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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양시 동백꽃 후두둑 ...광양 옥룡사지 옥룡사지 - 중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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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적 제407호 |
동백꽃하면 해안가를 떠올린다. 경남 지심도 동백꽃 숲길보다 더 아름다운 동백꽃 터널이 전남 광양 산속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이 있지 않다. 이유는 동백나무를 제외하면 연계하여 탐방할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지만 한번 동백터널에 빠져버린 탐방객이라면 매년 잊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다. 올해는 3월 말 동백꽃이 절정에 이른다.
▲ 고운 색상을 자랑하는 동백꽃
도선이 타계하기 전까지인 35년 동안 머물렀다 전하는 옥룡사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의 끝자락으로 용이 달려오다 만든 터 위 도선국사는 72세로 타계 할 때까지 머물던 옥룡사를 세우고 좌청룡 우백호 사이 물이 빠져 나가는 기운을 막고자 옥룡사 주변 일대에 화재에 강한 동백나무 숲을 조성하여 지금은 옛 사찰의 형체는 잃어버렸지만 400-500년 된 동백나무 6500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매년 이른 봄 만개한 동백꽃이 숲을 붉게 물들여 아름다운 동백숲을 연출한다.
▲ 옥룡사지 주차장에서 가는 길 전경. 주변에 매화가 피었다
옥룡사로 들어서는 길목은 옥룡사지 앞으로 걸어들어가는 길과 운암사 절집을 통해들어서는 길이 있다. 주차장을 활용하기 위해 운암사 절집에서 주차 후 옥룡사 동백숲길을 지나 한바퀴 되돌아 오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최근 옥룡사지 입구에 주차장과 함께 안내를 하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으며, 해설을 해주시는 분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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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지 흔적을 만나다.
▲ 옥룡사지 터로 추정하고 있는 공간에는 동백나무가 없다.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국사 37세 당시 광양 백계산에 만든 사찰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는 것이다. 지금 동백 숲이 있는 이 일대가 옛 옥룡사지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최근에는 중흥산성 내 있는 중흥사 위에 있는 저수지 포함 중흥사 터 일부분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데 이는 옥룡사 비문에 기록된 내용과 방향이 일치하고 통일신라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과 당시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말해 주고 이를 증명하듯 산 일대가 큰 사찰이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파괴, 소실되었다 하며. 저수지 물막이 공사 당시 많은 사찰 흔적이 나왔는데 1920년 일본인이 반출하였고 그 자리가 대웅전 터로 추정하고 있다. |
동문선 도선국사 비음기에는 옥룡사라는 암자를 도선국사가 찾아와 주변 풍경에 반하여 평생 머물기로 하고 암자를 옥룡사로 고쳐 거주했다고 하며, 구전에는 도선국사가 연못을 살펴보니 9마리의 용이 나쁜 일을 하여 몰아내니 이 중 백룡 한 마리가 심하게 항거하여 지팡이로 눈을 멀게 하고 연못의 물을 끊여 몰아낸 후 숯으로 메우고 옥룡사를 지어 도선, 경보, 지문 등 법맥을 잇다 조선후기인 1879년 소실되었다 한다. |
옥룡사는 신라 경문왕 4년(864)에 도선국사에 의하여 창건 된 후 주변에 많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1878년 화재로 소실되고 1920년 일본인이 토지를 매입하여 많은 문화재를 반출 한 후 저수지를 만들어 버린 것으로 추정되며 1879년 이후 옥룡사지에 도선국사와 동진대사의 비와 탑이 있었다 전한다.
▲ 선각국사 도선 증성혜등탑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탑은 비보사상이라는 민족고유의 풍수를 정립한 선각국사 도선(827-898)의 부도이다. 도선은 신라말의 승려로서 영암 구임 출신이며, 성은 김씨로 왕가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그는 일찍이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에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년)에 곡성 동리산의 혜철을 찾아 무설설 무법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운봉산에 굴을 파고 수도하기도 하였으며 태백산에 움막을 치고 고행하면서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하였다. 도선은 또 37세가 되던 해에 이 곳 광양 백계산 옥룡사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언제나 수백명의 제자들이 모여 들고 헌강왕이 궁궐로 초빙하여 법문을 들을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효공왕은 도선이 옥룡사에서 72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이를 슬퍼하면서 요공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을 세웠는데 그 탑의 이름을 증성혜등탑이라 하였다. 한편 고려의 숙종은 도선을 대선사로 추대하여 왕사를 추가 하였으며 인종은 선각국사로 추봉하였다. 이 부도는 옥룡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2002년 11월에 광양시에서 복원한 것이다.’
