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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트레킹 - 범어사 등나무군락

허영꺼멍 2016. 5. 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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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지'

| 여행일자 : 2016년 05월 01일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 - 범어사 - 청년암 - 계명암



▲ 계명암에서 바라 본 범어사 등나무꽃 군락지. (편백나무 숲 위로 보랏색 등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 보랏빛 등나무꽃이 핀 모습

05월 초 보랏빛 세상이 펼쳐진다.

부산 금정구 청룡동 551

★★★★☆



범어사 경내에 천연기념물이 있다? 범어사 매표소를 통과하여 갈림길에서 곧장 왼편으로 들어서면 등나무군락안내판이 나온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냥 스쳐 가는 길이지만 오늘의 여행은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는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釜山 梵魚寺 등나무群落)지 여행이다.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여 줄기를 뻗쳐 자란다.



스스로 곧게 뻗을 수 없는 등나무는 주변 나무를 휘감아 오른 후 줄기를 뻗고 봄이면 보랏빛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2종의 등나무가 알려져 있으며, 범어사 등나무군락지에는 약 500여 그루(안내판에는 약 6.500여 그루로 기록되어 있다.) 가 뿌리를 내리고 매년 4월 말~ 5월 초 꽃 피운다.




'진정한 께달음 터'


() 쉼터’ 갈림길 초입에 핀 등나무꽃


매표소를 통과하여 조계문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왼편으로 보면 등나무 군락지이정표와 함께 작은 통로가 이어진다. 통로를 따라 들어서면 첫 번째 작은 계곡을 건너 다리를 통과하면 곧장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몸과 마음이 쉬는 터, 왼편이 진정한 깨달음의 터이다.



나무 가지에 등나무 줄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은 원시림을 방불케 할 만큼 우거진 숲을 등나무로 지붕을 올려놓은 듯하다. 숲길은 도로변을 따라 내려선다. 도로변과 범어사의 경계는 담장이 가로막고 있으며, 담장을 따라 편백나무 숲까지 길이 이어진다.




'자아성찰의 터'


▲ 자아성찰의 터 공간은 편백나무 숲길이 원효암 방향을 향해 오르는 구간이다.


범어사 누리길 2.26km 구간이 끝나는 지점 범어사 입구에 도착한다. 범어사 누리길 편백나무 숲길은 끝이 나지만 범어사 경내에서 다시 편백나무, 삼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진정한 깨달음의 터를 내려서면 다시 원효암 방향으로 오르는 길목 자아성찰의 터를 시작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터까지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이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몸과 마음이 쉬는 터'

▲ 상단부 약 20여기 부도가 모여잇는 범어사부도군


편백나무숲을 거쳐 내려서니 이번에는 석종형 부도군을 만난다. 범어사에 출가한 스님의 부도가 인적이 뜸한 숲속에 숨은 듯 모여 있다. 범어사에서 원효암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20여기 대부분 석종형(石鐘形) 부도군이며, 주변에는 넓은 공간과 함께 숲 아래 2기의 부도가 더 있다. 부도군 주변은 계곡이 깊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주변 등나무가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으며, 계곡에는 굵은 등나무 줄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마음이 쉬는 터 - () 쉼터 갈림길 구간'


▲ 소나무 가지를 빌려 보랏색꽃을 아낌없이 피우고 있는 등나무꽃


등나무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초입에서 오른편으로 오르면 곧장 이어지는 산길로 주변에 등나무가 아름답게 피어난다. 아쉬움이 있다면 등나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탐방로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등나무 보호구역을 지키기 위해 탐방로를 벗어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등나무 보랏빛 꽃이 구름처럼 펼쳐져 있어 등운곡(藤雲谷)이라 한다. 계곡 주변 소나무와 팽나무, 편백나무를 휘감고 올라 햇볕이 드리우는 곳에 꽃 피운다. 등나무 군락지라하여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등나무 터널을 상상한다면 곤란하다. 오랜세월 자란 등나무는 주변 나무의 도움으로 하늘을 향해 약 20m 정도 치솟아 있어 보랏빛 꽃은 나무위에 펼쳐져 있다.

 

가끔 줄기를 늘어 뜨리거나 오래된 버팀나무가 고사하면서 가까이 줄기를 늘어뜨린 등나무를 만나기도 한다. 등운곡에 무리짓고 자라는 등나무는 대략 100~130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등나무 천연기념물로는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을 비롯 국무총리 공관 뜨락에 자라는 제254호인 서울 삼청동 등나무, 네그루가 모여 자라는 제89호인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등나무가 있다.



