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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최다 여승이 머무는 위봉사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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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봉사 전경
폐허가 된 후 송광사는 겨우 인접한 여행객이 이따금씩 찾는 볼품없는 사찰이었다. 이렇게 유실된 사찰을 법중스님이 소유지 8천7백여 평을 다시 사들이면서 사찰은 새롭게 단장되고 복원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위봉사에 대표적인 보물로 보광명전을 들 수 있다. ▲ 보물 제608호 위봉사 보광명전 보물 제608호로 등록된 목조건물의 보광명전은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으로 자연석 기단, 다듬지 않은 대들보를 통해 자연과 최대한 어울리는 법당을 앉혀 놓고 세 짝의 문은 열어젖혀 처마에 매달도록 하고 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현판 옆에는 도광18년(1835)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 중심전각 내 벽화 위봉사 보광명전에 관한 안내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건물은 조각 솜씨나 목재를 다듬은 기법으로 볼 때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법당 안에는 극락을 주관하는 석가모니불이 으뜸 부처로 있다. 좌우의 중심 기둥 사이에 칸막이벽을 세우고, 그 뒤에 흰옷을 걸친 관음보살상을 그렸다. 불상 안쪽 벽에는 악기를 든 선녀를 비롯해 여러 인물을 묘사한 그림을 걸었고, 바둑판무늬로 짠 천장에는 연꽃을 그렸다. 이 그림들은 잔청과 더불어 차분한 색조를 띠며 전체적으로 아늑한 느낌이 든다. 중요 부위마다 굵직한 목재를 사용하고 귀퉁이의 기둥도 높게 솟아 있어 건물 외양에서 웅장함이 느껴진다.’ ▲ 위봉사 진입구간 벚꽃길 위봉사를 호위하고 있는 추줄산(위봉산 524m)은 험난한 지형 때문에 정식명칭보다 전해오는 산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고 조선 숙종 때 유사시 경기전에 안치된 조선 태조 영정을 피난시키는 장소로 산성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동학혁명때 영정이 위봉산성으로 옮겨진 적이 있다. 보통 산성의 역할이 전쟁에 있지만 이 위봉산성은 영정을 지키기 위한 곳이란 점에서 그만큼 위봉사가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봉사의 대표적인 보광명전과 요사(지방문화재 제698), 삼성각만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보광명전의 백의관음보살 벽화는 불교색체미술에 중요한 연구가 되고 있다. ▲ 위봉사 요사채 위봉사의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는 앞면에 마루가 달려져 관음전 법당으로 불리고 있다. 관음전 좌우로 스님이 기거하는 형식으로 독특한 요사채를 이루고 관음전과 승방, 부엌 등 제각기 지붕 높이가 달라 각자의 품위를 지키도록 만든 조선시대 건축가옥을 닮은 공간이다. ▲ 일자형 건물 중앙에 높은 지붕이 관음전이다. 위봉사 요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이다. 안내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스님들의 거처인 이 건물은 중심 법당인 보광명전의 오른쪽에 있다. 요사라고 하지만 앞면 중앙은 대청마루를 둔 법당으로 ’관음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좌우에 스님들의 실제 거처인 요사채를 두어 건물 평면이 1자형을 이룬다. 조선 고종 5년(1868)에 절 확장을 위한 큰 공사가 있었는데, 건물의 짜임새로 보아 이 요사도 그때 지은 듯하다. 조선 시대의 주택 구조를 취하면서도 일부는 법당 형식으로 장식하였다. 관음전과 승방, 부엌 등은 지붕의 높낮이가 서로 다른데 그 기능에 따라 차이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 위봉사 일주문 성스러운 빛이 보여 달려가 보니 세 마리 봉황이 날아올라 서암(최용각)은 잠시 주춤하다 필시 우연이 아닌, 신령한 곳이라 여기고 사찰을 만드니 오늘날의 완주군 소양면 추출산 산허리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게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 위봉사이다. 1868년 포련화상이 쓴 극락전중수기에 의하면 백제 무왕5(604)때 서암의 의하여 사찰을 창건했다는 설화만 전해지며, 한때는 전북에서 가장 많은 비구니선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위봉산성 ▲ 태조의 초상화를 피신시키기 위한 위봉산성 위봉사로 향하는 길목은 봄이면 벚꽃이 화려하게 수놓고 보기 드문 60m의 위봉폭포가 2단으로 흘러내리며 위봉사를 지나면 대아저수지가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송광사에서 위봉사로 넘어서는 산 고개마루에서 사적 제471호 위봉산성을 만난다. 산성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산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에 쌓은 것으로, 둘레가 약 16km에 이르는 대단한 규모이다. 유사시 전주 경기전과 조경묘에 있는 태조의 초상화와 그의 조상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피난시키려고 이 성을 쌓았다. 실제 동학 농민봉기로 전주가 함락되었을 때 초상화와 나무패를 이곳으로 가져왔다. 성안에는 초상화와 위패를 둘 소형 궁귈이 있었으나 오래 전에 헐려 없어졌다. 성의 동 서 북쪽에 각각 문을 냈는데, 지금은 전주로 통하는 서쪽에 반월형 문 하나만이 남아 있다. 성안에는 위봉사와 전주 팔경의 하나인 위봉폭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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