▲ 통진대사 보운탑
통진대사 보운탑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이 탑은 선각국사 도선의 수제자인 통진대사 경보스님(863-948)의 부도이다. 통진은 영암 출신으로 성은 김씨이고 자는 광종이며 경보는 법명이다. 일찍이 892년에는 당나라로 건너가 이름이 있는 유명 사찰을 돌며 수행하다가 921년에 귀국하였는데 후백제 견흰이 그를 전주에 있는 남복선원으로 모셔가 스승으로 삼았다. 936년에 견휜이 죽고 삼국이 고려로 통일되자 고려 태조 왕건은 통진을 왕사로 모셨다. 이후 통진은 고려 왕조 2대인 혜종과 3대 정종의 왕사로 활약하다가 백계산 옥룡사로 돌아와 도선의 제자가 되어 선과 율을 익혔으며, 나이 80세(법랍 62세)로 입적하였다. 이에 정종은 통진대사를 옥룡선화상이라 부르고 통진대사라는 시호와 함께 보운이라는 탑명을 하사하였다. 한편 통진의 제자인 석현가가 글을 쓰고 계묵 이 비문을 새겨서 이곳에 부도를 세웠으나 일제 치하를 거치면서 모두 없어졌다. 이 두보는 옥룡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2002년 11월 광양시에서 복원 한 것이다.’ |
▲ 옥룡사지 동백터널길
옥룡사지는 전국 최대의 동백꽃 군락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넓은 공간에 토종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온갖 새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매화가 피는 3월부터 3월 말경에서 4월 초순이면 이 일대는 꽃대궐을 이룰 만큼 무수한 동백꽃이 지천에서 피고 떨어져 아름다운 모습에 찾는 이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는 곳이다. |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천년의 숲 부분 우수상을 차지한 광양시 옥룡사지 동백숲길은 도선국사의 유구발견과 함께 국가사적 제407호로 지정되었지만 유구에 관한 진위여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동백숲길로 들어서는 길은 겨우 차 한 대가 진입 할 정도로 협소하지만 하늘을 가려버릴 것 같은 동백꽃이 언덕을 따라 도열하듯 자라나는데 무려 7ha에 이르며, 당시 옥룡사 창건과 맞물려 있는 동백꽃이라면 수령이 천년을 훌쩍 넘어야 하지만 대략 400-500년으로 불에 타버린 옥룡사지에 화재방비를 위해 1878년 이후에 심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옥룡사 내려서면 만나는 운암사
옥룡사 동백 숲을 내려서면 곧장 운암사가 보인다. 운암사는 구례 화엄사의 말사로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그 후 만든 고찰이지만 전쟁 속 화재와 파손으로 불교문화재는 없고 최근 조성한 전각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황동약사여래불은 도선국사의 도선비기에 따라 높이 40m 이며 아래 10m 좌대는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옥룡사에 도선국사가 거쳐하면서 많은 사문들이 도선의 법문을 듣기위해 찾아들자 옥룡사파 라는 지파가 생기고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필요하자 인근에 암자를 만들었는데 그중 한곳이 운암사로 지금은 조계종 화엄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그 후 만든 고찰이지만 전쟁 속 화재와 파손으로 불교문화재는 없고 최근 조성한 전각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황동 약사 여래불은 도선국사의 도선비기에 따라 높이 40m 이며 아래 10m 좌대는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황동약사여래불은 속리산 법주사 보다 더 높고 운암사를 통해 위로 오르는 길이 바로 도선국사가 심었다 전하는 동백숲길로 조금 오르면 도선국사 비석을 최근 세워 놓았다. |
중흥산성에 자리한 조계종 중흥사 |
사찰로 들어서니 기운이 허하다. 휭하니 부는 봄바람에 문을 닫은 고요한 절간처럼 보이는 것은 왤까? 정말로 폐사찰이 된 것일까? 온갖 생각을 하며 경내로 들어서지만 나올때까지 봄바람만 스칠 뿐 인기척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 옥룡사지 터로 주장되는 곳에 자리한 중흥사
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하운마을 위 자리 잡은 고찰이자 호국사찰인 중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신라 경문왕 당시 도선국사가 옥룡사와 함께 세운 신라시대 고찰로 약 둘레 4km 중흥산성이 있어 의병과 승병이 훈련장소로 사용된 격전지로 증흥산성 이 적에게 유린되면서 사찰도 소실되는 운명에 처하고 그 후 비구승의 암자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 1943년 다시 폐허로 변한 후 1963년 독지가 하태호의 시주로 주지 공돌에 의해 중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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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와 운암사 그리고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만든 사찰로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사찰이지만 아직 옥룡사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반면 중흥사에는 쌍사자석등(국보 103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남유형문화재 142호), 삼층석탑(보물 112호) 등 불교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에서 쌍사자석등(국보 103호)는 일본인으로 유출하려다 주민의 반발로 지금은 광주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이다.
중흥사 경내에 있는 높이 3.8m의 삼층석탑 1기로 2단 기단부 위 3층 탑신을 올린 형태로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앞면에는 인왕상 및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을, 뒷면은 보살상을 새겼으며 몸돌에는 여래상을 새겨 놓아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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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법당 주변이 휭하다.
중흥사는 오랜 수령의 참나무를 비롯하여, 단풍나무 잣나무가 숲을 형성하고 중흥사 위편에는 옛 옥룡사터로 추정하고 있는 작은 저수지와 격전지였던 천연요새 중흥산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중흥산성은 총 12필지(488,823㎡) 6개 산봉우리를 포함한 성으로 석성이 아니라 적당한 두께로 흙을 다져 축조한 토성이라는 점이다. 토성의 외성은 약 4km에 이르며, 외성 안쪽에는 240m의 내성을 쌓고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으로 사용한 고려시대 토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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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로는 중흥사지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 와 중흥산성삼층석탑(보물 제11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42호)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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