 본 듯한 Logo의 Disabled Person(장애인)이란 플라스틱 한 장을 준다. 지금까지 미국 시내 어디든(광화문 사거리, 청와대 정문 같은 곳은 제외) 주차 공간만 있으면 모두 공짜로 시간제한 없이 주차가 가능하다.
< 핸디캡 카드 >
나는 병원 종사자들에게 쉬운 발음으로 '마패'라고 알려 준다. 한 번 주차에 26불 가량이며 베이브릿지 한 번 건너는 데 4불(지금은 5불)을 내면서, 또 정기검진 3주마다, 주치의는 매달, 당뇨 치료도 매달, 초기 매달마다 7~8회는 겁도 없이 대장의 왕복 운전에 실려 다녀야만 했다. 한 달 후 “정말 미안하다. 안내가 섬세하지 못해서 미안하다.”하고 거듭 이야기를 하며 환자번호 스티커를 100여장 인쇄해 주고 동네 제일 가까운 ‘LabCorp(미국 임상진단 시스템 개발업체)’을 찾아서 걸어 다니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1분 정도로 끝나는 피 한 번 뽑기 위해서 중국서 일원동으로 왕복 비행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같은 흡혈귀(?)와의 만남까지도 즐겁기만 하다.
그 후 지금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LabCorp 분점에 매달 한 번씩 출입하고 있다. 그리고 뭔가 처방전을 한 장 만들어 주면서 DMV 자동차 사업소로 가란다.
이렇게 변화한 환경을 이 나이 되도록 모르고 지나온 주원인은 어디 있을까? 죽어라 평생 동안 읍소자리 지키는 자들의 큰 감투를 세습하는 집단이나 특급 취재니 뭐니 하는 받아쓰기 9단 기자들의 은혜가 아닌가도 해본다. 그들만을 의지하고 세상물정 다 아는 척해온 책임 또한 자신에 대한 중죄인이 되고도 남음이다. 흡혈귀는 본인 공간에서의 출입자만을 제한하여 모두를 빨아들이고, 타 병원 출입은 허용치 않는가 보다.
한국, 중국에서 16회의 복수천자 경험이 있지만, 입원하면서까지 복수를 제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왼편 옆구리 푹 찔러서 팬티 고무줄로 4,000~5,000㏄ 정도를 쓰레기통에 담는 곳이 중국의 대다수 현실이었는데 이곳은 꼭 하루 이상 주무시고 가라고 당부한다. 복수천자 한 번을 위해서 소모되는 일회용품들은 가슴까지 오는 위생 쓰레기통에 하나 가득이다. 막장쯤에는 3일 만에 복수가 다시 차오르는데도 죽지 않겠는지 “12,000㏄도 흔한데 아직 멀었다”며 “빼곡히 활짝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까지 환자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제거가 끝났어도 최소 4시간 이상은 손목에 팔찌를 착용한 채 침대에 눕혀 놓는다. 삼성병원, 텐진 제일병원 등에서 뽑기 종료 전 허리춤 혁대 재정비하던 잽싼 탈출준비와는 전혀 다른 대우다. 그리고 인턴 두 명은 이미 여자 B컵 이상 되는 말기 간암환자 내 젖가슴을 마지막 그리면서 부인과 취급을 한다. 최종 오른쪽 복수 뽑기는 더 이상 무리라며 왼쪽 뽑기 후 Tips시술을 했다.
18시간 정도를 견뎌낼 수 있을까, 했던 어둠의 터널을 지나 산 자로서 어느덧 4개월째를 지나고 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은 직감하였는데, 대장 내시경 때 입는 가운을 갈아 입히고 이동침대로 멀쩡한 사람 눕히더니 도착한 곳이 마치 인체를 조각조각 해부할 듯한 분위기의 영상의학과였다.
Stress Test M/C검사는 CT, MRI와 또 달리 상하반신을 눕힌 채로 매달고 세우고 먹이고 1시간 이상을 야단법석이다. 그리고 옮겨서 8개월 임신 복수 배를 바르고 읽고 듣고 하더니 저희들끼리 미팅하고 내일 오란다. 역시나 우편 사타구니 동맥을 순대 자르듯이 또 자른다. 큰 형님 뻘 되는 암 하나가 아직은 8.2cm에서 모자라는 모양이다. 암 덩어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건지, 휴면상태로 만든다는데 암에 은팔찌 채우면 뭘 하나? 월드시리즈 같은 큰 경사 때 되면 벌떡 깨어나 암이란 넘은 더더욱 크게도 자라는데. 체중이 올라서 70㎏오 유지하고 있는데 간이 1.4㎏ 정도라고, 간의 무게는 그렇다 치고 암의 무게가 얼른 자라서 오히려 2㎏쯤 되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면 세상 하직하는 거랑 같은 논리다.
지난 8년간의 습관에 솔직히 암 덩어리 커가는 것은 특별히 걱정을 하지 않았다. 복수의 고통은 암 덩어리 성장에 비교가 되지 않았으니까. 암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복수가 주는 비아냥거림은 사람 체통을 말이 아니게 한다. 조형시술로 오른편 서혜부 동맥 칼질이나 동맥 압력으로 쏟아지고 치솟는 핏줄기는 시술자 가운으로 충분히 받아 냈으리라. 저 핏줄기 가운데 B형 간염바이러스와 암 덩어리가 산산조각 부서져 나와 주면 서로 좋잖아, 하며 엉뚱한 망상도 해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시간적 느낌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왜 시술해야 하는지는 중국이나 한국서도 많은 설명들을 듣고 또 들었다.
입국 5개월 후부터 사타구니 옆 자락에 발생하는 탈장은 크기도 엄청나서 손가락 없는 팔뚝 하나가 사타구니에도 생기나 했다. 침대 누워서 튀어나온 넘을 위로부터 압력을 가하면 분수 물기둥 사라지듯 없어지고, 일어나기만 하면 역시나 또 팔뚝이다. 20대도 아니고 현관문 한 번 빼꼼 내밀기도 겁난다. 생긴 꼴로 봐서는 무슨 대단한 정력가인줄 알겠다. 젊을 때 발기를 해도 이 정도 우람하지는 않았을 거다. 문제는 탈장상태 8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대장, 소장 탈장 부위자체가 염증으로 썩기 시작 한다는 거다. 의자지팡이 신세로 몇 걸음 살아 움직이는데도 탈장이 여간 힘들게 하지 않는다. 더구나 당뇨환자(Humalog?, Lantus? 두 가지 인슐린 사용자)로서 외과의 칼질은 신경이 가는 모양이다.
간이식 후에 탈장수술 하자는 걸 “언제 이식인데?” 하며 10년을 고행해온 내게 미국 놈들까지도 또 한 번 거짓말들이다. 수술 후 망사덮개만 뼛속으로 씌우면 된다기에 무조건 하자고 엄살을 부렸다. 짧은 수술 시간은 견딜 만했으나, 그 후유증으로 하반신 전체가 검붉은 피 멍으로 확장되어 볼 수가 없다. 골반 내에서 핏줄이 터졌다는 것, 재수술은 안 된다며 하반신 전체를 검붉은 혈관으로 도배해 놓은 것이 정말 가관이다. 더구나 복수 임신배도 보기 민망한 지경인데, 얼마나 이스트를 많이 쳤는지 하반신 붓기가 이미 심벌을 잡어 먹은 지 오래다. 간암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줄 알았더니, 이젠 검붉은 몸이 기형 같아 보이면서 시체 같기도 하다.
어차피 마감할 인생으로 죽기 전 100보라도 걸어보자는 심정이었고, 결국은 200보도 걷게 되었다. 탈장도 사라질 만했고 피부색도 사람다워져 가는 보름 만에, 이번에는 오른쪽 탈장이 솟아오른다. 피 멍이 엄연히 가시지 않았는데도 또 한 번 엄살이다. 조형시술 동맥 옆자리는 내․외과 단골인 모양이다. 차차, 내 사지 모두가 그들 임상실험의 본격 대상물로 지목됐구나, 생각하니 진료하는 모든 이가 이젠 편안하게 보이지가 않는다. 젠장, 간암이란 썩어빠진 간만 도려내면 되는 게 아니었다.