등나무는 주변 나무를 휘감아 오르며 자란다하여 나무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고사시키는 기생식물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 곧게 자랄 수 없는 덩쿨식물이다 보니 주변 나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보니 등나무 군락지에 나무기둥을 사각으로 설치하여 등나무 줄기가 휘감아 자라도록 시설물을 많이 설치 해 놓고 있었다. 비록 나무의 영향분을 빨아먹는 기생식물은 아니지만 등나무도 광합성 작용을 통해 살아가야 하므로 의지한 나무 줄기 끝까지 올라가 줄기를 뻗고꽃 피우니 자신의 몸을 내어준 나무가 오히려 햇볕에 차단되어 죽는 일이 생겨나기도 한다.



등나무 꽃말은 결속’,‘환영’,‘사랑에취하다이며, ‘()’이 정식 명칭이지만 등나무로 부르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은 스스로 자라지 못하고 다른 나무에 의지하여 자란다하여 소인배가 하는 짓이라하여 등나무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금술을 좋게 한다하여 등나무꽃을 말려 신혼부부 이불속에 넣었다 한다.



등나무 군락지를 따라 걷다보면 부산에 이런곳도 있나싶을 만큼 숲이 깊다.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 범어사로 향하지만 등나무 군락지를 거쳐 부도군을 거쳐 오르는 길은 거의 찾지 않는다. 가끔 등산객이나 원효암으로 향하는 사람을 만날 정도로 한적한 곳이지만 등나무 군락지와 함께 암괴류를 따라 흐르는 계곡과 편백나무 숲길 등 약 280여 종의 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범어사 등나무군락지의 형성시기에 관한 정확한 내용은 없다. 단지 약 5.6ha 정도 면적에 100여년이 된 등나무가 계곡을 따라 무리지어 자라고 있으며, 등나무 껍질이 닥나무 대신 한지의 원료로 사용한 것으로 볼 때 한지 생산 목적으로 베어 사용하다 범어사 경내에 포함되면서 관리되고 있는 듯 하다.



등나무 군락지를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를 () 쉼터라 한다. 입구로부터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진정한 깨달음의 터를 지나 편백숲길이 이어지는 자아성찰의 터를 지나 부도군으로 향하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터를 돌아 몸과 마음이 쉬는 터를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다. 등나무는 진정한 깨달음의 터와 몸과 마음이 쉬는 터 길목에 많이 만날 수 있으며, 자아성찰의 터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터까지는 편백나무 숲이 이어진다. 등나무 군락지 탐방로는 약 825m 이며, 30여분 소요된다.



선찰대본산 " 범어사 "

부산 바다 해안절경을 끼고 있는 해동용궁사가 있다면 부산 금정산성 자락에는 범어사가 자리잡고 있다. 창건당시 요사 360, 토지 360, 보니 100여명이 머물던 대찰로 오늘날 범어사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광해군 5(1613) 묘전현감스님, 해민스님 등 중건,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날 범어사 규모를 갖추고 있다.


▲ 2016 석가탄신일을 준비하고 있다.

▲ 조계문 앞 연등 작품

2016 범어사 석가탄신일

부산 금정구 청룡동 548

★★★☆☆



문무왕은 바다로부터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의상대사에게 명하니 문무왕 18년에 그 뜻을 받들어 678년 창건 해동 화엄종 십찰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 하였다. 범어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금정범어(金井梵魚)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범어사는 범어와 관련 그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부산으로 상륙하여 해적질을 일삼는 왜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문무왕이 고심하는 와중에 현몽을 꾸게 된다. 금빛고기가 노니는 곳에 사찰을 세우라는 꿈을 꾼 문무왕은 당시 고승인 의상에게 명하여 부산일대를 둘러보니 금정산 정상에 범어가 노닐어 현몽에서 일러주신 그곳이라 범어사를 만들었다 한다.


범어사 대웅전(보물 제434호)


▲ 대웅전 주변 연등작업을 하기위해 양쪽에 파이프 구조가 있다.


대웅전은 조선중기 이전에 만든 다포식 가구의 양식 특징을 잘 나타 낸 것으로 400년 이상 정교함을 유지하고 있다. 범어사로 진입하면 대웅전으로 오르는 320계단을 올라서야만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은 화려한 색체는 세월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빛바래고 퇴색되어 보이지만 고풍스런 멋과 세월의 흔적을 엿 볼 수 있어 좋다.


▲ 대웅전 소멧돌에 그려진 꽃문양.

