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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벌 그 흔적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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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12개 나라 중 불사국이던 창녕은 6가야 당시 비화가야, 신라에 흡수된 후 비사벌로
교동고분군, 송현동 고분군을 통해 상당한 권력을가진 지배층이 존재하였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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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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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벌 여행을 첫 관문은 창녕군으로 진입하면서 창녕교동고분군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교동교분군 ~ 석빙고 ~ 술정리 동탑 ~ 술정리 서탑 ~ 화왕산 관룡사
순으로 여행하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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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관룡사
용선대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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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우뚝솟은 화왕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관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8대 명찰 중 내물왕 39년(394)에 창건, 진평왕
5년(583) "증법대사"가 중창, 삼국통일 이후 원효가 중국 승려 일천 여 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했다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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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은 대부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광해군 9년(1617) 영운이 재건하고, 영조 25년
(1749)에 보수했다. 관룡사 사적기에는 원효스님의 제자 승파스님이 기도를 드리던 중
화왕산 정상의 삼지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로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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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대웅전(보물 제212호),약사전(보물 제146호), 약사전 석조
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약사전 앞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1호), 용선대 석가 석
조 여래좌상(보물 제295호), 관룡사 부도탑(문화재자료 제19호), 관룡사 원음각(문화재
자료 제140호) 및 초입에는 민속자료 석장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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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자료 제140호 원음각
절간으로 들어서면 첫번째 만나는 곳으로 범종이 있다. 영조 39년(1763)에 다시 만든
것으로 범루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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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12호 대웅전
관룡사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후 광해군 9년(1617) 중창하고, 영
조 25년(1749) 중수한 전각으로 1965년 8월 해체보수 당시 마루도리에서 발견된 상량
문에 의해 확인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의 전각으로 비로나
자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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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46호 약사전
중종 2년(1507) 재창된 조산시대 초기 건축물로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을 모시
고 앞쪽으로 고려전기로 추정되는 관룡사의 유일한 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1호)이 자
리하고 있다. 석탑은 고려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2m로 방형의 삼층 소형석탑에 속
한다. 탑은 신라시대 석탑 기법을 엿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고려시대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바닥돌 대신 바위에 2층 기단을 올리고 3 층 탑신을 더한 모습으로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개씩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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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내 석조약사여래불좌상(보물 제519호)은 용선대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제
작수법과 흡사하여 축소한 모습으로 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
대 불상머리(육계)의 형식과 도식적인 옷자락 및 오른손이 왼발위에, 왼손은 오른발 위
에 놓여있는 표현의 수법이 찾아보기 힘든 형식으로 연꽃대좌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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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보물 제146호)은 조선시대 불전으로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화마로부터 피해
간 전각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주심포 양식을하고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법당 내벽
에 그림을 모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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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대로 오르며 내려다 본 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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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대를 오르는 길은 관룡사를 가로질러 산길로 약 450m 정도 올라야한다. 조금은 가
파른 길이지만 나무데크로 길을 정비하여 오르기가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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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대에서 소원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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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용선대 끝자락에
8각 연꽃대좌를 설치하고 그 위 단아한 미소를 머금고 결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지만 아
쉽게도 광배는 사라지고 앞에 석등으로 추정되는 일부 석재 파편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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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석조여래좌상은 지금의 방향으로 모셔진 것이 아니다. 사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
는 과정에서 목이 파손되어 봉합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화
근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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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대에서 바라 본 화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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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용선대에 올라서면 들어왔던 진입로와 뒷편으로 화왕산 억새숲 자지러지는 목마
산성 그리고 기암절벽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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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부도(문화재자료 제19호)