Tips(Transjugular Intrahepatic Shunt(경내경정맥 간내문맥-간정맥 단락술)시술
죽을 자의 마감 때가 되었는지 복수의 고행도 한계점에 다다른 모양이다. 23회의 복수조절은 복수천자와 이뇨제를 투여하였는데 그 결과로서 신장에 문제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뇨제는 또 다른 고통을 수반해서 변비, 수면장애와 함께 다리 비틀림, 매일같이 쥐가 나는 등 문제가 되어 이젠 Tips 시술을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또 전신을 눕혀 묶여 들어가니 수술대 옆자리에 준비된 연장들이 예사롭지 못하다. 길게는 1미터가 넘는 가느다란 카데타(catheters), 생검용기구 등 30여점 넘게 보이는 시술기구들이 만능 횟집 환경이다. 이번에는 임산부 배를 찔러서가 아니라, 아예 칼로 횟감을 떠서 케이블 구멍으로 설거지 통로를 만드나, 하면서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이미 4시간이 지나 있었다. 우측 목덜미에는 혈관조형용 도관 하나가 꼽혀 있었으나 임산부 배는 여전히 멀쩡하다. “크게 숨 들이마시고 멈춰” 하면서 바로 뽑아내는 게 눈 익은 파이프다. 길기도 한 그놈을 통해서 스텐트(stents) 하나를 임시로 삽입했다고 한다. 위에서는 위내시경, 아래서는 대장내시경 인체 내 케이블 관광은 다 했을 것인데, 이제는 목덜미를 천자하여 간 내에 간정맥과 문맥의 shunt(통로)를 만들고 스텐트라는 금속으로 공급공사를 했다. 후에 간 이식할 때, 고물인 간은 모조리 들어냄과 동시에 금속스텐트는 함께 버린다고 한다. 물론 이뇨제 복용은 중단되었고, 3주 후부터 장마철 개천에서 물 빠지듯이 복수 배는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그 후 철천지원수 같았던 복수와 영원히 이별했다. 복수의 고통은 빠르게 죽음이란 놈을 선택하게도 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환자 본인들만이 가져야 하는 힘겨운 짐들이 될 것이다.
< 1988년 체중 107kg일 때 B형간염 진단 받다 >
꼭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 동안 알아왔던 지인들과 생의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싶어서 모임에 실려가 봤다. 뒤편에 앉아서 보니 아내를 보는 자마다 “남편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환장할 일이다. 107㎏ 나갈 때 보았던 지인들이라 70㎏도 안 되는 나를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는 후문이다. 깜짝들 놀라며 “소문과는 다르게 아주 건강해 보인다.”고 말한다. 죽일 넘들, 차라리 “내일 자네 추모예배에 참석 할게…….” 했다면 오랜만에 한바탕 웃기나 했을 텐데…….
그 날 이후,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인지 지인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문병을 온다. 주기도문도 못 외우는 내 앞에서 열심히들 흐느끼는 기도까지 곁들인다. 건강 찾게 해 달라고 무릎까지 연신 구부린다. 그분들 중 11년이나 손아래였던 건장하고 건강했던 한 사람이 2주 전에 운동을 하다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본인 자신도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이었겠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얼마나 황망했을까, 아까운 사람이었는데. 골골천수라는 말을 음미해 본다.
Tips 시술 후 3주가 지난 아침, 부작용으로 간성혼수가 발생하여 가족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깨어보니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언제 여기 입원했어? ”
“33년간 동거해 오면서 당신 배설물 보기는 처음이다.”
“그래? 기회가 없었는데 잘됐구먼.”
3일이 지났다고 했다. 간암이란 요물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혼수상태까지 몰고 갔다. 간성혼수에 빠져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식물인간에서 깨어나기 10분 전쯤 TV 소음이 잠깐 스쳐갔을 뿐이다. 지금까지도 간성혼수 3일간의 기억은 전무하기에 생일 날짜도 3일을 뒤로 밀어줘야 공평할 것 같다. 3일간 감쪽같이 뇌수면에 빠져 기억에서 사라졌는데도, 또 다른 나는 평상시와 똑같이 먹고 배설하고 어눌하게 말까지 했다고 한다.
아내가 한국식 가지 나물을 입원실로 가져와서 먹인 모양인데, 음식물이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은 내가 봐도 입맛이 떨어진다. 아들이 문병 와서 아비의 식사장면을 본 후로는 지금까지 가지로 만든 반찬은 모두 멀리한다고 한다. 차라리 간성혼수에서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고통은 겪지 않았을까 했기도 했다. 하지만 소문으로만 들었던 식물인간에서의 부활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질기게 이렇게 살아 낸 이상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했다. 기억하지 못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삶은 결코 나의 삶으로 인정할 수 없다. 앞으로도 언제나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정신과 육체를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한 사건이었다.
내. 외과 동시 진료제도에 놀라다
중국이나 서울과 다른 점은 간암환자의 경우 내과 외과가 같이 진료를 한다는 것이다. 오전에 내과의가 다녀가면 오후에 외과의가 다녀가고, 더구나 찾아오는 펠로우마다 80%는 다른 사람이고 꼬부랑 명찰표기로는 그 많은 소속감을 알 길이 없다. 아침 정기 회진 때는 내. 외과의, 약사, 수간호사 포함 12~3명의 회진군단이 찾아 드는데 환자 한 사람을 두고 회진군단 모두가 질문 하나씩을 하는 상황에 한계가 있었는지 3자 통역이 아닌 직접통역사까지 준비 시켜온다. 역시 이방인 환자가 많은지 준비된 안내판에는 8개국 언어가 준비 되어 있다. 아래 7번째 글자판에는 한글이 쓰여 있는데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고 한국사람들이 간이식 수술을 위하여 알게 모르게 빈번한 출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한국, 중국과 마찬가지로 의료진의 개인의술은 미국도 평균적이라는 개인생각이 있으나, 확실한 차이점은 진료시스템이 아닐까 한다. 내, 외과가 동시로 하는 주 진료는 무엇을 의미 하겠는가? 한국, 중국에서 기억해온 부서선택은 환자가 죽기 전에는 간경화, 간암 환자를 책임지는 내과가 “외과로 가시요.” 라는 진료의뢰는 환자 당신이 죽어 화장이 끝날 쯤 일거다. 무슨 과별로 매상 금메달 쟁탈전이 있거나 잘못된 진료기록에 문제가 있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스템의 현대화는 병원관계자나 환자들 모두를 위해서도 절실하다고 느꼈다.
<이식수술 후 14개월만에 다시 찾은 중국 >
뇌사자 간이식 수술을 받다.
미국으로 업혀온 지 9개월 지나서 새벽 2시경에 급히 병원에서 나오란다. 습관대로 실려 다니는지라 병원에 도착했더니 오늘은 나와 맞는 “O”형 이란다. 눕혀 기다린 지 4시간 경과 후에 집으로 돌아가라 한다. 소위 대기 조였었다. 대기조의 의미는 지금 누군가의 인체해부학 실험이 옆방에서 진행 중인데 팀들 중에 조그만 실수 하나라도 있다면, 그 자는 들것에 실려 나갈 것이고 다음 타자인 내가 대신 인체실험대 위로 올라가 홀라당 벗는 모양이다. 차례가 오지 않아 아쉬운 맘에 질문을 했는데 화답은 “도너는 22살 청년으로 스키장서 공수해 왔다.”고 한다. 동양인인 내 속에서 천수를 같이 할 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1주 만에 같은 새벽시간 또 나오라 호출이다. ‘대기조? O순위요?’ 질문에 그렇다고 한다. 2009년 1월 30일 새벽에 도착과 동시에 숙달된 솜씨로 홀라당 벗기기, 가운 바꿔 입히기, 침대 눕히기 등을 절차 있게 마치고, 처음 보는 의사가 약간 뒤에 수술실에 들어가면 곧 수면상태가 될 것이고 그냥 잠자고 깨어나면 된다고 한다. 뭐 3국 돌아다니면서 한두 번 의사에게 속아(?)본 나도 아니고, 내가 할 일이란 잠자고 일어나는 게 전부라니,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원래 칼잡이 의사들은 “조금 따끔합니다.”하고 죽여 놓은 뒤에 난도질하는 것을 다 아는데. 누워 묶여서 끌려 들어가니 색깔 별 가운 입은 7~8명의 의사들이 흰 복면을 뒤집어쓰고 횟감을 째려보는 듯하다. 얼떨결에 보게 된 구석진 곳에서는 사진에서나 본 좌우 전면 간을 알루미늄 같은 박스 위에서 통째로 꺼내서 씻고 있었다.
