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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얼음골 계곡을 따라 동의굴까지

허영꺼멍 2011. 4. 24. 23:10

 

 

 

 

아침일찍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나를 깨웠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냄비를 들추어 본들

마트에서 사다놓은게 없는데 뭐 뾰죡하게 먹을것이 있을까 마는.. 간단하게 카레한봉

밥에 비벼먹곤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오늘도 산과 들 아니면 박물관이나 공연을 보러

갈지 결정하느라 꽤 고민하다 봄이고 보면 얼음골이 어떨까 싶어 길을 따랐다.         

 

얼음골 입구 물소리가 리듬따라 귓전을 파고드는데.. 어라..왠 작은 산새 한마리 이제

잠께어 세수를 했는지 바위에 올라앉아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전을 외치고 오늘은 사례빙곡 동의굴까지 올랐다가 폭포를 경유하겠다는 당찬 각

오를 통해 딱 열번만 휴식하겠다는..                                                                 

 

 

 

아침일찍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나를 깨웠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냄비를 들추어 본들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면  밀양 천황사가  계곡을 좌우로 두고 천황산 허리춤에 살짝

올려진 듯 자리잡고 있다. 절집이야 최근에 올렸다하지만 법당에는 보물 제1213호 밀

양 천황사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보물 제1213호 밀양 천황사 석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으로 사람의 신체비율

과 거의 흡사하게 사실적으로 조성하였는데 대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특한 형상

을 하고 있다. 2겹 연꽃무늬를 한 상대와 2줄로 새긴 원형받침 중대 그런데 제일 밑의

하대에는 전혀 그 기법을 찾아보기 힘든 복판연화무늬 위에 11마리의 사자를 새겨 돌

리고 정면에는 향로를 끼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받침이 있다.                           

 

 

천황사를 떠나 계곡의 오른편으로 오르면 얼음골로,  왼쪽으로 오르면 폭포로 향하는

보통 오른쪽 다리를 건너 얼음골로 오른 후 동의굴  또는  폭포 방향으로 돌아서 다시

천왕사 앞 쉼터로 합류된다.                                                                            

 

 

천황사를 떠나 얼음골로 향하는 길목 좌우에는  4월 말 진달래 길이 열려져 있다. 돌이

많은 지형탓에 돌길이 잘 만들어져 오르는데는 무리가 없다. 또한 오르는 길 왼편에는

여름철이면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냉굴이 곳곳에 있어  신기한 이적현상을 체험 할 수

있다.                                                                                                           

 

 

 

 

얼음골이라 부르는 곳은 철책으로 둘려쳐져 들어갈 수 없는 DMZ지역이나 다를 봐 없

어 좀더 자세하게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안타까운게 아니다. 밀양 남명리의 얼음

골은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1970년 4월 24일 지정되었다.                                     

 

얼음골은 천황산 북쪽 중턱 해발 700m 에 이르는  약 9,000평 넓이의 계곡내 60도 경

사진 돌밭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삼복한더위 (4월초순~7월하순)에 얼음이 얼고 8

월 초순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며 보호철책이 있는곳에서 계곡따라 천황사 절이 있

는 곳까지 바위틈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신비로운 이상기온지대이다.                  

 

 

 

 

얼음골 사례빙곡 지역에서 직직하면 동의굴이 870m 지점에 있다.  왼편으로 폭포가는

길이 열리는데 출발때 이미 동의굴로 향하기로 결정하였기에 곧장 오른데.. 직선에 가

까운 경사에 시작부터 숨이 가슴팍까지 차 오른다.                                               

 

 

 

 

 

 

 

 

 

천황사를 떠나 얼음골로 향하는 길목 좌우에는  4월 말 진달래 길이 열려져 있다. 돌이

 

동의굴 앞에 도착하고 보니 동의굴이란 지명부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드라마 방영이후

허준이 이곳에서 해부를 진행하였다는 설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어니 안타까운 마

음이야 접어둔다하지만 잘못된 역사 인식은 어찌할지..                                          

 

동의보감 허준에 관하여 알아보자.                                                                    

 

허준(許浚:본관 양천(陽川), 자 청원(淸源) 호는 구암 1546-1615) 용천부사(龍川府使)

 지낸 허론(許論)의 서자(庶子)로 김포(金浦)서 출생. 1613년 출간된  스물다섯권이

한질로 된 동의보감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과 이웃한 나라까지 전해질 정도로 당시

파격적이고 내경,외형, 잡병, 탕액, 침구 등 세분화하여 정리한 최고의 의서이자 의학

백과사전이라고 전하지만 정작 허준은 온통 신비에 싸여 그 존재를 알리지 않고 있다

 1991년 민통선에서 초라하게 변해버린 허준의 무덤이 발견되지만 허준에 관한 기

 기록은 없다.                                                                                                 

 

