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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 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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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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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오후 벚꽃 구경을 위해 길을 나선다. 해풍에 실려 찾아온 봄이 유혹하는 숨겨진
벚꽃여행지로 서생포 왜성을 빼 놓을 수 없다. 왜성이라는 이유로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서생포왜성이 몇 년전부터 TV에 소개되면서 매년 많은 사진작가가 찾는 독특한 여행지
로 성벽 사이로 흩날리는 무수한 벚꽃잎의 모습을 보면 어쩜 이 성곽에서 죽어간 수 많
은 영혼의 울분이 아닐까 싶을 만큼 감탄사를 연발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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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발발 그 후 조명연합군이 참정하면서 왜군은 다시 남쪽으로 후퇴를 하게 되자 울산
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해발 133m 정상에 철옹성을 축성하니 바로 서생포 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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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 왜성은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593)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땅에 교두보를 확보
하기위해 명령을 내리자 왜군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는 해안이 잘 내려다보이는 산정에 일
본식 평산성을 선조 25년(1592) 7월 착수하여 선조 26년(1593) 축성하였고 서생포에 위치해 있
다하여 서생포 왜성 또는 인근 왜성과 상호 봉화를 통해 연락하였다하여 봉화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강이남 4도를 집어삼키려는 그들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선조 26년 전라도 순천에서
서생포까지 무려 18개의 성을 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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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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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으로 돌출되어 축조된 이 소곽의 주위에는 3개의 출입구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측으로
열린 되형 출입구는 성밖으로 나가는 내성의 부출입구이며, 동측 출입구는 하단의 주출입구로 이어
지고 북측의 직진형 출입구는 산정부로 연결된다. 이러한 지점에 위치한 이 소곽의 규모는 작지만 3
개의 출입구를 동시에 수비. 통제하여 자체적으로 독립해서 전투를 수행하는 기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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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왜성은 철옹성답게 본성과 지성으로 공간을 나누고 외성 성벽은 바깥만 쌓는 내탁식을,
내성은 안과 밖 모두 돌로 쌓는 협축식으로 쌓으며, 60˚정도 경사를 두었다. 이중 삼중으로 해
자를 두른 성곽은 왜성 중 가장 큰 전체면적이 45,960 평으로 해자를 제외하고 외곽부 길이가
2.5km, 직선거리 동서 약 870m, 남 북 약 370m 이다. 성은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승
리를 나타내는 승(勝)자의 옛 전자를 묘사하여 쌓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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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성은 1595년 6월 28일 히데요시는 부산왜성, 죽도왜성, 가덕도왜성 등 몇 개만 남기고 본국
으로 귀국하면서 폐성이 되지만 1597년 1월 가토기요마사 제1번대 만명의 군사가 재입성하기
도 하였다. 1598년 5월 22일자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구포왜성을 지키던 구로다나가마사가 옮
겨왔지만 명나라 제독 마귀가 입성하여 폐성이 될 때까지 지켰다. 이후 왜성은 대진으로 승격
시켜 고종 32년(1895)까지 조선의 진성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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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서생포 왜성은 1598년 축성한지 6년이 되던 해 명나라 마귀장군과
편갈송의 도움으로 성을 함락시켰고 그곳에 전사한 53인의 충신을 위해 창표당, 본당을 만들
었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이 허물어 버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또한 일본왜성과 관련하여
일본 성씨중에서“서생”이란 성씨의 근원이 바로 서생포왜성을 쌓았던 민초들로 일본이 퇴각
할 당시 석공을 끌고 갔는데 그 후손의 성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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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저자 허균이 쓴 사명대사비 석장비문에 보면 왜장 가등청정은 말했다 “당신 나라에 보물
이 있소?” 사명대사는 “우리나라 보배는 당신의 나라에 있소”라며 답하자 가등청정은 “그게 무
슨 말이요?”라며 반문하였고 사명대사는“그대의 목이 이 나라의 보배란 말이다”라며 왜장을 향
해 말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화가 오고간 것이었다. 1594년 4월 서생포왜성
에서 당시 인근 웅촌 운흥사에 머물던 사명대사와 가등청정이 휴전회담을 치르던 중 주고 받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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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동축과 서축에는 덧물림형 출입구와 소곽을 배치하였고 남측과
북측은 석루를 둘렀다. 북서 모퉁이에는 천수개로 짐작되는 남북 18m, 동서 17m, 높이 5m 의
석단이 놓여 있으며, 축성당시 상부에는 3층에서 5층 규모의 천수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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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격용 소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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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많이 무너졌지만 기존 뼈대는 남아있어 각 각의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철저하게 방어
를 유리하게 설계된 일본식 석성으로 당시 누군가가 성벽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은 흔적과 중
앙에 일본과 중국이 세운 38도 지점이 표시되어 있다. 명나라 교섭단과 휴전협정하면서 자기
네 끼리 38선을 긋고 이북은 명이 남쪽은 일본이 다스린다는 협약하였지만 그 후 일본이 39
도선을 주장하다 협약이 파기되고 정유재란이 발생하였다. 성내에는 일제 강점기에 심은 것
으로 추정되는 벚꽃이 성곽을 따라 심어져 봄이면 벚꽃여행지로도 좋은 곳이다. 산성에서 내
려다보면 진하해수욕장과 명선도, 강구항이 한눈에 조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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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의 돌은 주택 담벼락으로 헐어 사용하였고 동해안 마을에서 보기 드물게 밭고랑 담벼락
과 골목길이 돌길로 담장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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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벚꽃은 다른해와 달리 일찍 개화를 하면서 봄소식을 서둘러 전해주는가 싶었는데 아쉽게
일찍 찾아온 봄은 꽃을 피우다 멈춰버려 벚꽃개화가 예전의 절반도 미치지 못해 벚꽃잎 휘 날
리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겹벚꽃은 아직 필 생각도 하지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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