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을 향해
▲ 병산서원 만대루 전경
하회마을을 둘러본지 얼마 되지 않은 주말 또다시 안동 시내를 빠져 하회마을. 병산서원 이정표를 따라 이동하였다. 시간이 촉박하여 하회마을만 겨우 돌아보고 미처 병산서원을 못간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 아직 병산서원에 백일홍이 피지도 않았는데 왜 가냐고 묻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사람이 붐비는 계절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고가를 여행하는 것이 좋다. 특히 병산서원에서 혼자서 독차지하고 만대루가 내어주는 넉넉한 풍경을 담고픈 것이다. 아무런 주변의 간섭이 없는 공허함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길을 달린다.
안동시내 길목에서 만난 채화정
▲ 채화정 입구. 차량 서너대 주차를 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협소하다.
▲ 정자로 향하는 물길
▲ 연못과 정자를 통해 옛 선조들의 운치를 엿볼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로 향하다 보면 풍산읍 초입에 자리한 채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로 앞에 큰 연못을 두고 있다. 물이 차가워 고기가 살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러고 보니 고기는 살지 않아 보인다. 보통 정자는 산자락 또는 풍광이 좋은 높은 위치에 터 잡는 경우와는 달리 채화정에서는 독특하게도 평면 구성에 정자구조라기보다 살림집 대청구조이다. 뒤에는 한 칸의 방을 두고 양쪽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하면서 턱없이 작은 공간이지만 최대한 활용하고자 세심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지혜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 화려하지 않지만 위엄을 갇춘 정자
▲ 뒷편에서 바라본 모습
▲ 독특한 모습을 한 정자 방문
▲ 채화정 현판
▲ 채화정 문양
▲ 채화정은 높게 누각형식으로 들어 올려 그 아래서 방을 데우는 아궁이를 만들어 두었다.
채화정의 겨울은 어떠하였을까? 1층을 누각처럼 높게 올렸다. 아래에 불을 피워 온돌방을 데울 수 있도록 구들을 놓았기 때문이다. 정자는 조선 효종 당시 만포 이민적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채화정이란 형제간 화목과 우애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민적은 형 옥봉 이민정 선생과 우애를 나누며 살았다 한다.
채화정을 떠나 하회마을 갈림길에서 곧장 병산서원으로 향한다.
병산서원
▲ 병산서원을 거쳐 하회마을로 유입되는 낙동강
▲ 낙동강 삼각지류
▲ 서원으로 향하는 비포장 도로
시대가 아무리 첨단화되고 도로 확장공사를 하여 비포장도로가 없다 말 하지만 하회마을길과 달리 병산서원으로 가는 길은 퍽 너털스럽다. 아직도 비포장 상태로 위태위태한 산길을 따라 2.6km 정도 달려야 병산서원이 나온다. 비포장 길은 낙동강을 다라 절벽을 만들고 그 위로 겨우 길을 열어 놓았는데 자칫 방심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이 이어진다.
서원으로 들어서려면 우선 정문 역할을 하는 복례문을 들어선 후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재가 자리한다. 동재 뒤편 고직사는 서원 관리인 거처이며, 입고당 서쪽 뒤편 장판각은 목판 유물을 보관하였다. 입고당 동쪽 뒤편으로 내삼문과 존덕사 사당이 있지만 출입을 금지하며, 내삼문 동쪽으로 전사청을 두었다.
▲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배롱나무 붉게 수놓는 계절에 가장 많은 여행객이 이웃 하회마을과 함께 즐겨 찾는다. 무려 380년 이상 된 고목 배롱나무가 존덕사 입구인 내삼문 앞 양쪽에 아직도 청춘처럼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 미국 제41대 George H. W. Bush 대통령과 부인 Barbara Bush 여사가 2005년 11월 13일 방문하여 심은 기념식수이다.
▲ 복례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 계단 위 만대루가 자리하고 있다.
