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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트레킹 - 양산 통도사 개산대재 영축문화축제 2017

허영꺼멍 2017. 11. 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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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산 1372(2017) 주년 개산대재 영축문화축제

"양산 통도사"

⊙ 2017년 10월 30일 ⊙



통도사 개선대제(通度寺 開山大祭) 영축문화축제가 통도사 경내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영축총림 통도사는 올해로 벌써 개산 1372(2017)주년이며, 통도사의 창건자이자 신라 대 국통이시던 자장율사(590-658)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행사는 93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16일까지 이어진다.


▲ 국보 제290호 통도사 대웅전


▲ 안양암에서 바라 본 통도사 전경

여행별점 : ★★★★☆

통도사 산사 가을이 스며들다

통도사 경내 주차장 :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251-3


개산대제(開山大祭)’ , 산골을 개척하여 절을 짓는다는 개산(開山)은 산문(山門)을 여는 일로 창건일이며, 대제(大祭)는 창건을 기념하는 큰 법회를 말하며, 올해는 특히 오채현 작가의 부처님 소조상 40여 점이 경내 곳곳에 국화향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 무풍한송로에 모셔진 괘불탱





통도사 매표소로부터 통도사 내 주차장을 잇는 무풍한송로따라 전국 사찰에 모셔진 괘불탱을 실사하여 내걸었으며, 양산문화축제로 용면 양산의 거리가 부도전 앞 총림문을 시작으로 성보박물관 입구까지 이어져 있다.

 

통도사 석당간

경남유형문화재 제403호


석당간과 중심법당이 멀리 있는 경우는 부석사 역시 그러 할 만큼 그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도사 석당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 당은 사찰을 나타내거나 행사를 알리는 깃발로 이것을 거는 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지탱하기 위해 옆에 세우는 지주(기둥)를 당간지주 또는 철간지주라 하는데 대게 사찰의 입구에 세워진다. 당간은 대부분 목재로 만들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고, 석재나 철재로 만든 지주만 남아 있다. 당간을 받치는 기단의 구조나 지주의 규모 등으로 미루어 고려 말의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의 중앙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통도사의 석당간은 여러 차례 보수하면서 다소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혀 있다. 석당간 중에서 쇠로 만든 철당간으는 공주 계룡산 갑사에 있다.


통도사 부도원

경남유형문화재 제585호


부도원은 통도사를 거쳐 간 역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가 모여 있는 곳으로 통도사 내 신성한 공간임은 틀림없다. 본래 통도사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월하 방장스님의 교시로 1993년 오늘날 위치로 모았는데 큰스님의 부도가 60여기, 비석 50여기이다.


▲ 주차장 건너 부도원을 만나게 된다.





통도사 부도원은 역대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를 세워놓은 곳으로 부도밭이라고도 부르는데, 주로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치한다. 통도사 부도원에 모셔진 부도와 부도탑비는 원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3년 월하 방장스님의 교시로 이전하여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봉안한 것이다. 부도원은 상단에는 부도, 하단에는 부도탑비와 통도사 관련된 공적이 있는 분들을 기리는 각종 공덕비가 있다.




해탈문에서 일주문을 걷다


작품은 용과 처용의 얼굴 형상을 무늬화 하여 사악한 무리를 경계라는 백사의 화신으로 여러색의 우산과 독특한 방식의 등공예 그리고 액자가 터널을 이루고 시선을 끈다.


▲ 우산을 이용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통도사는 해탈문을 필두로 직선선상에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대웅전을 구성하고 금강계단을 정점으로 동쪽으로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는 지형을 통해 크게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영역을 이루고 있는데 상로전은 통도사의 핵심인 대웅전과 금강계단, 중로전은 불이문에서 세존비각까지의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이 있으며, 하로전은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영역으로 세 개의 불전과 만세루가 삼층석탑을 애워싼 형식을 하고 있다.


통도사 내 양산천

삼성반월교 주변 가을 단풍



▲ 삼성반월교 전경





단풍이 계곡에 목욕을 하고 있다.


일주문 알 미륵불이 모셔지다.


해탈문을 지나 일주문을 열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일주문에는 대원군이 새긴 "영취산 통도사"란 현판과 두 기둥 주련에는 "佛之宗家 國之大刹"불지종가 국지대찰/부처님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 는 뜻으로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종찰임을 알려주고 있다.


