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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병산서원에서 부용대까지

허영꺼멍 2014. 9. 10. 20:10

 

 

 

 

 

여름 끝자락 배롱나무 담장길에서 만난

채화정 , 병산서원 그리고 하회마을 부용대

 

08월 중순~09월 초순 추천여행지

 

▲ 2010년 9월 찾아간 병산서원 배롱나무

 

안동하면 도산서원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한여름 문턱을 너머 가을로 치닫기 전 배롱나무 만개한 병산서원이 있다. 몇일전 배롱나무를 찾아 담양 명옥헌원림을 방문하고 곰곰 생각해 보니 경북 안동시 외곽에 위치한 병산서원 수령 380년 넘은 배롱나무가 떠올랐고 늣은감이 있지만 채화정을 거쳐 병산서원 그리고 하회마을 앞 부용대를 찾기로 하였다.

 

 

쓸쓸한 모습으로 채화정

 

924 지방도가 채화정과 풍산천을 가로막고 있다. 하회마을로 가기 전 풍산버스정류장 입구에는 이민적이 만든 후 형제의 우애를 나눈 채화정을 도로변에서 만날 수 있다. 조선 효종(1649~1659) 당시 진사 만포 이민적(1663~1744)이 세운 정자로 형 이민정과 함께 살며 우애를 나누던 곳으로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올린 정자를 채화정, 그리고 채화정에서 내려다 보면 공간에 연못을 조성하고 삼신산을 상징하는 방장, 봉래, 영주 인공섬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후 채화지라 불렀다 전하며, 현판 담락재는 단원 김홍도 글이라 한다.

 

▲ 2014년 09월 첫주 채화정 전경. 베롱나무 꽃잎이 많이 지고 있다.

 

 

 

보통 정자는 산자락 또는 풍광이 좋은 높은 위치에 터 잡는 경우와는 달리 채화정에서는 독특하게도 평면 구성에 정자구조라기보다 살림집 대청구조이다.

 

뒤에는 한 칸의 방을 두고 양쪽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하면서 턱없이 작은 공간이지만 최대한 활용하고자 세심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지혜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1층을 누각처럼 높게 올리고 불을 피워 온돌방을 데울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

 

앞선 겨울 여행때 보이지 않던 큰 잉어가 물살을 가르며 연못을 가른다. 물이 차가워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옛말이 되어 버린 채화지에는 가을이 성금 찾아와 있었고 채화정 뜨락 배롱나무 붉은 시선은 여름 끝자락에 찾은 길손을 위해 붉은 눈시울을 조금 남겨 두었다.

 

 

 

사적 제260호 병산서원

 

▲ 병산서원으로 향하는 2.6km 비포장도로 구간

하회마을 주차장에서 병산서원까지 약 6.4km 이며, 하회삼거리에서 병산서원까지 약 4.9km 이다, 병산길로 접어들면 약 2.6km 구간이 비포장도로이다. 옛 서원으로 찾아가는 길 초입부터 옛스러울 만큼 퍽 너털스럽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아천 산길을 따라 앞차다 달리면서 남긴 흙먼지를 따라 들어서면 병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 2010년 08월 병산서원 전경

 

▲ 2014년 09월 초 전경

 

만대루에서 바라보이는 산정상 가까이 기암괴석이 보이며, 뒷산은 화산(330m) 흐르는 물줄기는 화천인데 서원에서 바라보면 화산이 흡사 병풍을 두른 듯하여 병산서원이라 한다. 병산서원 주차장 앞으로 열려진 복례문을 지나면 긴 장축을 연상케 하는 만대루가 공간을 협소하게 할 만큼 가로막고 있지만 올라서면 전혀 다른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서원에는 류성룡과 셋째아들 류진의 위패를 봉안한 존덕사와 강의를 하던 입교당, 인쇄를 하던 장판각,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그리고 서원에서 머물던 학생이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 복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전경

▲ 병산서원 입교당에서 본 만대루

▲ 병산서원을 찾은 외국인

1987331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안동의 서남쪽 방향 낙동강 상류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안동하회마을과 인접한 조선시대 교육기관 이였던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본래 풍산유씨의 교육기관이던 풍악서당을 유성룡(1542~1607)이 선조 5(1572) 이곳으로 옮겨왔다.

 

 

1607년 류성룡이 타개하자 지방유림이 뜻을 모아 광해군 6(1614) 존덕사를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였고, 인조 9(1629) 셋째 아들 수암 류진을 같이 봉안,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으로 복례문, 만대루, 동서재, 입교당, 장판각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신문, 존덕사, 전사청을 갖추면서 정식 서원이 된 후 철종 14(1863) ‘병산(屛山)’이란 사액을 하사받았다. 그 후 홍선대원군은 전국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당시 병산서원은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 복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만대루

 

만대루(晩對樓)에서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 라는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말을 인용하였다 한다. 만대루에 오르면 과연 그러하다 할 만큼 병산 절벽 앞 흘러가는 낙동강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정자에 올라 선 느낌을 준다. 넉넉함 또한 느낄 수 있을 만큼 서원에서 가장 긴 7칸 건축을 통해 많은 사람이 만대루에 올라 비경을 감상 할 수 있도록 배례하였다.