1987년 3월31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안동의 서남쪽 방향 낙동강 상류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안동하회마을과 인접한 조선시대 교육기관 이였던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본래 풍산유씨의 교육기관이던 풍악서당을 유성룡(1542~1607)이 선조 5년(1572) 이곳으로 옮겨왔다.
▲ 복례문 왼편에 자리한 연못. 만대루에서 내려다 보며 즐겼을 듯 싶다.
▲ 만대루 현판
▲ 병산서원 현판이 내걸린 입고당
1607년 류성룡이 타개하자 지방유림이 뜻을 모아 광해군 6년(1614) 존덕사를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였고, 인조 9년(1629) 셋째 아들 수암 류진을 같이 봉안,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으로 복례문, 만대루, 동서재, 입교당, 장판각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신문, 존덕사, 전사청을 갖추면서 정식 서원이 된 후 철종 14년(1863) ‘병산(屛山)’이란 사액을 하사받았다. 그 후 홍선대원군은 전국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당시 병산서원은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 원목나무를 이용하여 통으로 만든 나무계단
▲ 만대루 전경
▲ 만대루로 오르는 계단이 두개나 있다.
▲ 입고당 현판
▲ 만대루 전경
만대루(晩對樓)에서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 라는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말을 인용하였다 한다. 만대루에 오르면 과연 그러하다 할 만큼 병산 절벽 앞 흘러가는 낙동강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정자에 올라 선 느낌을 준다. 넉넉함 또한 느낄 수 있을 만큼 서원에서 가장 긴 7칸 건축을 통해 많은 사람이 만대루에 올라 비경을 감상 할 수 있도록 배례하였다. 옛 선조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 하였음을 만대루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제각기 자란 나무를 가공 없이 사용하여 삐뚤삐뚤하다. 계단도 통나무를 이용하여 전혀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덕분에 후손들은 건축미가 빼어난 병산서원 만대루를 칭송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 입고당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있는 정료대
▲ 입고당 쪽마루가 독특하다.
▲ 38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버티고 있는 배롱나무와 뒷편 장판각
배롱나무는 사찰과 선비들이 거처하는 공간, 무덤 등에 많이 심는데 스님은 껍질을 벗어 버리고 자라는 모습을 통해 세속을 벗어 버리고자 하는 마음에, 선비는 청렴을 강조하는 의미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꽃이 무려 100일간 피고지고를 거듭한다는 것과 7월 말부터 8월초 꽃이 만개하면서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 내삼문 옆 진사청으로 들어가는 문
6월부터 9월까지 약 100일간 분홍빛 흥건한 꽃 피우는 배롱나무(백일홍)가 서원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수령 380년을 훌쩍 넘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6그루의 배롱나무는 1614년 류성룡 셋째아들 유진 선생이 존덕사를 조성하면서 심은 나무로 2008년 경북도에서 희귀목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 내삼문으로 들어서면 관세대와 정료대 그리고 존덕사가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 내삼문 옆 배롱나무
▲ 내삼문에서 본 존덕사
▲ 내삼문에서 내려다 본 입교당과 동재 그리고 담장 너머 고직사가 보인다.
▲ 진사청
▲ 입교당 측면 전경
▲ 입교당 통풍구 기와 문양
▲ 동재
▲ 중심건물인 입교당과 동재 및 서재
▲ 뒷간
▲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 서재
▲ 동재
▲ 만대루 기둥
▲ 바깥에서 본 담장 안쪽 만대루
▲ 병산서원 뒷편 화산봉 가는 길목에서 만난 건물
▲ 병산서원 측면
▲ 병산서원 뒷편 담장 너머 화산봉 가는 길 옆
▲ 화산봉 가는 길에서 본 전경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까지 약 3.9km 걷는 산책길이 나온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을 찾아 왔다 잠시 머물다 되돌아 발걸음 했을 산길은 낙동강 물자락을 따라 자연스럽게 길을 내 놓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병산서원 배롱나무가 점점 병들어 간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 선비의 정신을 대변해 주던 배롱나무가 올해는 더 많은 가지를 통해 연분홍빛 꽃을 피워주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병산서원을 떠난다.
즐거운 여행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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