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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병풍암 석불사 겹벚꽃피다 | 여행일자 : 2016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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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풍암 석불사 입구 전경 등산로는 왼편, 석불사 진입은 오른편 문으로 들어서면 된다
사월에 찾는 절집은 참으로 조용하다. 헛기침이라 하려들면 금방 꽃비가 내려 서둘러 연초록 꽃이 피어나 버릴까 더 조심스러운데 바로 일본 사쿠라(さくら) 때문이다. 연분홍색 겹벚꽃이 짧은 공간을 화려하게 수놓고 그곳에 새벽안개가 찾아오면 잠시 환상의 길로 바뀌는 곳인데 그 길 끝자락에 부산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독특한 절집이 하나 있으니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말사인 금정산 평풍암(屛風岩) 또는 석불사(石佛寺)로 불리는 곳이다. ▲ 석불사 주차장은 가파르고 굽은 오르막길이 위험하여 대부분 입구에 주차하고 걸어서 이동한다. 입구 주차장 : 부산 북구 만덕동 산 77-5 부산 만덕 제1터널을 따라 오르다 산길로 동래 넘어가는 길로 오르면 석불사 이정표가 길에 간간이 눈에 띈다. 금정산 대륙봉과 상개봉 사이 돌출된 능선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기암괴석이 수직 절벽을 이루는데 이를 병풍처럼 바위가 펼쳐져 있다하여 평풍암(屛風岩)이라 부르며, 절을 석불사(石佛寺)라 부른다. 승용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 주차장에 도착하면 오래된 겹벚꽃과 왕벚꽃을 만난다. 색상이 고운 겹벚꽃이 산중에서 그려내는 풍경이 운치가 있으며, 찾는 이들이 없어 한적하게 다녀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여 매년 4월 중순이 되어 겹벚꽃이 필적이면 석불사를 찾아 오른다. ▲ 석불사 옛 철대신문 열림을 방지하던 석조물 대다수의 절집은 잠금 장치를 한 대문이 없다. 그런데 석불사 옛 출입구는 고성으로 들어가는 성문처럼 돌을 쌓고 11개의 돌을 따로 다듬어 아치형을 만들어 놓았다. 회색 철대문 아래 첫 계단에는 원숭이로 추정되는 얼굴을 돌출조각 해 놓았다. 아치성문에는 석불사(石佛寺)와 평풍암(屛風岩)을 새겨 놓았다. 현재 이 문은 닫혀 있으며, 아치형 문은 입구 큰문을 지나 범종루 아래 또 하나의 석문을 통과하여 대웅전 오른편으로 올라오는 길을 사용하였다. ▲ 석불사에는 오래된 범종각과 새로 만든 범종각이 나란히 있다. 문을 열 수 없어 더 이상의 확인은 할 수 없었지만 이 길은 대웅전까지 이어진다.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종루 아래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또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짧은 터널로 이어진다, 그리고 계단으로 오르면 그곳이 대웅전 옆 계단이다. 석불사에는 일주문이나 천왕문(금강문. 인왕문) 극락문(해탈문. 불이문)이 없다. 출입문을 닫으면 절집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차단되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절 문 옆에도 아무런 조각이 없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사찰은 총문, 산문, 금당으로 불리는 문이 절집 앞에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출입문 역할로 바로 석불사 역시 출입문 기능이 전부로 보인다. 주차장에서 겹벚꽃을 만나다. ▲ 주차장에 핀 겹벚꽃, 색상이 다양하며 왕벚꽃이 함께 피어난다. ▲ 겹벚꽃 붉은색 ▲ 겹벚꽃 핑크색 + 흰색 ▲ 함께 피어나는 왕벚꽃 주차장에서 잠시 겹벚꽃 삼매경에 빠져본다. 비록 군락을 이룬곳은 아니지만 호젓한 산사에 핀 겹벚꽃은 정겹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찍는 사이 금정산을 오르거나 사찰로 향하는 일행이 수다스럽게 카메라 꺼내들고 다들 예쁘다며 담아간다. 먼 길을 온 만큼 사찰로 들어서 본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 모습으로 반겨준다. 병풍암 석불사 ▲ 석불사 경내로 들어서면 석불군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없다. 한때 싸이의 말춤 모방으로 웃지못할 이야기가 있었던 석탑과 대웅전 그 옆 석등과 칠성각
