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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 동래성을 따라가는 둘레길 충렬사 - 복천고분군 - 동래성

허영꺼멍 2011. 6. 15. 11:13

 

 

 

 

 

동래읍성길 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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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산성과 함께 동래에는 또 하나의 성곽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동래읍성이다. 동래

읍성은 도시화에 묻혀 거의 잊혀져 버린 곳이지만  최근 일부 성곽 및 성문을  복원하여

동래 역사문화길로 손색없는 코스로 성곽을 따라 동래의 역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코스는 충렬사를 기준으로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충렬사를 먼저 들러 추모를 한 후 충렬

사 내 위치한 군관청 및 동장대를 올라 다시 충렬사로 내려선다.  충렬사 동장대에서 인

생문으로 향하는 길이 현재 막혀 있어 다시 내려서야 한다.                                      

 

충렬사에서 다시 금사동 방향으로 안락동 뒷길로 걸어가다 시시골 갈림길에서 동래 복

천동 방향으로 오르면 된다. 복천동 방향으로 오르면 동래성문 중 하나인  인생문을 만

나게 되는데 성문이 옛 모습과는 달리 이상한 모습으로 있어 고개를 꺄우뚱하게 한다. 

 

인생문에서 바로 옆 대포산을 올라 약수터를 지나 정상에 오르면 복장대에 도착한다. 

복장대에서 내려다 보면 동래가 한눈에 조망되고 바로 아래 복천동고분군의 모습이 도

심과 대조색을 띠며 운치를 더해준다.                                                                

 

복장대에서 백년계단을 내려오면 성벽을 만나는데 성벽은 북문을 통과하고  아래에는

장영실공원과 복천동고분군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북문에서 땀도 식힐겸 복천박물

관을 들러 관람하고 다시 북문에서 출발하면 서장대를 만나고 내려서면 동래향교이다

동래향교에서 명륜동으로 뻗어가겠지만  동래시장으로 발길을 옮겨  동래시장으로 진

행하여 동헌을 거쳐 동래고등학교 담벼락을 지나  다시 출발했던  원점으로 되돌아 오

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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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출발점을 잡을 수 있는데 주차장 기준 인생문 앞에서 출발 또는 복천박물관

출발, 동래향교에서 출발할 수 있으며, 단거리를 원할 경우는  복천박물관에서 출발하

인생문-북장대-북문-서장대-장영실공원-복천박물관 순으로 여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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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송상현을 모신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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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충렬사는 전국에 걸쳐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민관군의 영령을 모신 곳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위치한 동래 충렬사 역시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선열을 모시고 있다.

 

 

조선 선조 38년(1605) 동래부사 윤휜이 처음 동래읍성의 남문 내 충렬공 송상현을 모시고 송공사라 불렀는데 인조 2년(1624) 충렬사 사액을 하사받고 효종 3년(1652)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 오늘날까지 사원과 서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년 5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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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를 중히 여기는 곳이라 하여 “의중지“로 부르는 연못

잉어에게 먹이를 주려면 옆에 있는 자판기로.. 동전 준비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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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동래 24공신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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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동래지방 출신으로 창의모병하여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한 선무원종공신

녹권에 등재된 공신 가운데  역전토적에 전공이 혁혁한 24ㅁ별전공신의 공적비로 1988년 5월

1일 제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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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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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군관청은 충렬사 내 위치한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을 한 조선시대 동래부사청 건물 중 하나로 군관들이 군사일을 보던 곳으로  1982

 년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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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지정기념물 제5호 동래읍성지는 복천박물관을 품고 있는 곳으로 동래구 명륜동, 복천동(칠산동. 복산동), 안락동에 걸쳐 있다. 동래읍성지는 고려 말 우왕 13년(1387) 수축된 성으로 추정하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공격하던 왜군의 1차 목표가 되어 송상현 부사가 이끄는 군. 관. 민과 함께 최대 격전지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성곽은 영조 7년(1731)에 부사 정언섭이 갱축하였고 일제강점기 당시 파손된 것을 2005년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동래읍성이 있던 일대를 인성문 또는 시시골이라 부르는데 이는 읍성의 성문과 관련이 있다. 동래읍성은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을 비롯하여, 인생문, 암문(비밀문)등 6개의 문과 각 문에는 문루를 설치하였는데 동문은 지희루, 서문은 심성루, 남문은 무우루, 암문은 은일루로 부르며, 둘레 3천 9십 척 높이 13척(둘레 1,962m, 높이 0.5~3m)으로 우물이 6개 있는 평산성형식으로 축조되었지만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읍성이다.

