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기록여행

전북 완주 '전남 송광사 말고 완주송광사도 있지요'

허영꺼멍 2020. 7. 29. 15:26

◎ㅕ행  하 는 "청 개 구 리" 우 물 밖 세 상 이 야 기


入此門來者 莫存知解 '완주 송광사'를 아시나요?

GPS: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70-6


몇 일전부터 송광사를 다녀 올 궁리를 하였다. 송광사는 불교적 인연이 아니라 나의 젊은시절 추억이 숨겨진 공간이기도 한데 이곳에 연꽃이 피어나면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과수원 일도 바쁘고, 혼자 뚝딱 달려 갔다 오기에는 먼 거리라 망설이다 이 일대 여행지를 한꺼번에 묶어 떠나다 보니 연꽃 시즌을 놓쳐 버렸다.

 

송광사 연꽃여행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절집으로 발길을 내 딛는다. 그리고 변함없이 반겨주는 송광사의 고너적함이 온 몸을 감싼다. 추억에 기대선 채 ..

 

일주문을 시작으로 송광사 여행은 시작된다. 일주문 현판에 걸려있는[종남산 송광사]1953년 당시 주지스님이던 서암이 만든 것으로 원기둥 전후의 상하 연화 조각의 보조기둥 2개를 사용하여 세운 다포식 맞배지붕 형태로 조선중기 제작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본래 일주문은 이곳에 처음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쪽 3km지점에 [나드리]란 곳에 세워 진 것을 1814(순조14) 조계교가 있던 곳으로 옮겼다가, 1944년 해방직전 이곳으로 옮겨왔다.

송광사 일주문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이다. 안내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문의 좌우 측면에는 위아래의 굵기가 같은 중심 기둥을 세우고, 그 앞뒤에 연꽃을 조각한 보조 기둥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용머리 등으로 장식한 처마가 화려하며, 건물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단아한 멋을 풍긴다. 일주문에는 入此門來者 莫存知解(입차문래자 막존지해) 라는 글이 걸려 있는데, 이 일주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세속적인 생각, 분별하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진리를 생각하여 불법에 귀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주문 현판에 적혀있는[終南山松廣寺]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로 현판을 누가 기록 할 것인가를 두고 추사 김정희를 모셔오기로 했다. 어렵사리 추사 김정희를 모셔는 왔는데 막상 글을 현판에 적어야 하는데 뭔가 열심히 찾더란 것. 도대체 뭘 찾나 살펴보니 급하게 오는 바람에 붓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 난처한 입장에 놓은 추사 김정희를 본 구경꾼이 " 개꼬리로는 못쓸까 " 라고 핀잔을 주자 추사 김정희는 그를 데려와 개꼬리로 현판을 적게 하였다 한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일직선상에 금강문을 만난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인 금강문은 조선 후기 만든 건물로 금강문 또는 인왕문으로 부르기도 한다. 금강문은 금강의 지혜로 모든 번뇌를 쳐부수어 행복의 세계를 향해 간다는 의미이다.

금강문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문 양쪽에는 손으로 권법을 짓거나 금강저 또는 칼, 창을 손에 든 금강역사를 모셨다. 왼쪽에는 밀적금강,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을 모셨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어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우금강역사라고도 부른다.’

금강문을 넘어서면 또 문이 기다리고 있다. 겹겹의 문은 불자의 마음가짐을 재차 확인하면서 사찰로 들어오도록 한다. 천왕문에는 사대천왕이 자리 잡고 있다. 사대천왕은 입구로부터 오른쪽에 남방 중장천왕, 동방 지국천왕을, 왼편으로 북방 마문천왕, 서방 광목천왕을 두었다. 또한 천왕문 양 옆으로 대웅전 천정에 그려져 있는 비천도 모사작품인 비천신도무와 비천나발주악도가 양쪽에 걸려 있다.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보물 제1255호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사천왕상은 조선 인조 2(1624)에 만든 것으로, 흙으로 빚은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입체감이 뚜렷하고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나무조각품에 뒤지지 않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고 사천왕이 그 중턱의 동 서 남 북 4주의 세계를 다스린다고 한다.

사천왕상은 원래는 귀족상이었으나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오는 동안 무인상으로 변형 되었다. 비파를 든 지국천왕은 동쪽 세계를 관활하며 인간의 기쁜 감정과 봄을 주관한다. 용과 여의주를 든 광목천왕은 서쪽 세계를 관할하며 인간의 노여움과 가을을 주관한다. 지혜의 칼을 든 중장천왕은 남쪽 세계를 관할하며 인간의 사랑과 여름을 주관한다. 탑과 큰 깃대를 든 다문천왕은 인간의 즐거움과 겨울을 주관한다.’

▲보 제1244호 송광사 범종루 현판은 서예가 간민 김용 선생의 글씨이다.

