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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겹벚꽃을 만나기 위해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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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겹벚꽃을 만나기 위해 새벽을 달렸는데 봄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선암사의 봄은 참으로 부지런하다. 오백년 세월 고요한 산사의 봄을 깨우는 무전 돌담길 선암매(仙巖梅)를 시작으로 수양버들, 겹벚꽃이 앞 다투어 피어난다. 선암사 사계(四季)는 변화무상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로 불리고 있다. 승선교를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계곡물이 멈추어 버릴 듯 맑다. 선암사 해우소를 찾아 세상의 모든 근심과 번뇌를 훌훌 벗어 던지고 내려와도 좋은 그런 곳이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선암사이다. ▲ 선암사의 봄 전경 선암사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호법선신(護法善神), 방생정계(放生淨界) 목장승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04년 만들어 선암사를 지켜온 목장승은 설선당에 보관하고 1987년 밤나무로 복사품을 만들어 대신 자리를 지키게 하고 있다. 호법선신은 세가닥 수염을 둥글게 꼬고 치켜 올린 모습이며, 방생정계는 수염을 꼬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선암사로 출입하는 모든 생명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갈 준비로 몸과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하라는 의미로 잡귀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젊은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배우는 스님이 모여 사는 한국 불교 태고총림 조계산(889M) 선암사는 조계산 동쪽 자락 터 잡은 태고종의 본산이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백제성왕 5년(527) 오늘날 조계산 중턱 비로암이 위치한 터에 창건하고 ‘해천사(海川寺)’로 불렀다. 이후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비보사찰의 하나로 중창하면서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우고, 대각국사(大覺國師.1055-1101)에 의해 중창하면서 천태종을 전파하면서 호남의 중심 사찰로 자리하였으나 정유재란 당시 철불과 보탑, 부도, 문수전, 조계문, 정측만이 남았다 한다. 이후 복원불사를 위한 많은 스님들의 노력이 따라야 했고 그 결과 오늘날 선암사는 법통과 풍광을 전승하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이 되었다. 승선교에서 머물러 가다. ▲ 봄비 쏟아지는 승선교 호암화상이 1713년 시작하여 6년에 걸쳐 만든 우리나라 최고 걸작품 다리 승선교를가 있다.자연암반 위에 아치형으로 쌓고 정 중앙에 용머리 형상을 한 용두를 박아 다리를 지탱하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선암사승선교(보물 제400호) 는 화강암으로 만든 아치형 다리로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답다. 전설에 의하면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만든 것으로 전하며, 임진왜란 당시 파손된 것을 순조24년(1824) 사찰을 중건할 당시 다시 가설하고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로 다시 해체복원하였다. ▲ 2015년 봄 전경(카메라 수리 보내고 다른 것 들고 방문하였더니 절반은 사진이 떨려 작년 것 인용하였슴다. 조선 숙종 34년(1698) 호암대사는 백일기도를 드리지만 관음보살을 만나지 못하자 자신의 불 심이 미력한 탓으로 돌리며 벼랑에서 자살을 결심하게 되지만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대사는 그 여인이 틀림없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절 입구에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며 절 입구에 무지개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설과 함께 다리 옆에는 승선교비명이 새겨져 있다. ▲ 강선루 전경 승선교를 지나면 곧장 선암사 첫 번째 관문인 강선루가 있다. 2층 누각으로 선암사 계곡에 일곱 선녀가 내려와 노닐다 올라가곤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강선루는 한쪽 방향을 터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고 중간에 버팀목을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지만 기둥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 삼인당 삼인당에 도착하면 비로소 사찰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은 연못과 삼나무 세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삼인당은 길게 연못을 만들고 차밭을 따라 흐른 물이 모여들었다 나가도록 도선국사에 의해 축조되었다. 삼인은 불교사상에서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이다.
