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왜성으로 전해지면서 잊혀진 선전리성
선진리성은 한때 왜성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전국최고의 벚꽃군락지로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신진리성은 과연 왜성일까? 잘은 알 수 없어도 그곳에서 피 흘리며 산화한 이름 없는 병사는 분명 신지리성을 사수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졌으리라...
선진리성은 이순신장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 옥고를 치루고 나온 후 거북선을 건조한 아군은 1592년 05월 28일 이곳 신진리성 앞 바다에서 처녀출전을 통해 왜선 12척을 격파하는 승과를 거둔다. 정유재란 당시인 1598년에는 조. 명연합군과 왜군간의 처절한 전투를 통해 명나라 장수인 팽신고가 대패한 뼈아픈 현장이기도 한 이곳에는 100년이 가까운 벚꽃이 지천에 널려져 그날의 처참한 기억들을 뒤로한 채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성이 있는 산등성에서 내려다보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면이 바다인 탓에 지리적 요건으로 중요한 요새역할을 하여 왜군과 조선수군간 치열한 자리다툼을 한 곳으로 충무공 해전승첩비와 토성이 아직도 남아있다. 선진리성은 왜장 가토가 만든 울산 학산산성, 서생포성을 비롯하여 기장 묵성리성, 부산진 지성, 웅천 안골포성, 김해 죽도성 그리고 선진리성이 왜성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자료에 의하면 선진리성이 왜군이 만든 왜성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597년 12월에 왜군 시마즈가 수축. 성곽주변을 토성으로 쌓고 일부 중요한 곳에는 석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왜군이 토성을 쌓았을까? 외외로 가까운 곳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퇴각하는 왜군의 거점으로 급하게 만들려면 그곳 지형에 널려있는 자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선진리성은 흙으로 이루어진 성으로 거의 돌을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시간에 쫒긴 왜군은 임시방편으로 흙을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여러 갈래로 나누어 왜군과 전투를 벌려온 명군은 시마즈가 있는 사천을 향하였고 왜군은 주력부대 1만여 명을 이미 신진리성에 주둔시킨다. 이 사실을 모르는 명군 팽신고 부대는 이곳에서 무려 3000여명의 시상자를 내면서 승리하게 되지만 이내 성을 내 놓게 된다. 싸워서 성을 함락시킨 것이 아니라 신진리성을 손에 넣은 시마즈는 뜻밖에 본국으로부터 철수명령을 받게 되고 싸움을 통하지 않은 채 성을 손에 넣었다고 한다. 이 사실들이 왜성임을 굳게 확신하게 만드는 대목이지만 이와는 좀 더 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유재란 당시 이곳에 왜군이 전략적 요충지로 교도부를 확보하면서 왜성으로 불리는 비운을 격지만 정작 왜군이 아무것도 없는 땅위에 스스로가 토성을 쌓고 요새로 만들었나 하는 것이다. 퇴각하는 왜군의 집결지로 급하게 쌓았다는 것은 분명 뭔가 기초가 되는 것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이곳에는 왜군이 점령하기 전에 뭐가 존재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진리성은 일본 측의 기록인 도진가기에서 밝혀둔 것이 전부이다. 일본이 우리의 많은 부분을 왜곡시켜온 것으로 볼 때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선진리성의 지명은 조선 후기 수군이 전선소를 설치하면서 선진, 선소로 불리게 된다. 구한말에는 화계, 1914년 행정구역 재편성때 선진이라는 지명을 다시 되찾게 되었다. 여기서 선진이 화계로 불리운것은 당시 만개한 벚꽃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려 초 기록을 보면 동국여지지 사천현 고적조에 고통양창이라는 것이 나온다.