최근 허준의 나이를 산출하는 방법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 간

사실을 두고 그 진위성 여부를 가려내었다. 당시 허준은 선조에게 공신의 자격을 부여

받았다는 점에서 공신록을 열람해 보면 허준은 기해생(1539)으로 7년이나 빠른 나이

 1615년에 77세 일기로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1품 당상관이라는 의술로 명예를 지녔지만 오직 출생신분이 서자라는 이유에서 훗

 족보에 기록조차 전무한 실정이고 보면 허준을 세상으로 끄집어 내 밝은빛을 주려

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상당 부분이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짙은데 그중 1567년 미암일

 이런 구절이 있어 허준의 실상을 전해준다"유희춘은 1659년, 이조판서 홍담에게

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해 주도록 부탁 "이라는 점은 그 동안 알려진 내의원시험을 치룬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편 동의보감은 의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사후에 ‘보국숭

대부양평군(輔國崇祿大夫陽平君)’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으며 생전에 동의보감

외  벽역신방, 언해구급방, 언해태산집요 등을 저술하였는가 하면, 허준이 동의보감을

체계적으로 연구 편찬하기까지 그의 스승인 류의태가 있지만 그를 입증 할 자료는 어

디에도 없고  당시 유교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엄청난 일이고 보면 어쩌면 얼음골

동굴에서 자신의 몸을 내준 유의태는 가공인물이거나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허준의 스승인 류의태는 경상남도 산청에서 "유이태"로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명

의로 허준의 스승일 가능성이 높고 유이태 후손은 지금도 허준의 스승이라 믿지만 허

준과 유이태는 생존한 시기가 전혀다른 허준의 사망이후 태어났다. 그럼 허준에 관한

야기들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수술을 집도했다는 얼음골이나 성깔있는 스승류의태

 이 모든 인물이 가공된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스승 류의태는 어떤 인물일까? 허준의 스승 하면 경상도 산청에 살던 류의태

조정의 부름도 거부하고 백성을위해 의술을 사용한 인물로 허준의 성장과정에 중

요한 구심점으로 자리 잡지만  허준이 생존했던 당대에는 류의태라는 의원은 기록조

 없고 100년 뒤인 조선 숙종 때 산청의 유이태가 있는데  그 의술이 뛰어나 명의로

알려져 있다.                                                                                              

 

결국 허준의 스승인 류의태는 가공인물로서 후세에 누군가 허준과 유의태를 비교하

 만들어 낸 입담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면 동

의보감에 관하여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까지의  기록으로 볼 때 정유

재란으로 중단되었지만 본인이 귀향을 가서까지 의술을 총정리하여 14년만인 광해군

2년인 1610년 8월6일 25권의 책이 완성되고 이름을 동의보감으로 정한 후 1613년 11

 개주갑인자로 인쇄 간행되어 오늘날까지 중요한 의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아도 될 것으로 본다.                                                                       

 

 

얼음골 사례빙곡 지역에서 직직하면 동의굴이 870m 지점에 있다.  왼편으로 폭포가는

동의굴 앞에는 이곳이 소설 동의보감에 기록된 허준선생의 스승 유의태를 해부하였다

는 장소의 배경과 일치하는 점이 있어  살신성인의 정신이 깃든 동의굴이라 불리어지

고 있는 곳이라며 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동의굴 앞 절벽에는 비오거나 물이 많은 날이면 작은 폭포를 이루며, 4월 말이지만 아

직도 눈이 녹지 않고 얼음이 되어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위면에 하얀 부분이 눈이 얼어붙어 있는 모습이다.

 

 

다시 하산이다. 급경사로 인해 한걸음 한걸음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는데..

완전무장한 둔탁한 등산화 소리는 나를 앞 질러 가는가 싶더니..어라 없다.

나도 지리산 노고단을 겨울에 횡단한 사람인데...                                 

 

 

 

 

다시 얼음굴에서 이제는 왼편 가마볼 폭포 방향을 따라 고고씽~~~~~~

 

 

암가마볼폭포는 폭포가 계곡을 파 내면서 기이한 모습을 펼쳐낸다.

 

 

 

 

 

 

 

암가마볼 가기전에 입구에 있는 숫가마볼..폭포..지명의 이유는 폭포가 말해준다.

 

 

 

 

 

 

 

암가마볼, 숫가마볼 폭포가 합류되어 다시 하류지점에서 또 하나의 폭포를

만들어 낸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오늘의 산행을 되돌아 보며..

 

 

 

 

이런저런 핑계로 여행을 하지만..

 

항상 변하는 풍경에..그저 감탄할 따름..

 

주말이라 많은 인파가 산행을 즐길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창녕 유채밭으로 이동했는지..

 

사람은 거의 없고..

 

계곡 물만 잔뜩 먹고 내려와서 오늘 저녘은 굶어도 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