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1차 코스로 화랑교육원에서 출발하여 칠불암을 거쳐 금오산 정상까지 오른 후 다시 화랑
교육원으로 내려 온 후 남산을 올 봄이 채 가시기전에 남산 골짜기를 전부 오르기로 결정하였
고 이왕 내친김에 2차 코스로 삼릉을 잡았다.
일단 얼마나 많은 유적과 산의 높낮이를 전혀 모르는 만큼 우선 금오산 정상에서 하산코스를
결정하기로 하고 삼릉 그리고 상선암을 거쳐 금오산 정산으로 오르기 위해 주차를 하고..
삼릉으로 오르는 길은 부자집 정원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수형을 가진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길을 터 놓는다.
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
부른다. 이 계곡에는 11개소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으
며, 금호봉 정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탐방로이다.
삼릉에서 출발을 고하다.
안개낀날 빛내림이 좋아 사진작가를 불러 모우는 삼릉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은 54대 정명왕
53대 신덕왕, 8대 아달라왕의 왕릉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잠시 가볍게 눈인사 올리고 천년의 숲
을 향해 두려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첫 발을 내 딛는 순간..
삼릉 주변 소나무의 적절한 배치에 의해 왕릉에는 빛이 오랜시간 머물 수 있다. 주변 그림자는
무덤을 지키는 군졸처럼 무뚝뚝하게 호위를 하듯 미동조차 없다.
탐방로에서 만난 첫 불상의 잔해들
탐방로 초입에서 만나는 부처는 세월에 노출되어 깍여 세부적 표현을 알 수 없다. 얼굴은 이미
사라져 버린 탓에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신라인의 당당한 기상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삼릉을 떠나 초입에서 만난 목없는 석불과 석재의 파편들이 오른쪽 탐방로에 모여 있다. 아마
이 일대가 사찰이 있었던 사지였을 터이다. 또한 이 일대는 일본에 의해 또는 다른 이유로 인
해 부처의 목은 온천치가 못한것이 대부분이라 보는 이들의 가슴이 안탑까울 따름이다.
땅속에 묻혀 있었던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초입 불상을 만난 후 조금 더 숲길을 따라 산책하듯 오르면 목이 없는 불상과 바로 윗편에서
바위에 새겨진 1구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k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특히 이 부처님은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
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
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소중한 역사 자료가 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으로 부터 왼편
언덕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불상은 풍만한 얼굴에 삼면보관을 올린 관음보살상으로 돌기
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하였다.
마애관음상과 석조여래좌상을 거쳐 산길을 오르면 약간의 언덕길과 계곡이 이어진다. 물소리 철철
넘쳐나야 봄이 제맛이지만 계곡은 목마르고 언덕길을 따라 호흡을 힘들게 할 무렵 선각육존불 20m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계곡 돌다리 건너 선각육존불을 만나다.
선각육존불은 제법 넓은 공간을 앞에두고 있으며, 바위면 2개를 이용하여 독특하게 불상을 표현
하고 있는데 꽃을 공양하는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로 남산에서 확인된 부처 중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개 바위면에 각각 3구씩 표현되어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다.
앞면 바위에는 서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보살이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꽃을 공양하고 있
는데 아마타삼존으로 부르며, 불상을 보호하는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목에 방울 두개를 달고 있는 장식이 목특하다.
선각육존불을 구경하고 다시 계곡을 건너면 삼릉에서 올라오는 길과 이어지면서 가파른 언덕이 시
작된다. 상선암으로 가는 길목에서 저 멀리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데......
경주 삼릉계석불좌상은 삼릉에서 올라오면서 만나는 보물 제666호로 상릉계곡 중부능선쯤에 위치
하고 있다.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으로 불상은 불두와 불신
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파손이 심했던 불상을 보수하여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조각
수법으로 8새기 후반에서 9세기 초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은 높이 1.42m, 대좌 높이 0.96m
불상의 총높이 2.38m이다.
성선암에 오르다
상선암으로 오르는 경사길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꾸역꾸역 올라
야 하는 인내의 길이다. 상선암 불경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다 언덕에 올라서는 순간 벚꽃이
바람에 흩뿌린다. 천년의 길에서 만나는 벚꽃의 도도한 자태에 봄이 이미 스쳐가고 있다는 사실
을 느끼고 약수물을 한컵 받아들고 절집 한귀퉁이에서 등줄기 땀을 식혀야만 했다.
상사바위와 바둑바위를 올려보니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하고.. 되돌아 가자는 생각에 내려오는 등
산객에게 이 근처 불상이 있는가에.. "바로 위에 올라가면 있지요.." 바로 위.. 결국은 바로 위만 올
라가 보자는 생각으로 바로위로 오르는데...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만나다
유형문화재 158호 남산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지금 동편의 암반에 균열 박리되어 위험하여
조심하여야 한다는 안내판과 함께 상선암에서 오른지 5분도 안돼 큰 규모의 좌상이 자연석을 광
배로 한 모습으로 공간 시선을 모우고 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바둑바위 남쪽 중턱 오르막길 왼편 벼랑 위 돌출된 자연석을 다
듬어 조성한 불상으로 겹겹이 형성된 자연석을 광배로 활용하여 따로 광배를 만들지 않은 독특
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광배를 만들려다 그만 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높이 7m로 냉골에서는 가장 큰 불상으로 남산의 북봉인 금오봉을 향해 앉아 있으며, 입체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아래편에서 올려다 보면 앉은 발을 모습이 크게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가지런하게 무릎
에 올려놓고 결좌부좌를 하고 있다. 작품은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불좌상은 현재 유형문화재 제 15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지만 바위에 균열이 심하고 풍화가
진행되어 급급한 훼손이 일어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바둑바위에서 내려다 본 석불의 모습. 이곳에서 낙조를 촬영하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시
간에 쫒겨 다음 기회로 패스.. 그리고 오르막길도 끝이나고 지금부터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 된다
바둑바위 뒷편에 자리한 상사바위는 여느 산이면 다 있는 상사바위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바위의 규모는 압도적이며,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 낮는다는 속설이
있다. 바위 중앙에 재단을 만들어 놓았으며, 머리가 없는 작은 석불 1구가 비스듬하게 서 있다.