인근에서 거둔 조세를 조정에 받치기 위하여 모우는 12조창 중 하나로 그 규모가 3.086척이라는 기록을 볼 때 이미 이곳은 비록 성곽의 규모를 갖춘 성은 아니지만 거두들인 조세를 모우고 지키기 위해서 큰 건물과 외곽을 경비할 성곽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냥 가져온 조세를 창고에 넣어두고 병졸 몇 명으로 지킨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모든 정황을 근거로 볼 때 당시 조세창을 경계하기 위하여 일부 토성이 아니거나 토성을 겸한 바깥 담장이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일본은 패전을 통해 퇴각하는 과정에서 집결지를 물색하는 도중 일본과 가깝고 바다와 바로 연계되는 이곳에 적당한 방패역할을 하는 담장까지 갖추고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선발된 왜병은 이곳 기존 담장을 따라 토성을 보충하거나 더 연장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의 벚꽃은 무술전투 당시 왜장 도진의홍(島津義弘)의 후예(後裔)들이 이곳을 매입해서 공원을 만들고 정상에 사천신채첩지비라 새긴 비석을 만들고 주변에 벚꽃을 심었지만 해방직후 주민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지금은 사천해전승첩비가 서 있고 전몰자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충령비와 매향비가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다.
국내 낙조여행지로 알려진 사천실안낙조
비토섬을 돌아 다시 삼천포항 방향으로 따르면 갓 잡아 건져 올린 죽방렴 그물에 걸려든 충혈 된 눈동자들이 사천의 작은 섬을 불 밝혀 놓고 동공을 멀어 버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실안낙조는 남해여행의 길목에 자리 잡고 오가는 여행객의 마음속에 노랗게 타다 붉게 사그라지는 열정을 아낌없이 보여주기에 새천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9대 일몰여행지로 당당하게 선정되었다.
일몰이 시작되면 죽방렴으로 향하는 뱃길이 바빠지고 일몰이 절정에 달하면 되돌아 나오는 뱃길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과히 환상적이다. 해가 섬으로 살짝 넘어가면 이번에는 남해로 잇는 연륙교의 야경이 남은 아쉬움을 달래주는 그야말로 야간 길목의 최고 여행지가 따로 없다. 일몰을 보고 다음날 일출도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는 기회로 실안동의 낮은 밤이 되어도 꺼질 줄 모른 채 가슴속에서 이글꺼리며 재촉하고 있다.
실안마을을 잇는 대방동과 실안동 사이에는 고급 카페와 쉬어갈 공간이 몇 있다. 일몰은 해안도로를 따라 실안 소공원 방향으로 진입하는 것이 좋으며, 실안동 해넘이의 장관은 죽방렴 기둥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모습과 금빛을 가르고 지나가는 고깃배 그리고 저도, 마도, 둥근섬, 신섬, 늑도, 학섬, 초양섬, 모개섬, 코섬 등으로 많은 유무인도를 넘어가는 낙조의 모습이다.
실안낙조가 사람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그 여운을 남겨놓는 이유는 거센 파도가 없다는 점이다. 물의 유속과 달리 남해도와 창선도로 인해 실안낙조가 있는 일대는 그야말로 평온 그 자체로 흡사 호수에 온 착각을 통해 환상의 낙조여행 코스를 만들어 낸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사천연륙교
실안낙조 전망대는 곧장 연륙교로 이어진다. 연륙교를 건너 남해군으로 진행하거나 지친 허기를 삼천포항에 들러 싱싱한 횟감으로 배를 채우고 고성군으로 향해도 좋다. 새로운 명물로 부각된 연륙교는 교량이 연이어 이어져 전국의 연륙교를 다 전시해 놓은 듯 다양한 연륙교를 자랑하며 남해 지족으로 이어져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바다와 이웃하는 그 즐거움은 배가된다. 삼천포에 접어들자마자 이정표를 따라 진입하면 남해대교와 비슷한 첫 번째 다리인 삼천포대교가 나온다. 사천 대방동을 출발해서 모개섬을 잇는 3경간 강합성 사장교로 길이가 436미터에 이르며,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곧장 이어지는 다리가 일반다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늑도대교를 지나간다. 늑도대교는 초양섬에서 늑도로 잇는 340미터로 2경간 피시박스 상자형교이다. 중간에 섬이 주춧돌 역할을 한다. 늑도대교를 지나면 붉고 선명한 다리가 정면에서 마주하는데 모양섬과 초양섬을 잇고 있는 202미터의 다리로 하나의 원을 반으로 짤라 상단부를 올려 중로식의 초양대교이다. 초양대교를 지나면 창선대교가 섬을 잇고 남해로 들어선다. 창선대교는 이미 남해에서 한번 무너진 후 다시 만든 것으로 기존교각의 자리에 위치하고 그 옆으로 바다의 아름다움이 개벌 냄새와 함께 물씬 풍겨져 온다.