▲ 일주문 앞 미륵부처

교량을 건너 통도사 경내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일주문 앞에는 공사중이며, 대형 미륵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모셔진 미륵부처는 오채현씨가 20년 전 상주에서 구해 놓은 화상석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으로 개산대재를 기리며 통도사에 모셔 놓았다. 무게가 총 17톤이며, 높이가 5m이다.


범종각


통도사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바라 보이는 범종각은 2층 누각형태의 건물이다. 범종각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 범종각은 2층 누각형태의 건물이다. 건물의 초창은 1686(숙종 12) 수오대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현재의 범종각은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 상하층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사물을 비치하였다.


▲ 범종각

불전사물은 조석의식에 사용되는 불구로 모두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범종을 치는 것은 지옥중생을 위하여,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위하여, 목어는 수중의 중생을 위하여 그리고 운판은 허공의 날짐승을 위하여 사용된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목어는 2층은 2개가 걸려 있다.


극락보전

경남유형문화재 제194


통도사로 들어서는 천왕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극락보전은 통도사 건물 중에서 외벽에 풍랑을 헤치고 불법을 전하는 벽화가 잘 표현되어 있으며, 봄이면 앙증맞은 매화가 피는 곳이다. 경남유형문화재 제194호 극락보전 안내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극락보전은 극락세계에 머물며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 뒷편에 위치한 극락보전 





이 건물은 1369(공민왕 18)에 성곡대사가 창건하였고, 1801(순조1) 지홍스님이 고쳐 지은 후. 20세기 초에 다시 수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측면의 어칸에 출입문을 두는 점이 특징적이다. 건물의 뒤쪽 외벽에는 함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모습의 반야용선도가 그려져 있어 극락전의 건축세계를 잘 보여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미타여래를 봉안하는 극락전은 아미타전이라고도 하며, 또 극락세계에서 영원히 평안한 삶을 누린다 하여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극락보전의 외벽 토담에는 극락을 찾아 떠나는 반야용선도를 비롯하여 사천왕상 등 그림을 그려놓았다.


▲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이 함께하고 있는 경내 꽃공양 모습





경내에는 국화꽃이 피었다. 가을을 맞이하여 산사 경내에 가을꽃 국화꽃 공양을 하였으며, 크고 작은 국화 화분에는 시주한 사람의 이름과 소망이 함께 하며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영산전



▲ 영산전 전경

하노전의 중심건물이다. 극락전과 약사전을 좌우에 둔 영산전은 통도사로 진입하는 첫 절집이기도 하며. 봄이면 통도사 매화로 유명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노전 중심에는 지금의 위치에서 1.5m 지점 언덕에 있던 신라 말기 3층석탑을 옮겨 놓았으며, 영산전 내부 벽면에는 보물 제1041호 영산전 팔상탱과 영산전 벽화 보물 제1711호 외에도 52점의 벽화가 남아 있다.





영산전 건축연도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1704(숙종 30)에 숭곡선사가 중건한 것이라 한다. 고려 초 이전에 처음 지은 후 숙종 30(1704)에 송곡대사가 중창, 1713년 화재로 소실 후 다시 재건 후 1715년 단청을 올려 1716년 완성했다.


하노전 삼층석탑

보물 제1471호


경남유형문화재 제18호 였던 영산전 옆 통도사 삼층석탑이 보물 제1471호로 승격되었다. 석탑 기단에서 불탑이 발견된 석탑은 총높이 3.5m 4장의 장대석을 지대석으로 삼고 잔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으로 조성한 탑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이 석탑은 큰 받침돌 위에 2층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 신라 후기의 삼층석탑이다.


▲ 약사전 방향 삼층석탑

▲ 극락보전 방향 삼층석탑


1987년 해체 수리 당시 원래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약 1.5m 정도 옮겨져 극락전과 약사전의 중심축에 맞추어 복원하였다. 당시 상층기단 안쪽에서는 조선시대 백자가 발견되었고., 하층기단의 다진 흙 속에서는 소형의 금동불상 2구와 청동 숟가락 등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탑에 있던 배례석(1085)과 함께 통일 신라 후기의 석조문화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음전 & 관음전 석등

경남유형문화재 제251호 관음전 ' 경남유형문화재 제70호 관음전 앞 석등


통도사의 전각은 제각기 필요하게 배치된 독특한 모습으로 출입구가 각자의 전각에 따라 다른데 관음전은 다른 전각에 비해 공간이 뻥 뚫린 모습과 함께 앞에 석등 1기와 화촉대로 보이는 석조물을 두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관음전은 통도사의 전체 가람배치에서 중심축에 있으며, 대광명전, 용화전 등과 함께 중로전 구역의 중심전각이다.