“저놈이 내 것이랑 바꿔치기해서 나랑 천수를 나눌 중고품인가?”
생각 외로 엄청나게도 크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순간
“이름이? 생년월일?” 듣기는 했는데 깊은 잠에 빠져든 모양이다.
어딘가 아득히 간호사 신발 끄는 소리에 깨어났는데, 기억에 남는 방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르다면 주렁주렁 20여 개 수액튜브에 매달린 열매(주사액)의 색깔이 가지가지이다. 빨간 비닐 주사액은 분명 누군가의 채혈이 분명한데, 결국 헌혈자의 채혈은 내 몸 속의 피랑 바꿔치기를 하는구나? “엿장수도 주는 고물이 있어야 구멍 엿 하나 되돌아오는 것인데…….” 나는 평생 헌혈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기억들에 반성과 후회를 했다. 옆자리에서는 아내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뭐야? 수술하기는 한다고 해?”
“응, 방금 끝났어!”
복수 뽑기보다 이렇게 쉬울 수가, 믿기 어려워 아내에게 거울을 가져오라고 했다. 진짜 벤츠마크 조각을 했는지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음이 가기에 재촉을 했다. 간호사와 아내가 동시에 들어오면서 간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거울을 비춰 보인다. 깨어나면 누구나 거울 찾기 운동을 하는지 모두들 확인 심리는 같은 모양이다.
첫 거울의 반사 모습은 벤츠마크 모형의 칼자국에 철사로 바느질한 프랑케슈타인 옆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리고 통증이 오면 한 번씩 핑퐁을 누르라고 모르핀 공 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심리적인 모르핀 공이란 건 나중에야 알게 되는데 아무리 손아귀를 잡아 쥐어도 통증이 여전하기에 간호사가 가져 온 진맥주사로 그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간이식 1주 전에 공여자가 22살 백인청년이라 했는데, 결국 나는 55살의 백인 여자로부터 이식을 받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주변에는 스키장이 많은 탓에 사고 시 헬리콥터로 이동해 10월부터 4월 사이에는 도너 걱정은 별반 하지 않는다. 도너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묻기에 깊고 짧은 생각을 해봤고,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삶이 네모였는지 세모였는지는 모르겠으나 5년 더 많이 세상살이 한 나에게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도너자인 그녀의 실체를 직접 봤고, 진실로 나의 남은 생은 그녀의 뜻을 생각해서라도 실망할 만한 삶은 없을 거라 다짐해 본다. UNOS의 규칙은 도너의 구체적인 신상을 발설하지 못한다 했는데, 주치의는 쉽게도 질문에 기록을 펼치며 답을 해준다. UCSF 건물 옥상에는 6개의 헬기 이착륙장이 있다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병원 신뢰도
환자가 읽는 병원에 대한 신뢰도는 한국이나 중국(북경 301, 텐진 제일병원)이나 시설의 차이, 의료진의 출신 학교, 개인 간의 칼잡이 명의 기록자랑은 몽땅 과대포장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네바다 종합병원은 한국의 종합병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편안했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의료진에게 개인적으로 신뢰가 간다. 대한간 학회 간 경변 합병증 치료 가이드라인에 ‘난치성 복수의 치료에 있어서 TIPS의 시행여부는 대량 복수 천자의 빈도에 달려 있는데, 한 달에 3회 이상의 대량 복수 천자를 시행하여야 하는 경우에 TIPS를 고려하며, 대량 복수 천자에 순응하지 못하는 경우나 다발성 유착이나 국소적인 복수로 인해서 대량 복수 천자를 못하는 경우에도 TIPS를 시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한국, 중국에서 단 한 차례도 들어보지 못한 TIPS 시술을 도착과 함께 듣게 된 것이다. 설렁탕, 자장면 먹고 체면치레로 내는 것이 Tips인 줄 알았다. “네, 좋아졌습니다. 3개월 후에 뵙지요.” 3분 진료로는 질의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따위 무성의한 대답 한 마디 듣고자 어젯밤에 중국서 진료 차 동방항공 표로 왔는지, 올 때마다 “이건 아닌데.” 했다. 당연히 국가별, 병원 별 신뢰도에 대한 자가 평가를 해본다면, 그 동안 관련된 모든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의문과 의심으로 화가 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 이식 후 5개월이 된 첫 손자, 아들 둘, 며느리, 아내 >
주치의 제도
미국에서 병원 출입을 하자면 병원과 의사를 환자 스스로 선택하는 “주치의 제도”가 있다. 주치의를 선택한 후 주치의가 정해주는 진료에 따라서 병원도 선택되고, 부서가 연결된다. 환자에 관한 모든 출입 기록과 진료 결과는 주치의에게 자동 송달되고, 정기적으로 주치의와 진료면담을 하게 되며 향후 대책들을 논의하게 된다. 초기 UCSF 내․외과의의 주문에 의해서 UCSF 내에서 주치의를 소개 받았다. 기존 내․외과 외에 주치의가 안내한 안과, 피부과, 그리고 당뇨를 정기적으로 치료 및 진료 받았는데 HBIG, 피검사까지 내 주치의는 모든 결과를 훤히 알고 있어서 이식내과에서 못다 푼 궁금증은 모두 주치의가 대신 풀어 주고 있다. 주치의와 어긋나는 시간은 항시 전공의가 대신해주고 있다. 주치의는 개인병원을 통해 지정할 수도 있으나 동일병원 내에서 컴퓨터기록이 함께 되어 있고, 언어소통이 걱정스러울 때는 개인병원(한인 병원)을 통해서 두 명의 주치의에게 의탁할 수도 있다. 나는 기록송달에 엇박자가 나는 일이 있어서 현재는 한인주치의와는 의뢰를 만료한 상태다. 주치의 제도의 편리함은 의료쇼핑이 필요 없고 주치의가 잡아주는 병원의 일정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편리하고 혹시나 하는 의심 병에서 완벽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서울과 중국 8년간 내과, 외과, 안과, 혈당진료 그리고 처방전을 받아 천사약국에 매번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 본인이 직접 예약하고, 묻고 물어서 찾아 다니며 엇박자를 냈던 불편함을 기억한다. 주치의 제도는 진료부서가 다르고, 의사가 다르고, 예약 일정이 다르고, 장소가 크게 달라도 주치의의 사인 한 장으로 진료 받고자 하는 또 다른 의사와 자리만 함께하면 된다. 잘 통하지도 않는 전문용어 굳이 알려 할 필요도 없다. 내일 6주차 주치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손자 첫돌 기념 타월 한 장을 봇짐 해서 가려 한다. 이변이 없는 한, 내 주치의는 나의 천수를 돌보아 주리라 확신한다. 환자로서 예약과 베드 숫자?