▲ 삼인당 선암사 삼인당은 전남기념물 제46호이다. 경문왕 2년(862) 도선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으로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섬을 만들어 놓은 2.2대 1의 비율로 1996년 복원공사를 하였다. 불교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연못 양식으로 선암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다. ▲ 일주문 차밭을 지나면 하마석이 버티고 있다. 사찰로 진입할 때 신분을 막론하고 하마석이있는 지점부터는 말에서 내려 보도로 부처를 만나야 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출입하는 최종 관문으로 하마석을 지나면 일주문이 열린다. 일주문은 이 선암사에서 유일하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파손되지 않은 것으로 이곳부터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법당이 흩어져 있는데 모두를 열거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정도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일주문을 시작으로 범종루를 거쳐 오르면 만세루를 만난다. 만세루를 돌아 들어서면 비로소 대법당인 대웅전과 동탑, 서탑이 자리잡고 있으며, 동탑 옆에 심검당, 서탑 옆에 설선당을 배치하고 있다. 대웅전을 돌아 다시 오르면 건물 3채가 나란히 있는데 조사전, 불조전, 팔상전이며, 불조전 뒤에 원통전이 있다. 원통전 옆으로 첨성각이 있으며, 원통전 뒤편으로 응진당과 무전이 있다. 중심건물 왼편으로 해천당, 적묵당, 종무소, 무량수전,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 선암사 중심법당인 대웅전 대웅전 정면에 문을 만들지 않고 창문을 만들어 놓은 독특한 모습 선암사대웅전(보물 제1311호) 은 현강왕 5년(875) 선암사 창건과 함께 건축된 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현종 원년(1660) 중건 되었다가 영조 42년(1766) 화재로 또다시 소실되고 순조 24년(1824) 재중건 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외3줄목, 내 4줄목의 다포식 조선후기 건축양식이다. ▲ 대웅전 내에는 중심불상 주변에 협시불이 없는 독특한 형식을 하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보물 제1311호) 계단을 딛고 오른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화려한 용 문양을 자랑하던 소맷돌이 1910년대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나 일제강점기 당시 계단은 확장되었고 소맷돌과 법수석은 사라졌다. 1910년 사진을 통해 계단은 오늘날처럼 좌,우 두 개의 계단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 계단이 있었음을 통해 변형된 부분이 확인된 공간은 복원공사가 필요해 보인다. 선암사삼층석탑(보물 제395호)는 선암사 대웅전 앞 좌우에 있는 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석탑으로 신라 중기 이후 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은 장대석을 짜고 하대석과 중대석을 짜고 탑신부를 올렸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에서의 탑은 부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처소로서 예배의 대상이다. 선암사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것으로 양식과 건립 시기가 같으며 조성 연대는 신라 시대 후기인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 2015년 봄 사진 이탑은 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 양식을 따른 이중기단의 삼층석탑으로 상하 각 밑단에는 면마다 3개의 기둥을 돋을새김 하였으며, 위아래 삽석의 수법도 이와 같다. 탑 몸 부분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몸 부분의 각면에는 양 모서리에 2개의 기둥을 돋을새김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평평하고 넓으며 받침은 각각 4단으로 되어 있고 모서리의 반전이 경쾌하게 표현되었다. 두 석탑의 조성연대는 신라 시대 후기인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1996년 이 탑을 해체 하여 복원할 때 동쪽 탑 1층 몸 아래에서 사리장치가 출토되었는데, 사리 1과가 들어 있는 금동사리함과 청자, 백자(보물 제955호) 등이 발견되어 있다.’ ▲ 전남지방문화재 제169호 원통전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의 원통전은 전남지방문화재 제169호이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존으로 모셔 관음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숙종 24년(1698) 호암약휴대사가 중창하였으나 1759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23년 재중창, 1923년 재중수 한 건물이다.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내부에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田) 현판은 정조임금이 후사가 없자 원통전과 대각암에서 100일 기도를 드렸고 순조를 낳자 선암사에 하사한 것이라 한다. 원통전 내 어필 ‘대복전’ 편액은 조선 제23대 순조(1790-1834)의 어필이다. 정조가 후사가 없자 1788년 교궁관을 선암사에 파견하여 눌암스님과 해봉스님에게 원통각과 대각암에서 100일 기도를 부탁하였고 이후 세자인 순조임금이 태어나게되니 정조가 보답으로 1796년 금병풍, 쌍용문가사, 은향로, 대복전 편액을 하사하였으며, 1801년 왕으로 즉위한 순조는 인(人,) 천(天) 두 글을 각각 44.0cm × 62.0cm 크기의 현판 두장에 새겨 하사하였다. 현종 원년(1660)에 창건한 공간으로 선암사에서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절집은 ‘丁’자 형태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특히 꽃문살과 국내 사찰에서 찾아보기 드문 토끼가 방아찧는 모습과 파랑새 그리고 삼태극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는 곳이다. 또한 입구 우물천장에는 우아한 학의 모습과 물고기, 자라 조각이 새겨져 있다. 현재 선암사 원통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통전 어간문은 4분합문으로 중앙 2짝에 모한꽃창호로 모란과 자세하게 보면 새가 조각되어 있으며, 양쪽 바깥문 2짝에는 금강저빗살창호로 하였다. 특히 모란도 아래에 있는 궁판에는 어린시절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겨 놓았으며, 그 옆으로 계수나무와 한쌍의 파랑새가 있어 궁금증을 더하는 곳이다. 원통전은 독특한 공간으로 현종 원년(1660) 조성 후 숙종 24년(1698)에 호암대사에 의하여 중수된 공간으로 중창할 당시 호암대사가 현몽을 통해 친견한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새겼다고 한다. 원통전에 관하여 다른 이야기로 눌암대사에게 부탁하여 정조가 백일기도를 드려 순조를 잉태하였는데 순조가 12살이 되던 해 그 감사의 의미로 대복전이란 현판을 하사 하였다 한다.