산아당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놓았다. 신라 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와 소원을 빌던 곳으로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 있다고 동경잡기에 전하고 있다.
바둑바위와 석불을 금오산 정산 능선에서 넌저시 바라보니 천년고도 신라인은 남산 골짝을 따라 종
교적 이념에 사로잡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위에 부처를 새기고 극락장생을 빌었는지.. 왜 이곳에
집중적으로 조성했는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 드는 듯..
오후에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 삼릉입구로 부터 상선암을 거쳐 바둑바위 그리고 금오봉 정상
에 도착하였지만 점점 다리는 풀려가고 배낭에 물은 떨어졌고..배는 고프고,, 하산길을 포석정
으로 생각했지만 5km를 내려가야 하고.. 결국은 가장 빠른 단거리 코스 1.5km인 약수골로 내
려 서기로 마음먹었는데.. 정상에서 약수골로 가는 길은 급 내리막에 사질토로 발은 미끄러져
불안하기만 하고.. 실족사하면 누가..
약수골 마애대불입상이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급경사를 지그제그로 내려서는데.. 정말 식은
땀 나는 코스..
남산 최고 석불을 만나다.
약수골 마애여래입상은 약수골에서 가장 큰 대불이지만 이 또한 목이 사라졌다. 목을 조립
하였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경주 약수계곡 마애 입불상은 금오봉 서쪽 능선 내리막길 중턱 숲속
에 돌출된 바위 남면을 다듬어 조성한 입불상으로 몸의 높이가 8.6m의 자연석에 조성한 마애불이
다. 전체적으로 굵은 선자락을 투박하게 표현 할 정도로 거칠지만 손의 모습은 곱다. 또한 자연석
전체를 깍아 몸체를 새겨 광배가 없고 발은 따로 만들었는데 하나가 아래에서 발견되어 옮겨 놓았
다.
대불이지만 사라져 버린 머리가 없어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알 수 없지만 약수골 험난한 길을 따라
오르다 가장 큰 독립적인 바위를 보고 석공은 정을 들고 새겼을 것이라 보여지지만 올라오는 길이
가파르고 사찰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좁은 공간으로 볼때 절집이라기 보다 바위를 찾아 새겼을 가
능성이 높은 작품이며, 대불 아래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 중간에 사찰
이 있었지 않나 싶다.
대불로 부터 내려선 길에서 만난 알 수 없는 부처와 탑 파편이 모여져 있고 주변에 대나무가 있
는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금오산에서 약수골로 내려오는 길목으로 구름과 맞닿은 곳이 금오산 정상이며, 사진의 중앙 돌출
바위가 대불이다.
계절은 꽃을 피우는 것에 게을리하고 않고 약수골 골짜기에는 물이끼를 적셔 놓을 만큼 물빛이
태양에 녹아나며 이따금씩 찾아온 이방인에 놀란 징금이가 물을 흔들어 놓는다.
약수골에서 만나는 유적은 대불이지만 코스가 워낙 급경사이며, 탐방로가 좋지 않아 올라가는
길 보다 내려오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약수골 초입을 빠져나와 큰길에 접어드니 경주 교소도 남벼락 철조망이 눈에 들어 온다. 경주 교도
소 담벼락을 따라 삼릉까지.. 도로를 걷는데..피곤이 몰려온다.
도로변에서 만난 효자비.. 사연이 적혀 있지않아서 일단은 통과..
드뎌 주차장.. 오늘 올라갔다 내려온 코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름 고생했다는.. 옛날에는 남산을
가볍게 산보삼아 다녔는데..세월이 참 무섭다는..
남산을 여행하다 보면 외국인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날 여행도 외국인 커플과 동행하다 시피 다녔
는데 그들은 우리의 문화재에 많은 관심과 함께 메모까지 하며 문화재를 살폈지만 이와 달리 관광
버스로 온 산악회의 경우는 대조적이였다. 떠들고 우루루 몰려 다니고.. 불상이 새겨진 바위에 올
라 서거나 신도가 절을하는데 주변을 빙빙돌며 떠들고..
경주 남산은 역사투어이다. 단순하게 산을 오르고 내리는 그런 길은 분명 아니며, 많은 외국인은
경주 남산을 통해 천년의 고도 신라를 이해하려 하지만 우리는 단순 등산코스로만 치부하는 사람
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전망 좋은데 자리깔고 앉아 음식과 술을 먹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한 십원짜리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역사가 없다는.. 가슴에 심장이 없는것과 뭐 별반 다를까. 종교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이 땅
위에 있는 불교 문화재는 앞으로 보존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음은 경주 포석정에서 출발하여..
언제가 될지는..
칠불암 코스 http://blog.daum.net/okgolf/546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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