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사찰의 봄소식은 선암사 선암매를 만나며
선암사 사계는 변화무상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사찰 속의 정원과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를 비롯하여 태백산맥 조정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경내를 돌다보면 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선암매(매실나무)와 사찰 담장너머 곱게 피어난 동백꽃, 호젓한 산길에 만나는 가을 단풍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승선교는 금방이라도 계곡물이 멈추어 버릴 듯하며, 선암사 해우소를 찾아 세상의 모든 근심과 번뇌를 훌훌 벗어 던지고 내려오면 맑은 계곡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사찰이다.
선암사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호법선신(護法善神), 방생정계(放生淨界) 목장승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04년 만들어 선암사를 지켜온 목장승은 설선당에 보관하고 1987년 밤나무로 복사품을 만들어 대신 자리를 지키게 하고 있다. 호법선신은 세가닥 수염을 둥글게 꼬고 치켜 올린 모습이며, 방생정계는 수염을 꼬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선암사로 출입하는 모든 생명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갈 준비로 몸과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하라는 의미로 잡귀의 출입을 통제하고 계곡을 따르면 아치형 다리를 만날 수 있다.
호암화상이 1713년 시작하여 6년에 걸쳐 만든 우리나라 최고 걸작품 다리 승선교를가 있다..자연암반 위에 아치형으로 쌓고 정 중앙에 용머리 형상을 한 용두를 박아 다리를 지탱하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던 승선교는 태풍 매미의 피해로 계곡의 물살이 암반석을 기울게 하여 2003년 해체 복원을 통해 일부 석재를 새롭게 교체하였다.
조선 숙종 34년(1698) 호암대사는 백일기도를 드리지만 관음보살을 만나지 못하자 자신의 불심이 미력한 탓으로 돌리며 벼랑에서 자살을 결심하게 되지만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대사는 그 여인이 틀림없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절 입구에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며 절 입구에 무지개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설과 함께 다리 옆에는 승선교비명이 새겨져 있다.
승선교를 지나면 곧장 선암사 첫 번째 관문인 강선루가 있다. 2층 누각으로 선암사 계곡에 일곱 선녀가 내려와 노닐다 올라가곤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강선루는 한쪽 방향을 터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고 중간에 버팀목을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지만 기둥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계곡으로 난 기둥은 흡사 계곡에 기둥이 발을 담든 형상을 하고 있다.
삼인당에 도착하면 비로소 사찰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은 연못과 삼나무 세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삼인당은 길게 연못을 만들고 차밭을 따라 흐른 물이 모여들었다 나가도록 도선국사에 의해 축조되었다. 삼인은 불교사상에서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이다.
차밭을 지나면 하마석이 버티고 있다. 사찰로 진입할 때 신분을 막론하고 하마석이 있는 지점부터는 말에서 내려 보도로 부처를 만나야 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출입하는 최종 관문으로 하마석을 지나면 일주문이 열린다. 일주문은 이 선암사에서 유일하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파손되지 않은 것으로 이곳부터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법당이 흩어져 있는데 모두를 열거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정도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선암사는 조계산 자락에 터를 잡은 조계종 다음으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조계종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사찰의 멋을 고루 갖춘 절로 태백산맥의 배경지요 작가 조정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때 선암사는 60여동의 대가람으로 백제 성왕 시절 고구려 아도화상이 비로암 자리에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근거가 없고 9세기경 도선국사가 남방비보를 위해 선암사의 하나로 확장 후 고려 선종9년에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에는 500년 되는 10여 그루의 홍매와 백매가 봄이면 서둘러 꽃피우고 겨울이면 동백의 화사함이 선암사를 꾸며주고 있다. 선암사는 많은 유적과 유물을 비롯하여 최근 영화 촬영지로 알려져 있는데 아제아제바라아제의 마지막 촬영을 시작으로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취화선 중 장승업의 젊은 시절 유랑길을 떠나고 온통 붉게 수놓은 단풍길 거니는 장면이 선암사이다. 최근 영화 동승의 촬영지로 부쩍 관광객이 늘고 있으며, 불가리스 선전에 나오는 노승과 동자승의 뒷간 이야기도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
뒷간 이야기는 이 선암사가 제격이다. 그 이유는 선암사 뒷간을 두고 시집에서 나올 정도라는 부분이다. 정호승의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를 통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묵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가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는 부분이다. 선암사 해우소란 말은 이제 더 하지 않아야겠다. 버젓하게 뒤깐이라고 못을 박아 두었기 때문이다. 뒤깐은 온통 열린 공간이다. 앉으면 서로의 뒤통수가 보인다. 남녀의 구분은 있지만 별다른 칸막이가 없다. 정작 뒤깐에 앉으면 덜컥 겁부터 난다. 입구에서 보면 2층 구조이고 위에서는 1층이니 깊이가 상당하지만 냄새가 전혀 없다. 오히려 풀향이 나는데 낙엽이나 볏짚 따위를 넣어 자연발효 시킨 후 밑에서 거두어 거름으로 사용하니 고약한 냄새라곤 맡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불교유적
선암사각황전(전남문화재자료 제177호)
선암사 경내에서 북쪽 끝지점 무우전 안쪽에 위치한 각황전은 철불을 봉안하고 1900년경 석고로 도색하였다. 정면1칸, 측면 1칸의 다포계약식의 팔작지붕을 올리고 있다. 각황전은 장륙전으로 석가여래의 모습인 장륙존상을 봉안하고 있다.
