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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동백꽃 고향 지심도

허영꺼멍 2011. 4. 15. 23:46

 

 

 

 

지심도는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지사도"로 기록되어 있으며, 또 다른 문헌에 지삼도(只森

島: 여지도서. 1760년). 자삼도(知森島: 거제부지. 1895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

80년까지만 해도 지삼도와 지심도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가, 현재 지심도로 굳어졌다. 이

곳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지심도를 보리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섬의 다른 지명을 보면, 동쪽 끝 벌여, 동섬(떨어진 섬), 대패너를, 굴강여(굴이 있는데

뽈락이 잘 잡히는 곳), 높은 돌(바위 둥근 모양),  논밑, 굴밑(방공호 자리), 애물깨, 만여, 

만여 육지, 노랑바위, 솔랑끝(끝에 소나무가 자람), 무광밭밀, 짤라광여,  새논개, 남쪽끝,

말뚝밑(일제 때 화물을 운반할 때 나무말뚝을 박아 놓고 하며  도르래식 이었다고 함), 새

끝질미, 허만강여, 볼락자리 등이다.                                                                       

 

거제도 본섬과 가까운 지심도는 행정구역상 조선시대에  "거제현 고현면(일운면) 지심리"

로 되었고, 1913년 일제에 의해  "통영군 일운면 옥림리"로 변경되었다가, 현재 거제시 일

운면 옥림리로 되었으며,  천혜의 자연과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이 섬은 북쪽으로 진해만과 부산 가덕도,  동남쪽으로 대한해협과 일본 쓰시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며, 최고 높이가 97m이다.                                                               

 

지심도는 각사등록에 의하면 영조30년(1754) 03월 22일 이후 쓰시마 어민들이 지세포나

용초도(통영시 소재) 등지로 어업활동을 하고자 찾아 왔을 때 쉬어가는 곳이었다.    또한

쓰시마 도주 소씨들이  조선에 조공을 받치거나  외교사절단을  파견할 때도  옥포에 있는

왜학소의 역관이 올 때까지 지심도에서 잠시 머물렀다 지세포진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해안선 길이가 3.7km인 지심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아음 심(心) 자를

닮았다하여 지심도로 불리우며,  일명 동백섬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지심도는 과거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해안 방어목적의 진지를 구축한 잔재가 아직도  남

아 있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말애주고 있다.                                                      

 

 

동백나무는 주로 바닷가 근처의 산지와 마을에 나는 상록 소교목으로 겨울에도 잎이 지

방에서는 보기 드문 조매화, 즉 새(동박새)의 도움으로 가루받이를 한다.   잎은 광택이

나고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며 털이 없다. 꽃은 이른 봄 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붉은

색이다.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져서 비스듬히 퍼지고, 수술은 많으며 꽃잎에 붙어

서 함께 떨어진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 3~4cm로서 검은 갈색의 종자가 들어 있다.      

 

2008년 휴양하기 좋은 섬 BEST 30에 선정된 지심도.

 

 

 

 

 

 

 

 

 

 

 

 

 

 

 

 

 

 

 

 

 

 

지심도 구 일본군 포대로 45식 15mm 캐논포가 장착되었다. 포대 옆에는 탄약고가 설치되어 있

는데 탄약고는 1835년 11월 30일~1938년 1월 27일 사리 지심포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

었다.   탄약고 내부는 전등을 설치하였고, 탄약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

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mm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약을 보관하고 있었다.                                                                    

 

 

 

 

 

 

 

 

 

 

 

1938년 1월 27일 조성한 방향지시석은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총 6개의

방위표시로 현재 제일 왼쪽으로 장승포 빙향, 가덕도 등대, 절영도, 쓰시마 남단 등 총5개

만 남아 있다. 지시석은 높이 5cm, 넓이 20 X 30, 기둥은 높이 30cm, 넓이 10 X 10이다.  

 

 

 

 

 

 

지심도 일본군 욱일기 계양대

 

1938년 1월 27일 지심도의 포대가 준공되자 구 일본군의 포대진지임을 알리기 위하여 교쿠지

쯔키를 개양했던 곳이다. 교쿠지쯔키는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의 태양 문양 주위에 처져나

가는 햇살을 붉은 색으로 도안한 깃발이다.                                                                  

 

 

지심도 둘레길의 마지막 길로서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 이정표에는 "그대 발길 돌리는 곳"이라

안내하고 있다.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이 전등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 27일 준공됐다. 전등소에는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다.                                                                      

 

현재 발전소는 피싱하우스에서 사용하는 민박 건물이나 일부 개조하여 내부 구조를 알

수 없다. 전등소는 탐조등 등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심도의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

하고 있었다. 현재 전등소와 가까운 거리에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방향지시석이 설치되

었다.  탐조등은 야간에 적 함선을 탐지하기 위하여 설치했다. 당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였으며 조명의 도달거리는 약 7~9km 정도였다.                                            

 

 

 

 

 

 

해양관광도시 거제도 봄의 전령사는 대금산 핏빛진달래와 공고지 수선화 동백 그리고 지심도

에 피어나는 동백꽃의 향연이 아닐까 싶다. 천혜의 자연휴양지 지심도는 장승포항 지심도 선

착장에서 왕복 배편을 받아들면서 부터 시작된다.                                                          

 

육지를 떠나 항구를 빠져 나가면 길게 늘어선 모습의 지심도 까지는 기껏 가봐야 15뷴이 고작

일 만큼 가깝다.  섬에 도착하면 거제8경의 한곳인 지심도는 그저 밋밋하기만 할 뿐  특별나게

자랑할 비경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이곳이  들썩이는 이유는 바로 섬을 자치하고 있는  동백숲

때문이다.  11만평의 작고 아담한 섬에는 동백숲을 따라 오솔길이 생겨났고 탐방객은 숲길을

따라 산책하듯 다 돌아 보아도 1시간 남짓하기 때문.                                                       

 

지심도는 12월 부터 섬에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4월 하순까지 섬 전체에 피고지기를 거듭하는

동백꽃의 오염한 꽃빛에 매료되는 계절이면 아름드리 동백군락지는 숲길을 열고 붉은 꽃송이

를 양탄자를 펼쳐놓듯 펼쳐 놓는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직박구리와 동박새 청아

한 소리가 원시림 섬 전체 울려퍼지고 삶의 여유를 찾는 이방인들은 숲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 잔해가 곳곳에서 마주친다.                            

 

상공에서 내려다 보면 흡사 마음 심(心)자를 하고 있다하여 오늘날 지심도로 불리지만 경상도

속찬지리지"에 "지사도"로 기록되어 있으며, 또 다른 문헌에 지삼도(只森島: 여지도서. 1760년

). 자삼도(知森島: 거제부지. 1895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80년까지만 해도 지삼도

 와 지심도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가, 현재 지심도로 굳어졌다. 이곳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지

 심도를 보리섬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동백꽃이 지천이라하여 여행객은 동백섬이라 부른다. 

 

동백섬의 반환점에는 깍아지런 절벽과 함께 "그대발길 돌리는 곳"이란 안내가 나온다. 더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섬에서 막다른 길을 돌아 나오면서 일제 강점기 이 섬의 가슴아픈 이야기가

발목을 붙잡는것만 같아 자꾸 뒤돌아 보게된다.                                                             

 

잔인했던 역사의 한켠을 지켜보며 꽃 피웠을 동백섬은 올해도 어김없이 동백꽃이 만발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