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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옥산서원이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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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그리고 독락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양동마을을 떠나 옥산서원으로 이동하면 옥산서원과 독락당이 하나의 물줄기가 흘러가
는 계곡을 따라 연계되어 있는 이언적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1991년 설립된 염불
종 종단의 대흥사 그리고 옥산서원을 거쳐 독락당 그리고 정혜사지까지 발길을 옮겨 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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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 옥산서원 - 독락당 - 정혜사지13층석탑 - 나원리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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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흥사는 여느 사찰과는 다른 최근 생겨난 종파로 사찰 내 일반인 출입은 자유로우나
몇가지 사찰 내 준수사항이 있는 곳으로 문화유산과는 거리가 멀다. 옥산서원 가는 길목의
왼편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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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54호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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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에 들어서면 우선 무변루가 눈에 들어온다. 함양 동호정 정자를 오를 때 통나무로 해 놓은 계단이 이곳 무변루에도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주인장의 넉넉함이 베여난 두 개의 계단이 양쪽으로 걸쳐있고, 무변루 창을 열어 제치면 계곡의 풍광이 들어온다.
. .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으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이 안강 고을 선비와 합세하여 독락당 아래 사당을 세우고 서악의 향현사로부터 위애를 옮겨와 모셨다. 선조가 옥산서원의 사액과 서적을 하사하였으며, 옥산서원에서 전해지는 책이 무려 230종 2,197권으로 당시 이곳에 얼마나 많은 유생이 머물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곳에 귀속된 전지가 600두락이 넘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유생의 수를 얼핏 집계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옥산서원 앞으로 대지 3,500평, 전답 2만600평, 임야 35정보 등 부자가 부럽지 않은 서원이다.
. . 옥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지만 곧 복원한 후 거듭되는 많은 민란과 전쟁을 통해 많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전쟁 당시 인민군 지휘부가 옥산서원을 점령하였지만 옥산서원의 많은 유물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유물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의 노력은 "김부식 삼국사지 원본 9책(보물 제525호), 이언적 집필 회재선생문집(보물 제586호), 국내최고 오래된 활자본 정덕계유사마병목(보물 제524호), 해동명적 2책(보물 제526호), 기타 1천여 권의 문집 등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냈다.
. . 무변루에서 눈여겨 볼 것은 현판이 안쪽에 달려져 있다는 점, 전망이 탁 트이지 않았다는 점이 일반적인 "루"각의 전형적인 방법과는 완전 대조적이다.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으로 편액 한편에 부기된 글을 살펴보면 "모자람도 남은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도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닐도가"며 기록되어 이 루각을 이용한 사람에서 깨우침을 주고 있다.
. . 서원 내에는 동제, 서재, 강당, 누대(무변루)등 제각기 다른 건축풍으로 자리 잡고 어느 것 하나 돌출되거나 빠짐이 없는 소박한 배치와 무변루와 연락문 사이를 관통하는 물줄기는 소쇄원 유산곡수처럼 담장 아래를 내 놓고 물길이 흐르도록 하고 있는데 서원에 공부하는 유생들의 마음을 씻어 내리기 위해 만든 명당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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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그 수령을 알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옥산서원의 입구로 차량이 진입 가능하나 마을에서 주차를 하고 걸어서 들어가면서
옛 정취를 느껴보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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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쪽문이 담벼락 사이에 비밀문처럼 열려져 있다. 옥산서원으로 들어서는 길은 여러곳에
있다. 특히 계곡쪽에서는 작은 쪽문이 열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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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은 계곡물을 서원 안으로 끌여와 물길을 흘러 마을로 내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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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6-1호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는 옥산서원 내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문원공 회재 이언적(1491~1553)은 조선 중종~명종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사람과 관료로 동방오현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주자의 주리론에 근본을 두면서 당시 성리학의 거두였던 조한보와의 무극태극논쟁을 통하여 이선기후설과 이기불상잡설을 강조하였다. 이는 조선조 성리학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논쟁으로 평가되었으며, 그의 이우위설은 이후 퇴계 이황에 의해 계승 . 발전되어 영남학파 성리학의 선구가 되었다.
