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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찾아 "양동마을 & 독락당 "

허영꺼멍 2013. 7. 2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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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한국 씨족 마을을 대표하는

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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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 출발점은 관가정을 시작으로 향단-무첨당-대성헌을 돌아 본후 산길을 너머 반대편

서백당을 돌아 나오면서 고택을 여행하면 된다. 입장료는 1인당 4천원을 징수하며, 주차료는

따로받지 않는다. 문제는 입장료를 징수하지만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라 옛집을 만끽하기에

는 부족한 감이 있는데 집집마다 승용차가 있는가하면 골목에서 승용차를 쉽게 만난다는 점

이다. 사는 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 없지만 입장료 4천원을 받는다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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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은 봄이면 매화, 목련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진다. 가을이면 이색적인 분위

기를 연출하고 겨울에는 그야말로 옛 고향을 찾은듯 정막감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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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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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당시 남포현감을 지낸 손종로(1598~1636)와 노비였던 억부의 충절을 기리는 곳으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노비 억부와 함께 경기도 이천 쌍령전투에 참전하였지만 전사하였

고 시체를 찾지못해 옷가지로 장사를 지내자 정조가 명을 내려 전각을 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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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

보물 제4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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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정면에 자리한 건물로 보물 제412호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이언적(1491∼1553)선생이 경상감사 재직 당시 만든 건물로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한 몸체로 2개의

마당을 두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행랑채는 정면 9칸, 측면 1칸이며, 행랑채 뒤편 본채에는

행랑채와 같은 집을 앞 뒤 2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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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

보물 제4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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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은 보물 제442호로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청백리로 알려진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이다. "농사짓는 광경을 내려다보는 정자"라는 의미가 말해주듯 관가정 주변은 탁틔인 공

간으로 농사짓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제일 높은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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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에서 남쪽으로 있는 공간을 손님을 맞는 사랑채로 꾸미고 나머지는 안채로 이룬 집으로 안

채 동북쪽에 사당을 두고 담 양쪽 옆면과 뒷면으로 막아 집 앞을 넓게 활용하면서 안채와 사랑

채가 한 지붕을 하고 대문과 사랑채가 연결된 독특한 구조와 관가정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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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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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을 위해 공직을 마다한 농재 이언괄 공을 추모해 건립한 건물로 들어서면 정자 함허루

가 시원스레 향단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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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보물 제311호

무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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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 재직때 지은 조선 중기 종가별당으로 손님접대를 하거나 독서

를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며. 지금은 이언적의 후손인 장손 여강이씨 이지락선생과 아들이 지키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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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인 성주봉을 대하고 있다는

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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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8년(1732)에 물와 이재직의 셋째 아들 이능단이 분가할 때 지은 집으로 막돌을 이용하여

만든 기단 위 주초돌을 올리고 기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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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이씨 집안의 서당

경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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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서당 이선당은 삼문을 통해 들어서면 오른쪽에 양제, 정면에 이선당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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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손씨 대종택

서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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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손씨 종택 "서백당"은 오늘날까지 경주 손씨 대종택이자 거주하는 공간으로 손소가 풍덕

류씨 류복하의 사위가 되어 양동으로 이주한 세조 5년(1459) 서백당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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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당을 지키고 있는 600년된 향나무로 손소 선생이 집을 짓고 기념으로 직접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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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공 손소 초상 / 보물 제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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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공 손소(1433~1484) 초상화로 가로 105cm, 세로 160cm의 비단 위에 그렸다. 적개공신 때의

모습을 10년 후 성종 7년(1476)에 그린 작품으로 조선초기 공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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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상류층이 사용하던 안경으로 안경알은 경주에서 나오는 "남

석" 이라는 수정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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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개공신논상록권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호로 공신록이다. 조선 세조 13년(1467) 이시애

난을 평정한 문신 손소를 비롯한 45명에게 내린 적개공신상록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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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요민속자료 제189호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초기 마을을 이루면서

대대로 살아온 월성손씨, 여강이씨의 동족 집단마을이다. 손씨가 처음 마을을 이루면서 외가였던

이씨가 들어온 곳으로 일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아산장씨가 마을을 이루면서 양좌촌으로 불렀다고

하지만 근거가 뚜렷한 인물로는 세조 5년(1459) 문과에 급제한 손소가 장인 유복하의 상속자로 마

을에 들어와 월성 손씨 종가를 지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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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가을 풍경(2012년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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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민속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가옥으로 50평 남짓 16세기 만든 무첨당(보물 제311호), 관가정

(보물 제442호), 향단(보물 제412호) 및 다수의 중요민속자료 가옥이 있다. 양좌동초안 기록을 보

면 1819년 까지 91호가 거주하였지만 1073년 165호(손씨 28호, 이씨 88호)로 늘었다가 1970년 151

호로 줄어들고 1979년에는 손씨 16호, 이씨 80호가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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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옥산서원이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

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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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그리고 독락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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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을 떠나 옥산서원으로 이동하면, 옥산서원과 독락당이 하나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계곡을

따라 연계되어 있는 이언적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1991년 설립된 염불종 종단의 대흥사 그

리고 옥산서원을 거쳐 독락당 그리고 정혜사지까지 발길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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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54호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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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에 들어서면 우선 무변루가 눈에 들어온다. 함양 동호정 정자를 오를 때 통나무로 해 놓은