선암사괘불(전남유형문화재 제27호)
한국에서 제일 큰 괘불 중 하나로 영조 29년(1753)쾌윤(快玧)화사의 주도로 조성된 작품으로 조선시대 후기에 만든 8.5×13.5m 이다.
선암사금동향로(전남유형문화재 제20호)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향로로 고려시대 향로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특별한 명문과 조각은 찾을 수 없고, 향로 전후 양면에 한 줄로 원형 인동무늬를 입사하고, 가운데 卍자를 새겨놓고 몸통 아래에 16판의 연꽃을 양각해 놓았다.
선암사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대각국사(1055-1101)부도로 사각형 지대석 위 팔각원당형의 전형적 고려전기 부도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선종 3년(1086) 해인사에 주석한 대각국사가 대각암에 주석한 일이 있어 당시의 대각국사 영정과 가사, 부도 등의 유물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여 진다. 전체높이 2.42m이다.
선암사동부도(보물 제1185호)
고려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동부도는 전체 3.16m로 화강암에 팔각원당형 부도로 소박한 느낌과 화려한 꽃무늬를 둘러 고려전기의 우수한 부도로 알려져 있다.
선암사마애여래좌상(전남문화재자료 제157호)
대각암으로 향하는 길목 중간에 위치한 높이 7m 암벽에 음각한 여래좌상으로 높이 4.8m, 너비 1.2m 마애석불이다. 석불에는 갑진삼월일 명문이 새겨져 있지만 연호가 없어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며, 법주사 마애여래상과 흡사한 모습이다.
선암사북부도(보물 제1184호)
화강암의 팔각원당형 부도로 고려 전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는 높이 2.51m 부도탑이다.
선암사삼인당(전남기념물 제46호)
경문왕 2년(862) 도선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으로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섬을 만들어 놓은 2.2대 1의 비율로 1996년 복원공사를 하였다. 불교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연못 양식으로 선암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암사삼층석탑(보물 제395호)
선암사 대웅전 앞 좌우에 있는 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석탑으로 신라 중기 이후 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은 장대석을 짜고 하대석과 중대석을 짜고 탑신부를 올렸다.
선암사승선교(보물 제400호)
화강암으로 만든 아치형 다리로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답다. 전설에 의하면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만든 것으로 전하며, 임진왜란 당시 파손된 것을 순조24년(1824) 사찰을 중건할 당시 다시 가설하고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로 다시 해체복원하였다.
선암사대웅전(보물 제1311호)
현강왕 5년(875) 선암사 창건과 함께 건축된 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현종 원년(1660) 중건 되었다가 영조 42년(1766) 화재로 또다시 소실되고 순조 24년(1824) 재중건 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외3줄목, 내 4줄목의 다포식 조선후기 건축양식이다.
선암사팔상전(전남유형문화재 제60호)
팔상도를 모신 전각으로 선암사 사적기에는 숙종 30년(1704)과 숙종 33년(1707)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남선의 심춘순례에는 팔상전에 화장찰해도를 주벽으로 모시고, 팔상도와 33조사상을 모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팔상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대웅전 보다 1단 높게 축대를 쌓았다.
'2015년 이전여행 > 06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남 광양] 호국사찰 중흥사 (0) | 2010.06.13 |
---|---|
[전남 광양] 동백숲길이 아름다운 옥룡사지 (0) | 2010.06.13 |
[경남 통영] 생의 애환이 뭍어나는 "동피랑 언덕뻬기" (0) | 2010.06.13 |
[부산 광역] 제10회 광안리 어방축제에 가다. (0) | 2010.06.12 |
[부산 기장] 장산의 품속 계곡이 흐르는 "안적사" (0) | 2010.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