이 신도비는 1577년 대학자 회재 이언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학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호남의 거유였던 고봉 기대승이 짓고, 아계 이산해가 썼다. 한편 이 신도비는 건립 당시에 옥산서원 앞 계류옆에 있었으나, 훼손을 막기 위하여 서원 안으로 옮겨졌다. 비의 전체 높이는 320cm 이며, 비신의 높이는 204c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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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에서 공부하다 지치면 옥산천으로 나와 열기를 식히던 곳이 옥산서원 앞에 있는
옥산계곡이다. 지방하천 2급수로 옥산천은 물이 맑고 암반과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목숲
이 그늘을 만들어 작은 무릉도원의 세상을 쳘쳐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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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건너기 위해 하나의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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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빠져나가면
다시 길이 열리고
그 길은
작은 마을을 거쳐
이언적이 머물던
독락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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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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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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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 가족이 독락당에 기거를 허락받음으로서 독락당은 사람이 살 게 되었다. 독락당은 전원주거 공간의 형태로 담장을 쌓고 계곡의 축을 이용하여 은밀한 별당인 계정을 만들고, 회재선생이 도학을 펼친 곳으로 자연 속에 비경을 평풍으로 둘려친 그야말로 무릉도원에 자리 잡고 있다.(회재 이언적(1491-1553)은 벼슬을 내 놓고 고향에 머물면서 독락당을 만들고 은둔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답답한 가슴을 탁 틔이도록 사랑채 곳곳의 모습은 시원하게 열려져 있다.)
옥산정사라 불리는 독락당은 조선 중종 27년(1532) 측면2칸 정면4칸의 팔작형태로 측면에서 보면 "八"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독락당은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면서 한 치의 벗어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주인의 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독락당에서 눈여겨 볼 곳으로 계곡을 향하여 늘어선 담장이다. 담장은 계곡 따라 자연석축을 쌓고 토담으로 기왓장을 삽입하였는데 중간 중간 대나무창살을 설치하여 구멍을 뚫어 놓았다. 담장이라 하면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함이지만 독락당 담장은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 두었기 때문이다. 안쪽 방문을 열어 제치면 담장만 보일 것을 염려하여 아예 구멍을 뚫고 넉넉하게 대나무살로 꽃아 계곡과 마주하고 있다.
독락당은 사랑채와 회재선생이 머물던 남자전용 공간으로 계정이 있다. 계정의 출입은 여자에게는 허용되지 않고 남자라 하여도 친밀한 교우가 아니면 출입을 통제 받을 만큼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독락당 여행은 건 물 내에서도 중요하지만 건물 외곽으로 나와 계곡에서 올려보는 풍경도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다. 담장이 가로막고 있지만 열려있는 담장은 무용지물에 가깝지만 경계는 뚜렷한 독락당 담장은 담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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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으로 가는 길목에는 여름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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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에서 작은 마을을 거쳐나오면 독락당 앞 주차장이 나온다. 화장실과 주차장을
잘 정비하였지만 아직도 독락당 주변건물은 보수중으로 어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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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12호 경주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세웠으며, 일명 옥산정사라고도 한다. 낮은 단 위에 세워진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이 건물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덞 팔자모양의 팔작지붕이다. 대청은 3칸 2칸이고 나머지는 칸을 막아 1칸 2칸 온돌방으로 하였다.
건물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이 건물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서 대청에서 살찰을 통해 앞 계곡의 냇물을 바라보게 하였다. 이는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며, 뒤쪽의 계정 또한 자연에 융화시키고자 한 의도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경청재는 선조34년(1601) 회재 이언적의 손자 준과 순 두 형제가 옥산벌업을 봉수하기 위해 화의문을 작성하면서 세운 집이다.
