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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잊혀진 4국의 키워드 김수로왕릉

허영꺼멍 2011. 6. 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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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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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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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제4국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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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로 불리는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42~199)의 릉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도굴되었으며, 당시

매장을 순장방식으로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다. 세종실록에는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을 중심

으로 사방 30보, 세종 28년(1446)에는 규모가 더 확장된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세워 훼손을 막았던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으며, 오늘날 모습은 선조 13년(1580) 후손이던 허수가 정비작업하면서 비석

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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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각은 가락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된 비로 고종 22년(1885)에 3칸으로 창건되어 1926년과

1954년 두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고 1988년 현재의 위치로 이견되면서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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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석은 가락국 중엽에 조각된 것으로 호계사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10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윗 부분은 일제강점기에 분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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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의 역사시작은 가락국 북쪽에 자리 잡은 작은 언덕 위 구지봉에서 출발한다.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떨어지고 불과 반나절 만에 사람으로 변해 6가야국의 왕이 되었다 하는데 그 중

에 가장 키가 크고 먼저 사람으로 변해 “수로”라 불렀다 한다. 수로는 왕이 된 후 인도 아유타국

의 공주를 왕으로 받아들였으며, 158세를 살다 199년 죽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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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고기문양을 두고 아유타국과의 인연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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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선전은 가락국 시조 대왕, 시조 왕후 허씨의 위패를 봉안하여 향화를 받드는 전각, 가락국

2대 도왕 원년(199)에 창건되어 1698년에 새로이 제각을 건립하였고, 1792년 4칸으로 중건,

1878년에 숭신전으로 선액 되면서 3컨욿 건립되었다. 1926년과 1954년 두번에 걸쳐 중수되

고 1973년에 보수되었으며, 1987년 능 전면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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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각은 춘추대제전에 예조에서 보내온 향과 축을 봉안하는 곳으로 정조 16년(1792)에 2층

3칸 건물로 창건되었으나 1824년에 1칸으로 건립되어 1932년 한번의 중수가 이루어졌고 19

87년 현 위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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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안전은 1989년 신축된 건물로 수로왕 이후 2대 도왕을 비롯 9대 까지의 왕과 왕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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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이야기는 설화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많은 유적이 존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가 수탈한 수 많은 가야유물을 통해 그들은 가야를 자신의 영역에 두고

싶었을 것이고, 수많은 유물을 자신의 나라것으로 둔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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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서 아니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이 일제 강점기 당시 매겨진 번호라면 우리

는 어찌 해석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고고학적 내용이 일제 강점기 그 당시의 내용을 기초

로 지금까지 학생들이 배우고 이어져 오는 판국에 제4국 가야는 앞으로도 존재 할 수가

있을지 의문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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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의 역사를 우리나라 학자에 의해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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