일제강점기 당시인 주용선 화상이 1926년(일부 1930년) 석불사를 조성할 무렵 동래는 온천장까지 전차가 다녔다. 석불사로 오르는 길목은 동래기생집을 찾던 사람들이 모여들던 그 시절 조용선 (일부는 조일현 스님이라 한다) 스님이 유명한 조각공을 불러 모아 은밀한 절집 불사를 시작했다. 불사 당시 조각공으로 신상균, 권장학, 원덕문이 참여하여 작품을 남겼으며,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내려 온 일본에서 조각기술을 배운 석조각 장인 김석담, 박판암이 참여하였다. 조각은 1940년부터 1960년까지 개조 및 새로운 불상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미륵존불(신상균/ 1950), 11면 관음보살(1940년 신상균 작품을 1959년 권정학 개조), 동방지국천왕(1960) 등 시대를 계속 이어간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창건 후 1950년 11면의 관음보살을 개조하여 완성하며 총29채의 불상이 양쪽벽면을 따라 모셔져 있다. 그중 신상균에 의해 미륵존불, 16나한, 석가여래가 만들어 졌고 권장학은 십일면관음보살, 북방천왕을 제작하였으며, 원덕문은 서방, 남방천왕, 비로자나불을 완성했다. ▲ 대웅전 위에 천불전이 있다. 석불사 중심법당 대웅전 앞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선 대웅전이 있는 건물은 2층 구조를 하고 있다. 전부 화강암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다듬어 절집을 표현하고 있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문은 나무문과 그 위에 다시 철문을 닫는 이중문을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유행하던 철구조로 만든 문을 바라보니 너무 돌로 만든 절집도 차가운데 철문까지 너무 차갑다. 1층은 대웅전으로, 2층은 천불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 할 수 없는 파격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대웅전 위에 천불전이라는 것은 한국불교 정서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칠성각이 독립구조로 있다. 대웅전과 칠성각 사이에 길을 열고 뒤편 석불로 가는 길을 터놓았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으로 상징되는 칠원성군을 모시는 곳이다. 도교의 영향이 강한 칠성각은 소원, 장수, 재물을 관장하는 곳으로 보통 산신각과 같이 있는 반면 대웅전 옆 독립 건물로 있다는 것이 이 사찰을 만든 창건주의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나 싶다. 감쪽같이 안에 숨겨진 석불군 ▲ 중앙 십일면관음보살 그리고 위에 미륵존불이며, 오른쪽 왼편으로 얕은 동굴이 있다. 대웅전과 칠성각 그 사이로 길이 열리고 사방 석벽이 가려진 공간이 흡사 석굴사원을 방불케 한다. 중앙에 정병을 든 모습으로 입체감이 우수한 십일면관음보살과 그 위로 또 다른 부처가 있으니 미륵존불이 좌정하고 있으며, 양쪽 암벽에는 사천왕이 비로자나불과 약사여래불과 함께 각 3분씩 서 있다. 부산 유일의 마애불 사원이다. 오늘날 만덕사지 앞 산길은 등산을 하거나 부산 야경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넘나드는 좁은 산길도로이지만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구포장과 동래장을 보던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였다. ▲ 사방을 가려 놓은 독특한 형태이다. 불전을 벗어나 뒤편 석불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 넓은 공간을 따라 위아래 할 것 없이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부처가 다 모셔져 있다. 중앙에 관세음보살입상이 좌우 석벽을 깎아 사천왕상을 조각해 두고, 돌계단 길 위에 나한상과 독성 산신각을 두었다. 그 옆 바위틈으로 겨우 사람 한사람 들어서는데 비집고 들어서면 암벽 사이로 용왕당을 조성해 놓고 있다. 이야기로는 석조건물이 된 이유로 조각을 하고 남은 석재를 다듬어 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이지만 창건시기와 조각의 시기가 다소 간격이 있는 것과 일부 석재가 외부에서 가공된 돌로 추정해 보면 처음부터 돌로 절을 만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 미륵존불 조각을 살펴보면 미륵존불(신상균/사망 1950년 제작)은 네모난 바위 정면에 연꽃대좌를 표현하고 그 위에 오른손을 결가부좌 한 좌정 상태에서 바위 위 왼손을 높이 들고 있는데 손바닥에 여의주가 올려 있다. ▲ 십일면관음보살 십일면관음보살은 1940년 신상균이 조각한 것을 1959년 구포에 살던 권정학이 11개월에 걸쳐 직접 새롭게 조명한 개작한 작품이다, 거대한 사천왕 금강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는 곳이지만 분명한 것은 천왕문 안에서 절 입구를 수호해야 하는 사천왕이 거대한 암벽에 돋을새김 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고 사천왕이 그 중턱의 동 서 남 북 4주의 세계를 다스린다고 한다.
