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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최치원 자를 따서 부르는 의성 고은사

허영꺼멍 2013. 12. 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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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저승길 염라대왕이 물어 본다는

고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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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절간으로 들어서기 전에 알아야 인물이 있다.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최치원(857~?)의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 해운으로 경주 최씨의 시조이다. 자신의 자를 따서 부르는 해운대와 사찰로는 고운사가 있다. 최치원은 12(868)에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18(874)에 빈공과 장원급제하여 벼슬을 제수 받았으며, 29살이 되던 해 고향을 그리워하다 부친의 병을 이유로 귀국하였다.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 온 후 진성여왕은 당대 최고 관등인 아찬에 오르는 등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골품제의 한계를 느낀 최치원은 40세에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하며 가야산에 들어가 신발만 남긴 채 신선이 되었다하여 유선이라 부른다. 오늘 찾아가는 여행지가 바로 고운 최치원의 자를 따서 만든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천년고찰 고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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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던 고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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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 등운산(524m) 골짜기 연꽃이 반쯤 핀 형국을 하고 있는 부용반개형상 터에 화엄종의 시조로 알려진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최치원 선생이 여지. 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우면서 자신의 호를 따 고운사로 부른 후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확장하면서 약사전의 부처와 나한전의 삼층석탑을 조성하고 948년에는 운주가 중창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로 자리 잡았을 정도였지만 현대로 접어들면서 거의 쇄락한 모습으로 작은 규모로 변하였지만 최근 사찰을 정비하고 최치원 선생이 머물던 곳으로 부각하면서 사찰전통음식과 함께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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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앞에서 잠시 걷기로 했다. 고운사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만나는 천년으로 향하는 솔숲을 지나 천왕문에 도착하면 계곡에 발 담근 독특한 건물인 가운루를 만나게 된다. 지금이야 별 활용도가 없어 창고역활을 하지만 고은사 가운루와 우화루를 만든 최치원 선생과 여지, 여사의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위해 각기 다른 두 개의 기둥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섬세함이 엿보인다.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며 황제에게 어대를 하사받은 최치원이지만 고향을 잊지 못해 돌아오게 되었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전국을 유람하던 중 찾은 절간에서 자신이 호를 따 만든 절이 고운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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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9(1018) 천우가 대웅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전각을 중창하면서 극락전에 모신 불상은 천해의 꿈속에서 본 불상을 송도 대흥산에서 찾아내어 고운사로 옮겨 극락전에 모시고 있다 전하며,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여래불상은 성종 13(1482) 안동 갈라산 낙타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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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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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어떤 용도의 절집인지 알 수 없지만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훼손상태가 심한 돌부처 1구가 모셔져 있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문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전각이란 점과 법당까지의 거리가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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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루와 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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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가 창건하고 부른 사찰이름이 고운사(高雲寺)였지만 신라말기 최치원이 이곳에 머물면서 고운사(高雲寺)를 자신의 자 고운(孤雲)을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개명하였으며, 개울 위 가운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와 구름 위 우화루를 구상하고 만들었다. 조성당시에 없는 다리가 생겨 계곡과 함께 바라보는 운치는 잃어 버렸지만 계곡 바닥을 딛고 각기 다른 돌기둥 위에 올려진 건축으로 지금의 가운루는 1668년 중수를 한 것이다. 본래 가허루(駕虛樓)였지만 공민왕이 노국공주가 죽자 전국을 여행하면서 이곳 고운사에 들러 현판에 직접 어필을 남겼는데 바로 가운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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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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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루 밑으로 흐르는 계곡이지만 지금은 메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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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시멘트로 일부 계곡을 보수공사하였지만 옛날에는 주춧돌이 계곡 위 지탱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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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루 윗쪽으로 우화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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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에서 눈여겨 볼 것은 우화루 외벽에 그려진 호랑이 벽화로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따라 호랑이의 눈과 목이 움직이며, 광무 6(1902)에 세운 연수전은 문경새재 아래 최고의 명당 터로 고종 황제의 수복강녕을 기원하는 곳이다. 고운사가 그만큼 중요한 사찰이지만 워낙 깊은 산중에 있는 터라 외부인의 발길이 거의 찾지 않는 조용한 고찰 이였지만 최근 해동제일지장도량으로 지장보살영험성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지장보살에 관한 구전으로 예부터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 물었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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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루 찻집이 지금은 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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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다는 우화루는 밖에서 보면 도교적인 의미의 우화루(羽化樓) 안에서는 불교적 의미의 꽃비가 향기로운 바람에 흩날린다는 의미의 우화루(羽化樓)가 붙어 있다. 바깥에서 신선이 되어 안에서 바깥 운치를 보면 꽃비가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데 지금은 다리가 생기고 주변이 정리되었지만 옛날에는 계곡을 따라 피어난 벚꽃이 가운루 주변에 흩날렸을 것이고 그 모습을 우화루에서 내려다보지 않았을까 싶다. 