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즐기는 인파로 가득 찬다. 옥천 구릉을 따라 흐르는 계곡을 따라 완만한 계곡을 오르면
봄철 만발한 진달래 유혹은 떨쳐내기 힘든 곳이 아니던가.
봄이면 옥천계곡 물소리에 흥겨워 장단맞추다 보면 어느덧 산장까지 오르고 잠시 경사지대
를 오른다 싶어면 허준 드라마 세트장에 도착하고 산성으로 쉴틈없이 이어진다.
옥천골로 오르지 않는 사람은 자하곡을 통해 도성암을 거쳐 목마산성으로 오르면 산성부터
정상까지 6만~8만여 평의 억새밭 자락이 바람에 드러 눕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데 봄이면
벼랑 능선을 따라 피어나는 진달래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와 온 산이 불타는 착각에 휩
싸인다.
화왕산성은 둘레 2.6km로 비화가야 당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가
깍아지른 절벽을 전략전술 요충지로 활용하여 정유재란 당시 배화진을 치고 " 이 성이 적
에게 함락되면 우리는 억새 불 속으로 들어간다 " 며 의기투합했다고 전하는 역사의 현장
으로 곽재우 장군의 분전지로 의병승진비(사적 제64호)가 있다.
성내에는 동문에서 남문터로 가는 길에 3개의 화산활동을 한 분화구를 두고 구천삼지 또
는 용지라 불리며 창녕 조씨의 시조에 관한 전설이 서려있다. 목마산성(사적 제65호), 관
룡사와 관룡사 서편 능선 암벽지역 용선대 끝에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특히 1914년 화왕산 서사면의 말흘리에서 발견된 신라 진
흥왕 척경비는 지금 옥정공원으로 옮겨 놓았다.
옥천 매표소에서 정상 억새군락지 까지 5.2km 소요되지만 가파른 코스는 아니기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산장으로 오르기 위해 가파른 길을 오르면 주변 풀숲이 부시럭꺼리고 시꺼먼 생명체가
움직이는데 놀라 살펴보면 산장에서 키우는 염소였다는 것~
산정을 올라 억새장관이 시작되는 드라마 세트장 앞에서 바라본 억새와 진달래 그리고
봄의 파릇한 새싹이 어우러져 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화왕산(757m) 정상부의 험준한 암벽을 이용해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산성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산성의 둘레는 약 1.8km로, 동쪽 성벽의 대부분은 돌로 쌓았으며, 서쪽 성
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높은 곳이 4m 정도로 폭은 3~4m이다.
자연암벽의 틈새는 성벽을 높게 쌓았다. 산성의 출입구로 보이는 서문은 흔적도 찾기
어려우나, 동문 자리 좌우의 석벽은 잘 남아 있다. 이 석벽은 다른 부분의 성벽과 달리
가로 1m, 세로 1.6m나 되는 큰돌로 쌓았다. 관룡사쪽의 동남쪽 성벽에서는 무너져 내
려앉은 수문이 확인되고 있다.
산성에서는 남쪽으로 영산 방면과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현풍 방면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미 조
선전기에 폐성되었다.
성안에는 군량미를 저장하는 군창, 9의 샘과 3개의 연못 등이 있었다 한다. 연못은 현
재도 확인되며, 산성 중앙의 연못 주위에는 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다.
창녕 조씨가 이곳에서 성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새긴 창녕조씨득성비도 있다. 성안의
곳곳에서는 조선 고려의 자기편들과 신라 가야의 토기퍈들이 출토되고 있어, 가야시
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장기간에 걸쳐 화왕산성이 군사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드디오 산성 끝자락에서 진달래 능선에 오르고 깍아지런 언덕길을 따라 펴쳐지는 진달래는
흡사 능선을 따라 불타는 환상을 이루고..
진달래 사뿐 즈려밟고 하산을 시작.. 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하산길에 만난 다람지 형제? 부부? 그런데 이 다람지들은 돌틈에 살고 있었다..
하산,..그리고 또다른 만남
옥천골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옥룡사를 여행하기로 결정!
초입에서 경남지방에서 만나기 힘든 석장승을 만나 안부를 묻다.
관룡사 여행 중 빠뜨리기 쉬운 하나가 관룡사석장승(시도민속자료 제6호)이다. 남,여 모습의
2기 석장승은 비보목적으로 사찰의 입구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절 입구가 아니라
화왕산 입구에 서 있다고 느낄 만큼 외면 받고 있다.