송광사 종루는 십자각으로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수법이며, 동종을 안치해 두고 있다. 조선 세조 12년인 1466년 정심선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철종8년인 1769년 대웅전 중건과 함께 재봉선사가 중건하여 범종각으로 사용하고 있다.

십자각이란 이름처럼 마치 모양새가 열십자()형식을 취하고 네 귀마다 각각 지붕을 팔작형식으로 취하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십자각 2층 누각 안에는 높이 107cm, 아래 부분 지름 73cm, 두께 4.5cm의 동종이 보관되어 있는데 동종(유형문화제 제138)의 명문을 살펴보면 [조선 숙종 42년인 1716년에 무등산 중심사에서 주조되어 영조45년인 1769년에 중수 하였다]라 기록되어져 있다. 동종의 윗부분은 60여개의 꽃무늬가 조각되어져 있고, 이 꽃무늬 아래에 다시 방패 모양의 꽃무늬를 양각하였다. 종의 아랫단은 24cm 크기의 보살입상이 조각되어져 있고, 아랫단은 6cm 정도의 실상화 당초무늬가 둘러져 있으며, 특이하게 2층에 올려져 있다.

송광사 종루는 보물 제1244호이며,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이 건물은 조선 세조 때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철종 8(1875)에 다시 세웠다. 건물 평면이 십자 모양인데, 일반적으로 십자형 건물은 흔치 않으며 더욱이 종루로서는 이것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송광사 종루에 있는 동종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이다. 동종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숙종 42(1716)에 만든 것으로 높이는 107cm, 밑 너비는 72cm이다. 종 어깨 위 가장자리에는 작은 꽃잎무늬 장식을 줄지어 세우고, 그 아래에 방패 모양 꽃무늬를 두었다. 그 밑에는 종의 둘레를 따라 구슬형 돌기 60개와 위아래를 구분하는 띠를 둘렀다.

 

아랫부분에는 작은 원 8개를 조각하고 원 안에 범자를 새겼으며, 그 아래에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종의 밑자락에는 높이 6cm 정도의 덩굴 문양을 둘렀다. 범종에 새긴 글로 보아, 이 종은 무등산 중심사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며 영조(1724-1776) 때 고친 적이 있다.’

▲ 사 대웅전 정면 현판은 선조의 3번째 아들인 광해군의 동생인 의창군의 글씨이다.

송광사 대웅전은 보물 제1243호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건물은 송광사의 중심 법당으로 신라 말기에 보조스님이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원래 이층 법당이었는데 조선 철종 8(1857)에 재봉스님이 일층 건물로 다시 세웠다. 대웅전 천장에는 부처의 진리를 찬탄하며 부처에게 음성과 춤 공양을 올리는 11점의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다른 사찰의 벽화와 달리 체색과 선이 완벽하게 살아 있으며, 한국민중예술과 불교 미술이 함께 어우러진 한국 최고의 아름다운 천장 벽화이다. 예향의 고장인 전라북도의 소리와 춤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벽화이기도 하다.’

▲통도사 중심건물처럼 사면에 현판을 내걸고 있다. 동쪽면 유리광전(琉璃光殿)이먀, 서쪽은 우량수전(無量壽殿), 북쪽은 보광명전(普光明殿)이다

송광사의 소조불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약사여래, 오른쪽에 아미타여래가 배치된 형식으로 삼존불로 불상속에서 발견된 복장기를 살펴보면 중국 심양에 인질로 가 있던 두 왕자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기 위해 병자호란 당시의 위대한 승장이었던 각성스님의 지휘로 인조19(1641)에 만들고 한때 여기 승군이 700여명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전주사고를 지키기 위해서라 전한다.

 

송광사 대웅전 내 있는 목조삼전패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이다. 대웅전 삼존불상 사이 있는 나무패 3개로 17세기 만든 목패 또는 원패라 불리는 것이며, 내용을 통해 인조 임금과 왕비, 소현세자, 봉림대군의 안녕을 비는 조각이다.

▲ 보물 제1274호 소조석가여해삼불좌상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불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곳 송광사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있다. 각각의 부처가 삼세(전세. 현세. 내세)를 상징하는 이 삼세불은 모두 조선 인조 19(1641)에 흙으로 빚었다. 법당 안에 있는 좌불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며, 불상 각 부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 후기 불상 중 우수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불상은 석가여래의 화현이라 여겨지던 진묵 스님이 점안 한 것이라도 한다. 불상 복장에서는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두 왕세자의 무사 귀국을 비는 발원문이 나왔다.’