대웅전을 오르는 돌계단(석계)는 원래 1구였으나 지금은 3구로 20계단을 설치하고 대웅전에는 석가여래와 함께 삼불상을 모시고 있다.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다포집 맞배지붕으로 조선중기에 세워졌다.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제250호)


▲ 연등과 어우러진 삼층석탑


대웅전 아래 오른편 마당에 보물 제250호 삼층석탑이 있다. 석탑은 사찰이 번창하던 시기인 9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상하기단 모두 眠象이 조각 된 점이 특이하다. 석탑의 비례상태는 하중을 단단하게 받치고 상륜부로 갈수록 급격하게 협소하여 웅장함 보다 안정감에 치중을 주고 있다. 범어사 석탑을 감싸고 있는 난간은 일제당시 수리하는 과정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난간이 석탑을 보호 보다 가두어 버린 느낌이 들 정도로 사방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철수하여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범어사 조계문(보물 제1461호)



지금이야 범어사로 들어서는 입구가 계곡을 따라 오르지만 정식으로는 일주문을 거쳐야 한다. 범어사 역시 일주문이 남아있는데 삼해탈문(三解脫門) 또는 조계문으로 불린다. 사찰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 역할을 수행하는 일주문은 보통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일주문을 보아 온 신도라면 깜짝 놀라게 된다. 무려 4개나 되는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길을 시원하게 열어 놓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 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주문은 불법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으로 범어사 일주문은 여느 사찰과는 목재가 아닌 석주를 가공하여 세운기둥이 자리 잡고 그 위 기둥이 올려지고 다포식 지붕을 올려 놓았다. 일주문 현판에는 "曹溪門"이라 편액하고 좌우 협칸에는 각기"金井山梵魚寺"" 禪刹大本山"이라 편액이 걸려져 있다. 광해군 6(1614) 묘전 화상이 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중수 할 당시 세운것으로 추정 할 뿐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숙종 44(1718) 명흡 대사에 의해 돌기둥으로 교체를 하고, 정조 5(1781) 백암 선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 조계문 앞 숲속에서 만날 수 있는 범어사 당간지주(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


당간지주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 우 모두 가로50cm, 새로 87cm에 높이가 4.5m의 석재로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군살이 더러 보인다. 지주는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다. 장식이나 돌을 애써 다듬어 보려는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다. 어느 사찰을 찾아가도 당간지주를 먼저 본다. 그만큼 당간지주는 사찰을 대표하는 기둥 역할도 한다. 범어사 당간지주는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범어사 입구에 세워진 것으로 간석과 기단부는 없는 상태로 조각이 없는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 팔상전, 독성각, 나한전이 하나의 지붕 아래 나눠져 있다.


범어란 금정산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고 금정산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고 둘레는 10여 척이며, 깊이가 7촌쯤으로 물이 항상 고여 황금색을 이루며,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그 속에서 노니 금샘이라 산 이름을 부르고 하늘나라의 고기라 하여 "범어"라 한 후 범어사를 만들었다고 동국여지승람에서 전하고 3.1운동 당시 안용운 선생이 범어사에서 범어사 학림의거 독립만세운동을 할 당시 전국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만든 곳이다.



부산으로 상륙하여 해적질을 일삼는 왜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문무왕이 고심하는 와중에 현몽을 꾸게 된다. 금빛고기가 노니는 곳에 사찰을 세우라는 꿈을 꾼 문무왕은 당시 고승인 의상에게 명하여 부산일대를 둘러보니 금정산 정상에 범어가 노닐어 현몽에서 일러주신 그곳이라 문무왕 18년에 그 뜻을 받들어 678년 창건 해동 화엄종 십찰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 하였다.



범어사는 금샘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설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금샘 설화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이 예부터 신령스러운 영산임을 알려주는 것과 함께 "금정산"이란 산 이름과 "범어사"의 절 이름 그리고 이 사찰의 창건 내력을 알려주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설화는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금정산 산정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척이며 깊이가 7촌쯤 된다. 황금색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범어사 지명은 금빛나는 우물 곧 "금정"이란 산 이름과 범천의 고기 곧 "범어"라는 절 이름을 지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범어사 창건 사적 과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는데 신라 의상대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동해에 왜인들이 10만 병선을 이끌고 와서 신라를 침략하려고 했다. 대왕이 근심에 싸여 있는데 꿈속에 신인이 나타나 의상스님과 함께 금정산 금샘에 가서 칠일동안 남밪으로 기도하면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애왕이 의상스님과 함께 친히 금샘을 찾아가 기도를 하니 땅이 크게 진동하며 부처님과 천왕과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 등이 현신하여 동해로 나가 왜적들을 격파했다. 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의상스님을 예공대사에 봉하고, 금샘 아래 호국사찰을 세웠으니 곧 범어사이다"


