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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 불교천태종의 본산 구인사

허영꺼멍 2010. 8. 21. 22:40

 

 

 

 

 

 

 

 

 

대한 불교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는 여느 사찰과는 다른 모습을 한 현대식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사찰로 1946년 상월원각스님이 터 잡으시고 1966년 현대식으로 건물을 단장하며, 모든 기거하는 스님은 철저한 주경야선(晝耕夜禪) 수련으로 자급자족의 원칙을 시행한다. 주경야선은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원각 대조사의 생활불교 지론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용맹정진에 힘을 쏟는다는 뜻이다.
 
구인사는 주경야선의 뜻을 이어받아 매년 한 달 동안 욕심을 털어내고 불심으로 다가서는 구인사 재가신도 하얀거를 시행한다. 재가신도들이 수련을 무사히 마치면 종명명의의 이수증을 발급하고 있다. 기도기간동안 무심으로 기도하고 무심으로 생활하는 법어에 따라 여느 사찰과는 달리 사찰은 낮이면 빨래부터 청소까지 스스로 행하고 밤이면 불경을 외우는 등 하루 종일 바쁜 생활을 통해 불교의 참뜻으로 다가서게 된다.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는 천태종, 태고종, 조계종이 있습니다.
천태종의 기원은 600년 경 중국 절강성 천태산 국청사에서 천태 지의대사에 의하여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천태삼대부 즉, 법화현의.법화문구.마하지관을 근본교의로 삼고 있습니다. 개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종 발원 한 것이 우리나라의 기원입니다. 이론과 실천을 통한 수행의 의미인 주경야선을 실천하는 곳이라 보면 됩니다. 고려에 이르러 크게 번창한 천태종은 조선시대 척불정책으로 한때 쇠퇴하였다가 1966년 천태종을 재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계종의 기원은 500년 경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달마스님을 초조로 하고 불립문자 직지인심견성성불(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을 종지로 하는 한국 최대의 불교종파입니다. 한국불교를 유신하고 시대에 적응하는 정통 교단을 재건 중창함으로서 모든 중생을 도생의 문을 열어 교화의 사명을 다하는 사찰이다 신라에 구산선문의 하나로 도의국사가 개산(開山)한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기원하여, 고려에 보조국사지눌의 중천을 거치게 되며 보우국사 태고에 의하여 구산을 통합 한 후 조계종으로 불리게 된다. 주요사찰로는 25교구 본사 총무원 직할의 조계사를 비롯하여 용주사, 신흥사, 월정사, 법주사, 마곡사, 수적사, 직지사, 동화사, 은해사, 고운사, 불국사, 해인사, 쌍계사, 통도사, 범어사, 금산사, 선운사, 백양사, 화엄사, 송강사, 대흥사, 관음사 등 한국에서 이름난 사찰은 거의 조계종단이다.
 
태고종은 1950년대 비구(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인 250계를 받고 수행하는 남자승려), 대처의 분규로 비구는 조계종, 대처는 태고종으로 분종된 것으로 석가모니를 종조(宗祖)로 하고 보우(普愚)의 종풍(宗風)을 선양하려는 대처승(帶妻僧)으로 이루어진 불교 종파이다. 대처제도(帶妻制度)는 한국불교에는 없던 제도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불교로부터 수용한 것으로 해방 직후의 조계종단에서 비구보다 대처가 많았다. 대한정부가 수립되고 불교에 관한 일제잔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 속에 이승만은 대처승을 사찰에 서 물러날 것은 특별담화로 내보면서 조계종은 비구세력과 대처세력으로 나누어진다. 이 때 생겨난 것이 1970년 1월 박대륜을 종정으로 하고 태고종이 발족을 하면서 조계종으로부터 분리된다.
 
법당안을 살펴보면 여러 부처님을 모셔 두었는데 석가모니불은 2500여 년 전 , 인도의 석가라는 곳에서 태어난 조그만 성의 왕자였지만 왕자로서의 부를 버리고 불도의 길을 걷게 됨으로서 결국 부처로 추앙된다. "석가"란 태어난 지명을 딴 것이고 "모니"란 인도의 성자이다. 부처님이란 인도에서 진리를 깨달은 분을 두고 말한다.
 