간혹 미국병원은 예약이 잘 안 된다고 불평들이다. 그들 110%는 모두가 나 포함해서 영어, 스페니쉬에 까막눈이기 때문이다. 까막눈은 몸으로 때우든지 아니면 이웃을 빌리는 최상의 방법도 있다. 예약이라 함은 숫자 문답식으로 Y 와 N을 이해해가며 자동으로 하는 예약시스템 제도다. 어쩌면 골프장 예약보다 더 쉬워 누워서 떡 먹는 수준이다. 내가 날짜 정하고 (상대가 안돼요, 하면 N을 찍는다), 내가 시간 정하고, 원하는 닥터 오마바가 있다면 ‘Yes or No’만으로 예약이 가능하고 결코 어렵지 않았다. 그 후부터는 진료 마침과 동시에 다음 진료 일이 잡힌다. 그냥 쉽다. “중국경험 많은 환자분들 한국보다 예약 어려운 나라가 있었소?” 특히 입원실 하나 얻으려면 2인실 바가지고, 단골쯤 되면 6인실 난장판으로, 그러면서도 베드가 1,500개니 2,200개니 열나게 매상목적의 홍보들을 한다. 중국, 미국 병원들은 500베드 이상이면 매머드라 한다. 스텐포드 대학병원이 550베드라 하고, 그 유명한 UCSF만도 고작 450베드라 한다. 베드 숫자가 많기로 한국병원은 세계 최다병원이 아닌가? 3분 진료로 그 많은 베드가 부족한데, 한국경우 간이식환자들 통상 1~2개월 장기입원의 의미는 뭘까, 하고 고민도 해 봤다. UCSF에서 나의 전 간이식은 단지 5박 6일이 소요 되었을 뿐이다. 병원서의 베드숫자 과다는 모텔 방의 장기투숙 매상하고는 근본이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사유 포함해서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하루 지출(매상?)이 1,330억이라 한다. 국가서비스보험은 공짜라는 앞선 홍보에 이미 전 국민이 중독되어 있어서, 더구나 세계 최고 병원시설이란 과대홍보로 환자들의 알 권리는 제한적이고, 국민 모두가 환자가 되어서 아예 잘난 병원으로 출퇴근들을 한다. 열쳤다고 지난밤 감기로 개인병원가노? 군대 못 갔어? 투기 안 해 봤어? 학군 5번 옮겨 봤어 ? 알박이는 상습자들과 지인들이면 예약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던가? 예약 없는 엄살요령으로 119이용도 좋지만 응급실 바닥에서 2박만 즐겨보면(?) 국가 서비스 보험제도의 허상에 허탈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더구나 응급실 입구 코 맞대는 접수구는 뭉치 돈이 먼저다. 그래야 콘크리트 바닥 돗자리 주문평수도 가능 했다. 선진국은 열외라 하더라도 동남아 어느 나라하고도 수준이 다를 바가 없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보게 되는 세계최고의 의료시설이란 T.V 뉴스뿐이었다. 뎬무, 곤파스 때도 아니고 콘크리트 바닥 응급실 환경은 과히 금메달 국가라고 들어보기는 하셨는가? 예약 거저먹기는 환자손님이 없는 동네는 개인병원뿐이고, 그들은 그나마 중독성 프로포플 마약으로 매상을 올린다고 한다. 젠장… 지금까지 B형 간염의 의심병
B형 간염은 혈액경로를 통한 원인이 대다수라 한다. 그리고 간염으로 이어지는 숫자는 재수없게도 극소수라 한다. 현존하는 50대 이상 대다수는 BCG접종, 뇌염 예방접종 등 거의 모두가 동일 주사기로 다수가 맞지 않았나 해 본다. 내력 없는 모계의 10~20대 자식들이 모계수직 감염이라면 감염경로는 분명해지는 것이 아닌가? 모계수직 감염자 중 3도스 예방접종을 받아도 재수없이 항체가 생기지 않은 숫자 포함 178만 명의 B형 간염환자가 고통 받고 있다는 복지부 통계가 있다. 연령별 그래프가 일정한 걸로 봐서 재수 없는 혈통은 더럽게도 유산적이고 대를 물려가며 죄인가계로 업이 된다는 계산이다. 남성으로부터 수직 감염은 결코 없다는 통계를 믿더라도, 예쁜 딸을 가진 자는 곧바로 사육신의 가계일 수가 있다. 해병대 입대하는 날, 550명의 빡빡이 신참들 모두의 어깻죽지에 팔뚝주사기 하나, 주사바늘 하나로 쑤시고 또 쑤시고 들쑥날쑥 모든 장병들에게 주입한 사실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 달 국민의무 신병들을 위해서 주사기, 주사바늘을 모두를 양철통에 처박는 위생병 모습도 똑똑히 기억한다. 근검절약도 대단 했었다. 주사기 쏘는데 9단짜리 위생병이나 눈 흘기는 조교나 그들 모두도 이미 같은 전례를 밟았을 것이다. 550명 월남 파병, 부산 3부두에서 또 한 차례 말라리아 예방 주사라며 팔뚝주사기 한 개와 뾰족한 주사바늘 하나는 신병 입소식 때나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아마도 해병대 사령부에는 그 만능 주사기 한 세트뿐이었나? 엿먹은 기억뿐이다. 군 미필 고위 공직자들 정말 뛰어난 예견자 들이다. 위아래 2세대씩 합계 5세대 약 80명의 가계 중에 B형 간염 자는 나 한 사람으로 유일했다. 분명 수직 감염은 아니다. 의심 병은 추적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군대 기피자, 학군 따라 이전 자, 부동산 투기꾼, 알 박기, 세금 탈세자, 딸 자식 세습요령, 등등 이런 자 모두들은 신병 말뚝주사 무경험으로 딴 나라라 궁합 보는 소리로 들릴 지도… 그래서 ‘내 병은 내가 알고 가야 한다.’ 국가보험 관리에 이상은 없는가?
지금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한다. 그들 대다수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4대 보험을 납부하는 데는 국내인과 전혀 차별이 없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 그들이 납부한 국민연금(강제연금)은 누가? 어떻게? 처리는? 혜택을 입는가? 책임 있는 보건행정이 부실 할 경우 고국으로 돌아간 100만 명의 제3국 근로자들로부터 능멸 받을까 걱정이다. 당초 그들에게 납부의무 보험제도란 납부책임만 있을 뿐 혜택에 대한 절차나 보상은 있었는지? 나의 경우에는 꼬박꼬박 납부 사실만 있었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납부한 보험 처리에 대해서는 전혀 회신조차 받은 바가 없다. 미국교민이 220만 명이라 한다. 성인 10명중 6명은 개인당 월 $600불 가깝게 지불해야 하는 민간보험은 기피한다. 부부합산 $1,200불은 자영업자로서 쉽지 않는 금액으로 단체보험(근로자 대다수는 코-페이먼트 경우다) 외에 본인 개인이 민간보험을 자칭 가입했다는 사람은 들어 본 적도 없다. 큰 병은 근본적으로 주정부. 연방국가가 뒷책임을 진다는 기초상식들을 가지고 있고, 그 외 카우니, 시 정부, 등등 적지 않은 모듬보험(종합보험)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대다수 미주교포들은(일본 거류민단 교포와는 다르다 함) 고국나들이 겸 종합 진단(플러스 50만원) 코스로는 고국방문 패키지까지 대단한 광고(각 종합병원과 여행사들이 난립되어 있음)들로 교포고객들을 끌어 들인다. 2009년도 62,000명의 의료비자가 발급되었다며 마치 의료보험. 의료대국인양 공식 외무부의 발표까지 있었다. 동년 태국은 무려 147만 명의 의료비자 입국사실은 까발리지도 못하면서다. 고국나들이 대다수 교포들은 국내 거소증 소지자 혹은 형제자매의 이름을 빌려서 종합검사를 받고 돌아오는 숫자들을 행정당국은 분명 알고 있을 거다. 국내 코페이먼트 없는 진료와 공짜처방들을 받아 돌아오는 사례가 즐비하며, 때론 동일 이름자 하나로 국내 나들이 때마다 다수인원이 번갈아 병원 순방까지도 한다. 제3국 근로자로부터 납부 받아 주인 없는 공짜 돈을 교포들에게 나누는 것이 보건행정의 근간인지는 모른다. 국가서비스 보험제도와 민간보험제도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경우 중 하나라고 본다. 가령 미국서 남의 보험카드 한 번 사용은 범죄자로 여러 가지 죄명이 가미되어 두 사람 모두 받아야 할 형사책임은 불보듯이 뻔하다. 소위 일생 동안 신용불량자, 민사배상, 권리박탈 등 남은 일생을 범죄자로 마감을 해야 하는 부자유스런 삶이 된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예산 30조원이 크게 부족할 지 모르나 뒷길로 빠지는 집행자금에 대한 감사기능조차 빈곤하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돈 뜯어내는 데는 귀신 급들인지 모르나, 공정하게 나눔을 실천하는 부분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의료사고는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예약을 시작으로 진료, 치료, 처방, 예후까지 어느 하나라도 환자들의 선택은 무조건 용서치 않는 의료행정이 국가주도 의료행정인가? 