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이 된 벚꽃의 고고한 자태 “작천정 벚꽃길”
축제기간 일명 작천정이 가까이 있다하여 작천정 벚꽃 길로 불리는 약 500m 거리는 지나친 풍물시장으로 고목이 된 벚꽃을 가려 놓는다. 작천정 벚꽃은 1936년~39년 삼남면 곽해진 면장이 면서기였던 지역주민과 함께 황무지였던 천변에 식재한 것으로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다리에 총알이 관통되는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하였고 1939년 52세로 타계하자 그 뜻을 기려 지금은 상북 경의고등학교 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 묵객이 즐겨찾던 ”작천정“
작천정 벚꽃길이 끝나면 곧장 작괘천과 서예가 김성근씨가 현판을 올린 작천정이 자리 잡고 있다. 작천정 앞 맑은 청류는 간월산(1,083m)에서 모여든 계류가 모여 큰 계곡을 이루는 곳이 작괘천이며, 작괘천을 배경으로 올라앉은 정자가 바로 작천정이지만 흔히들 이 일대를 작천정이라 부른다. 작천정 일대는 봄철 만개한 벚꽃을 시작으로 여름철 계곡을 찾는 피서객으로 넘쳐나며, 가을이면 간원산 단풍과 신불산 억새를 향한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
세종 20년 이 일대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며 만든 정자 작천정은 작괘천 암반층이 흡사 술잔을 주렁주렁 매달아 둔 형상을 닮았다하여 작천정으로 어원의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작괘천은 냇물이 흘러가면서 만든 암반의 패인모습이 큰 것은 절구, 작은 것은 술잔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자갈돌을 헤집고 내려온 물살은 비로소 작천정 앞에서 크고 작은 반석위에 수정같이 맑은 물을 뿌려 놓는다.
작천정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시인 묵객의 발걸음을 대신하여 한때는 고려 말 유배온 포은 정몽주 선생이 자주 찾던 곳이며, 3.1운동을 준비하며 의기투합하였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순국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천주교, 천도교가 들어왔을 당시는 노천교회로 자리를 내 놓은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누각 건물로 울산군수 최시명이 1900년 착공하여 1902년 준공하고 서예가 김성근이 현판을 올렸으며 1944년, 1955년, 1967년, 2005년 중건했다.
작천정으로 진입하는 길목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고목 왕벚꽃나무길이 500m 터널을 이루고 봄이 되면 상춘객을 유혹하며, 인근에는 자수정동굴, 등억온천, 반구대암각화, 천전리각석 을 비롯한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작천정에서 계속 진입하면 자수정 동굴과 등억온천길로 나누어 진다. 봄이면 등억온천길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으며, 온천욕을 즐기려는 사람, 등산을 하는 사람이 찾는 곳으로 모텔촌이 형성되어 있으며, 자수정 동굴은 모터보트를 타고 동굴안을 탐사하거나 걸어서 신비한 자수정 동굴을 두루 여행할 수 있다. 또한 등억온천 지구 입구는 신비한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도깨비도로와 문화재가 많은 간월사지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 작천정을 출발점으로 자수정동굴-도깨비도로-간월사지를 여행하고 지친 심신을 등억온천에서 풀거나 홍류폭포까지 등산을 쉽게 연계 할 수 있다.
국내 최고의 “자수정동굴”
자수정동굴에 과연 자수정이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자수정은 거의 없어 자수정 동굴에서 파는 자수정 역시 진품이라고 보기 힘들다.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2월의 탄생석 자수정은 주로 반지, 브로치, 목걸이 등 여성의 액세서리에 사용되며, 동의보감에는 약재로도 사용 된다 기록하고 있을 만큼 자수정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보석으로 자주색을 띠어 자수정으로 불린다.
일제점령기 당시 광산개발은 불법이였지만 해방과 더불어 별다른 장비도 없이 광산 붐이 일어났고 1891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석광산으로 알려지면서 제일광산주식회사를 설립 후 본격적인 광물채굴을 하면서 국제 인증기관으로부터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던 자수정동굴은 폐광된 후 폐갱도를 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인공 동굴 관광지를 조성하였다.