▲ 관음전과 관음전 앞 석등  

임진왜란 당시 불탄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하였고 1780(정조 4) 용파당 도주대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하였다 . 건물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으며, 벽화로는 보타락가산에 있는 관음보살과 남순동자, 32용신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이 표현되어 있다. 관음전은 낙가전, 원통전이라고도 하는데, 통도사 관음전도 1701년 이전에는 낙가보전으로 불렀다" 통도사 관음전은 2014년 대대적인 보수하여 현재 신도들을 맞이하고 있다.


▲ 관음전으로 향하기 전 작품

관음전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 후 정조 4(1780) 도주대사가 중창을 하였으며, 법당 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벽화는 보타락가산에 있는 관음보살과 남순동자, 32응신을 상장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이 그려져 있다. 관음전은 낙가전, 원통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통도사 관음전도 1701년 이전에는 낙가보전으로 불렀다 한다.



관음전 앞에 위치한 석등으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석등은 등불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불교에서 등불을 밝히는 것은 공양 중에서도 으뜸이 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석등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팔각의 하대석을 올렸다. 그 위에 팔각의 기둥을 두었는데, 중앙에는 3줄의 띠 매듭으로 장식하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의 각 면에는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에는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고 꼭데기에는 보주를 놓아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부동형의 팔각인 점, 화사석이 세로로 긴 사각형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통도사 오층석탑



통도사 오층석탑으로 개산조당 앞에 위치하고 있는 최근 1920년 작품으로 비지정 문화재이다.


깨달음을 구한 삼십칠 조도품탑


중노전에 자리잡고 있는 개산조당은 이곳 통도사의 창건주 지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통도사 내 개별적인 공간으로 솟을문을 통해 진입하도록 해 놓은 통도사 내 톡특한 구역이다. 솟을문은 지금 열 수 없고 측면으로 돌아 들어서면 해장보각을 만날 수 있다.


 

조선 1706년 만든 세존비각은 계파대사가 금강계단을 중수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를 세우면서 만든 비석으로 불사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높이 2.5m, 1m이다.



삼보사찰이란 불교 성립의 삼대요소인 불(: 교주) · (: 교법) · (: 승단)으로 나누는데 대표적으로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법보사찰 해인사, 보조국사 이래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 부처님의 진신사리, 금란가사를 봉안한 불보사찰 통도사가 대표적이다.



영축산(1050m) 남쪽 자락에 유명한 절집이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최초 봉안한 절집 불지종가 국지대찰 영축총림 통도사는 신라 성덕여왕 15(646) 지장율사가 창건하고 당나라 구법중에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 경책을 금강계단을 조성하고 봉안하였고 오늘날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로 한국 불교 최고의 종합수행도량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개산조당 삼문, 개산조당과 세존비각 그리고 앞에 37조도품탑


통도사에서 특별한 공간은 대웅전과 관음전 대광명전 그 중심에 자리한 통도사의 창건주 지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절간 안에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있도록 중간 문을 높이 올린 솟을문 한 개산조당과 문 뒤에는 영정과 고려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장보각으로 이어진다. 그 뿐만 아니라 개산조당 앞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하는 37가지를 새겨 놓은 삼십칠 조도품탑이 있는데 때론 지장율사가 기대서서 깨달음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개산조당 앞에는 세존비각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1706년 계파대사가 금강계단을 중수하고 석가여래의 열골사리비를 조성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새겨놓은 비석으로 나라가 곤경에 처하면 비석 뒤편에서 땀을 흘리곤 한다 전한다.




봉발탑


봉발탑의 용도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는 독특한 석조물로 미륵불을 모신 용화전 앞에 우뚝 서 있는 독특한 형상의 하고 있는 의문의 석조물이다.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며, 전체 높이 230cm로 봉발탑으로 불리고 있지만 탑이 아닌 발우로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에서 확인된 불교 석조물 중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유일한 석조물이다.


▲ 보물 제471호 봉발탑


고려시대 제작된 석탑으로 석가모니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로 연꽃무늬가 새겨진 하대 위에 간주와 상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육중한 뜨껑을 지닌 발우를 안치하였는데 이러한 조형물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통도사는 선덕여왕 15(646) 자장율사에 의해 영축산 자락 금강계단을 조성하고 부처의 사리와 가사(袈裟)를 봉안하면서 오늘날까지 불상이 없는 대법당 전통을 이어오는 곳으로 통도사 산문을 연 음력 99일을 기념하여 매년 개산대제가 진행된다.





