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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트레킹 - 경주의 밤을 즐기자. 동궁과 월지 야경

허영꺼멍 2017. 10. 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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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밤을 기다리다. 국보급 야경

"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

⊙ 2017년 10월 15일 ⊙



어둠을 기다린다. 경주 안압지 야경이 아름답기 때문에 만나고 가기 위해 제법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동행하신 분이 경주사시는 분인데 안압지 야경을 본 적이 없다며 경주갈 때 꼭 동행을 해 달라는 무언의 압력이 서너번 있었던 터라 이번 여행길 무조건 소원들어주기로 작정을 하고 차 속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 야경이 시작된 동궁과 월지 전경


▲ 동궁과 월지 전경

여행별점 : ★★★★☆

경주의 밤이 아름답다. 안압지

안압지 뮤료주차장: 경북 경주시 인왕동 55-5


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찾아왔다 하여 기러기"", 오리()" 지로 본래의 이름은 월지(月地)이며, 압지부평, 임해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압지는 동서 190m, 남북 190m로 정방형 평면으로 약 15,658평방미터로 4,738평에 이르며, 호안을 둘러싼 석축이 무려 1,285m로 안압지 내 물이 요동치면서 머물지 않고 흐를 수 있도록 많은 굴곡을 두고 그 안에는 방장도, 봉래도, 영주도 즉 삼신도를 옮겨 놓고 각 섬마다 가축을 풀어 사육하였다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 14(674) 궁성 안에 못과 산을 만들어 화초를 기르고 진금이수(珍禽異獸)를 키웠다는 기록은 곧 안압지를 두고 하는 말이며, 임해전전에 부속된 하나로 추정할 수 있다. 인공으로 조성된 3개의 섬과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호수 끝이 보이지 않도록 설계를 하는 등 세심한 설계를 통해 완공된 거대한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안압지 내 임해전의 위치는 알 수 없고 주변에는 건물터로 추정되는 많은 초석이 외롭게 남아있는데 임해전에서 군신에게 연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려 3만점이 넘어 경주국립박물관에는 아예 안압지 전시관을 따로 두고 있다. 안압지에서 이처럼 많은 유물이 나온 것은 신라가 망할 무렵 부속품들이 연못 안으로 쓸려 들어갔거나, 전쟁 중에 빠진 것으로 말의 뼈가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신라가 패망하던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안압지에서 주목하는 것은 목제품이 잘 출토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지역상 단점을 안압지 내 뻘이 바닥 층에 형성되어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음주가무의 한 행위로 주사위가 나왔는데 "술 석 잔한 번에 마시기",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마시기", "술 다 마시고 크게 웃기"등 당시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안압지에서 통일신라시대 나무에 글자를 새긴 목간이 발견되는 등 다양한 부장품이 계속 출토되고 있다.



197411월 박정희는 안압지 준설작업을 지시하고 1,300년 만에 대대적인 연못 청소를 하였는데 주목할 만한 물건이 나왔다. 뻘 속에서 나온 것은 목제품인 양물 즉 17.5cm 남근 모조품과 목간 배이다. 경주 박물관에 전시되어져 있는 나무배는 장정 몇몇이 올라타도 끄떡없는 나룻배 형식으로 건너편 섬에 가축의 먹이를 주기 위해 띄운 것인지 배를 타고 호수를 다녔는지 알 길은 없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던 장소 월성

  

통일신라 천년왕성 월성(月城)은 은밀한 공간 구조를 하고 있다. 19754월 인공연못 월지 발굴조사과정에서 다양한 물건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삼국시대 최초의 길이 6.2m, 너비 1.1m 목선과 남근석, 주령구 주사위, 나무로 만든 빗 등 유희를 즐기는 것과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3만여 점 유물이 쏟아져 나와 이곳이 연회를 베풀던 장소이었다는 걸 반영해 주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문무왕 14(674)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으며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이야기 한다. 월지는 둘레 1005m, 면적 15658m²이며 매우 복잡한 구조를 통해 사방 어디에서도 한 눈에 조망할 수 없도록 만든 은밀한 구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압지는 1980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월지글귀가 새겨진 토기 파편을 수습하면서 안압지가 월지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안압지는 신라 패망과 함께 월지도 폐허가 되자 시인묵객들이 기러니와 오리만 날아들어 노니는 것을 보고 기러기과 오리)을 사용하여 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연못으로 불렀다. 안압지는 이후 임해전지로 불리다 201107월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안압지(사적 제161)는 현재 많은 건물터 중에서 월지 주변 세 곳 건물만 복원되었다. 현재 확인된 건물터만 무려 26곳이며, 그 중에서 심신용왕(새로운 제물을 용왕께서 굽어 살펴 주소서)이라는 글이 새겨진 토기를 수습하면서 이곳에 용왕전을 짓고 기도를 하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1975325일부터 19761230일까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습된 안압지 유물 중에서 주령구(酒令具. 나무로 만든 14면체 주사위)에 새겨진 글귀를 통해 당시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사각 주사위와는 달리 참나무를 다듬어 만든 14면체(5.5cm×4cm)에 흑칠(黑漆)을 하고 각 면에 명문 벌칙 내용이 적혀있다.



유범공과(有犯空過.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금성작무(禁聲作舞, 노래없이 춤추기), 중인타비(衆人打鼻, 여러 사람이 토 때리기), 삼잔일거(三盞一去, 술 세잔 한 번에 마시기), 자창자음(自唱自飮,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마시기), 음진대소(飮盡大笑, 술을 다 미시고 크게 웃기), 농면공과(弄面孔過, 얼굴을 간질여도 움직이기 않기), 양잔즉방(兩盞則放, 술 두 잔이면 쏟아 버리기), 월경일곡(月鏡一曲, 월경 한 곡 부르기), 임의청가(任意請歌, 누구에게나 마음데로 노래 청하기), 공영시과(空詠詩過, 시 한 수 읆기), 추물막방(醜物莫放, 못 생긴 것을 버리지 않기), 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 스스로 노래이름 부르기), 곡비즉진(曲臂則盡, 팔 굽힌 채 다 마시기) 등이다.

 

아쉽게도 주령구는 수습 후 복원과정에서 전기 오븐 과열로 불타 버렸고 현재 전해지는 것은 유물 수습 후 실측 기록을 해 둔 자료를 통해 만든 복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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