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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역] 쪽빛바다 해안선 태종대~암남공원~용두산공원~민주공원

허영꺼멍 2010. 5. 30. 22:14

 

 

 

용두산공원

 

영화 친구에서 부산 야경을 내려다보며 주인공이 이야기를 나눈 곳이 과연 어딜까? 그 멋진 야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부산을 대표하는 부산타워로 바로 용두산 공원이다.

 

소나무가 많아 송현산으로 불리던 곳을 1898년 풍수설을 신봉하는 일본인 승려에 의해 산의 형태가 흡사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하여 용두산으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공원 내 신사를 크게 지었다. 오늘날 까지 우리는 용두산 공원을 그냥 부르고 있지만 서둘러 일본 승려가 마음대로 작명한 용두산을 송현산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겠다.

 

 

 

해발 49m 용두산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1만2천 평을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일본신사가 있었지만 해방과 함께 일본신사는 헐려 사라지고 한국 전쟁 당시는 피난민들이 형성한 판자촌 지역으로 변했지만 1954년 12월 10일 판자촌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자 나무를 심고 1957년 고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으로 불리다 4.19혁명으로 우남공원은 오늘날 용두산 공원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용두산공원은 부산 바다를 상징하는 오륙도와 함께 육지에는 부산탑이 있다. 해발 69m에 높이 120m로 정상에 있는 전망대는 불국사 다보탑의 보개를 형상화하여 만들고 중앙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타워 전망대까지 이동하며, 그 앞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용두산 공원의 상징인 꽃시계탑, 미술관, 수족관, 용상, 4.19혁명탑, 국민교육헌장비,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 및 1996년 12월 만든 부산 시민의 종이 있다.

 

1973년 11월 21일 완성된 부산타워는 총 높이 120m로 승강기 2대가 운영 중이며, 청동으로 제작된 충무공 동상은 높이 12m이다.

 

   

태종대

 

예로부터 많은 묵객이 찾아와 해안절경에 심취하여 자연과 함께 노닐던 태종대의 생성시기는 12만 년 전으로 제4기 최종 간빙기 이후 부산만의 간헐적인 융기운동에 의하여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쥐라기 마지막 무렵 공룡이 활보하였고 신라 무열왕이 삼국 통일대업을 이룬 후 전국을 순회하다 태종대의 해안 절경에 반하여 오늘날의 태종대로 부른 천하절경의 명소이다.

 

 

 

태종대 망부석 일대에서 발견된 90여개의 발자국은 망부석과 인접한 두 개의 평지로 4백여㎡ 와 동편 바위 일대 8백여 ㎡로 백악기시대 공룡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룡의 발자국을 추정해 보면 높이가 15m, 무게가 20t 가량의 초식공룡이 아닐까 하는 주장이다. 태종대 공룡이 부각되는 이유는 인접한 고성 상족암 보다 1천만년 뒤의 것으로 한반도에서는 가장 후기의 발자국으로 추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룡의 발자국은 이 일대가 호수로 융기파식대로 퇴적층에 찍혀있는 발자국 위에 시대를 달리하는 퇴적물이 쌓이고 굳어지는 과정을 통해 바다에 잠겼다 융기되면서 노출된 것으로 삼면의 바위가 모두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 이 일대에 더 많은 발자국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태종대 해안단구의 특징은 지반이 융기하거나 낮아지면서 형성된 흔적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전형적인 융기 파식대로 이곳에서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것은 지나칠 수 없는 해안 융기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태종대의 암반은 1억 년 전부터 8천년 전 사이인 중생대 백악기로 주장하는 설에 의하면 1년에 1.4mm씩 솟아오르면서 태종대가 형성되었으며, 지금도 파도에 의하여 침식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언젠가 태종대의 두 개의 돌출부분은 갈라지고 떨어져 나갈 것으로 예측이 가능하다.