관룡사 석장승은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은 모습으로 왼편에 남장승(높이 220㎝ 둘레 70㎝)과
마주한 오른편 여장승(높이 250㎝, 둘레 80㎝)로 모두 상투 모양은 있지만 관모는 남장승만
있다. 지금 석장승은 땅에 묻혀야 할 부분이 돌출된 상태로 분실 후 회수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져 모시고 있다.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8대 명찰 중 내물왕 39년(394)에 창건. 진평왕
5년(583) 증법대사가 중창하고, 삼국통일 이후 원효가 중국 승려 일천여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했다 한다.
사찰은 대부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광해군 9년(1617) 영운이 재건하고 영조 25년
(1749)에 보수했다. 관룡사 사적기에는 원효스님의 제자 승파스님이 기도를 드리던 중
화왕산 정상의 삼지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로 불렀다 한다.
사찰 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대웅전(보물 212호), 약사전(보물 146호), 약사전 석조여
래좌상(보물 519호),약사전 앞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11호 삼층석탑과 뒤편 화왕산 자
락 용선대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및 문화재자료 19호 관룡사 부도탑, 문화
재자료 제140호 관룡사 원음각, 민속자료 석장승 등이 있다.
돌로 쌓은 석문을 지나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길을 노랗게 물들이고 텅빈 일주문보다
원음각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곧장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과 약사전에 시선을 잡는다.
약사전은 중종 2년(1507)재창된 조선시대 초기 건축물로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
좌상을 모시고 앞 쪽으로 고려 전기로 추정되는 관룡사의 유일한 석탑이 자리 잡고 있
는 특징이 있다.
약사전 앞 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제11호)은 고려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2m
방형의 삼층 소형석탑으로 신라시대 석탑기법을 엿볼 수 있지만 전반적인 제작방법은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석탑은 바닥돌 대신 바위에 2층 기단을 올리고 3층 탑신을
더한 모습으로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 쌓았다.
약사전 내 석조약사여래불좌상(보물 제519호)은 보물 제295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제작수법과 흡사하여 축소한 모습으로 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고
려시대 불상 머리(육계)의 형식과 도식적인 옷자락 및 오른손이 왼발 위에, 왼손이 오
른발 위에 놓여있는 찾기 힘든 형식을 하고 연꽃대좌에 모셔져 있다.
약사전(보물 제146호)은 조선시대 불전으로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화마로부터 피
해간 정면 1칸, 측면 1칸을 하고, 주심포 양식을 하고 맞배지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불상 1기와 법당 앞에 삼층석탑을 모시고 법당 내벽에는 그림을 모사해 두었다.
약사전 앞을 돌아나오면 곧장 대웅전이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관룡사 중심 법당인 대
웅전(보물 제21호)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후 광해군 9년(1617) 중창하고 영조 25년
(1749) 중수한 전각으로 1965년 8월 해체보수 당시 마루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
해 확인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의 전각으로 비로나자삼
존불을 모시고 있다.
관룡사 전각을 돌아 나가면 곧장 화왕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이어지고 큰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점점 가까이 다가서면 그곳이 바로 용선대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준
다는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석조여래좌상은 지금의
방향으로 모셔진 것이 아니다. 사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과정에서 목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봉합한 흔적이 역력한 석조여래상을 마주할 때면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화
근을 불러 온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관룡사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용선대 끝자
락 8각연꽃대좌 위 단아한 미소를 머금고 결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지만 아쉽게도 광
배는 사라지고 앞에 석등으로 추정되는 일부 석재 파편이 남아있을 뿐이다.
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라시대 관룡사의 창건에 관한 유래와 재산을 기록
한 사적기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정확성이 없지만 발간용 목판 11개
와 서적 1권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관룡사부도(문화재자료 제19호)는 관룡사 전각 북쪽 산기슭에 1기가 있다.
관룡사 내 7기의 부도 중 으뜸으로 높이 2.05m, 몸통 1.75m로 큰 부도에 속하며, 조
선 인조 12년(1634) 만든 원음각(문화재자료 제140호)은 영조 39년(1763) 다시 만든
것으로 옛날에는 출입구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자료 제140호 원음각
대웅전(보물 212호)
지방유형문화재 제11호 삼층석탑
약사전 석조여래좌상(보물 519호),
다시 산길을 따라 600려 미터 오르면 용선대가 자리잡고 있다.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용선대 옆에 있는 석등의 받침
용선대에서 옥천계곡 방향 벼랑위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서 벼랑사이 걸처져 있다.
불교 신자도 아니지만 불교 문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급
이 모두 불교를 통해 이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산야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문
화재가 비단 종교적 이념을 달리한다하여 방치되고 훼손된다면 이보다 더 가슴아픈 현실
이 어디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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