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전여행/04월 여행

[경남 창녕] 관룡사

허영꺼멍 2011. 4. 28. 09:26

 

 

관룡사 여행 중 빠뜨리기 쉬운 하나가 관룡사석장승(시도민속자료 제6호)이다. 남,여 모습의

2기 석장승은 비보목적으로 사찰의 입구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절 입구가 아니라

화왕산 입구에 서 있다고 느낄 만큼 외면 받고 있다.                                                      

 

관룡사 석장승은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은 모습으로 왼편에 남장승(높이 220㎝ 둘레 70㎝)과

마주한 오른편 여장승(높이 250㎝, 둘레 80㎝)로  모두 상투 모양은 있지만 관모는 남장승만

있다. 지금 석장승은 땅에 묻혀야 할 부분이 돌출된 상태로 분실 후 회수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져 모시고 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우뚝 솟은 화왕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관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8대 명찰 중 내물왕 39년(394)에 창건.  진평왕

5년(583) 증법대사가 중창하고, 삼국통일 이후 원효가 중국 승려 일천여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했다 한다.                                                                                                  

 

 

사찰은 대부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광해군 9년(1617) 영운이 재건하고 영조 25년

(1749)에 보수했다. 관룡사 사적기에는 원효스님의 제자 승파스님이 기도를 드리던 중

화왕산 정상의 삼지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로 불렀다 한다.                 

 

사찰 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대웅전(보물 212호), 약사전(보물 146호), 약사전 석조여

래좌상(보물 519호),약사전 앞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11호 삼층석탑과 뒤편 화왕산 자

락 용선대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및 문화재자료 19호 관룡사 부도탑, 문화

재자료 제140호 관룡사 원음각, 민속자료 석장승 등이 있다.                                    

 

돌로 쌓은 석문을 지나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길을 노랗게 물들이고 텅빈 일주문보다

원음각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곧장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과 약사전에 시선을 잡는다.  

 

사전은  중종 2년(1507)재창된 조선시대 초기  건축물로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

좌상을 모시고 앞 쪽으로 고려 전기로 추정되는 관룡사의 유일한 석탑이 자리 잡고 있

 특징이 있다.                                                                                            

 

약사전 앞 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제11호)은  고려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2m

형의 삼층 소형석탑으로 신라시대 석탑기법을 엿볼 수 있지만 전반적인 제작방법은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석탑은 바닥돌 대신 바위에 2층 기단을 올리고 3층 탑신을

더한 모습으로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 쌓았다.                                           

 

약사전 내 석조약사여래불좌상(보물 제519호)은  보물 제295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제작수법과 흡사하여 축소한 모습으로 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고

시대 불상 머리(육계)의 형식과 도식적인 옷자락 및 오른손이 왼발 위에, 왼손이 오

른발 위에 놓여있는 찾기 힘든 형식을 하고 연꽃대좌에 모셔져 있다.                      

 

약사전(보물 제146호)은  조선시대 불전으로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화마로부터 피

해간 정면 1칸, 측면 1칸을 하고, 주심포 양식을 하고 맞배지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불상 1기와 법당 앞에 삼층석탑을 모시고 법당 내벽에는 그림을 모사해 두었다.        

 

약사전 앞을 돌아나오면 곧장 대웅전이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관룡사 중심 법당인 대

웅전(보물 제21호)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후 광해군 9년(1617)  중창하고 영조 25년

(1749) 중수한 전각으로 1965년 8월 해체보수 당시 마루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

 확인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의 전각으로  비로나자삼

존불을 모시고 있다.                                                                                      

 

관룡사 전각을 돌아 나가면 곧장 화왕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이어지고 큰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점점 가까이 다가서면 그곳이 바로 용선대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준

다는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석조여래좌상은 지금의

향으로 모셔진 것이 아니다. 사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과정에서 목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봉합한 흔적이 역력한  석조여래상을 마주할 때면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화

근을 불러 온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관룡사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용선대 끝자

 8각연꽃대좌 위 단아한 미소를 머금고 결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지만 아쉽게도  광

배는 사라지고 앞에 석등으로 추정되는 일부 석재 파편이 남아있을 뿐이다.              

 

관룡사의 내력을 말해주는 관룡사사적기(시도유형문화재 제183호)는 총 12매로 통도

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라시대 관룡사의 창건에 관한 유래와 재산을 기록

한 사적기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정확성이 없지만 발간용 목판 11개

와 서적 1권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관룡사부도(문화재자료 제19호)는 관룡사 전각 북쪽 산기슭에 1기가 있다.

 

관룡사 내 7기의 부도 중 으뜸으로 높이 2.05m, 몸통 1.75m로 큰 부도에 속하며, 조

선 인조 12년(1634) 만든 원음각(문화재자료 제140호)은 영조 39년(1763) 다시 만든

것으로 옛날에는 출입구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룡사 범루

 

 

관룡사 원음각

 

 

관룡사 대웅전

 

 

 

관룡사 삼층석탑

 

 

관룡사 삼층석탑 및 약사전

 

 

약사전 내 석조여래좌상

 

 

 

 

 

용선대

 

 

용선대 석가석조여래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