선암사는 아도화상에 의해 신라 진평왕 3년(542) 현재 비로암터에 해천사를 세우고, 헌강왕 1년(875) 도선국사(827-898)가 현재의 터로 옮겨 1차 중창, 고려 선종 9년(1092) 대각국사 의천(1055-1101)에 의해 2차 중창, 조선 현종 1년(1660)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사찰을 경잠, 경준, 문정 스님에 의해 재건, 영조 35년(1759) 4차 중창 및 1761년 청량산 해천사로 사명을 변경, 1819년 5차 중창 및 1823년 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였고, 1825년 선암사로 다시 복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겹벚꽃 피어있는 4월 말 전경 ▲ 선암사 겹벚꽃은 매년 4월 20일~25일 그 사이가 가장 아름답다. ▲ 선암매 담벼락으로 유명한 무우전 전경 선암사의 봄은 무우전 홍매와 백매를 필두로 원통전 뒷문 선암매까지 시간 차이를 두며 피어난다. 선암매가 봄바람에 향기를 잃어 갈 무렵 적묵당 향하는 길목 수양벚꽃이 늘어지게 피어나는가 하면, 동백꽃도 길에 뿌려진다. 그리고 피어나는 것이 백철쭉과 겹벚꽃이다. 겹벚꽃은 매년 4월 20일 전후 피어나 25일 정도면 잎이 많이 자라나므로 겹벚꽃 핀 선암사를 방문하려면 적어도 4월 20일 전후 찾아가는게 좋다. ▲ 해천당 앞에 붉은 철쭉이 피어있다. ▲ 선암사 중수비 선암사는 절 서쪽 큰 바위가 있는데 신선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하여 ‘선암’이라 부른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다른 이야기로 조선 숙종 당시 호암선사가 배바위에 올라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100일 기도를 올렸지만 만나지 못하였고 자신의 지성이 부족함을 탓하며 배바위에서 몸을 던졌는데 한 여인이 코끼리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와 선사를 받아 다시 배바위에 올려 놓았고, 깨어난 호암선사는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지어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으며, 신이 내린 곳이라 하여 선암사라 하였다 한다. 선암사 중수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조선 숙종 33년(1707)에 건립된 비이다. 정유재란으로 불탄 선암사를 약휴대사가 중심이 되어 다시 세웠다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거북받침과 비 몸 그리고 비 머리(용틀임 머리)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양식의 비석으로 조선시대 석비로는 뛰어난 작품에 속한다. 총높이 5.02m 비신 폭 1.25m 두께 30cm 이다.'라고 표기 어 있다. ▲ 선암사 해우소 뒷깐 뒷간 이야기는 이 선암사가 제격이다. 그 이유는 선암사 뒷간을 두고 시집에서 나올 정도라는 부분이다. 정호승의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를 통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묵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가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는 부분이다. 선암사 해우소란 말은 이제 더 하지 않아야겠다. 버젓하게 뒤깐이라고 못을 박아 두었기 때문이다.