 

태종대의 개방은 1967년 건설교통부에서 유원지로 고시하고 1969년 관광지로 지정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후 1970년 태종대 해안선을 따라 총연장 4.3km의 도로개설을 착공, 1973년 완공하고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태종대의 명물이 하나씩 자리 잡았는데 기암바위가 만든 신선대(사선암)와 왜국에 잡혀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영도남항을 불 밝히는 등대, 주전자를 닮았다는 주전자섬 등이 있다.

 

태종대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몇 가지 구전이 동래부지에 전해져 온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무술을 연마하여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설과 통일을 이룬 태종무열왕이 궁인을 대리고 와서 비경을 즐기며 놀았다는 설, 태종무열왕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 궁인이 마중 나와 연회를 베풀었다는 설, 태종무열왕 사후의 장소였다는 설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태종대는 단비를 기다리는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동래부사가 직접 기우제를 통해 가뭄해소를 빌었는데 기우제 역시 태종무열왕과 관련이 있다. 태종무열왕이 병환으로 있을 당시 가뭄이 심해져 자신의 치료보다 단비를 기다렸지만 5월초 열흘날 결국 승하하였고 기우제를 통해 음력 5월 초열흘날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 부르기도 했다.

 

태종대는 무료입장을 실시하면서 승용차진입을 통제하고 다누비열차를 대신 순환도로를 따라 운행한다. 다누비열차는 하절기( 4월~10월) 09:00~24:00 09:00~22:00, 동절기(11월~ 3월) 09:00~21:00 09:00~20:00 운행되며, 아침 안개가 피어나는 시간에 순환도로를 산책하는 기분은 묘한 느낌을 주며, 순환도로에 피어나는 철쭉과 자생하는 해송, 겨울철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꽃은 환상적이다.

 

  

 

송도 암남공원

 

암남공원은 부산 쪽빛바다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탁 트인 전망과 함께 크고 작은 선박들이 머물러 있는 모습, 자갈치 항구로 몰려가는 배가 물살을 가르는 모습 그리고 영도에서 송도를 잇는 남항대교의 곡선을 두루 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은 낚시꾼이 주차장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여가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은 해안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잇고 인근을 약 12만평의 자연 상태 공원으로 중간 중간 구름다리를 설치하여 바다 전망과 함께 지겹지 않도록 배려해 놓았다. 1972년 공원화 된 후 1996년 개방과 함께 주변을 단장하였다. 암남공원의 특징은 바다 위 머물러 있는 대형급 선박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비로소 부산이 항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곳이다. 암남공원에서 해안데크를 따라가면 송도해수욕장이 나온다. 부산에서 제일 먼저 개장할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 800 m, 너비 50 m, 평균수심 1~1.5 m로 지금도 좋은 경관을 자랑하지만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에 밀려 지금은 주변 사람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민주공원 및 중앙공원(구. 대청공원)

 

민주 부마항쟁 20주년 기념사업으로 개원한 민주공원은 부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청공원에 자리한 민주항쟁기념관으로 1999년 개관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의 체험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민주공원은 일제 감정기 당시 항일투쟁을 시작으로 4.19민주혁명,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 등 민주 항쟁관련 다양한 자료가 전시. 그 뜻을 기리고 있다. 민주공원 맞은편에는 중앙공원으로 1948년 이후 국가를 위해 순국한 7,704의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충혼탑이 자리잡고 있다.

 

 

 

중앙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대청산에 몰려 판자촌을 형성하고 살던 부산에서도 가파르고 높은 지역으로 이 일대의 주민들이 전망 좋은 곳에 휴식처를 만들면서 대청공원이라 시민들에게 알려져 왔다. 대청공원에서는 부산역을 비롯하여 부산항과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1986년 정식으로 중앙공원이란 명칭과 1999년 민주공원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또한 공원 정상에는 1948년 이후 국가를 위해 순국한 7,704의 호국영령을 모시고 높이 70m의 충혼탑이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