교각과 교각을 교묘하게 섬을 두고 이어져 있는 연륙교는 사천에서 남해까지 마치 대교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저마다의 다리가 각자 다른 모습을 한 7개 교량이 연결, 총 2.1km에 이른다. 1994년 공사를 시작으로 9년 만에 완성된 교각 중 삼천포대교는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하여 더욱더 의미가 깊고 국내에서 작은 섬을 서로 잇는 국내 최초의 건설은 앞으로 다 많은 섬이 육지로 탈바꿈 할 수 있는 전환점이 아닐까 싶다.
연륙교는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어쩌면 밤 보다 해질녘 노을과 함께 잠시 후 연륙교 교각을 밝혀주는 불빛이 점등되는 그 순간이 더욱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연륙교는 바다를 건너기 전 낙조로 아름다운 실안낙조 해안을 따라 진입하면서 연륙교 진입 후 오른편 공간에서 낙조를 감상하고 다리를 다시 돌아 나와 야외주차장에서 연륙교 야경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연륙교를 지나면 곧장 남해군으로 지족대교 좌, 우로 펼쳐진 죽방렴을 구경하고 상주해수욕장이나 남해읍으로 곧장 달려갈 수 있다.
삼천포항
우리나라 5대 미항 중 한곳인 삼천포항은 남해안에서 큰 어항에 속하는 항내수 면적 213만 6000 m2으로 항만법상 1종항에 속한다. 한때 삼천포 쥐포가 유명하던 시절 삼천포 어항 주변은 쥐포를 말리는 장관을 연출하였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그곳에 횟집이 자리하고 있다. 삼천포항은 1966년 4월 16일 개항하여 많이 쇠락하였지만 지금도 한려해상 기항지로 손색없다.
횟집단지로 들어서면 고기를 수족관에서 직접 골라 이층에서 재료비만 주고 매운탕까지 먹을 수 있으며, 마른 건어물이 단지내 입구와 도로변 그리고 항구를 따라 형성된 어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삼천포항에서 고성군으로 진입하면서 하이면 상족암군립공원 및 계승사를 거쳐 옥천사 그리고 당항포국민관광지에서 세계공룡엑스포를 여행하거나 삼천포항에서 남해군으로 진입하여 죽방렴 및 독일마을, 나비생태관을 돌아 상주해수욕장, 가천 다랭이마을, 금산을 경유하여도 좋다. 벚꽃시즌에는 남해대교에서 하동으로 잇는 국도를 따라 하동으로 진입하면서 벚꽃을 감상해도 좋다.
'2015년 이전여행 > 05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남 진해] 벚꽃길과 해안선 드라이빙 코스 따르기 (0) | 2010.05.30 |
---|---|
[울산 언양] 작괘천을 따라 오르며, 작천정, 등억온천, 간월사지 (0) | 2010.05.30 |
[전남 함평] 함평에서 무안 도리포항을 잇는 드라이빙코스 (0) | 2010.05.30 |
[부산 광역] 쪽빛바다 해안선 태종대~암남공원~용두산공원~민주공원 (0) | 2010.05.30 |
[경남 하동]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 구례까지.. (0) | 2010.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