계단이 이곳 무변루에도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주인장의 넉넉함이 베

여난 두개의 계단이 양쪽으로 걸쳐있고, 무변루 창을 열어 제치면 계곡의 풍광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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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으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이 안강 고을 선비와 합세하여

독락당 아래 사당을 세우고 서악의 향현사로부터 위애를 옮겨와 모셨다. 선조가 옥산서원의 사액

과 서적을 하사하였으며, 옥산서원에서 전해지는 책이 무려 230종 2,197권으로 당시 이곳에 얼마

나 많은 유생이 머물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곳에 귀속된 전지가 600두락이 넘었다는 기록으

로 볼 때 유생의 수를 얼핏집계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옥산서원 앞으로 대지3,500평, 전답 2만600

평, 임야 35정보 등 부자가 부럽지 않은 서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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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지만 곧 복원한 후 거듭되는 많은 민란과 전쟁을 통해 많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전쟁 당시 인민군 지휘부가 옥산서원을 점령하였지만 옥산서원의 많은 유물은 큰 피

해를 입지 않았다. 유물을 지키기위해 많은 사람의 노력은 "김부식 삼국사지 원본 9책(보물 제525

호), 이언적 집필 회재선생문집(보물 제586호), 국내최고 오래된 활자본 정덕계유사마병목(보물

제524호), 해동명적 2책(보물 제526호), 기타 1천여 권의 문집 등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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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루에서 눈여겨 볼 것은 현판이 안쪽에 달려져 있다는 점, 전망이 탁 트이지 않았다는 점이 일

반적인 "루"각의 전형적인 방법과는 완전 대조적이다.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으로 편액 한편에 부

기된 글을 살펴보면 "모자람도 남은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도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닐다

가"며 기록되어 이 루각을 이용한 사람에서 깨우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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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13호

독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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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 가족이 독락당에 기거를 허락받음으로서 독락당은 사람이 살 게 되었다. 독락당은 전원

주거 공간의 형태로 담장을 쌓고 계곡의 축을 이용하여 은밀한 별당인 계정을 만들고, 회재선생이

도학을 펼친 곳으로 자연 속에 비경을 평풍으로 둘려친 그야말로 무릉도원에 자리잡고 있다.(회재

이언적(1491-1553)은 벼슬을 내 놓고 고향에 머물면서 독락당을 만들고 은둔생활을 시작하게 되

면서 답답한 가슴을 탁 틔이도록 사랑채 곳곳의 모습은 시원하게 열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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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정사라 불리는 독락당은 조선 중종 27년(1532) 측면2칸 정면4칸의 팔작형태로 측면에서 보

면 "八"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독락당은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면서 한 치의 벗어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주인의 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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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40호

정혜사지 13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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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주인이 어릴 적 자주 찾곤 하였다 전하는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은 자옥산 왼편 산

기슭에 자리하고 통일신라시대 만든 석탑으로 초층탑신 4면에 감실형구조를 갖추고 2층 이상의 탑

신부에서 얇고 낮은 석재를 사용하면서 높이 5.9m, 기단너비 2.1m로 13층을 올렸는데 이름에 비하

여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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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사지 탑은 1911년 도굴을 당한 후 1922년 일본인에 의해 정비되고, 1998년 9월 누군가 도굴을

시도하다 실패하면서 석탑의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탑을 중간부분의 몸돌이 없어지고 상륜부 탑

층이 올려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급격하게 줄어들어 일반적 탑의 비례감각을 깨뜨리고있는 아주

드문 경우이며, 옛 정혜사지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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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설화가 전해지는

 서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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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는 신라 소지왕 당시의 설화가 묻어져 있는 곳으로 왕의 생명을 구해준 연못으로 알려

져 있다. 소지왕이 궁 밖을 거둥하는데 쥐가나타나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한다. 왕

이 이 말을 따라 연못에 가까이 오니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는 글이 적힌

종이를 받쳤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화살로 쏘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승려

가 화살에 맞고 죽었다 한다. 그 후 연못을 서출지라 부르며,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

일" 이 생겨났으며,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까마귀밥을 만들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둔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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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와 관련하여 설화를 살펴보면 왕이 거동한 틈을타서 왕을 시해하려는 무리가 거문고

갑에 숨었는데 누군가 서출지에 당도한 에게 이 사실을 알려 시해하려는 음모를 사전에

 차단하지 않았나 싶지만 어디까지나 설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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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불교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로  민간신앙과 신흥불교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불교는 23대 법흥왕 때 비로소 나라에서  불교를 인정하고 그 이전에  불교가 진입하는 과

정에 있었다. 서출지 주변은 온통  베롱나무와 연꽃이 지천에 피어나며 조선 현종5년(166

4)에 임적이 만든 이요당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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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출지에 관한 논란 꺼리가 생겼다. 삼국유사 사금갑의 이야기를 빌어 서출지가 지금

의 위치가 아니라 200m 더 올라가면 양피 못이란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곳이 서출지로 추

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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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코스는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의 양동마을을 시작으로 이언적의 삶을

따라 옥산서원, 독락당을 거쳐 여행을 하였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마지막 코스로 7월 말이면 아름

다운 연꽃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서출지까지 코스를 연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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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okg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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