뒤깐은 온통 열린 공간이다. 앉으면 서로의 뒤통수가 보인다. 남녀의 구분은 있지만 별 다른 칸막이가 없다. 정작 뒤깐에 앉으면 덜컥 겁부터 난다. 입구에서 보면 2층 구조이고 위에서는 1층이니 깊이가 상당 하지만 냄새가 전혀 없다. 오히려 풀향이 나는데 낙엽이나 볏짚 따위를 넣어 자연발효 시킨 후 밑에서 거두어 거름으로 사용하니 고약한 냄새라곤 맡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 선암사 비석거리탑 선암사는 사적 제507호이며, 사적및명승 제65호이다. 불교문화재로 보물급은 대각암 동종(보물 제1561호), 선암사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 선암사 동탑발견 사리구(보물 제955호), 대각국사 진영(보물 제1044호), 선암사 대각암 부도(보물 제1117호), 선암사 북부도(보물 제1184호), 선암사 동부도(보물 제1185호), 대웅전(보물 제1311호)이며, 중요민속자료로 선암사 소장 가사탁의(중요민속자료 제244호)가 있다. 유형문화재로 선암사 불조전(전남유형문화재 제295호), 금동은입사향로(전남유형문화재 제20호), 전 도선국사 직인통 1(전남유형문화재 제21호), 전 도선국사 직인통 2(전남유형문화재 제21호), 직인통 1(미지정), 직인통 2(비지정), 선암사 팔상전(전남유형문화재 제60호), 선암사 중수비(전남유형문화재 제92호), 선암사 일주문(전남유형문화재 제96호), 선암사 원통전(전남유형문화재 제169호), 관동관음보살좌상(전남유형문화재 제263호), 선암사 측간(전남유형문화재 제214호) 및 문화재자료는 선암사 각황전,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등이 있다. 선암사 3월~4월 풍경 이야기 선암사에는 500년 되는 10여 그루의 홍매와 백매가 봄이면 서둘러 꽃피우고 겨울이면 동백의 화사함이 선암사를 꾸며주고 있다. 선암사는 많은 유적과 유물을 비롯하여 최근 영화 촬영지로 알려져 있는데 아제바라아제의 마지막 촬영을 시작으로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취화선 중 장승업의 젊은 시절 유랑 길을 떠나고 온통 붉게 수놓은 단풍길 거니는 장면이 선암사이다. 최근 영화 동승의 촬영지로 부쩍 관광객이 늘고 있으며, 불가리스 선전에 나오는 노승과 동자승의 뒷간 이야기도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 ▲ 3월 마지막 주 무우전 담장을 따라 홍매와 백매가 만개하여 꽃터널을 이룬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2007년 11월 26일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경내 안내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선암사 선암매는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위치한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화 꽃이 필 때면 매화를 보기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4월 첫주가 시작되면서 피어나는 수양벚꽃 ▲ 4월 중순(18-20) 겹벚꽃과 함께 피어나는 백철쭉 한그루 ▲ 백철쭉은 4월 25일 이전에 사라지고 이후 겹벚꽃이 4월 말까지 머물다 간다. 선암사의 봄을 찾는 많은 여행객은 언제 선암사를 찾아야 하는지 매우 궁금해 한다. 매년 봄꽃의 피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점점 개화시기가 빨라져 일정잡기 어렵지만 올해 선암사 선암매의 경우는 3월 마지막 주말에 만개하였다. 또한 4월 첫주가 되면 수양버들이 피어나 사찰의 봄을 또 한번 화사하게 만들어 놓으며, 4월 20일부터 4월 말까지 겹벚꽃이 피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선암사에는 일반 사찰에서 없는 3가지가 있으니 사천왕문, 협시보살상, 대웅전 어간문이다. 사천왕문이 없는 이유는 선암사에게 자락을 내어 준 조계산 주봉이 장군봉이라 하여 굳이 사천왕을 모시지 않으며, 대법당에는 흔히 삼불을 안치하는데 비해 협시불을 두지 않고 본존불만 모시며, 대웅전 출입문 정 중앙이 없다. 아니 문이 없다기 보다 큰 창을 만들어 놓고 있어 정문은 출입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사찰 큰법당은 부처가 출입하는 문이라하여 큰 사찰에서도 큰스님이 아니면 중앙문 출입은 삼간다. 이곳 선암사는 부처처럼 깨달은 경지에 이른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 하여 출입문 대신 창문을 열어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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