통도사 중심법당 대웅전

국보 제290호


통도사 중심법당 대웅전은 바라만 보아도 위엄을 느낄 수 잇을 만큼 장엄하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대웅전은 상로전 영역의 중심건물이자 통도사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이다.


▲ 통도사 중심법당 대웅전 

건물 뒤쪽에 자장율사가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던이 있어 내부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646(신라 선덕여왕)에 처음 지은 후 수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했으며,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4(인조 22)에 우운대사가 고쳐 지은 것이다



▲ 구룡지 전경

통도사에는 용이 흘린 피가 묻어 있다는 용혈암(용피바위)와 함께 구룡지의 전설이 전해진다. 자장율사가 절터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인도 영축산과 흡사한 축서산을 찾게 되었다. 축서산 아래 큰 연못이 있어 못을 메우고 절을 짓는데 그 속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어 자장율사는 용에게 절을 지을 것이니 떠나 달라 요청하지만 용이 꿈쩍하지 않자 법력으로 연못을 펄펄 끊게 하여 내치려하였고 아홉 마리 용 중에서 다섯 마리는 남서쪽으로 도망가다 떨어져 죽고, 세 마리는 동쪽으로 달아나다 솔밭길 근처 바위에 부딪혀 죽었다 한다. 남은 한 마리는 눈이 멀어 갈 수 없으니 연못에 살게 해 주면 절을 수호하겠다 간절하게 요청하여 연못을 만들어 살게 하였다 전하는데 이를 구룡신지라 한다. 또한 연못을 메워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땅이 질척하여 보행이 힘들다 한다.



대웅전은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형태로 내부의 기둥 매열이 다른 건물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붕은 정자형을 이루고 있어 앞면과 뒷면, 옆면이 모두 정면처럼 보인다. 대웅전에는 건물의 다양한 성격을 반영하듯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특히 금강계단의 글씨는 홍선대원군의 친필로 유명하다.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 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계단 가운데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종 모양의 석조물을 마련하였는데, 이는 부처님이 항상 계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통도사를 세우고 절집이 자리잡은 산이 흡사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한다하여 통도사라 부르며,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통도사라 부르며, 금강계단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니 오늘날의 대웅전으로 정자형 법당 내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 금강계단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은 대웅전에서 유리창 너머 바라본다하여 부처없는 대웅전으로 유명하다. 금강계단으로 들어서면 신발을 바꾸어 신고 사리탑을 중심으로 사방 한바퀴 돌아 나올 수 있도록 이동순서를 정해 놓은 신성한 공간이다. 사리탑을 중심으로 기둥 하나 하나까지 불교적 색체의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어 불교의 진수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지장율사가 당나라 수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는 절을 만들고 진신사리를 받들어 모신 것으로 창건 후 단 한 번도 법등이 꺼진 적이 없는 사찰로 석가여래의 사리가 있는 이유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 것이며, 사리를 봉안한곳이 금강계단이다.

 

불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와 함께 지장법사가 당에서 모셔온 불두골(佛頭骨), 불치(佛齒), 불사리(佛舍利) 100, 부처님이 입으시던 비라금점가사(緋羅金點袈裟) 한 벌 등을 가져와 일부를 통도사에 보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계단에도 많은 전설이 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처음에는 긴 구렁이가 있더니 두 번째는 두꺼비가 돌 위에 있어 함부로 열지를 못했다고 기록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금강계단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려 왔음을 짐작케 한다.

 

고려 고종 22년 상장군(上將軍) 김공리생(金公利生)과 시랑 (侍郞) 유석(庾碩)이 군사를 시켜 돌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석함에 유리통이 있고 그 속에 사리가 네 알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하며 불자의 불심에 따라 그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하며. 석종 위에 있는 부도의 여의주석 반석아래 움푹 팬 곳은 항상 물이 차 있고 금강계단 위로 날짐승이 날거나 주변에서 지저귀는 일이 없다 한다.








금강계단 참배는 매월 음력 초하루~초삼일(1~3), 매월 음력 보름(15). 매월 지장재일(18), 매월 관음재일(24) 개방되며, 참배시간은 오전 11~ 오후 2시까지 이다.