그리고 흔한 의료사고나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 (진료 면허 없는 돌팔이는 제외)로 보상을 받았거나 의료면허(마약사범 면허 등은 또 빼고)가 취소되었거나 등등의 소식은 접한 예가 없었다. 오히려 엉뚱한 다른 질병을 병원에서 덤으로 얻어 나온다고 한다. 의료기득권 보호를 위해 일개 개인 신분의 환자가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무모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환자자신의 의료피해가 확인되는 경우에는 곧바로 법에 호소했을 것이며, 선약금 없는 변호사들이 줄을 서서 변호해 주었을 것이며, 환자자신이 병원 소유자 신분으로 법정을 나설 수도 있는 분담 기득권의 국가다. 기득권 위에는 동등한 질서평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형수가 죽을병을 가졌을 경우에는 집행의 기록이 없다는 곳이 미국이라는 나라이다. 예로 마땅히 국법으로 사형시켰어야 할 파나마의 노리에가의 통근 암 치료는 20년이 넘도록 삶을 누린다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간암이나 걸려 나타나면 큰 일 아닌가? 죄질이 나빠도 살려 정상인으로 둔갑시킨 후 집행을 한다는 나라와, 독감 진료 받으러 갔다가 피부암 하나를 덤으로 얻어 올 수도 있다면 당신들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겠는가 간질환의 보험에 준해서
내 경우는 캘리포니아가 주는 메디칼(Medical) 사회보장 주법에 따라서 간질환(간암, 신장 암 모두라 한다) 치료에 필요한 총체적인 금액을 기간에 상관없이 보상 받는다. 별도 상황이 있을 경우는 연방정부의 메디케어(Medicare)에 소원할 수가 있고 그 모든 과정을 UCSF 소셜워크 담당자가 입원기간 동안 대신 해 주었다. 나의 경우 65세 7개월이 되면 메디케어(Medicare; 연방정부 혜택)는 자동적으로 부여 받는다, 한다. 통상 두 가지 사회보장혜택은 불필요하나 불가분 미국 내 타주로 거주처를 옮긴다 할 경우에는 연방 메디케어를 내밀 것이고 또 다시 옮겨진 거주 주에 주 건강보험(메디칼은 캘리포니아에만 상정 되어 있음)을 신청하면 받아 진다고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장애인의 나라로 치료부터, 거주지 선택, 생활 보호 비, 학비, 교통비 등등 자활센터까지 모두가 무료 및 보조금까지 책임보호를 받는다. 한국, 미국 의료보험 차이는?
두 나라의 공통점은 의료보험의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한국은 강제적 가입 당연지정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일원화 되어 있지만, 미국은 여러 개의 선택 형 민간의료보험과 민간보험서 가입 거부되면 주. 연방정부 (Medicaid & medicare)가 전액을 담당하는 복합형 보험제도다. (민간보험회사가 병원자본에 직접 관여를 할 수 도 있다. 카이저 보험과 병원). 미국은 철저한 시장원리에 따라 민간보험회사들이 서로 경쟁을 하여 가격을 낮추는 효과는 있다. 우리나라의 단점(보험공단은 모든 의료소비재와 의료공급을 독점한다)이 미국서의 자유 시장경쟁은 장점이 될 수 있고, 또 미국의 단점은 개별적인 보험선택을 하게 함으로서 차상위 계층의 무보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09년도 중국(17,000명). 미국(7,400명)의 간이식 현황은 있는 자의 자의 권 선택이 중심이라 한다. 미국경우에 간경화 이상 간암환자 입장에서는 미국 내 민간보험 가입은 불가능하고(있던 건강보험도 맥시멈 한도가 있음) 2차 커버책임이 주.연방국가가 변제하는 복합형 보험제도는 내 경우에도 장점이 되어 혜택 받고 있다. B형 간염 혹은 간경화 등의 경우 각종 보험적용
흔히들 미국식 민간 보험은 과대 지출이며 악법이라 하고, 중간이윤을 배제한 국가서비스 보험제도가 최상이라고들 한다. 2만 불 GNP기준에서 간질환 환자에게 특단의 혜택이 있었는지에 대해 한국에서 치료를 받은 8년간의 경험을 통 털어 답변하자면 “전혀 없었다.”라고 감히 말하겠다. 한국기사에 3,000만 명 중 10%의 무보험 자 국가가 미국이라고 하는 반복뉴스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3,000만 명에 속한 나는 100년 무료진료 무상처방의 사회보장 혜택을 받고 있다. 민간보험보다는 월등한 주정부. 연방정부의 무한. 무료 평생보험제도는 배제한 채로 거짓보도가 아닌지 의문을 해본다. 일반인들과 똑같이 보험 무지자로서 지난 8년간을 한국. 중국보험에서 한세월을 낭비한 후에 인지한 결과들이다. 수입창출에 기초한 장사가 민간보험임은 분명하나 수입 없어 비싼 보험은 못 들거나 혹은 중병으로 민간보험이 받아주지 않으면, 민간보험 거부증서를 첨부해 주정부. 연방정부에서 받아주는 보험제도가 바로 MRMO(majer risk medical insurance program)이란 보증보험도 있고, 카우티에서 65세 미만까지 발급하는 (입회비 800불이 전부임) Safety Health Insurance를 서니벨 지인들 대다수가 보유하고 있다. 아직까지 많은 중국교포들이 질병치료를 위해서 중국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현지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찍이 국내 보험기사에 현혹이 없었더라면 지나간 8년 삶의 질은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질병 불문에 건강한 일반인을 위해서라도 개인 경험을 기록해 보는 것이다. “내 병은 결코 그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금전적으로 착취만 당해온 자신이 부끄럽고 흘려 보낸 세월이 후회스럽다.” 미국 간이식 총비용 처리 현황
한국서는 엄두도 못 낼 바가지 치료비라는 미국 의료에 관한 기사 내용은 사실인 듯했다. 그러나 엄청난 치료비용에 대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읽어본 적도 소문을 듣지도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저비용 지불 혹은 무료혜택에 대한 상식은 사실상 접해 본 기억이 없었다. 극소수의 무주택자, 거리주민을 위한 General Hospital의 최악의 의료 환경만을 읽었고, 훈련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간질환은 미국, 한국, 중국 어디서도 돈으로 때워야 한다는 반복정보들에 이미 세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뇌사자 간이식이라면 나는 이미 부자격자라고 스스로 낙인 찍은 상황에서 입국 초반부터 간이식 때까지 9개월 내내 의아심으로 견뎌야 했다. 혹시나 자식들에게 막대한 채무 유산이나 넘어가지는 않는지, 이들이 정말 나를 살린다는 건지, 등등 망각되지 않는 의아심과 병고의 연속이었다. 곱게 나이 드신 Social Worker(사회복지 사)가 입원실로 찾아와 개인신상정보, 병원비 지불능력 등 문답형식으로 20분 정도 보낸 후 사인하라 한다. 이식 전 9개월 치료비 및 각종 시술, 수술 포함 46만불(약값 별도)과 뇌사자 간이식 전후 6일간 52만불 합계 98만 불이었다. 그 후 20개월 현재까지 치료비 포함 약값 전액을 Medical (Medi-California)로 혜택을 받고 있고, 이후 특별한 실소득(연 15,000불 미만 소득까지 허용) 발생이 없다면 영구토록 무료혜택이다. 현재는 무소득자로 오히려 월 1,230불을 주 정부로부터 지급받고 있다. (참고로 본인은 22년간 미국시민권 자로 영주권자도 동일한 혜택이 주어짐). ※참고: Medical(Medi-California), Medicaid(Medi-New York) 등 각주(50개 주)마다 비슷한 내용의 의료혜택에 대한 조례가 있고, Medicare(Medi-Federal)는 하나 있는 연방정부의 의료보장 보험으로 만 65.7세가 되면 미국인 전체에게 자동 부여되고, 암환자 등 특정 환자의 경우는 나이 제한이 없음 B형 간염부터 꼭 받아야 할 신약처방
