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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군가 사람의 귀를 자르는 이번 사건을 내가 택시비까지 써 가면서 조사를 했던 것은 어느 날 내 집 베란다에 귀 하나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그 귀에는 귀고리가 달려 있었는데 나는 경찰서에 가서 이건 분명히 여자이며 연애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젊은 여자라고 귀띔까지 해줬다. 귀고리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퍼득 들었기에.
그 후로도 몇 번 더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귀를 발견하는 것도 그랬고, 귀를 자르기 위해 재킷 안에 칼을 숨겨둔 채 도시를 배회할 그 누군가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같이 카페모카를 마시면서 장차 이라크의 미래와 후세인의 재판이 어떻게 될 것이며, 칼로 귀를 자를 때의 그 기분이 혹 19층 아파트에서 추락할 때 느낀다는 오르가슴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오토바이로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한 어느 퀵서비스맨과 자신을 비교할 때 누가 더 용기 있는 사람인지 묻고 싶었다. 물론 카페모카는 그 사람이 사야지.
그런 궁금증으로 며칠을 보내는 동안 나는 한 여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가죽 자켓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은 20대 초반의 여자. 번번이 빨간 립스틱에 깃털이 묻어 있었다. 우연은 항상 존재하는 법. 5호선 충정로 역 부근에서 만난 그 여자는 마포역에서 내렸다. 나는 1주일간 그 역 승강장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어느 날은 깃털이 입술 끝에 묻어 있다가 어느 날에는 선홍색의 핏자국이 입술에서 귀밑까지 번져 있곤 했다.
2.
그녀의 집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포구 마포동 마포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사라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있지만, 그녀의 집이 저기다, 저 골목 끝 양철대문이 그녀의 집이라고 말한 사람을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용기를 내어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던 그녀에게 시시껄렁한 이유를 대면서 좋은 물건을 집까지 보내줄터이니 주소를 불러 달랐고 했더니 그녀는 손가락을 빙빙 돌리더니 세종로 끝, 가로수 끝에 매달린 태양을 가리켰다. 그 태양이 떠오른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보면 그녀는 그 주변 어느 집인데, 그곳이 정확히 어디, 어떤 아라비아수자의 조합으로 만들어 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초로 그녀의 집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중학교 후배로 부터 그녀의 집이 마포구 마포동 국민은행과 오겹살집 사이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종려나무, 그 종려나무 중턱에 있는 나뭇가지라는 것.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지. 나는 그날 당장 중학교 후배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야기인즉슨, 그녀를 미행했었는데, 국민은행과 오겹살집 사이로 들어가서 그 골목의 끄트머리에 있는 종려나무로 풀쩍 뛰어 올랐다는 것이었다. 이 중학교 후배의 말은 너무나 명쾌했는데, 듣는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해괴망측한 일임에 분명했다.
일이야 어쨌든 나는 마포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종려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남미 쿠바에서나 손쉽게 볼 수 있는 종려나무가 그 곳에 서 있었다. 어려서 부터 높은 곳에는 오르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 탓에 나무 타는 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목표를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승패를 갈라야 한다던 프로권투 심판인 아버지의 말도 떠올랐다.
몇 번 실패를 하고 겨우 오른 종려나무. 그 위에 큰 바구니만 한 새 둥지가 하나 있고, 그 안에 수십 개의 귀가 썩어가고 있었다. 요리를 해 먹은 것도 먹을거리를 저장해 놓은 게 아니었다. 단지 귀를 모아두었을 뿐이었다. 하필이면 왜 귀를 모을까. 이 생각은 내가 집으로 가서 다시 도서관으로 갈 때까지, 그리고 중세 지옥의 역사에 대해 연구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그러던 중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강신술이나 최면술, 접신술에 심취해서 죽은 자의 애도, 예배에 맹목적으로 집착했다는 것과 이들은 무덤 저편, 태양 저편에서 온 영적 사신으로부터 귀를 잘라 바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포우의 소설에서 나오는 이 귀 이야기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즉, 태양 너머, 죽음의 세계에서 산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누군가 사신을 보내 산자들의 귀를 잘라오는 것.
3.
서서히 도시 전체의 귀가 사라지고 있었다. 종려나무에 쌓여 있던 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고, 아침에 텔레비전만 켜만 온통 귀 이야기뿐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거의 매일 종려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서서 밤늦게 종려나무로 뛰어 오르는 그녀를 봤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는 소름이 돋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그녀에 대한 이상야릇한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태양 저편이라면 죽은 자들의 도시, 그 곳에서의 사막스런 분위기가 그녀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말이 없고, 또 침울했다. 종려나무에 올라 간 그녀가 밤새 한강을 내려다보며 끙끙 앓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내가 말을 하자 그녀는 청동상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날아간 곳은 까만 어둠만이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 며칠 밤낮을 종려나무 아래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건 신사로서 멋진 일이었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날개는 날아가기 위한 도구인데 그것을 가진 그녀가 다시 돌아 온다면 갔었던 거리 플러스 올 거리, 즉 그렇게 먼 거리를 방황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1주일 뒤, 그녀가 나타났다.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으며 종려나무를 보고 있는데, 나뭇가지에 앉은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조금은 얼떨떨했지만 금세 친근한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로 갔다.
"그곳은 너무 높아요."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종려나무로 올라가야 했다. 그녀는 나에게 손을 잡아주는 인심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힘들게 오른 종려나무에서 보니 도시가 훤히 다 보였다. 경치 구경을 하고 나는 1주일을 기다렸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녀는 친절한 여자였다. 투정을 다 받아주고는 내 눈에서 눈물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는 나에게 우는 법을 배워주기로 했다.
"눈물은 슬픔이 데리고 오는 친구죠."
다음 날, 나는 그녀를 데리고 숲으로 갔고, 그녀가 나에게 날아오르는 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며칠 뒤, 이 거짓말 같은 일의 끝이 찾아왔다. 도시에서 귀를 달라 태양이 머문 곳으로 날아가던 그녀가 지쳐 종려나무로 되돌아 왔다. 마지막 귀인 셈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가 가르쳐 준 울음 때문에 기력이 다해 태양까지 날아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태양이 지는 날 밤,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전속력으로 날개를 퍼덕여 벽을 향해 내달릴 것이라고.
그녀와 나는 그 벽을 보러 갔다. 마포대교 인근에 있는 큰 오피스텔이었다. 그 벽을 그녀는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녀의 몸이 감당하기 너무나 단단한 벽이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안 된다고 말했다. 어느 덧, 나에게 생긴 어떤 감정,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것. 그것을 그녀가 보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내 몸으로 달려오면 안 되니?"
"네가 부서지면?"
그날 밤이었다. 종려나무 아래에 서 있는 나를 향해 그녀가 달려왔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려 온 그녀가 내 귀로 들어왔다. 겨우 얼굴만. 꼬리와 두 다리는 귓바퀴에 매달려 발부둥을 쳤다.
"울지 마."
내가 말했다.
"너도 울고 있는 걸?"
그녀였다.
나는 여름에도 귀마개를 하며 산다.
이번 여름은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출처] 여러분,그녀는 새를 닮았어요|작성자 뱀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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