팔 한쪽이 동편 암벽 아래 걸쳐져 있고 가장 늦게 제작된 동방지국천왕(1960)은 보석을 들고, 남방천왕은 노한 것 같은 눈을 새겼지만 어찌된 일인지 웃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계단위쪽으로 쭉 이어지는 모습은 악한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한결 같이 선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조각된 불상은 좌우로 사천왕이 있고 해태상이 모셔진 벽면은 남방천왕, 서방천왕, 비로자나불이 계시고 반대편으로 동방천왕, 북방천왕, 약사여래불이, 선명한 선과 윤곽을 들어내고 정면에는 11면 관세음보살이, 관세음 보살상 위에 미륵존불이 벽면에 고정되어져 있다. ▲ 독특한 석불군이 층을 따라 이어져 있다. 사천왕상 석불군으로는 부산에서 유일하다. 사천왕상은 원래는 귀족상이었으나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오는 동안 무인상으로 변형 되었다. 비파를 든 지국천왕은 동쪽 세계를 관활하며 인간의 기쁜 감정과 봄을 주관한다. 용과 여의주를 든 광목천왕은 서쪽 세계를 관할하며 인간의 노여움과 가을을 주관한다. 지혜의 칼을 든 중장천왕은 남쪽 세계를 관할하며 인간의 사랑과 여름을 주관한다. 탑과 큰 깃대를 든 다문천왕은 인간의 즐거움과 겨울을 주관한다.’ ▲ 나한전을 옮겨 놓은 듯 하다. 비로나자불 위편 벽면에는 월직사자와 8나한, 보현보살이 새겨져 있다. 석가모니불이 있고 그 위로 문수보살, 8나한상 일직사자가 독성각 앞까지 조각되어져 있다. 나한전을 대신하여 사천왕 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는 석가여래의 제자인 십육나한이 새겨져 있다. 나한은 석가야래의 제자로 아리한과의 진리를 깨달아 존경과 공양을 면하고, 윤회의 삶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도록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이다. 이곳 나한전 오백나한은 생동감이 있어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내려서면서 ▲ 미륵존불 불국정토를 염원하며 서방극락세계를 현실로 이끌어 내기 위한 마애불군이 부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사찰입구가 워낙 협소하여 여행객으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이 아니다. 병풍사는 1926년 조용선 선사가 일제에 의하여 사라져버린 만덕사를 생각하며 창건된 사찰로 1층은 대웅전, 2층은 천불전으로 사용하며, 뒤편 암벽 위에 칠성각을 모시고 그 사이에 석불을 새겨놓았다. 우리나라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찰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며, 이뿐만 아니라 나무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석재와 철문이 사용된 독특한 사찰이다. 병풍사 인근에는 최근 불사한 많은 사찰이 있고, 많은 신도가 길을 막아 둘 만큼 찾지만 병풍사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찰을 조성 할 정도면 상당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은 틀림없다. 또한 일본에서 조각기술을 배운 조각공이 만든 불상이란 이유로 외면당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식 사찰로 꾸며진 것도 아니고 보면 근대사 문화재로 지정되어도 좋을 작품들임은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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