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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트레킹 - 훌쩍 나홀로 떠나고픈 영주 무섬마을

허영꺼멍 2020. 3. 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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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청개구리의 우물밖 세상이야기


물 위에 떠 있는 섬 ? '수도리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42



, 그러나 아쉬운 봄 햇살 때문에 옷깃을 스며야 했던 무섬마을 여행길에서 카메라가 말썽을 부려 휴대폰으로 잠시 겨울과 봄의 경계를 담아야 했다. 코르나19로 인해 사람 많은 곳은 피하고픈 마음과 과수원에서 가까운 곳을 물색하다 떠오른 여행지가 무섬마을이었다.


▲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 다리'     

 

▲ 무섬마을 그리고 고택의 봄 전경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과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이 만나 마을을 태극형상으로 휘돌아나간다. 다리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작은 섬이 물 위 떠 있는 듯 보인다하여 수도리(水島里) 마을 즉, ‘무섬마을이다. 내성천은 경북 봉화군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영주시, 예천군을 거쳐 문경시 달지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낙동강 지류 중 한 곳.


일상의 고단함을 가볍게 내려놓고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더불어 머물다 가기 좋은 곳을 찾는다면 무섬마을이 어떨까 싶다. 2015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 및 이보다 앞선 2013년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78 지정될 만큼 한국적인 여행지이다. 느린 여행 그리고 토속적이고 고너적한 여행지를 찾는다면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영월 선암마을과 더불어 이곳 영주 무섬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내성천 물길이 마을을 굽이돌아 흐르고 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이 경계를 하고 있다. 경계 그 안쪽 낮은 산자락에 반달형 평지를 개간한 사람이 17세기 중반 반남박씨가 이곳에 터 잡은 후 조선 영조때 반남박씨 손녀 사위였던 예안김씨인 김대가 들어왔고 오늘날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집성촌이 되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섬 수도리바로 무섬마을이다. 고색창연한 전통가옥이 어우러져 있는 마을은 48가구로 전통가옥이 38동이며, 그 중 조선시대 후기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 무려 16동이다. 무섬마을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m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한 바퀴 휘감아 돌고 있어, 마을이 마치 물 위에 EJ 있는 섬과 같다하여 무섬이라 불리고 있다. 마을 입향조인 박수 선생께서 현종 7(1666) 강 건너 머름에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터전을 이루었다. 그 후 박수 선생의 손자의 사위인 김대 선생께서 영주에 있는 삼판서 고택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어 지금까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무섬마을에는 아도서숙, 치류정, 청퇴정, 해우당고택(경북 민속문화재 제92), 김뢰진 가옥(경북 민속문화제 제118), 박덕우 가옥(문화재 자료 제 363), 만죽재 고택(경북 민속문화재 제93), 박천립 가옥(문화재 자료 제364), 김덕진 가옥(경북 민속문화재 제117), 김정류 가옥(문화재 자료 제362), 김위진 가옥(문화재 자료 제360), 김규진 가옥(문화재 자료 제361) 등이 있으며, 무섬자료전시관, 한옥체험관, 체험관이 있다.


 

무섬마을에서 묘한 매력에 빠져드는 곳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만든 외나무다리이다. 큰 비에 휩쓸려 가면 다시 세워야 할 만큼 삼면이 강물이고, 뒤편 산길은 돌아 나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겨우 한사람이 통과할 만큼 좁은 다리를 통해 마을로 시집오는 행렬과 마을을 떠나는 장례행렬 지나갈 만큼 주민들의 애환을 함께 한 무섬마을 유일한 외나무다리는 현대화에 맞물려 외나무 다리 대신 튼튼한 시멘트 다리인 수도교가 생겨났다.



1979년 무섬마을로 들어서는 교통혁신이 일어났다. 낙동강 위로 수도교가 놓이면서 버스가 마을로 들어왔다. 버스가 마을 사람을 옮겨주기 전에는 외부로 나가는 가장 유일한 통로가 낙동강을 건너는 폭 30cm, 길이 150m 외나무 다리였고 수도교가 생겨나면서 다리는 자연스럽게 보강하지 않아 불어난 강물에 사라졌다.

 

무섬마을의 본래 지명은 수도리 마을 즉, ‘물섬마을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물섬마을은 발음이 편리한데로 탈락하면서 무섬마을이 되었다. 강물이 마을을 휘돌아 가면서 잠시 숨 고르는 곳에 평균대처럼 통나무 절반을 세로로 잘라 잇고 있는 외나무다리를 만들고 마주오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비켜서서 기다리는 보조 다리가 있어 더 정겹다.



무섬마을에 관하여 마을 역사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마을은 자연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뒤로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강을 향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이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부촌으로 한때는 마을 소유의 토지가 30리 밖에까지 이르렀으나 정작 마을에는 농지가 없어 강을 건너가서 농사를 지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3.1만세운동 이후로 각처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일본 경찰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아도서숙을 건립하여 애국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무섬마을 고택에 관하여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마을에는 해우당 고택과 만죽재 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입구자형 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 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집들이 많이 있어 전통 주거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무섬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수도교, 무섬교 외에 외나무다리 2곳이 자리 잡고 있다. 삼면이 물길로 가로막혀 있던 무섬마을로 들어서는 육지 길로 수도교와 무심교가 있으며 무섬교에서 약 1km 들어서면 전통무심마을로 들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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