간질환 환자가 바라는 특급의 고민은 뻔-하다. 막대한 비용조달과 신약복용이 아닌가 한다. 평생토록 부담스런 내성변이로 시한부 보험적용의 코-페이먼트가 만만치 않다. 또 하나 특효약이란 약명 모두가 케케묵은 구약이란 점이다. 글로벌 선진국이란 한국에서는 신약의 정의를 식약청 허가기준으로 기사화 한다. 현재 범용되는 Hepsera, Zeffix, Baraclude등 모두가 외국에서도 신약이라며 판매 되는가? 그들 중 일부는 이미 구약 중 구약으로 판매가 단종 된 상태며, 지난 4~5년 이후에도 Viread, Truvada, Amtripla 등으로 얼마든지 국내 구약들 보다도 20% 이상의 저렴한 가격으로 성황 중이다. 2009년도 제 3국 인을 통해서 허가된 신약모두(작년도 29개 신약수입허가품 모두가 제 3국 인이며 국내 제약사는 단 한 개도 없었다)가 허가 종료쯤 되면 국내 제약사 모두는 복제품에 열을 올리고 너도나도 판매를 한다. (예 Hepsera 금년 2월 허가 만료로 국내 제약사 중 복제품을 출시하지 않은 국내제약사가 있을까?) 차라리 오퍼상에게도 수입자격을 준다면 178만 명의 B형 간염환자는 고행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 질 것이다. 이미 국내제약사들은 제약사로서 의미가 사라진 지는 오래고, 건강식품 제조집단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작년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집행 금이 30조에 이른다 한다. 그리고도 제니릭 처방만으로도 턱도 없이 부족한 예산이라 한다. D제약사 X카스(식품?)를 선두로 줄줄이 50개 제약사의 매출이 12조라 했다. 30조 국민건강보험공단 예산 중 얼마나 많은 돈을 염출해 갔는지는 모르나 수입특혜의 자격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금년, 내년도에 죽어가는 무기력한 납세의무자는 환우들이 아닌가 한다. 수입자격 제한에 행정부처와 제약사간의 담합은 납세의무를 지키며 비싼 구약을 강제처방 받아야 하는 환우들만이 억울한 것이다. 그리고 환우들로서 신약선택은 꿈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미디어 제작국가 상영 전에 국내서 최초로 상영하는 최고 빠른 발걸음은 수입제한이 있어서인가? 글로벌 정보부재의 무능한 제약사들에게만 수입특혜를 줄 것이 아니라, 신약 역시 자유개방을 허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건강보험금 집행 관리와 신약수입제한 처리 능력에서도 역부족이거늘. “그 동안 내 스스로가 얻어온 신약정보 모두는 허상이였으며, 그들이 제공해 준 과대광고 모두가 거짓이었다.” 의료기구의 슬픈 사연
단 한번의 UCSF-TIPS 시술은 그 동안 23회나 괴롭혀 왔던 복수란 넘을 완전히 졸업시켰건만, 왜 의료대국인 한국에서는 체류 8년 동안 단 한차례도 TIPS시술이란 정보도 권유도 받지 못했을까? 이방인 5-6일 입원에 복수 뽑기 포함 병원비 7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TIPS 시술대가 간단한 장비가 아닌 것은 직접체험에서 알게 되었지만, 왜 그 많은 고생을 시켜가며 이런 기본 장비 한 대를 들여놓지 않는 것일까? 의료장비 역시 국가건강보험 호적에 미등제가 원인일까? 체험에서 한국의 의료장비 수준은 중국병원과 별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8년간 나는 복수로 인해 간암이 생겼나 할 정도로 복수로 인해서 죽음을 생각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복수로 인해 탈장수술을 두 번씩이나 겪어야 했고, 색전술까지 그 원인을 복수로 미루어 왔으니까. 복수란 넘은 8개월 외관부터 적당이가 없다. 알박이 투자로 혼자 부자 될 생각 마시고, 의료장비 하나 없어서 생사를 오락가락 하는 암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보험호적에 먼저 등재해 주시기를 원하고 원하옵니다. “병자는 자기 병이 죽음의 길인 줄을 알지만, 가족을 위해 친지를 위해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지도 못한다.” 언어소통
한국종합병원 진료 3분. “좋아 졌습니다. 3개월 후에…” 3분마저도 컴퓨터 뒤적이는 시간 1~2분 빼면 “감사합니다. 꾸벅”이 1 분이다. 전문 용어들, 숙자 영자 이름도 아니고…. 듣고 받아써도 모르는 용어가 의학 용어인데, 언어소통의 정의가 무엇일까? 지난 밤 독감기운 검진 받으러 간 것도 아닌데 말기환자나, 단순 술주정 여운이나 어쩌면 진료시간은 그렇게도 공평한지 딱 3분씩이다. 동포 동포 하면서 빨갱이가 와도 협상대화가 된다는데 멀쩡한 진료대화만은 선수환자가 없다. 마치 의사 잘못 건드리면 내일 죽을 거 오늘밤에 무덤 속인지 모두들 쩔쩔맨다. 언어소통은 갑을 사이에 주고받고들 한다는데 여기만 언어소통이 아닌 언어단절, 질문 없음, 그리고 꺼져라, 한다. 지난밤에 중국서 이런 따위 1 분 진료 때문에 비행기 타고 와서 주변서 일박을 했고, 공복에 피 뽑고, 식후 2 시간 후 또 뽑고, 그리고 1 시간 대기실서 죽치며 기다렸다. 뒤돌아 나올 때는 다시는 안 온다, 하면서 소금 뿌리듯이 돌아 나와도 3개월 후에 또 미련을 가지고 왔던 곳이 여기였다. 예약대기자 명단을 훑어보면 시간당 17~18명으로 꽉 차 있다. 오전 오후 동안 외래담당 의사는 후렴만 명창 할 것이다..”좋아졌읍니다. 3개월 후에…” 먹고 살자니 틀 속에서 배워가는 것이 병정의사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백날 펠로우거나 전임은커녕 개업의로 나서서 마약조제도 도와야 하는 현실이다. 한 가지 차트 보러 들어섰는데 3분 후에는 3가지 병을 덤으로 얹어져서 돌아 나온다. 그 중 하나가 홧병이다. 그들 의사들은 연구니 개발이니 그 좋은 머리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날로 읽혀지는 것은 통계와 눈치작전이 아닌가 한다. 누구 말에 의하면 의사는 뒷돈도 받아서는 안 되고, 환자와 라면 한 끼 휩쓸려도 안 되고, 매상은 얼마 올려야 한다는 입사규정에 서약을 했다 한다. 의사, 환자간의 언어 소통은 의사, 환자 모두가 원하는 바 일 것이다. 모두 소원할 뿐 내일도 언어소통은 없을 것이다. 한국서 8년 진료세월은 언어 소통이란 꿈속에서나 단어로, 중국, 미국서는 30분간의 기초 진료시간으로 언어소통 문제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당연히 통역사가 준비 되었다) 그들 의사들은 언어소통으로 더욱 훌륭한 명의가 되어가는 것 같다. 3국 간이식 현황
2009년도 간이식통계(전간이식 포함)는 중국 (17,000명), 미국 (7,400명), 한국 (1,000명)으로 대략 치라 한다. 이들 숫자 중 자국국민이 아닌 제3국인에게 이식을 베푼 숫자가 중국(1,800명), 미국(1,700명), 한국 (0명) 이라 한다. (NCC통계). 그나마 미국은 간이식96% 이상 대다수가 전간이식이고, 한국은 전간이식 3.5%통계로 30명이 조금 넘는다. 미국 전간이식 27년 역사에 한국 생체간이식 7년째라 한다. 어디나 이식수술 통계 숫자만 밝혀 자랑할 뿐 이식수술 후 죽은 자의 통계는 모르쇠다. “2009년 미국 간이식 나를 포함해 7,413명중 지난 20개월 동안 산 자로 아직 기록되고 있다.” 대표 국가별 간질환자
중국(14억 명 중 1억 명, B형 환자 7.1%), 한국(4,800만 중 178만 명, B형 환자 3.7%), 미국(3.1억 명 200만 명 B형 간염환자 0.62%)으로 그나마 미국의 200만 B형 간염환자 중에 50%인100만 명이 아시안 이민자라 한다. 미국 아시안 이민자 총1,500만 명(한국인 210만 명으로 추정) 중 100만 명 간질환 6.7%에 해당하는 수치로서 상당수 B형 간염환자가 재빠른 이민 걸음을 했을 거란 짐작이 든다 (한국 국내 B형 간염환자 3.7%). 2009년도 7400명 간이식 숫자에서 96.5%가 전 간이식자로 3,700명이 아시안이 차지했다는 숫자다. 아마도 이런 수치라면 한국인 간이식자수 560명이 전 간이식을 받았다는 수치가 된다. 국내 4,800만 명 중 1,000여 명의 간이식자 수술과 210만 명 미국교포로 560명의 간이식 수술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B형 만성간염환자 포함 각자가 잘 음미해야 할 부분이라 본다. 미국이란 나라에 B형 간염환자가 절대 수가 적다는 것이고, 아시안 이민자 중 B형 간염환자 대다수가 큰 특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병원마다 중국, 한국 통역사들이 상근들을 하고 있겠는가? 국내 도너는 절대 부족이었다