 

나라가 어려우면 땀을 흘린다는 이적현상이 오른쪽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에서 확인되어 화재가 되고 있다. 땀 흘리는 현상에 관하여 석가화현 (이 세상에 다시 오심)이라고 하는 진목대사가 이곳에 오랫동안 주석하여 점안하였는데 호국의 의지가 담겨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최근 이적이 발생한 날은 87년 음력1030/ 891220/ 9013/ 91년 음력 227일로 이적현상이 발생하였다고 하며, IMF 199712월에 땀을 흘렸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건상량문에 의하면 1644(인조22) 벽암 국사가 중창하고 1857(철종 8)제봉선사가 중건한 후 2003년 새롭게 사찰전체를 단장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5, 측면 3칸의 장방형으로 단층은 팔작집 형식을 취하고 창방과 상방 사이에 3구할의 상방벽을 만들어 이 부분에 벽화를 그려 넣어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 벽면은 1857년에 그린 벽지불탱화, 십오왕불탱화가 있고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조선 후기의 기본목조건물양식을 하고 있다. 불단에 안치된 불상으로 소조삼존불좌상으로 석가, 아미타, 약사불의 삼세불을 모시고 좌고가 540cm로 국내최대 좌불상이다.

▲ 송광사 사적비(전북 유형문화재 제5호)

송광사 부도암가는 길목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송강사 사적비를 만난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호인 송광사 사적비는 송강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안내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비석은 송광사를 세운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조선 인조 14(1636)에 세웠다. 앞면의 글은 신익성이, 뒷면의 글은 이취반이 지었다.

 

비석 제목 글씨는 신의성이, 본문 글씨는 선조의 8남 의창군이 썼다. 앞면에는 고려시대 보조스님이 이곳에 절터를 잡고 제자들에게 절을 지을 것을 당부하였으며, 광해군 때부터 절을 지어 벽암 스님을 초대 주지로 모셔왔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또한, 보조 스님에서 벽암의 제자, 시주자, 건축공의 명단 등이 적혀 있다

송광사 벽암당 부도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4호이며, 송광사 부도전에 자리 잡고 있다. 부도에 관한 안내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부도탑은 병자호란(1636) 때 최고의 승병대장이었던 벽암 각성 큰스님을 추모하여 화강암 자연석을 다듬어 1660년에 세운 것이다. 벽암 스님은 당대 최고의 승려로서 나라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고 수행에 힘썼으며 풍부한 학식을 갖추었다. 나라에서는 그를 대공덕화주로 삼아 50일간 와험법회를 열고 송광사를 다시 세웠다. 그 후 벽암 스님은 이 절의 주지를 역임하고, 1660년 이곳에서 열반하였다.’

송광사 나한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이다. 건물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건물은 조선 효종 7(1656)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안에는 석가모니와 십육나한 및 오백나한이 있다. 근래에 몇 차례 보수하면서 천정과 서까래 일부가 변형되었지만, 기본 구조와 부재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17세기 사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낮은 받침부 위에 커다란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위아래의 굵기가 같고 반듯한 둥근 기둥을 세웠다. 벽에는 돌아가며 벽화를 그려 놓았으며, 전체적인 건물의 모습은 잔정하고 균형이 잡혀 있다.’

나한전 내 모셔져 있는 남자스님인 오백상수 즉, 나한 과 권속상일괄 현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이다. 나한전 내 불상은 조선 효종 7(1656) 만든 작품으로 중심불로 석가여래를 모시고 협시불로 재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두고 있다. 나한은 석가야래의 제자로 아리한과의 진리를 깨달아 존경과 공양을 면하고, 윤회의 삶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도록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이다. 이곳 나한전 오백나한은 생동감이 있어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송강사에는 독특한 건물과 흙으로 만든 사천왕상을 비롯 불상까지 그리고 주술적 모습까지 하고 있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화려한 닫집과 독특한 문창살은 없지만 백제식 평지에 조성한 사찰이라는 독특함과 일주문에서 일직선상으로 금강문, 사천왕, 대웅전까지 시선이 이어지는 곳이다.

송강사의 봄도 아름답지만 종남산(終南山) 가을 추색도 아름다운 곳이며, 절간에서 머물며 즐길 수 있는 세심정(洗心亭) 정자가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도의선사(783~821)는 절을 짓기 위해 종남산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땅 속 용천수가 솟는 것을 보고 절을 세웠다 한다

사찰내에는 보물로 송광사 대웅전(보물 제1243), 종루(보물 제1244), 소조사천왕상(보물 제1255), 소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274)가 있으며, 전북 유형문화재로는 일주문(전북 유형문화재 제4), 사적비(전북 유형문화재 제5), 동종(전북 유형문화재 제138),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전북 유형문화재 제168), 오백나한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전북 요형문화재 제169), 목조삼전패(전북 유형문화재 제170), 나한전(전북 유형문화재 제172), 금강문(전북 유형문화재 제173), 벽암당 부도(전북 문화재자료 제144) 등이 있다.

 

 

 


뭉크의 절규 장엄한 핏빛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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