자수정동굴은 한국자수정산업관광주식회사가 동굴공원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동굴 길이 2.5km 5000여 평을 개방하고 동굴 내 실내온도는 10∼14℃로 여름철에는 풍혈바람이 나올 정도로 시원하며, 겨울에는 포근하여 사철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자수정 동굴 내부에는 자수정전시관, 독도관, 인류변천사관, 인도네시아 원시부족 풍물전, 동굴음악당, 동굴법당, 동굴폭포가 있으며, 야외에는 썰매장과 폭포, 산책로, 도자기촌,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입장료를 포함하여 시설 이용료가 비싼 게 흠이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등억온천 벚꽃길”
국내 온천단지 중 가장 큰 규모인 22만평 부지 위 온천과 숙박업소, 위락시설을 갖춘 대단위 온천타운으로 알칼리성 중조천 수질로 피부병과 신경통, 소화기 질환, 기관지염, 고혈압,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등억온천을 찾는 사람이라면 텅 빈 온천과 상대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대중탕 또는 가족탕을 만날 수 있는데 한 때 등억온천 일부업소에서 지하수 및 냇물을 끌어다 혼합하여 가짜온천수를 사용하다 적발되어 온천객으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하면서 빈 건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등억온천은 신불산 자락에 위치하여 등산객에게 좋은 휴식처로, 인근 자수정동굴을 찾는 어린이 또는 가족형 휴식처 및 봄이면 벚꽃 길과 여름이면 계곡물이 넘쳐 드라이빙을 즐기는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조용한 온천단지로 변해버렸다.
신비한 이적현상 “도깨비도로”
자동차 기어를 중립으로 하고 비상등을 켜고 오르막 앞에서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차가 저절로 오르막을 향하여 움직이는 신비한 도깨비도로가 울산광역시에도 있다.
등억온천 단지 입구에 있는 벚꽃터널 4차선 도로를 진입하면 바닥 유도표시에 “ START"라고 적혀있고 친절하게 안전지대까지 표시해 놓고 있다. 그곳이 출발지점으로 재미나는 실험을 할 수 있는데 그 해답은 착시현상 일뿐 실제로는 약 80cm 정도의 내리막길로 4차선 도로 중 80m 구간에서 발생한다.
주의: 도로를 진행하는 차량과 실험을 하려는 차가 뒤엉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안전에 유의하고 확인.
사라진 옛 절터에 남겨진 유물 “간월사지”
울산광역시기념물 제5호 간월사지는 신라 진덕여왕 당시 자장스님이 창건한 고찰로 임진왜란 당시 폐사되고 인조 12년(1634) 명언이 다시 짓지만 헌종 2년(1836) 다시 폐사되고 1984년 발굴을 통해 정면 3칸, 측면 3칸의 금당 터와 석탑 2기, 축대, 주춧돌, 장대석을 확인하였고 청동여래입상, 청동보살입상, 기왓조각, 질그릇조각 등이 출토되어 당시 상당한 규모를 갖춘 양탑일당식 가람으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 우에 각기 하나씩의 삼층석탑을 두고 있다.
지금의 간월사지에는 작고 초라한 전각 2동이 있다. 입구에 있는 전각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370호)를 봉안하고 있으며, 건물 앞에는 2기의 석인상과 1기의 탑신만 보이고 뒤편으로 요사채와 산신당이 있다.
간월사지 쌍탑 중 서쪽(등억온천방향)에 있는 탑과 동탑이 있는 위치는 동탑의 경우 암반층이 없는 평지에 가까운 반면, 서탑은 암반층 위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 우 거리를 맞춘 것으로 추정되는데 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점과 탑에 새겨진 인왕상의 모습은 완벽에 가깝다.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보물 제370호)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앉은 키 1.35m, 머리 높이 46cm, 무릎 너비 1m의 비교적 안정감이 있는 9세기 불상으로 방치되어 오다가 불상의 목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을 복원하여 1979년 전각에 모셨다. 간월사지 2기의 석탑은 금당지 좌. 우에 매몰되어 있던 석탑을 복원한 것으로 탑신의 각 면 중앙에 문비를 새기고 3단의 턱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75cm의 인왕상을 새겨놓은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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