상기 숫자로 B형 간경화. 간암으로 사망자가 극히 적은 미국서의 장점은 본인 선택의 도너제도가 아닌가 한다. 통상 운전면허증에 “D”라고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죽은 자의 소원에 의해서 지체 없이 10여명의 새 생명을 살리는 제도가 미국의 도너제도이고, 한국서는 죽은 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보호자(가족 간)의 사후승인제가 다르지 않나 한다. 미국 총국민의 26%가 본인 운전면허증에 빨강색 “D”도너 스티커를 자랑들 하고 다닌다. 간암환자 UNOS의 40점은 죽은 자의 점수 제도로 통상 31점에서 전 간이식을 받을 수가 있다. 주원인은 공급이 원활하고 수요가 31점에 도달하면 전 간이식 대상자로 적당하다는 것이다. 5~10년 주기로 반복되는 법무처니 복지부니 심평원 등의 10개년 쓰잘데기 없는 계획발표 라든가 받아쓰기 9단의 언론(?)기사들만 멀리 했어도, 지나버린 나의 10년 암환자 생활은 삶의 질부터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간통죄 형사처벌 완화만큼이나 어려운 게 자유 도너제도인가 보다. 전 간이식 40점 제도란?
일반화 되어 있다. 누구나 간경화 혹은 간암 판정이 나고 UNOS에 등록만 된다면 (주치의의 사인만으로 자동입력이 되었고, 쇼셜워크, 코디네이터? 는 9개월 후에 방문하였음) 전간이식을 받을 수가 있다는 계산이다(전간이식 9개월 전 입국 초기 나의 점수는 22점이라 했다). 비합법적인 거주자는 현금으로 때워야 한다,하고 합법적인 거주자 모두는 40점 최고점 제도로, 40점에 도달하기 전 높은 점수제로 전간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으로, 한국서 3개월 말기 간암환자는 미국에 와서 9개월을 버티었고, 31점에서 전 간이식을 받았다. 또 3개월 말기 간암환자가 9개월을 버티고 전간을 받은 충분한 이유는 바로 신약처방이 주된 혜택이 아닌가 한다. 그 이유는 한국, 중국에서 9개월동안 숱한 수술, 시술, 복수, 간성혼수 등을 겪으면서도 매 번 처방약명은 달라진 것이 없었고, 한국, 중국에서 처방 받아 온 약 종류는 모두 버리라고 했으며, 듣도 못했던 신약으로만 복용해온 까닭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담도 문제
이식 후 1년 8개월째다. 이식 후 수십 차례 병원을 출입하고 있지만 담도 문제로 질의응답 받는 이조차 만난 적이 없다. 96.5%가 도너에 의한 전간이식으로서 국내 형편과는 다르게 미국서는 나누어야 할 대화 자리가 분명해 진다. 따라서 담도 시술, 담도 관, 바일 백, 담도 튜브등 담도에 관한 문제는 어느 구석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10년 만에 두 번째 간이식한 이를 만나다
11년 전 전간이식을 받았다는 50대 후반의 백인남성을 옆방에서 수술 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현장건설업자로서 좋아하는 술이 재발 원인이라 한다. 나를 위안코자 허풍쯤으로 알아들었던 나는 2~3사람의 생명을 독식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별로 위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술만 조금 줄인다면 70은 넘을 것이고, 그 때 3차 전 간이식을 하면 천수를 다할 것이라며 오히려 내가 위안을 주었다. 그 후 예후 치료차 와서 2번이나 병원서 만나게 되었는데 재 이식 후에도 여전히 마시는 모양이다. B형 간염자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져야 한다
B형 간염자라는 이유로 결혼기피, 취업불가 등 각종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행을 매번 읽게 된다. 그 외 진료비, 소외감 등에서 오는 심리적인 충격은 더욱 혼자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하고 자각하게 한다. B형 간염은 “평생 본인 스스로가 헤쳐 나가야 하는 일로 어느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군 미필자의 권위국가와 지원제 군필의 민주국가를 접해 본 체험에서 미국은 카운티나 주정부, 연방정부 보건행정 실무요원 선발요항 중에는 자가병에 체험자를 우선채용제로 특례조례가 있다고 한다. 주 방위요원은 군 예편자 특채조례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 NCC 환우회 업무 중 하나가 취업을 희망하는 회원들의 이력서를 접수한 후 각 분야에 걸쳐 취업을 알선한다. 물론 일반인이 모르는 취업 특례조례를 최대한 활용하는 듯 하며, 일가견으로는 UNION과 같은 압력단체이기도 하다. 의료행정에 대한 소견
간질환자들 대다수의 궁극적인 고민은 도너문제와 신약처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은 자의 생전 희망에 따라서 10명 가까이 생명을 살린다는 도너제도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현실적으로 무한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호자 승인이 필수라는 현행 제도 하에서 간질환의 경우 2009년도 30명 남짓 전간이식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동년 전간이식 7,163명과는 극명하게도 차이가 난다. 더구나 내성약 외에 신약 부재로 178만 명 B형 간염환자들은 빠르게도 간경화, 간암에서 죽음으로 이어져 간다. 대다수가 대를 이어가면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제네릭이나 다름없는 간질환 처방약들을 신약(수입허가 일자기준)이라 칭하고 그나마 이들 구약들은 제 3국 약품판매회사들이 버젓이 국내독점권을 누리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최고가의 약가를 허용해 주면서 보험공단 예산만 축을 내고 있지 않는가? 개인이 자유롭게 구입해서 복용할 수 있다면 과연 보험공단이 제시하는 약값에 구입할 자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아마도 현재와 같은 내성 약들은 모두 뒤로하고 진정한 신약들을 구입하리라 생각한다. 국내서 신약이라는 제픽스, 헵세라, 바라쿠르드 등 내성 초래 약들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제네릭은 커녕 판매조차 동결된 구약들도 있지 않은가? 예로 2009년도 제픽스 매출은 430억 원, 헵세라(개당 단가 7,219원?)는 470억 원의 국고지출이 되어 있다 한다. 그나마 국내 독점판매권을 가진 GSK 영국판매회사는 소위 글로벌 최신약이라는 Viread, Truvada, Amtripla (이들 약은 내성이 없다는 글로벌 신약으로 제픽스, 헵세라 보다 20%정도 저렴함) 등의 수입판매는 뒤로 미루고 있다. 고가이며 잘 팔리는 구약을 두고, 굳이 자비 들여가면서 교체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죽음과 사투를 벌리고 있는 간질환자들은 단지 고정 고객일 뿐으로, 신약은 외국기업이 건강식품은 국내제약사로 행정당국은 확실히도 울타리를 쳐놓고, 간질환자들로서는 얼씬도 못하게 외박에서 자멸할 뿐이다. 혹간 외박에서 내박으로 공수라도 한다면 그냥 의료법저촉으로 밀수범과 같이 교도소로 직행 일거다. 죽음과 사투를 벌리면서도 이런 행정무능과 건강식품 제약사들을 묵인하는 간질환자 178만 명의 관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다. 제약사에게만 줘버린 신약 수입특혜를 짚고 넘어가야 하며, 특혜를 갖고도 모조리 외국제약사에 수입권을 빼앗기는 원인 또한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고도 신약하나 수입권도 못 갖는 행정당국이나 제약사들이 때만 되면 신약개발이라 한다. 장관인지 읍소자리 하나 바뀌면 매번 똑같은 거창한 신약개발이다. 전임 장관의 신약개발 취임사를 기억하는 환자들 모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줄 알아서 또 거품을 내는 듯 하다. 2009년도 신약허가품 21 종 모두가 외국기업이다
