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구 "해운팔경"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로 여행 오셔요.
신라시대 오늘날 해운대해수욕장 일대는 구남으로 항구였던 곳이다. 오늘날 해운대해수욕장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해운대온천을 개발하면서 찾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동해남부선 해운대역이 생겨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부산 해수욕장 1호였던 송도해수욕장보다 더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 여름 피서철 해운대 해수욕장은 외지에서 찾아온 피서객으로 북적인다.
천혜적인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해운대구는 바다와 산, 온천 그리고 고충빌딩 숲 도시에서 쏟아내는 야간조망이 아름다운 곳으로 동백섬 남단 석각에 신라말 석학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字) “해운(海雲)”을 따 새기면서 오늘날 해운대가 되었다. 신라말기 학자 경주 최씨 시조 최치원 선생(857-?) 진성왕 8년(894) 6두품 출신의 신분적 한계를 느끼고 “아찬” 벼슬을 사퇴하고 은퇴 후 합천 가야산으로 가던 도중 해운대에 반해 암석에 “해운대(海雲臺)”를 암각하였다 전한다.
▲ 동백섬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고운 최치원 선생 동상
해운대구는 여행과 도심 그리고 편리한 교통을 통해 많은 여행객이 즐겨 찾는다. 해운대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극장과 미식가를 유혹하는 음식 그리고 하루를 머물다 갈 수 있는 숙박업체, 하루를 묵어가며 만나는 도심의 야경은 이제 부산의 자랑이 되었다. 옛 갈대밭에 살던 거북이와 해변에서 모시조개 잡던 사람은 떠났지만 아직도 해운팔경 중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해운팔경으로는 해운대상, 오륙귀범, 양운폭포, 구남온천, 봉대점화, 우산낙조, 장지유수, 춘천귀어 등이 있다.
海雲臺上
제1경 해운대상
▲ 해운대를 찾은 최치원이 새겼다 전하는 해운대 석각
제1경 “해운대상”은 동백섬 해안길에 자리한 누리마루 등대 전망대로 이곳에 대를 쌓고 놀았다 하는데 그 흔적이 바로 등대 아래에 있는 “해운대 석각”으로 석각에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대마도가 보이며, 동해와 남해가 시작되는 곳이다. 석각 옆 해안에 황옥공주(인어동상) 동상이 있으며, APEC 정상회담 당시 만든 산책로가 해운대해수욕장까지 길을 열고 있다.
▲ 최치원 선생이 대를 쌓고 놀았다는 곳에 APEC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APEC 각국 수장이 모여 각료회의를 하였던 누리마루 인어동상 전설
▲ 황옥공주(인어동상) 동상이 APEC 산책로 해안에 있다.
하늘이 내려준 은혜로 태어나 왕이 되었다 하여 은혜왕으로 불리면서 무궁은 발전을 하지만 왕비가 또 없어 고민했다 한다. 신하들이 왕비를 간택해 올리지만 하늘에서 내려줄것을 믿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바다건너 "미란다"라는 나라가 이었는데 바다속 "수정국"나라와 부모가 같은 나라라 한다. 그들은 몸 끝에 고기지느러미를 옷 속에 감추고 살았는데 첫딸을 낳게 되니 그이름이 황옥공주다. 황옥공주가 시집갈 나이가 될 무렵 꿈속에서 "은혜왕"에게 시집을 가라고 현몽을 하자 동백섬에 도착하여 자신의 속옷을 꺼내 산신령에게 받치니 완전한 사람이 되어 은혜왕과 잘 살 게 되었다 한다.
▲ 황옥공주 동상 주변은 파도가 높은 지역이다.
세월이 흘러 황옥왕비가 되었지만 수정국이 그리워하면 그때마다 황옥공주를 따라온 거북이가 곁에 머물면서 수정국으로 소식을 전달해 주었다 한다. 수정국에서 황옥에게 거울을하나 선물하게 된다. 보름날이 되면 꺼내 보라고 하여 보름날 거울을 비쳐보니 황옥왕비는 고기 지느러미를 가진 옛 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어 동백섬 인근을 잠시나마 헤엄쳐 다녔는데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인어가있다고 하였으며, 지금도 거북이는 동백섬 주변을 맴돈다 전하고 있다.