 

 

동래읍성 문 중에서 인생문은 임진왜란 당시 인생문을 통해 피신했던 백성이 목숨을 건진 후 사람을 살린 문이라 하여 인생문이라 하였고 피난했던 고개를 지금도 인성고개(인생고개)라 부르며, 인생문을 복원하면서 당시의 글씨를 복원하기 위해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된 문명석을 탁본하여 조각하는 정성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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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산 정상에 위치한 망월대 또는 동래읍성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장대로 불리는 곳으로

마루바닥의 훼손이 심해 2012년까지 복원계획이 수립된 곳으로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인

 생문으로 성벽이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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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대 주변에 꽃은 화사하게 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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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단24공신위매안감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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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를 찾았는데 망월대만 눈도장 찍고 간다면 안될말...여느 지역을 가도 현충원

과 충렬사는 빼 놓을 수 없다지 않았던가.. 충렬사 배향을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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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오르는 첫번째 문에서 만나는 소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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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줄당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의 위국충절과 호국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효종3년(1652) 세운 강당으로 소줄당이란 한유의 이제송에 나오는 "소호일월 부족위명,

줄호태산 부족위고"의 머리글로 임진란  선열의 충정은 일월보다도 밝고, 태산보다도 높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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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줄당 앞면에는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에는 임진왜란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전시되어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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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정화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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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명의 여인을 모신 의열각

 

의열각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 순국한 의녀들을 모신 사당이다. 동래

성전투에서 왜적과 기왓장으로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와 당시의 동래부사 송상현공과 부산첨

 사 정발장군을따라 순절한 금섬, 애향 두 열녀 등 모두 네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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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에서 향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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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지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을 모신

사당이다. 부산 지역에서 전사한 선열 22명과 동래부, 부산진, 다대진 및 부산포해전에서 전사

한 무명용사들의 위패 4위, 의병 62명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의  본당으로 제일 위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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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피우고 방명록에 글을 남긴 후 길을 내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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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를 나온 후 금사동 방향으로 따라 진행 그리고 사시골 갈림길에서 동래 복천동 고개로

다시 길을 잡고 오르다보면 인생문이 도로를 가로막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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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가 빠져나가던 "인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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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문은 동래읍성 6대문 중 하나로 본래 이름은 인화문이다. 동래읍성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내보던 곳으로 인생무상의 의미로 인생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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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복원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성벽이 헐리고 길이 뚫려버린 세월을 더듬어 복원한 인생문은

복원이란 의미를 상실하고 현실에 맞도록 성곽을 짜 맞추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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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문에서 산길을 이용하거나 옆으로 난 약수터로 가는 길을 이용하여 대포산 정상으로 오르

면 동래구가 한눈에 조망되는 북장대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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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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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에서 내려다 본 복천동 고분군으로 언덕 위 네모난 표식은 고분이 발견된 장소이며

중앙에 건물은 야외고분 전시장으로 고분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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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은 한때는 보잘 것 없는 마을 뒷동산 정도로 여겼던 곳으로 다양한 시대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소중함을 일깨워준 곳이다.

 

동래의 철기문화는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굴된 고분은 4-5세기 가야 왕의 무덤이 집단으로 발견되는 동래를 중심으로 북쪽 마안산{대포산)자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길 게 뻗어 내린 지형으로 출토된 유물만 하여도 9천2백여 점 발굴되어 가야사 연구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무덤은 덧널방식부터 다양한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독무덤 등 시대를 막론하고 출토되고 있어 마치 무덤의 박물관으로 착각 할 정도이다. 처음 발굴된 퇴기는 경남 함안 도항리고분군(아라가야 고분군), 말산리고분군의 토기와 일본 하지기계토기를 시작으로 창녕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철기 출토품이 대량으로 나와 주목받고 있다.

 

 

철기 출토품으로 미루어 당시 가야사는 철의 왕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창원 성삼패총의 경우 철을 만드는 야적장을 비롯하여 발굴된 유물이 철의 종류로 갑옷, 투구, 칼 등 무기류가 단연 압도적으로 당시 철을 이용한 기술은 신라 그 이전부터 상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 고분은 현재 박물관을 통해 유물을 전시하고 무덤 일부를 아치형 돔을 만들어 직접 관람하도록 조성해 두었다. 가야사는 삼국시대에 있어 자료가 없는 잊혀진 왕국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복천동 고분을 통해 당시 이곳의 집단세력이 신라권에 소속된 집단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정설로 굳혀온 4세기 김해 대성동 고분군 세력과 연합하여 전기가야의 맹주인 금관가야를 성립하고 5세기에 고구려의 남정으로 김해세력이 쇠퇴하자 금관가야의 패권을 장악 6세기에 이르러 신라에 정복당했다는 것.

 

 

동래 또는 부산지역은 3세기 중반까지 독자적으로 세력을 형성한 존재를 두고 족로국, 거산칠국으로 존재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데 3세기 후반부터 4세기 중엽에 신라에 편입되었기에 복천동 고분군은 4-5 세기고대 부산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였다는 주장.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신라는 3세기 후반(늦어도 4세기 중엽) 동남해안, 북쪽으로 동해안, 낙동강 중류 등 소국들에 대한 복속을 마무리 했다는 것과 5세기 초이래 줄곧 출토되는 신라양식 토기, 신사 금관을 닮은5세기 초의 출자형금동관, 경주 특유의 적석목곽묘와 유사한 4세기 말의 분묘를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복천동 고분군을 통해 시대를 달리한 무덤문화를 만나면서 인간의 사후세계에 관하여 관습 및 인식 연구에 중요한 전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죽음 그 사후의 세계를 전생에 누린 권력을 내세까지 연장시키려는 한 방편으로 한반도 전역에는 다양한 무덤이 지역에 따라 생겨나지. 인류가 생긴 이래 처음 만든 것이 고인돌의 역사이고, 외국의 경우 대형급 피라미드가 당시의 엄청난 인력까지 동원해 가면서 만들 정도로 자신의 영화를 알리려고 하는 지배층의 잘못된 판단은 무덤을 무조건 크게 하려고 하였다.

