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전 여행지/유적 트레킹

유적트레킹 - 동춘당근린공원

허영꺼멍 2017. 10. 6. 11:16

.



별당건축양식 동춘당(同春堂)을 만나다

"대전광역시 동춘당"

⊙ 2017년 00월 00일 ⊙


대전 시내 고층빌딩 숲 사이 옛 별당건축 양식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고택을 만나기 위해 동춘당근린공원을 방문한다. 동춘당 탐방은 동춘당 종택(중요민속문화재 제289),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290) 그리고 동춘당(보물 209)를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 동춘당 전경


▲ 소대헌 호연재 고택 전경

여행별점 : ★★★★☆

동춘당 근린공원을 찾아가다

동춘당 주차장 : 대전 대덕구 송촌동 463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의 작은 별당형식의 건물이며, 동춘당 종택에는 두 개의 사당이 있어 의아해 할 것이다. 동춘당 종택은 송준길 선생의 부모와 조부, 증조부를 모신 사당과 임금이 송준길 공로를 기리고자 따로 송준길을 모신 사당을 만들었다 한다. 또한 대전에는 매년 동춘당 문화제를 열고 있다.



소대헌·호연재 고택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이다. 고택은 문화유산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매입하여 수리 복원하여 공개를 하고 있다. 고택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곳은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1646-1697)가 분가하여 거주한 건물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가장이 독서나 손님맞이 할 때 사용하였던 큰사랑채가 있고, 오른편에는 부모나 장성한 자녀의 거처로 사용하였던 작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하고 있습니다.’


소대헌·호연재 고택

앞쪽이 큰사랑채이고, 안쪽이 작은사랑채이다









작은사랑채 왼쪽의 중문을 들어서면, 안주인의 생활 공간인 자 모양의 안채가 있고, 안채 뒤뜰에는 송씨가모라고 쓴 사당이 있습니다. 안채와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사당 등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양반집의 구조를 잘 살펴 볼 수 있는 고택입니다.’


▲ 고택 주변 감나무가 가을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호연재 김씨(1681-1722)는 조선 후기 여류시인이자 안동 김씨로 고성 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넷째 딸이다. 호연재 안채의 주인이기도 한 김씨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9세에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인 소대헌 송요화(1682-1764)와 결혼하여 28세에 아들 송익흠(보은현감)을 낳고, 딸을 낳았으며, 42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호연재 김씨는 출가한 이래 지금의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소대헌 고가에서 살아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생활하는 틈틈이 한시를 지어 194편의 작품이 전해져 오고 있다. 호연재의 시작 재능은 가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그녀의 부친도 유고가 있으며, 서모 또한 시문을 남겼다. 아울러 형제들 간에도 시를 주고 받았음을 호연재시집에서 엿볼 수 있다.’





대전 회덕 동춘당(同春堂)

보물 제209호


회덕 동춘당(보물 제209) 담장너머 오래된 팽나무와 담장을 훌쩍 넘겨 자란 소나무를 통해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동춘당 송준길(1606-1672) 선생은 부친인 송이창이 세웠던 건물을 옮겨 짓고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는 의미로 동춘이라 하였으며, 현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인 숙종4(1678)에 썼다.


▲ 동춘당 정면 모습






동춘당은 17세기인 조선 중기 건축물로 정면 3, 측면 2칸의 단층팔작지붕이며, 정면 현판은 1678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이다.




동춘당의 주인은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이 자신의 호를 따서 건축한 별당으로 독립공간에 자리잡고 있으며, 건물에 온돌방 구조를 하고 있지만 굴뚝을 만들지 않았다. 옛 유학자는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을 부도덕하게 여겨 굴뚝을 보이지 않게 낮게 하거나 숨겼던 것으로 보여진다.





대전 동춘당 종택

중요민속문화재 제289호


동춘당과 담장을 함께 사용하는 동춘당 종택은 넓은 공간과 함께 유별나게 감나무를 주변에 많이 심었다. 현재 동춘당 종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의 5대조 송요년이 15세기 후반 초창하였다하며, 몇 차례 이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은 1835년 중건할 당시의 모습이다.

▲ 동춘당 종택 전경

동춘당 종택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안채는 충청지역에서는 드문 자형 평면을 이루며, 6칸 대청과 양통집 구조인 서쪽의 날채채, 세로로 긴 안마당 구성은 이 지역 상류주택의 특성을 나타내며, 사랑채는 일자형으로 규모가 크고 큰 사랑방과 작은사랑방이 별도의 마루방을 갖고 내외담을 통해 안채와의 절묘한 단면상의 조형성을 볼 수 있다.’






대전 동춘당 종택은 조선 후기 호서지역의 명현인 동춘당 송준길의 종가로 나라에 공훈이 있거나 도덕과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 제사와 기타 제례가 그대로 전송되고 있다.


게시물은 복사, 편집을 할 수 없습니다. 본 글은 저작권 및 무단 복사,  이동을 할 경우 법적조치와 함께 강력대응합니다.

영업 댓글 및 비방 댓글은 허락없이 삭재합니다.       


여행이야기에 공감하시면 '공감'을 '클릭'해 주십시요

http://blog.daum.net/okgol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