당시 화의문악설은 "계정과 독락당은 우리 선조고 문원공 회재선생의 별서이고 이외 유택에는 우리 부모(휘:전인, 호:잠계)의 혈성이 가득하다. 당우와 담장 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 형제가 약간의 토지를 출현하였다. 후손들 가운데 혹 궁벽하여 토지에 대해 다투는 일이 있으면 불효로써 논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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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으로 빠져드는 담벼락길에는 넉넉한 인심이 묻어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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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로 창을 낸 모습이 자연과 하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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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사람들이 몰려 더위를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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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숲길이 끝나면 곧장 정혜사지로 향한다. 절집은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절탑으로 국내에서 보기드문 제작방식으로 조성된 특별한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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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사지 13층 석탑
국보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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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주인이 어릴 적 자주 찾곤 하였다 전하는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은 자옥산 왼편 산기슭에 자리하고 통일신라시대 만든 석탑으로 초층탑신 4면에 감실형 구조를 갖추고 2층 이상의 탑신부에서 얇고 낮은 석재를 사용하면서 높이 5.9m, 기단 너비 2.1m로 13층을 올렸는데 이름에 비하여 낮은 편이다.
정혜사지 탑은 1911년 도굴을 당한 후 1922년 일본인에 의해 정비되고, 1998년 9월 누군가 도굴을 시도하다 실패하면서 석탑의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탑을 중간부분의 몸돌이 없어지고 상륜부 탑층이 올려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급격하게 줄어들어 일반적 탑의 비례감각을 깨뜨리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이며, 옛 정혜사지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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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에서 독락당 그리고 정혜사지 석탑까지 둘레길 여행은 2급하천 옥산천을 따라 형성된
숲 길을 따라 거닐어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으며, 접이식 돗자리라도 들고 떠나면 숲속에서
곤하게 한숨 자도 좋을 만큼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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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여행을 마치고 경주로 들어서는 길목에 갑작스레 생각난 또 한의 석탑으로 경주시
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나원리 오층석탑을 찾아가면서 이번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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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리오층석탑
국보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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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9호 월성나원리석탑은 순백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듯 석탑 1기가 우뚝 서 있다. 다른 탑에 비하여 전혀 파손되거나 훼손된 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석탑 1기가 사철 터에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석탑은 멀리서 보면 하얀 대리석으로 오인할 정도로 말끔하게 보이는데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한다. 1층 몸체에 돌 넷으로 짜 맞추고 1,2층 지붕돌은 처마 받침돌과 지붕 윗돌이 별개이다. 2층, 3층 몸돌은 각기 하나의 돌로 지붕돌 하나를 올려두었는데 1996년 해체복원 당시 지붕돌 3층 몸돌에서 사리함에서 금동불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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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리 석탑을 보고 나오는 길에서 만난 나원역 선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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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만난 풍경.. " 어 저게 뭘까...작은 새 같은데.." 그런데 한두마리가 아니네..
이미 몇마리는 날아서 숲으로 달려갔고.. 오른편에서는 한마리씩 뛰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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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마리 뛰어 왔나 싶은데..왼편에서 불쑥 나타난 어미새,,, " 어라 꽁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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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를 따라 병아리처럼 종종 걸음으로 숲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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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여행은 이로서 끝!
부산으로 들어와 장산에서 금정산을 바라보니 노을이 제법 만만치 않아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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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행을 하면서 세계문화유산 관리를 탓하기 앞서 여행객에게 묻고 싶다. 옥산서원과
독락당 앞에서 고기굽는 숯불까지 동원해서 고기 굽는 냄새 진동시키며 노는 것까지는 그
렇다다 하여도.... 도데체 쓰레기는 뭔지.. 옥산서원 바로 앞 쓰레기는 아예 가정에서 버릴
고 가져온것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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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러지 맙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며 떠벌리지말고
제발 좀 놀이문화를 바꾸어 봅시다.
그리고
계곡에서 여친과 함께 커플티 입고 오신분...
찐한 키스를 하느라..바쁘겠지만
주변에 아이들 물놀이 하는곳..
아이들이 빤이 쳐다보는데도 불구하고
장시간 껴안고 난리부르스 치니
행복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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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여행지에서 지킬것은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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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옥산서원 관리측에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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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많이 찾아왔어요.. 그 쓰레기로 얼굴을 못 들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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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치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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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둘러볼 여행지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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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가을 전경 http://blog.daum.net/okgolf/546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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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지구 http://blog.daum.net/okgolf/5464334
경주수목원 http://blog.daum.net/okgolf/5464329
경주 불국사 http://blog.daum.net/okgolf/5463738
경주 안압지 http://blog.daum.net/okgolf/5463736
경주 남산 삼릉코스 http://blog.daum.net/okgolf/546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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