 

 

무덤의 크기가 점점 늘어만 간 것은 무덤 속에 안치된 부품속인 보물의 유출 등으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는데 중국의 진시황의 경우는 아예 그 무덤이 어디 있는지 조차 후세에 알려져 있지 않아 궁금증을 더해주고, 우리나라도 이와 다를 봐 없는데 알려진 경주의 대형급 무덤 외 고령, 함안 등 많은 무덤이 대형화 추세였다. 그 중에서 경북 의성군과 산청군에 있는 돌무덤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돌로 무덤을 세운 특징이 있다.

 

 

무덤은 고인돌을 시작으로 돌널무덤(석관묘), 독무덤(옹관묘),돌덧널무덤(석곽묘),토광묘가 나타나는데 주로 평지에 사용했던 고인돌과는 달리 점점 산 정상의 높은 지역으로 무덤이 이동하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되면서 화려한 무덤이 등장하게 되지만 우리나라 무덤은 반타원형으로 만들어 졌고 또 지금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한국식 무덤의 일반적 특징이다.

 

 

[덧널방식] 신석기말 중국에서 발생. 목판재 또는 목각재를 4벽과 뚜껑을 만들고 바닥에도 판재와 각재를 깐 무덤 / 덧널무덤은 내부에서 외관과 내관이 들어가기도 하며, 여러 개 덧널이 들어가는 다실묘도 있다. 구덩이를 5미터 이상 파서 부장품을 함께 넣고 있다.

 

 

[독널무덤] 흙으로 빚어 구운 항아리를 사용한 무덤. 하나 또는 두 개의 독을 연결한 삼한시대의 무덤구조 박물관에 가보면 흔히 있음.

 

 

[구덩식 돌덧널무덤] 장방형 구덩이를 파고 벽면을 돌과 흙으로 보강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지 않은 것과 얹은 경우가 있다.

 

 

[앞크기식 돌덧널무덤] 앞 시기의 돌 덧널에 굴식 돌방무덤이 결합한 것으로 가야지역 특유의 무덤. 장방형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만든 후 단벽 한쪽은 추장을 위해 드나들 수 있도록 벽을 헐고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출입구 돌을 기대어 놓은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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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에서 내려서는 길로 백세의 계단으로 불리는 이 계단은  옛부터 이 계단을 밟고 가면 백

살까지 무병장수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본래 100개의 나무계

단이였으나 2001년 249개 돌계단으로 정비하여 백세가 아니라 249살까지 살아야 하는 계단이

아닌지..복원이라 함은 있는 그데로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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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은 복천동박물관과 인접하여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성문을 거쳐 넘어가면 동래문화회관

방향으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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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공원으로 장영실이 발명한 작품 모형이 전시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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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에서 서장대로 향하는 오르막 성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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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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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에서 서장대 가는 정상길에서 내려다 본 북문과 오른편으로 복천박물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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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을 올라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만나는 서장대는 이중 복층으로 독특한 성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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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로 향하는 성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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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를 거쳐 동래시장에 들러 시장구경 겸 먹꺼리를 해결하고 동래시장 내 있는

동헌을 둘러 본 후 충렬사로 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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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에서 다시 되돌아 북문으로 향했다. 복천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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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에서 본 복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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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에서 본 야외공연장과 복천고분군 야외박물관 그리고 뒷편으로 충렬사 동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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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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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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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앞에 있는 장영실 공원을 관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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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고분군은 실내전시실 및 야외전시실을 갖추고 가야시대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을 지하2층, 지상 3층의 건물에 1전시실, 2전시실, 조사보존실을 두고 지하에는 기획전시실 및 유물보존처리실을 두고 소장유물로 총 7,575점이 있다. 유물 중 발굴유물 6,969점, 수탁유물 504점, 기증유물 102점이며, 이 중에서 토기 자기류가 229점, 금속류 196점, 유리 보석류 21점, 기타 36점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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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박물관에서 북문으로 오르는 길.. 복천박물관 관람 후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서장대와 북문

북장대를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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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가는 길목 아래 도로변에 장식된 학 모습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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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둘레길 코스는 출발점을 어디서 잡는가에 따라 여행의 재미는 달라진다. 또한

지하철로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동래 복천동고분과 박물관을 통해 가야사를 이해하고 동래성곽을 따라 임진왜란사

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둘레길 코스가 어딨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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