우화루 벽면에 호랑이 그림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시선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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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가운루(경북 시도유형문화재 제151)는 최치원이 승려 여지. 여사대사와 함께 세운 건물로 계곡을 막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2층 누각에 팔작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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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극락전은 만덕당과 종무소 그리고 앞으로 우화루가 가로막고 있어 안에 있는 공간이 무척 좁아 보이는 구조로 사찰 내 또 하나의 작은 사찰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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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당에 들어서면 건너 등운산을 바라 보라는 글귀가 기둥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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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당에서 종무소 건물 너머 등운산이 반달모양으로 조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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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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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연수전(의성군 문화재자료 제444)는 영조가 내린 어첩을 봉안하는 곳으로 독특한 건물구조와 사면에 그려진 벽화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전국에서 기가 쌘 장소로 알려져 나침반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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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건물이 바로 연수전이다. 일반 절간에서는 볼 수 없는 건물로 풍수 지리적으로 최고 명당에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해 영조 지시로 영조 20(1744) 조성 후 고종 39(1902) 왕실의 요청으로 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자 새롭게 만든 건물로 절간에 유교적 이념을 가진 사례로 입구에 행서체로 당대 명필가로 알려진 기당 김성근(1835~1919)이 쓴 만세문 현판과 함께 솟을대문을 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과 측면에 각 방 한 칸을 두고 사방에 12개의 기둥을 설치하고 팔작지붕을 올려놓았으며, 사방에 높은 담장을 쳐서 접근을 막고 있다. 불교에 유교가 들어오면서 왕의 권위를 의식하여 담장을 둘렀는지는 모를 일이다. 연수전 건물에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운릉도와 봉황도 그림과 무병장수를 위한 장생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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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몰락을 말해주듯 연수전은 방치되다시피 낡은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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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법당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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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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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경내로 접어들면 제일먼저 찾아가는 곳이 고운사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을 모시고 있는 약사전이다. 예부터 죽어 저승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를 다녀왔느냐며 물어 본다는 지장보살이 계신 곳이지만 건물은 그리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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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은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춘 완전한 불상으로 9세기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불상은 우견편단의 법의에 항마촉지인 손 모양을 하고 끝이 날카로운 광배에는 연꽃과 넝쿨무늬.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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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전각을 보면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 본존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큰 법당으로 1992년 완공한 후 신중단과 조사단, 영단을 두고 극락전은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 대세지 두 보살을 모시고 있다.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고운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선국사가 조성한 석불(보물 제246)를 봉안하고 응진전 영산전으로 불리는 나한전에는 16나한을 모시고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다. 나한전은 본래 대웅전 건물 이였지만 대웅보전이 건축되면서 자리를 옮겨 나한전으로 바뀌었다. 명부전은 300년 된 건물로 사후 인간을 심판하는 장소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삼성각은 1998년 새로 짓고 민간신앙인 산신. 칠성. 나반존자의 탱화를 모시고 1997년 만든 용왕당에는 용왕의 탱화를 모시고 있다. 이외 참선공간인 고금당과 큰스님이 머무는 고운대암, 스님의 공양장소인 만덕당, 방문객의 숙소인 무설전, 상주대중의 숙소인 열반당, 1999년 연수전 옆 건물을 이전하여 숙소로 사용하는 대향각, 선방으로 사용하는 백련암, 영조가 내린 어첩을 봉안하던 연수전, 계곡 위 제각기 다른 기둥을 세운 최지원이 만든 가운루와 우화루,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이 지키는 천왕문과 국내 사찰 중 가장 아름다운 일주문, 오래된 석불이 안치되어 있는 고불전, 객실인 적묵당, 소임을 보는 스님들의 숙소와 차실로 사용하는 연지암, 서산대사 진영을 모시던 곳을 현재 스님의 숙소로 사용하는 아거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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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에 현존하는 전각은 총 25동이 있으며 불교유물로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 고운사삼층석탑(경북문화재자료 제28), 고운사가운루(경북 무형문화재 제151), 고운사연수전(경북 문화재자료 제444), 오동학촉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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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삼층석탑(의성군 문화재자료 제28)2층 기단 위 3층 탑신을 올린 형태로 기단에 안상무늬와 기둥 모양을 통해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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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윗편 언덕에 올려져 있는 나한전은 본래 고운사 대웅전이라 한다. 1992년 오늘날 대웅보전을 신축하면서 옛 대웅전을 이전하여 나한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옛 사찰의 명승에 비하여 대웅전 규모가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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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는 개방형 사찰이다. 문화재 관람비를 받는 매표소가 없다. 사찰입구부터 우화루 앞까지 곧장 차량이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엄격한 규제가 없는데 그 이유는 의성군에 위치하지만 들어오는 진입로가 불편하여 사람이 찾지 않아 한동안 방치된 느낌을 받았던 곳이었다. 최근 진입로 확장과 함께 옛 일부 흔적을 걷어내고 새롭게 단장을 하면서 사찰의 위엄은 갖춰졌지만 옛 호젓한 분위기는 좀 잃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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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을 찾다보면 입구에서 멀리 주차장을 만들고 중간에는 음식점을 통과하도록 하여 여행이 다소 불편하지만 고운사는 생수 한 병 사 먹을 매점도 없다. 절간입구는 커녕 주변 마을에도 가계가 없다보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조용한 절간을 맨발로 황톳길을 따라 거닐며 산책하듯 아니온 듯 다녀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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