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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면 떠오르는 마을로 경주외곽에 위치해 있는 양동마을을 떠 올린다. "양동마을"이 세상에 알려져 오늘날 모습까지 경북지역으로 여행할 때면 오다가다 들러 옛집 분위기를 마주하며 밥한끼 해결하곤 했던 양동마을의 가을은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던 기억을 쫒아 11월 단풍여행을 하기위해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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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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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의 역사는 15세기 1459년 서백당으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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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소 선생이 집을 짓고 기념으로 심은 600년 된 향나무가 뜨락에서 위엄을 자랑하는 월성 손 씨 종가로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다. 손소 선생에 의하여 완성된 "서백당"은 풍수지리상 나라에 이름을 떨칠 세 명의 인물이 태어난다 하였는데 첫째로 조선시대 이조판서를 역임한 손중돈 선생 둘째로 외손인 이언적이 있으며, 세 번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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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여행은 주차장으로부터 매표소를 거쳐 양동초등학교를 지나면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입장료는 최근부터 받는데 어른 4.000원, 청소년과 군인 2.000원, 어린이 1.500원이며, 장애자 및 경주시민은 수첩과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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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면 양동초등학교 건너편으로 안락정을 만나면서 여행이 시작된다.
안락정을 떠나 반대편 마을길로 접어들면 정충비각을 지나 관가정으로 관가정에서 마을길을 따라 향단을 둘러 본 후 물봉골에 있는 무첨당과 대승헌을 지나면 경산서당이 나온다. 경산서당에서 안골로 접어들어 서백당을 여행하고 큰길로 내려 서면서 사호당, 근암고택, 수졸당, 양졸정을 여행하고, 반대편 거림에서 동호정, 두곡고택, 영당을 여행하고 입구로 내려서면서 하촌에 들러 강학당과 이향정을 여행하면 되는데 반드시 고택을 방문할 때는 함부로 만지거나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와 함께 아직도 후손이 거주하는 주거공간으로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여 방문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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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보물 제442호)는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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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은 보물 제442호로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청백리로 알려진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이다. "농사짓는 광경을 내려다보는 정자"라는 의미가 말해주듯 관가정 주변은 탁틔인 공간으로 농사짓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제일 높은 위치에 있다. 마당에서 남쪽으로 있는 공간을 손님을 맞는 사랑채로 꾸미고 나머지는 안채로 이룬 집으로 안채 동북쪽에 사당을 두고 담 양쪽 옆면과 뒷면으로 막아 집 앞을 넓게 활용하면서 안채와 사랑
채가 한 지붕을 하고 대문과 사랑채가 연결된 독특한 구조와 관가정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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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으로 향하는 언덕 입구에 서 있는 노거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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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정충비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슴을 바쳐 싸운 손종로(1598~1636)와 죽음까지 함께한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이다. 인조당시 남포현감을 지낸 손종로(1598~1636)와 노비였던 억부의 충절을 기리는 곳으로 인조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노비 억부와 함께 경기도 이천 쌍령전투에 참전하였지만 전사하였고 시체를 찾지못해 옷가지로 장사를 지내자 정조가 명을 내려 전각을 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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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보물 제412호)은
99칸의 대저택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국전쟁으로 일부 소실된 후 현재는 56칸이 남아 있다.
향단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정면에 자리한 건물로 보물 제412호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이언적(1491∼1553)선생이 경상감사 재직 당시 만든 건물로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한 몸체로 2개의
마당을 두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행랑채는 정면 9칸, 측면 1칸이며, 행랑채 뒤편 본채에는
행랑채와 같은 집을 앞 뒤 2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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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골로 들어서는 입구로 물봉골에는 무첨당이 있으며, 물봉골을 지나 서백당이 있는 안골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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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림에서 안골로 들어서는 길목 가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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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고택에서 내려다 본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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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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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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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당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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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당 향나무는 서백당을 지키고 있는 600년된 향나무로 손소 선생이 집을 짓고 기념으로 직접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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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당은
경주 손씨 종택 "서백당"은 오늘날까지 경주 손씨 대종택이자 거주하는 공간으로 손소가 풍덕류씨 류복하의 사위가 되어 양동으로 이주한 세조 5년(1459) 서백당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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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당이 있는 안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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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서당에서 수졸당으로 가는 길목인 안골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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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에서 촬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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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첨당은 보물 제311호로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의미의 "무첨당"을 세웠다.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 재직때 지은 조선 중기 종가별당으로 손님접대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며. 지금은 이언적의 후손인 장손 여강이씨 이지락선생과 아들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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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요민속자료 제189호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초기 마을을 이루면서 대대로 살아온 월성손씨, 여강이씨의 동족 집단마을이다. 손씨가 처음 마을을 이루면서 외가였던 이씨가 들어온 곳으로 일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아산장씨가 마을을 이루면서 양좌촌으로 불렀다고 하지만 근거가 뚜렷한 인물로는 세조 5년(1459) 문과에 급제한 손소가 장인 유복하의 상속자로 마을에 들어와 월성 손씨 종가를 지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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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하면 서백당과 무첨당을 중심으로 구분하면, 월성(경주)손씨의 문중으로 서백당, 여강 이 씨 문중으로 무첨당이 500년간 대를 이어오면서 양동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15세기 처음 조성된 서백당(1459/중요민속문화재 제23호)), 16세기 접어들면서 관가정(1504/보물 제442호), 무첨당(1508/ 보물 제411호), 독락당(1516/보물 제413호), 향단(1540/보물 제412호), 낙선당(1540), 영귀정(1544), 심수정(1560), 옥산서원(1572/사적 제154호), 수운정(1582), 육이정(1591)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에도 계속 건축물이 들어섰는데 설천정사(1602), 수졸당(1616), 이향정(1695), 동강서원(1695) 18세기에는 상춘헌고택(1730), 대성헌(1732), 두곡고택(1733), 양졸정(1734), 안락정(1780), 근암고택(1780), 정충비각(1783/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19세기 접어들어 경산서당(1835), 영당(1836), 사호당고택(1840/중요민속자료 제74호), 동호정(1844), 창은정사(1860), 강학당(1867/중요민속문화재 제83호)이 자리 잡고 20세기 접어들어 내곡정(1914) 그리고 1984년 12월 24일 양동마을 중요민속자료 제189호 지정 후 21세기 2010년 7월 31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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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가을 풍경이 많이 부족했다.
어딘지 빠져있는 듯한 풍경들이 조금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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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내 식당가에 들러 허기를 달래기 보다 옛날 이곳을 지나가면서 들런 습관 때문인지 식당에 들러 메뉴를 들고 보니 메뉴도 참 많이 바뀌었다. 메뉴판에서 딱 만원에 받는다는 불고기 전골을 시켜 놓고 창밖 가을 풍경을 반찬삼아 하루 여행을 마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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