龜南溫泉
제2경 구남온천
▲ 해운대온천지구 상징 조각품
제2경“구남온천”은 오늘날 해운대온천으로 옛 구남온천은 주변 갈대숲에 거북이 많이 살아 구남으로 불렀다 한다. 거북이 사는 남쪽 해안이란 뜻으로 동래온천은 구야온천이라 한다. 짠맛이 나는 나트륨 온천으로 물맛이 간간하고 비누를 사용해도 거품이 잘 나지 않는다. 구. 할매탕은 1935년 4월 1일 정식 간판인 할매탕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하여, 그 후 2006년 철거 및 재건축을 통해 오늘날 지하 3층 지상 7층으로 해운대온천센터로 영업을 하고 있다.
해운대 온천은 다리를 절던 학이 온천수에 앉아 있어 궁금했는데 다리가 낳아 날아가자 혹시하는 마음에 주민이던 한 노파가 자신의 아픈다리를 온천수에 담근 후 치료가 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는 구전이 있다. 진성여왕이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았는데 구남온천에서 치료하고 완쾌되었다고 한다. 한때 온천수를 막아 버렸다고 한다. 온천을 찾는 문둥병 환자가 늘어나자 온천을 막아 버렸다는 설, 대마도 왜인이 온천수를 찾아 몰려와 횡패가 심해 막아버렸다는 설, 조선조 때 수영에 있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군사들이 목욕하고 민폐가 커 막아 버렸다는 설 등 다양한 구전이 전해지고 있지만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 해운대 해수욕장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해운대온천센터
개항 후 1897년 일본인 의사가 다시 발굴하여 개발하였고 일제 강점기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경주를 여행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해운대 온천에서 1박하는 곳으로 알려졌고 해방 후 해운대지구에서 중추참의원까지 지낸 김화수씨가 온천을 인수하여 오늘날에 이러고 있는 알카리성 나트륨 온천수로 피부병과 신경통, 위장병에 좋다고 하며, 주변에는 온천을 겸한 숙박업소와 전국에서 유명한 맛집이 몰려 있다.
午山落照
제3경 우산낙조
▲ 해마루에서 바라본 와우산 낙조
제3경 우산낙조는 흡사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하여 와우산으로 불리는 달맞이언덕 길로 이곳에서 만나는 해가 지는 모습이 구남들판을 통해 아름답다하여 우산낙조라 하였지만 지금은 고층빌딩으로 인하여 그 멋은 사라져 버렸고 APEC 기념 청사포 위 해마루를 조성하면서 한우산 위 아파트 너머로 사라지는 낙조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낙조와 함께 달맞이길에는 달을 보는 해월정이 있다. 대한팔경은 1930년대 경성방송국(kbs 전신)이 전국 정취자를 상대로 추천 경승지를 선정하였는데 북한에 금강산 일만이천봉, 백두산과 천지, 대동강 모란봉-을미대, 압록강 뗏목 풍경, 함경도 부전고원 그리고 남한지역 석굴암 해돋이, 해운대 저녁달, 한라산 고봉 이 선정되었다. 해운대 저녁달과 저녁낙조로 알려지면서 달맞이 언덕길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숍이 자리잡고 있어 여행하다 쉬어 갈 수 있다.
▲ 달맞이 언덕 "해월정" | ▲ 달맞이 언덕 천년의 시계 | ▲ 달맞이 언덕 알렉산더 |
▲ 달맞이고개로 너머가는 낙조
달맞이 언덕길 중간에 청사포가 있다. 1900년 이전까지 뱀“사”가 들어가는 청사포(靑蛇浦) 였지만 뱀“사”자가 좋지 않다하여 모래“사”자로 청은 맑은 “청“으로 바꾸어 청사포(靑沙浦)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곳 당산 김해김씨 할매의 이야기에 푸른뱀이 나와 뱀“사”가 들어갔다고 하며, 바꾼 지명과 달리 이곳은 모래사장이 없지만 청사포 해안은 작품처럼 서 있는 등대의 아름다운 모습과 바다로 빨려드는 것 같은 등대길이 아름답다. 또한 작은 청사포 지역에 바다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사연이 남아 있다.
▲ 청사포 해안가에서 자라는 전설의 소나무
청사포 등대 앞 높이 15m 소나무가 서 있다. 300년 된 소나무에는 예부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정씨와 임씨는 청사포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였는데 이들이 바다로 나가면 부인은 돌아올때까지 마을 어귀에 있는 바위 위에 모여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특히 동래에서 살다 혼인하여 이곳에 온 정씨부부 금실이 남달랐는데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소나무 두그루를 심고 나무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렸다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푸른 구렁이가 나타나 물길을 열고 남편과 만나게 하였다는 전설로 인해 청사포가 모래(沙)자가 아닌 뱀(蛇)자 였다 합니다. 다른 전설로 바위에서 기다려도 오지않자 소나무에 올라가 더 멀리 바라보았는데 지아비를 기다리다 죽은 바위를 망부석, 소나무를 망부송이라 한다.
