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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조용한 물색을 닮은 대비사

허영꺼멍 2010. 6. 3. 21:08

대비사

 

 

 

대비사의 정확한 중창기록은 알 수 없지만 신라 진평왕 11년(589)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 고려 인종 때 원응이 중창하였다는 설과 신라 진흥왕 28년(567) 신승이라 불리는 창건주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대비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향로전, 요사, 요사채, 삼성각, 부도전으로 향로전은 본래 대웅전 우측에 있었으나 1986년 대웅전 좌측으로 옮겼으며,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으며, 보물 제834호로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1685년(조선 숙종 11년)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비사 창건설화로 557년 신승이 운문산 금수동 북대암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도한지 3년이 되던 날 산과 계곡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이 놀라 우는 것을 보고 산에 오령이 살고 있음을 알고 7년동안 5개 사찰을 조성하였는데 그때 만든 사찰 중 하나가 대비사로 소작갑사라 불렀다 한다. 운문산 중심에 대작갑사(운문사)를 두고 동쪽에 가슬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서쪽에 소작갑사(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두었다.

  

대비사 지명은 불교의 대자대비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설과 신라 왕비의 대비가 수양차 절에 머물면서 소작갑사가 대작갑사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비사는 당초 박곡리마을에 세워졌지만 고려시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대비사 경내를 거쳐 계곡으로 내려서면 대비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2004년 조성한 부도비가 자리잡고 있는데 부도 16기, 비 6기가 오랜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부도는 취하청권(영조44년/1768), 화우상?, 영성, 김파, 영파, 매월취헌, 청련혜명, 영암인철, 무명 8기 및 비로 포공 장선(1801년 유공비), 수월 삼성(1724), 용암 백곡(1725), 취하 청권(1775), 허곡 만웅(1813), 허현 설안(1717)등이 확인되고 있다.

  

갈래갈래 뻗어내린 산허리는 크고작은 계곡을 만들고 물길은 흘러 작은 소류지를 만들고 소류지 따라 생겨난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면 작은 절집 대비사가 아낌없이 속을 내보이고 맞이해 준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호거산에 자리한 아담한 절집 대비사는 창건 당시 주변의 아름다운 계곡에 자리잡았을지 모른다. 지명에서 보듯 백곡이란 계곡이 많아 불러진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박곡으로 바뀌어져 오늘에 이른다.

 

백곡에 존재했다는 계곡은 메말라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그나마 부도전 앞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인근 계곡으로 흘러든 계류가 모여 대비지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물색 색감이 두렵게 만든다. 옛날에는 말을 타거나 박곡마을에서 걸어들어왔을 대비사로 오는 길목은 첩첩산중으로 호랑이가 나올법도 할 만큼 인적이 끊어진 곳이지만 지금은 도로가 잘 형성되어 있는가 하면 절집이 거의 평지에 위치한것이나 다름없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