 

통도사 일주문 밖 오층석탑


통도사에는 경내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오층석탑 2기가 있다. 1기는 대웅전과 관음전 중간 구역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근대작품이며, 일주문에서 통도사를 통과하는 양산천을 건너는 공양간 못미처 아치형 다리를 건너 산속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 언덕 위 자리하고 있다.



오층석탑은 흩어져 있는 조각을 1991년 하종성스님의 교시로 복원하였는데 사라져 버린 4.5층은 새로운 석재로 보강하였다. 오층석탑 내 1층 탑신석은 옛 모습을 통해 감실을 두고 그 속에 경주 황룡사 목탑 심초석 사리공에서 수습한 불사리 2과를 봉안하였다.




통도사는 나라에서 47,000보 땅을 하사받고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위해 선종 2(1085) 12곳에 통도사 땅임을 말하는 국장생을 통도사에서 동북쪽 4km 지점에 상천리국장생을 세웠다. 상천리국장생에는 밋밋한 바위에 5~9cm 크기의 이두문을 음각하였지만 전체적 내용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일부를 통해 통도사와 관련된 내용 및 날짜는 알 수 있다.



통도사를 세우고 절집이 자리잡은 산이 흡사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한다하여 통도사라 부르며, 승려가 되고자하는 사람은 반드시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통도사라 부르며, 금강계단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니 오늘날의 대웅전으로 정자형 법당 외부 사면에는 각기 다른 편액이 내걸려 있는데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으로 기록하고 있다.





안양암에 들러다


통도사를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전망지점 안양동대 그리고 안양암으로 가는 길은 오층석탑 뒤편으로 완만한 등산길이 열려져 있다. 이곳은 거의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산길로 걷는 중간 중간 통도사 전경이 숲에 가려져 얼핏 얼핏 시선에 들어왔다 숲이 가려놓기를 반복한다. 산길을 따라 300m 정도 따르면 숲이 잠시 멈칫하고 탁 트인 공간으로 통도사 전각이 한눈에 조망되는 조망지점을 안양동대라 하며, 아래 안양암이 위치하고 있다.


▲ 안양암 전경





통도사 팔경 중 하나로 손꼽는 안양동대는 먼 산정상이 아니라도 통도사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일반인은 거의 잘 모르는 곳이다. 통도사 오층석탑을 가로질러 산길을 따라 이동하거나 통도사 계곡을 건너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는데 바로 통도사 암자중에서 가장 가깝지만 가장 알려지지 않은 안양암이 바로 그 곳이다.



안양암으로 오르는 또 다른 길이 있다. 호젓한 산길 홀로 걷는 게 불안하다면 계곡을 따라 설법전까지 가면 설법전에서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함께 노송과 활엽수가 열어둔 구렁이 담 너머 가듯 구불구불 돌고 돌아가는 산길을 만나게 되고 산길 끝자락에 안양암이 있으며, 안양암 뒤편으로 조금만 오르면 통도사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나온다. 안양암에서 올라왔던 길 반대편으로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자장암과 극락암 가는 길이며, 왼편으로 서운암이다. 서운암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즐기는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특히 서운암에서 옥련암으로 넘어 백련암으로 향했다 되돌아 나오는 숲길은 가을이면 더 없이 좋은 사색의 길이다.



안양암은 고려 충렬왕 21(1295) 찬인대사가 창건 후 고종 2(1865) 우담대사가 중창을 하면서 오늘날 안양암에서 가장 오래된 북극전을 만들었으며, 1963년 우송화상이 중수를 하였다 전하지만 안양암에 관해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북극전은 정면 3, 측면 2칸의 아담한 정각으로 보상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건물에는 단청과 벽화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경남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되어 있는 북극전이 있는 이곳은 안양동대라는 바위 위 자리 잡은 암자로 예불을 목적으로 하는 사찰과는 달리 수도를 위해 조성한 암자로 추정하고 있다.



붂극전은 장수를 상징하는 북극성을 봉안하는 전각으로 토착신앙인 칠성신앙과 관련성이 있어 보이며, 기둥 간격이 다른 건물과는 달리 2m가 되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오늘날 안양암에는 법당, 청송당, 고금당, 정토문, 독성각이 있으며, 안양암 아미타후불탱과 북극전 칠성탱은 성보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통도사 공양시간은 조공(오전 6:00), 오공(오전 11:30), 약석(오후 5: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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