 

▲ 만대루

 

옛 선조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 하였음을 만대루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제각기 자란 나무를 가공 없이 사용하여 삐뚤삐뚤하다. 계단도 통나무를 이용하여 전혀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덕분에 후손들은 건축미가 빼어난 병산서원 만대루를 칭송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 병산서원 현판에서 담대함을 느낄 수 있다. 병산서원의 모태는 본래 풍악서원으로 서애 류성룡 죽음 사후 제자 우복이 존덕사를 짓고 위패를 봉안하면서 철종 14(1863)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하사받았다. 1987331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안동의 서남쪽 방향 낙동강 상류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배롱나무는 사찰과 선비들이 거처하는 공간, 무덤 등에 많이 심는데 스님은 껍질을 벗어 버리고 자라는 모습을 통해 세속을 벗어 버리고자 하는 마음에, 선비는 청렴을 강조하는 의미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꽃이 무려 100일간 피고지고를 거듭한다는 것과 7월 말부터 8월초 꽃이 만개하면서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 병산서원 그리고 베롱나무

 

배롱나무는 껍질을 다 벗는 독특한 나무특성으로 인해 세속을 벗어버리길 바라는 의미로 절간이나 청렴한 선비를 상징하여 서원에도 심었는데 특히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과 셋째 류진을 배향하고 있는 곳이며, 대원군 서원철폐령에도 온전하게 보존된 47개 서원 중 한 곳이다.

 

 

6월부터 9월까지 약 100일간 분홍빛 흥건한 꽃 피우는 배롱나무(백일홍)가 서원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수령 380년을 훌쩍 넘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6그루의 배롱나무는 1614년 류성룡 셋째아들 유진 선생이 존덕사를 조성하면서 심은 나무로 2008년 경북도에서 희귀목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 병산서원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까지 약 3.9km 걷는 산책길이 나온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을 찾아 왔다 잠시 머물다 되돌아 발걸음 했을 산길은 낙동강 물자락을 따라 자연스럽게 길을 내 놓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병산서원 배롱나무가 점점 병들어 간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 선비의 정신을 대변해 주던 배롱나무가 올해는 더 많은 가지를 통해 연분홍빛 꽃을 피워주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병산서원을 떠난다.

 

 

낙동강 12경 부용대

 

 

마지막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 잠시 부용대를 올랐다. 서너번 다녀온 길이지만 풍천면사무소 앞 갈림길에서 914번 지방도를 따라 낙동강을 건너 광덕1사거리에서 왼편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다시 되돌아 오는 수고를 하였다. 그리고 오른 부용대는 여전하게 비탈진 언덕에서 낙동강을 구비보는 짜릿함이 전해진다.

 

 

 

부용대는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이용하여 건너거나 차량으로 오는 방법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약 6.3km 구간이며, 병산서원에서 8.1km 거리이므로 하회마을을 둘러 본 후 돌아 나오는 길에 들러보는 것을 권장한다.

 

하회마을 양반들이 낙동강에 작은 배를 띄워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시를 짓고 뱃놀이를 즐겼을 것이다. 하회마을 앞 우뚝솟은 절벽은 부용대로 높이가 64m 에 이르며, 길목에는 옥연정사를 비롯 화천서원을 거쳐 솔숲길이 끝나는 언덕이 바로 부용대이다.

부용대에서 오른편 산길로 내려서면 겸안정사가 낙동강변에 위치해 있다. 부용대는 태백산맥 끝부분으로 해발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 내력으로 중국고사에서 따온 이름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하며 맨 처음 북쪽에 위치한 언덕이라하여 북애로 불렸다 한다.

 

▲ 부용대로 오르는 산길

 

▲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초가을 전경

 

 

▲ 부용대에서 바라 본 하회마을 전경

 

▲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만송정

하회마을 앞 만송정은 낙동강변 퇴적층이 만든 옥토에 강 건너 부용대 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선 선조 당시 류성룡의 형인 문경공 류운용이 1만여 소나무를 인공으로 조림한 숲으로 1906100여 그루의 소나무를 다시 심었다. 음력 76일이면 만송정과 부용대를 줄로 잇고 불꽃을 낙하하는 선유줄불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몇 해 전 만하여도 옥연정사에서 겸암정사를 가는 길은 층길로 불리는 절벽 중간 가파른 길로 지금은 출입을 제한하고 화천서원 옆을 따라 정상으로 유도하는 널찍한 산길이 열려져 있다.

▲ 하회마을에서 부용대로 향하는 전기로 움직이는 나룻배

 

▲ 부용대로 향하는 나룻배

 

▲ 하회마을에서 바라 본 부용대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 앞 낙동강변(화천) 건너 절벽 위 부용대로 오르는 길목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된 유성룡이 낙향 후 만든 옥연정사, 화천서원을 지나 정상 부용대에 서면 눈 아래 하회마을 초가집과 기와집의 절묘한 조화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이동하면 류운룡이 후학 양성을 위해 만든 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 하회(河回)'는 물돌이를 두고 하는 말로 조선시대 지리서인 택리지에는 최고의 명당 터로 주거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땅으로 비유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면서

 

백일홍이 피는 시기는 다소 달라질 수 있으나 한여름부터 피어나기 시작하여 초가을 문턱이면 꽃은 떨어지고 잎이 가을을 맞이한다. 전라남도 담양군 정자의 백미로 불리는 명옥헌원림과 함께 국내 백일홍(베롱나무) 여행지로 알려진 경상북도 안동시 병산서원 여행길목에서 하회마을과 함께 부용대를 잇는 여행길이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여행코스를 벗어나 차량 대신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도보로 이동하여 뱃길로 낙동강을 건너 부용대를 거쳐 겸암정사까지 가는 여행을 권장해 본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