2009년도 국내의약품 허가 현황에 따르면, 총 21개의 신약이 허가됐었고 모두 외국기업의 독무대다. 역시나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한 신약이나 수입 신청권 조차 하나도 없다고 한다. 외에 비타민 류 343개, 해열·진통·소염제 류 265개, 간장 질환 종류 146개, 기타 순환계 용액 128개 등의 허가품목이 있다는데, 이 많은 허가품 중 외국기업의 수입신청건수가 단 하나라도 있었는지와 건강식품 아닌 품목은 몇 가지인지 좀 구체적으로 발표해 보았으면 한다. X카스는 건강식품이 아니고 간장 질환용으로 입학을 한 것인가?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이태리 등 국가들은 의약품제조와 건강보조식품 업은 엄연히 분리 법제화 되었다 한다. 과연 한국에 능력 있는 제약사가 있는지, 이를 관리하는 의료정책에 문제가 없는지 암 환우들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것이다. 법무부 부처에서 발표 한 것이 고작,
교과부, 지경부, 복지부가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물질 발굴에서부터 임상 지원까지 주기적인 지원을 목적으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총 1.2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신약’을 개발한다고 한다. 그리고 “글로벌 신약”은 미국(422개), 프랑스(288개), 독일(247개)등인데 국산은 달랑 ‘팩티브’가 1개라고 한다. 신약 1개의 평균 개발비용은 3조 억 원($2.5억불)으로 평균 투자액이란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다. 8~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목소리로도 얻어지는 국익이 있었는지 발표문 결과는 온데간데 없고, 매번 발표기관명만 달라진다. 현실은 오직 환자들의 외로움뿐이고, 외로움 달래주느라 또 하나 만든 거품이 “신약개발” 이란다. 죽일넘들… 신약 단가결정, 알아둬야 할 상식
처방 받는 자 모두는 2009년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34조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정부재정으로 병 치료 문제는 흔들림 없이 든든한 줄 안다. 발표문 뒤에는 동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누적 재정적자가 무려 33조원이 아래 깔려 있다는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4대강 재정사업은 쥐꼬리일 뿐이다. 모두들 절세를 숨긴다 해도 결국은 박봉을 털어야 한다. 우리는 돈이 없어 구약으로 연명할 뿐, 떨거지 환자의 근성으로 견뎌야 한다. 신약도입 단가책정에 “A7 Price”(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위스, 일본)의 40% 평균단가가 국내단가로 문제점은 없었는가? 과연 한국의 약가지불 능력이 이들 선진국의 40% 수준이란 말인가? 간질환자 모두의 처방구약인 제픽스, 헵세라, 바라쿠르드 등 모두는 왜 외국 판매회사들이 장악 하고 있을까? 행정부처와 외국계 기업 둘만의 탁상협상 결과로 간질환 환자 178만 명 모두의 생사권은 법이란 미명하에 불모자가 이미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US UK Germany France Italy Swiss Japan A 7 Price Korea (Current) Zeffix 100 mg $11.32 $4.54 $6.64 $4.70 $4.66 $6.41 $6.95 $6.22 $2.90 (40% 적용) 더구나 개당 7,219(부가세 별도)원으로 Hepsera, Baraclude 의 동일단가는 한국 외에 어느 나라도 없었다. 나의 평생 직업은 약 장사가 아니고 단순 해외건축업자 일 뿐이다. 국내 제약사의 실정
국내 제약사 상위부터 47위까지의 2009년도 총 매출 합산이 12조원이라 한다. 그 중 드링크제 포함 건강식품 매출은 60%로 제네릭 약이란 놈의 매출은 5조원도 안 된다고 한다. 혹시 그들은 골프장소유, 신사옥매입 등을 위한 자산매입 외에 신약도입, 신약개발을 위한 R/D부서의 의미가 건강식품 매출 극대화를 위한 피나는 전투 부서명이 아닌가, 해본다. 극단적으로 178만 명의 B형 간질환 환우들이 모두 죽은 후에 첫째, ‘선택과 집중’. 둘째, ‘글로벌 네트워크’의 활용. 셋째, ‘빨리 실패하고 싸게 실패하는 것(Fail Fast, Fail Cheap)’만을 구호로 일삼는 것인지 실정이 궁금하다. . 속아 치료 받아왔다는 반성
IT, 선박, 건설, 조선 등 일등국가(?)라기에 의료산업까지 덤으로 일등국가인줄 알았다. 어디 한 구절 솔직하게도 한국 의료산업의 후진국 실상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렇게도 잘난 삼성전자의 매출액 하나가 소니, 도시바, 등등 일본 5개 금메달 IT 회사 매출액을 모두 합산한 것보다도 훨씬 월등 하단다. 20여 년 전에 발족한 신약제약사 Gilead사의 매출액은 국내 제약사 랭킹 1위에서 50위까지 총 합산(건강식품 매출은 빼시고)보다도 150%나 더 많다. 그것도 순수한 로열티 매출액이라 한다. 그나마 건강식품사(제약사라 부르기도 아깝다)들은 신약하나 도입권을 가진 자가 없다. 외국서 이미 제네릭으로 접어든 직전의 구약을 우린 국내 수입허가 시점으로 신약이라 보도 하지 않는가? 간질환 환자만이라도 신약의 정의를 알아주었으면 한다. 개발의 기대치는 고사하고 남이 만든 신약만이라도 수입자유화가 되었으면 한다. 건강식품 매출에 몰입하는 제약사만이 가지는 수입특혜에 얼마나 많은 환우들이 생명을 잃었는가? 나 자신이 지난 8년 동안 속고 또 기만 당해 왔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시대 B형 만성간염환자는 결코 약값이 비싸서 죽어가는 병이 아니다. 목줄을 쥐고 있는 행정당국의 태만이고 무능에서 신약으로는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계산이거나, 모든 국민이 건강보조식품의 사이비종교에 이미 맹중독에 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평생 비타민 먹듯이 한 알 복용으로도 천수를 다하는 신약들이 무진장 많다. 간질환 환자 모두가 나와 특별히 다를까? “당신 병은 결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한국간이식인협회’에 드리는 말씀
현재 환자들의 최대 요구사항인 장기기증 활성화와 일부 치료제의 건강보험급여 확대가 조속이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의 선례를 보면 한국간이식인협회의 발족은 대단히 보람을 얻을 것이라 믿는다. 협회는 유일무이한 비영리 민간단체로서 협회에서 목적으로 하는 10개항 모두가 단순 구호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항시 표어 중심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변자로서 중요 사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협회 자체도 활동(구호) 예산이 있어야 원대한 희망을 베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Sanf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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