五六歸帆
제4경 오륙귀범
▲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오륙귀범을 재현하고 있다.
제4경 오륙귀범은 영도 남쪽까지 나가서 고기를 잡았는데 해질녘 만선을 이룬 배가 흰 돛을 달고 돌아오면 그 뒤를 따라 갈매기가 떼 지어 날아드는 모습이 석양으로 물든 해상에 황홀하게 보인다하였지만 지금은 볼 수 없고 그 대신 오륙도로 향하는 유람선을 뒤따르는 갈매기를 볼 수 있다. 1년에 딱 한번 정월 대보름날 오륙귀범을 선보이고 있다. 해운대해수욕장 끝자락 미포선착장에서 오륙도를 향하는 유람선이 출발한다. 출발하기전 새우깡 몇 봉지 들고 갈매기와 놀며 오륙도를 돌아오는 것도 기분전환에 좋다.
▲ 오륙도 전경
오륙도는 12만 년 전 육지와 연결된 소반도에 침식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되면서 크고 작은 섬이 생겨나게 되었고 소반도는 오늘날 오륙도로 변하였다. 부산의 대표적 상징물 오륙도는 육지인 승두말로부터 남남동 방향으로 방패섬(2,166㎡)·솔섬(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등대섬(3,416㎡) 등 6개의 작은 섬으로 면적 0.02㎢, 최고점 68m(굴섬)이다. 6개의 섬 중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방패섬과 솔섬은 본래 하나의 섬이지만 바다 밑에 1m 해식동굴이 있고 잠겨있어 썰물이면 방패섬과 솔섬이 하나가 되고 그 섬을 우삭도라 부르며, 밀물 때면 우삭도는 두 개의 섬으로 보여 오륙도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에는 오륙도 지명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륙도는 절영도 동쪽에 있다. 봉우리와 뫼의 모양이 기이하고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으니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五六島在絶影島東 峯巒奇古列之海中 自東視之則爲六峯 自西視之則爲五峯 故名之 以此)” 즉 오륙도를 보는 위치에 따라 섬의 숫자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으며, 지금의 우삭도관련 오륙도 지명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잘못 해석하여 기록한 것이란 주장이 있다.
▲ 오륙도를 돌아오는 유람선에서 새우깡을 받아 먹으려는 갈매기떼가 뒤따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5개 또는 6개로 보이는 오륙도 섬들은 굴섬이 가장 크고 높이가 다른 섬에 비하여 제일 높고 섬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 있다. 밭섬은 육지와 가장 먼 섬으로 섬의 지형이 흡사 밭과 같다하여 붙여진 곳으로 1937년 11월 최초 오륙도 등대 점등과 함께 등대가 있다하여 등대섬으로 부르며 유일한 유인도이다. 이외 바람과 파도를 막아준다는 방패섬, 섬 정상에 소나무가 자생하는 솔섬, 갈매기를 쫒아 독수리가 모여들었다는 수리섬(당나라 장수 만세덕의 비가 있었다하여 수리섬을 비석섬으로 부르기도 한다.), 흡사 송곳처럼 생긴 송곳섬 등이 오륙도의 자리를 지키고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여 시지정 기념물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지로 승격되었다.
▲ 수영팔경 중 운대귀범으로 지금은 항구로 요트가 드나들며 고층 아파트 야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해운대구와 나란이 어깨하는 수영팔경에 "운대귀범"이 있는데 조선중기 동백섬 서쪽 마을로 해질녘 낙조를 배경으로 갈매기와 돛단배의 모습이 금빛을 이룬다하여 불리는 말로 해운팔경 중 오륙귀범과 같은 의미로 단지 바라보는 방향이 광안리해수욕장에서 해운대해수욕장 방향이다.
烽臺點火
제5경 봉대점화
▲ 간비오산 봉화터를 복원해 놓았다.
제5경 봉대점화는 해운대여고 뒤편 언덕 위 간비오산에 있는 봉수대의 모습으로 고려 말 ~ 조선시대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는데 그 모습을 밤에 멀리서 보면 불꽃이 밤하늘을 뚫고 치솟아 해운대 주변을 밝혀 줄 정도로 장관을 이루었다 한다. 간비오산은 고려 말 봉화를 시작으로 조선 31년(1894) 폐쇄되기까지 약 700년 해안을 감시하였는데 서쪽으로 황령산 봉수대와 동쪽으로 기장 남산 봉수대와 연락하는 경상좌도 간봉의 기점으로 경상좌수영에서 관장하였다 하며, 봉화대를 지키던 봉화지기 류씨부부는 봉화대 옆 오두막을 지어 나라에서 주는 녹을 받아 생활하며 봉화대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 따라 신호법이 다 달랐는데 간비오산에서 불을 피우면 황령산 봉수, 기장 남산 봉수, 금정산 계명 봉수대에서 받고 또 전하고 하여 10분이면 한양까지 당도했었다고 한다.