▲ 범어사 돌바다(암괴류)

범어사에서 왼편 계곡을 건너 북문으로 오르는 길목부터 크고작은 돌이 길을 열고 산정상을 향하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에서 범어천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암을 지나 금정산성 북문으로 가는 길까지 지천으로 널려있는 엄청난 바위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돌바다(암괴류)의 폭이 70m 정도 되고 산사면 방향으로 길이 2,500m 족히 넘어 보이는 바위들이 많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돌바다(암괴류)는 주로 바위가 물리적 화학작용에 의해 절리(바위에 갈라진 틈)를 따라 물이 스며들면 얼고 녹고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어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중력에 의해 주저않으면서 만들어 진다. 돌바다(암괴류) 밑으로 물이 흘러 대성암 각해선림 구들장 나래로 숨어 졸졸 흐르는 물소시를 신의경지에 불심을 듣는다 해서 금정 8중 하나인 대성은수라 하였다




범어사 암자 청련암


▲ 금동관음보살


범어사 청련암(梵魚寺 靑蓮庵)은 범어사로부터 계명암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만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산내 암자 중 한 곳이다. 청련암의 창건에 관하여 알려져 있는 기록이 없지만 숙종 35(1709) 신주 대사(信珠大師)가 중창하였다 하며, 3.1 운동 당시 부산 지역 본거지였다 한다.




약사기도도량 '계명암'


청련암에서 출발한 계단 길은 계명암 일주문 앞까지 쉼 없이 오르막이다. 20여분 거친 숨소리를 내 쉬며 일주문에 도착하니 일찍 도착하여 예불을 보고 내려서는 노파의 경쾌한 걸음걸이가 힘겨운 숨소리를 거두어 내려간다. 계명암은 관음기도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문에 사천왕상이 반겨주지 않아도 문턱을 넘어서면 경건함이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게 한다.


▲ 범어사 암자 중에서 가장 높고 작은 절집이다.


더운날 계명암을 오른다. 일전 가을날 추색의 전경을 담기 위해 오른 이후 다시 길을 되짚어 오른 이유는 단 하나 계명암에서 마주하는 등나무군락지의 전경을 내려다보기 위함이었다. 나무가 많이 자라 이제는 계명암에서 범어사를 조망할 수 없지만 건너편 원효대를 마주 할 수 있다. 멀리 부산시내 방향이 시선을 끌기도 한다.



계명암 중심전각은 보덕굴이다. 계명암은 범어사 암자 중에서 기도 효험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계명암이 있는 지형이 좌천룡 우백호가 감싸는 곳으로 주룡으로 뻗어 내린 중심바위가 암자를 받치고 혈을 감는 형국이라 한다. 이 때문인지 약사전 석불입상을 간절한 마음으로 어루만지며 마음으로 아픈곳을 말하면 치유해 준다는 속설이 있다.


▲ 계명암에서 바라 본 북문으로 향하는 골짝


전설에 의하면 금정산 동북쪽 봉우리에 납자들이 모여 수행을 하였는데 새벽 예불 시간이 되면 항상 하늘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 새벽공양시간을 놓치지 않던 어느 날 의상대사가 절터를 찾아 이 일대를 찾았을 때 새벽 예불 시간을 맞춰 울던 닭이 한밤중에 울어 그곳에 암자를 짓고 효의사라 불렀다 한다. 그 후 효의사 뒷산을 계명봉이라 불렀고 오늘날 계명암 이름이 그 이유라고 한다.


▲ 계명암에서 바라 본 등나무 군락지 전경

  

연초록 봄의 기운이 사뿐 내려앉은 금정산 자락 범어사 구역에 유독 짙은 녹색이 모여 있는데 바로 편백나무와 삼나무 군락지이다. 그리고 보랏빛 등나무꽃이 태양을 향해 나무를 의지하여 숲을 뒤덮어 놓고 있는데 5월 초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전경이다.




여행을 마치며


▲ 범어사 입구에서 바라 본 등나무 군락지 전경


평일 점심공양 시간은 11:40분을 시작으로 13:00분 까지이다. 장소는 은행나무 앞 설법전 1층 공양실이며, 주차는 차량당 3,000원이다.(경차는 1천원 받고 있다.) 입장료는 시에서 시민을 위해 년간 일정금액을 지급하여 무료입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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