관세음보살님은 인도에서 진리를 뜻하는 보디(Bodhi)'와 중생을 뜻하는 '삳트바(Sattva)'를 합한 '보디 삳트바(Bodh-Sattva)'를 음역하여 보리살타(菩提薩陀)가 되고 줄여서 "보살"이라며, 관세음은 세간(世間)에 있는 중생의 음성(音聲)을 관(觀)한다는 뜻으로 왼손에 연꽃과 감로병을 들고 있다.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인 부처님의 마음이며, 꽃이 핀 연꽃은 불성이 들어 나서 성불한 것, 봉우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상징한다. 감로병은 중생을 주제하는 감로수를 담은 것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를 뜻하며, 깨끗한 손을 씻는다 하여 정병이라고 합니다.
 
대세지보살은 정수리의 금관에 보배의 병을 얹고 계시며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영원한 고통에서 구원해 주는 보살이다. 사찰에서 또 눈여겨 볼 것으로 범종과 법고, 운판, 묵어 등이 있다. 이들은 조석예불을 통해 법고-운판-묵어-범종을 순서로 쳐 소리가 온 세상에 널리 퍼지도록 한다. 그 소리가 가슴을 뭉클하게 감동을 주는데 범종은 무간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사용되는데 지옥이 땅 밑에 있다하여 범종으로 알린다. 범종이 설치된 아래에 홈이 파여져 있는 것은 지옥으로 소리가 전달되기 위함이다. 법고는 부처의 설법으로 중생의 번뇌를 모조리 격파하고자 하는 것으로 귀를 가진 모든 축생들이 제도를 받기 위함이며, 운판은 청동판으로 그 소리가 맑은데 공중에 떠다니는 고혼과 조류를 제도하기 위함이며, 묵어는 물고기 모양의 나무로 밤에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밤에도 자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이며,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과 수중 고혼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소백산 기슭에 자리 잡은 구인사는 그 규모에 있어 과연 총본산답다고 느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5층 높이에 무려 1만 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대법당이 900평 산자락에 땅을 고르고 위엄을 나타내고, 목조 강당인 광명당, 충무원, 판도암, 설선당, 향적당 등 하나같이 큰 규모를 자랑한다. 처음 이곳에 터 잡으신 상월원각 스님은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億兆蒼生 救濟衆生 救仁寺)라 이름을 명명한다. 구인사는 숙종2년 대각국사 의천이 국청사에서 정식으로 개립 한 후 6.25때 소실되자 1951년 다시 건물을 불사하고 1966년 8월 30일 천태종을 재건한다.
 
구인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연경법찬을 저술한 곳이며, 들어서는 입구에는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청동 사천왕상이 2층 좌우로 자리 잡고 있으며, 지리적 형상이 흡사 연꽃잎을 닮았다하여 연화지라 불린다고 한다. 구인사를 찾아가면 대법당을 쉽게 찾지 못해 끝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더러 있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법당이 5층 건물로 제일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탓에 쉽게 법당이 보이질 않는다.
구인사 5층 큰 법당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하나뿐이다. 1945년 상월 대조사가 5층 법당자리에 초가삼간을 지은 이후 훗날 이곳에 5층 법당이 세워질 것을 예언하였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워낙 경사가 심해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지만 대조사는 훗날 5층 불당을 통해 불심을 전하려는 노력은 열반에 드신지 6년 후 남대충스님에 의해 세워진다. 1980년에 완성된 대법당은 천태종 총본산의 모습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진신사리탑은 불기2527년(1983) 6월에 제 2대 종정이셨던 대충 대종사님이 인도 성지 참배 당시에 기원정사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1층 탑신 정면에 문을 조각하고 이 돌문을 열어보면 부처님의 사리를 볼 수 있습니다. 2층은 천태종의 소의경전인 법화경의 4대 보살을 조성해 모셔두고 3층은 천태종의 상징인 종기를 조각해 둔 석탑입니다
 
 
사찰을 구경할 때는 보통 건물에 붙는 명칭의 끝자리가 전(殿), 당(堂), 실(室)로 이루어 져 있다. 이는 종파와 관계없이 전(殿)은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신 곳이며, 당(堂)은 스님이나 불자들이 수행하는 장소의 건물이며, 실(室)은 큰스님이 계시는 건물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