▲ 간비오산 봉화대에서 바라보는 광안대교와 센텀지구 야경
지금은 봉화대에 1976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기념하여 봉화터 흔적 위 봉화대 밑돌만 만들어 놓았는데 해질녘 이곳에서 광안대교로 떨어지는 낙조와 고층 아파트의 야간조망이 아름다워 부산 야경을 찾는 여행객이 밤이되면 찾는 곳이다. 달이 뜨고 어둠이 찾아오면서 달빛아래 봉수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수영구에서 바라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하여 수영팔경에는 이를 봉대월출이라고 한다.
▲ 이기대 앞에서 바라본 장산, 광안대교와 고층건물이 간비오산을 가려버려 보이지 않는다.
봉대월출은 해운팔경 중 봉대점화로 알려진 간비오산 봉수대 뒤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면서 달빛 아래 봉수대 연기와 불빛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의미이다.
萇旨流水 春川歸漁
제6경 장지유수 제7경 춘천유어
▲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만든 인공 대천호수
제6경 장지유수, 제7경 춘천귀어는 오늘날 해운대도서관 근처로 연못이 있었는데 장산과 간비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춘천으로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다하여 불러지는 곳이지만 오늘날 춘천은 복개되고 그 흔적은 몇몇그루 소나무가 전부이다.
▲ 장산 계곡을 따라 흘러 내리다 양운폭포를 이루고 다시 춘천으로 흘러가는 계곡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옛 장지유수로부터 조금 위 대천공원을 만들고 그 앞에 대천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달밤에 물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보며 즐겼는데 이를 춘천귀어라 한다.
養雲瀑布
제8경 양운폭포
▲ 부산에서 유일한 폭포로 장산 계곡을 따라 흘러 내린 물이 양운폭포를 만든다.
제8경으로 양운폭포이다. 부산은 계곡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제6경 장지유수와 제7경 춘천악어를 만든 상류 부분에 장산계곡으로 흘러내린 물이 높이 7~8m 절벽을 통해 떨어지는 모습이 흡사 구름이 피어나는 광경과 같다하여 불러지는 곳으로 양운롱, 양운폭, 장산폭이라 불렀다.
해운팔경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통해 옛 흔적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거북이 많이 살던 곳은 호텔이 들어서고 모시조개를 잡던 곳은 고층 아파트가 대신하고 있다. 와우산에서 조망하는 달 뜨는 모습도, 낙조도 도시의 발전 속에 묻혀 버려 아쉬움이 많아 새롭게 해운대 8경을 지정해야 할 것 같아 매우 안탑깝다.
▲ 수영팔경에 지금의 해운대구 장산이 포함되어 있는 재송직화 반딧불 서식지 "장산 목장터"
재송동 장산 정상 못미처 반송방향 갈림길에 있는 옛 목장터로 수영팔경에 포함된 재송직화(裁松織火)는 장산의 반딧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산 억새밭과 목장터 주변에 반딧불이가 얼마나 많은지 그 불빛으로 귀뚜라미와 직녀성이 베를 짠다고 하였을까. 지금은 항공방재로 반딧불이 서식처가 많이 줄었다.
해운대구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절경으로 해운대 동백섬에서 운촌항과 광안대교로 바라보는 도심의 야경과 동백섬 누리마루 APEC하우스, 수영요트 경기장 야경, 동해남부선 철로 폐선구간, 해마루에서 바라보는 청사포 등이 있다.
즐거운 여행 하십시요.
'스크랩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새벽 운동 나갔다가... 위험한 뇌경색 예방법 (0) | 2015.02.09 |
---|---|
[스크랩] 간 해독으로 `간`을 지키는 식품 5가지 (0) | 2015.02.02 |
[스크랩] 6세기 신라사람 인골 묻힌 목관 경주서 발견 (0) | 2013.12.05 |
[스크랩] <힐링푸드>저체온증, 체온 33∼35도땐 떨리거나 `닭살` (0) | 2013.11.29 |
[스크랩] 길 위에서 진짜 자신을 만나라 (0) | 2013.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