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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 복천동고분박물관

허영꺼멍 2010. 8. 22. 08:19

 

 

 

 

 

 

 

 

 

 

 

 

 

 

 

 

복천동 고분군은 한때는 보잘 것 없는 마을 뒷동산 정도로 여겼던 곳으로 다양한 시대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소중함을 일깨워준 곳이다.
 

동래의 철기문화는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굴된 고분은 4-5세기 가야 왕의 무덤이 집단으로 발견되는 동래를 중심으로 북쪽 마안산{대포산)자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길 게 뻗어 내린 지형으로 출토된 유물만 하여도 9천2백여 점 발굴되어 가야사 연구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무덤은 덧널방식부터 다양한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독무덤 등 시대를 막론하고 출토되고 있어 마치 무덤의 박물관으로 착각 할 정도이다. 처음 발굴된 퇴기는 경남 함안 도항리고분군(아라가야 고분군), 말산리고분군의 토기와 일본 하지기계토기를 시작으로 창녕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철기 출토품이 대량으로 나와 주목받고 있다. 철기 출토품으로 미루어 당시 가야사는 철의 왕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창원 성삼패총의 경우 철을 만드는 야적장을 비롯하여 발굴된 유물이 철의 종류로 갑옷, 투구, 칼 등 무기류가 단연 압도적으로 당시 철을 이용한 기술은 신라 그 이전부터 상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 고분은 현재 박물관을 통해 유물을 전시하고 무덤 일부를 아치형 돔을 만들어 직접 관람하도록 조성해 두었다. 가야사는 삼국시대에 있어 자료가 없는 잊혀진 왕국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복천동 고분을 통해 당시 이곳의 집단세력이 신라권에 소속된 집단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정설로 굳혀온 4세기 김해 대성동 고분군 세력과 연합하여 전기가야의 맹주인 금관가야를 성립하고 5세기에 고구려의 남정으로 김해세력이 쇠퇴하자 금관가야의 패권을 장악 6세기에 이르러 신라에 정복당했다는 것.

 

동래 또는 부산지역은 3세기 중반까지 독자적으로 세력을 형성한 존재를 두고 족로국, 거산칠국으로 존재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데 3세기 후반부터 4세기 중엽에 신라에 편입되었기에 복천동 고분군은 4-5 세기고대 부산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였다는 주장.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신라는 3세기 후반(늦어도 4세기 중엽) 동남해안, 북쪽으로 동해안, 낙동강 중류 등 소국들에 대한 복속을 마무리 했다는 것과 5세기 초이래 줄곧 출토되는 신라양식 토기, 신사 금관을 닮은5세기 초의 출자형금동관, 경주 특유의 적석목곽묘와 유사한 4세기 말의 분묘를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복천동 고분군을 통해 시대를 달리한 무덤문화를 만나면서 인간의 사후세계에 관하여 관습 및 인식 연구에 중요한 전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죽음 그 사후의 세계를 전생에 누린 권력을 내세까지 연장시키려는 한 방편으로 한반도 전역에는 다양한 무덤이 지역에 따라 생겨나지. 인류가 생긴 이래 처음 만든 것이 고인돌의 역사이고, 외국의 경우 대형급 피라미드가 당시의 엄청난 인력까지 동원해 가면서 만들 정도로 자신의 영화를 알리려고 하는 지배층의 잘못된 판단은 무덤을 무조건 크게 하려고 하였다.

 

무덤의 크기가 점점 늘어만 간 것은 무덤 속에 안치된 부품속인 보물의 유출 등으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는데 중국의 진시황의 경우는 아예 그 무덤이 어디 있는지 조차 후세에 알려져 있지 않아 궁금증을 더해주고, 우리나라도 이와 다를 봐 없는데 알려진 경주의 대형급 무덤 외 고령, 함안 등 많은 무덤이 대형화 추세였다. 그 중에서 경북 의성군과 산청군에 있는 돌무덤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돌로 무덤을 세운 특징이 있다.

 

무덤은 고인돌을 시작으로 돌널무덤(석관묘), 독무덤(옹관묘),돌덧널무덤(석곽묘),토광묘가 나타나는데 주로 평지에 사용했던 고인돌과는 달리 점점 산 정상의 높은 지역으로 무덤이 이동하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되면서 화려한 무덤이 등장하게 되지만 우리나라 무덤은 반타원형으로 만들어 졌고 또 지금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한국식 무덤의 일반적 특징이다.

 

[덧널방식] 신석기말 중국에서 발생. 목판재 또는 목각재를 4벽과 뚜껑을 만들고 바닥에도 판재와 각재를 깐 무덤 / 덧널무덤은 내부에서 외관과 내관이 들어가기도 하며, 여러 개 덧널이 들어가는 다실묘도 있다. 구덩이를 5미터 이상 파서 부장품을 함께 넣고 있다.

[독널무덤] 흙으로 빚어 구운 항아리를 사용한 무덤. 하나 또는 두 개의 독을 연결한 삼한시대의 무덤구조 박물관에 가보면 흔히 있음.
 

[구덩식 돌덧널무덤] 장방형 구덩이를 파고 벽면을 돌과 흙으로 보강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지 않은 것과 얹은 경우가 있다.

[앞크기식 돌덧널무덤] 앞 시기의 돌 덧널에 굴식 돌방무덤이 결합한 것으로 가야지역 특유의 무덤. 장방형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만든 후 단벽 한쪽은 추장을 위해 드나들 수 있도록 벽을 헐고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출입구 돌을 기대어 놓은 무덤.

 

복천동고분군은 실내전시실 및 야외전시실을 갖추고 가야시대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을 지하2층, 지상 3층의 건물에 1전시실, 2전시실, 조사보존실을 두고 지하에는 기획전시실 및 유물보존처리실을 두고 소장유물로 총 7,575점이 있다. 유물 중 발굴유물 6,969점, 수탁유물 504점, 기증유물 102점이며, 이 중에서 토기 자기류가 229점, 금속류 196점, 유리 보석류 21점, 기타 36점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