관룡사를 내려서면 법당 뒷편 산자락 언덕길에 관룡사 부도가 있다. 관룡사 내 7기의 부
도 중에서 으뜸으로 높이 2.05m로 큰 부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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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를 내려 서면서 만나는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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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민속자료 제6호 석장승
자칫 만나지 못하고 갈 수 있는 석장승은 절간으로 들어서는 입구못미처 공터옆에 위치
하고 있다. 절 입구에 세웠던 것으로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만든 석장승 2기 중에 관
모를 쓴 남장승은 높이 220cm, 둘레 70cm이며, 마주보는 여장승은 높이 250cm, 둘레
80cm 로 약간크고 뚱뚱한 편이다. 한때 이 장승이 돌출된상태로 분실되었다 회수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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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을 빠져 나오면서 산길을 오르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관
룡사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많은 청국장집이 이어져있다. 어느집이라 말할 것 없이 한결
같이 그 맛이 좋은데 청국장의 고약한 냄새가 없는것이 특징이며, 가격은 1인분에 6천
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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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읍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비사벌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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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고분군과 창녕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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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80호 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 고분군은 창녕읍 교리 일대에 위치한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중앙에 도로가 관
통되면서 지금은 고분이 둘러 나누어져 있는 형국이다. 이 일대의 고분군이 최초로 발굴
을 시작한 조선총독부(1918~1919)는 수십 대 분량의 유물을 일본으로 옮겨가면서 기록
조차 남기지 않았는데 당시 금동관, 순금이식, 귀금속 장신구, 철제무구, 토기가 출토되
어 반출되고, 1992년 동아대박물관에서 5기를 발굴하면서 횡구식유구의 형식과 석곽묘
. 목곽묘를 확인, 1호와 4호는 추가하여 매장한 흔적과 2호아 3호는 순장한 흔적을 확인
하였지만 도벌꾼이 몰래 파헤치고 일부 경작민이 고분을 논밭으로 일구어 일부 고분은
사라져 버린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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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고분은 교동 21기, 송현동 17기로 교동고분군은 일제가 훼손한 것을 복원 정비
한 고분으로 교동고분군 무덤 1개는 개방되어 있으며, 송현동고분은 약 80여기가 있었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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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과 함께 있는 창녕박물관은 1996년 교동고분군 발굴로 인해 세상에 알려진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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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만옥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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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옛 비화가야의 흔적 위 침묵하던 오랜세월은 옛 모습을 하나 둘 드러내기 시작하
면서 군내 흩어져 있던 탑과 불상 그리고 고분, 석빙고가 확인되고 그 중에서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를 비롯 창녕 척화비도 확인되었다 이 중에서 일부 문화유산을 250여년 전
만옥정 정자가 있던 위치에 조성된 창녕공원으로 옮기고 만옥정 공원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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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에는 진흥왕 22년(561) 세운 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를 1924년 옮겨놓
고, 조선 후기 관아건물인 창녕객사(경남유형문화재 231호) 골격을 비롯, 토천삼층석탑
(경남유형문화재 제10호), 창녕척화비(경상문화재자료 제218호)와 창녕을 거쳐간 군수
의 비석거리가 조성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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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310호 창녕 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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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석빙고는 고분군 주변에 위치하여 얼핏 지나가다 만나게되면 고분으로 착각 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다. 얼음을 저장해 두기위해 조성한 것으로 조선 영조
18년(1742) 현감 신후서가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석빙고는 내부길이 11m, 폭 3.6m
, 높이 3.7m로 안동 석빙고와 유사한 수법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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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4호 술정리동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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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에는 두 개의 탑이 동서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조각솜씨가 뛰어난 술정리에 있는
술정리동삼층석탑은 사찰이 사라지고 민가가 탑의 하층기단까지 담장이 들어서자 1965
년 민가를 철거하고 탑을 해체 복원하였다. 탑신 상면 방형사리공에서 청동향로용기, 황
색 유리제, 사리병, 사리 7립, 향편, 유리소주 등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사리만 다시 탑에
모시고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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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정리 동탑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중기단 위 탑신을 올렸으며, 상륜부
는 사라지고 없다. 탑은 5.75m로 묵직한 중량감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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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520호 술정리 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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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탑보다 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서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로 동탑보다는 다
소 조각수법이 뒤떨어지며, 탑은 동탑과같은 2중기단에 삼층을 올렸으며, 동탑에서는
사라져 버린 상륜부가 서탑에서는 노반과 보주가 남아있다. 탑은 높이 5.1m로 화강석
을 이용하여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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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은 제2의 경주이다. 잊혀져가는 가야사의 한 축으로 보기보다는 신비한 가야사 역
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경주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곳곳에 많은 문화유산이
흩어져 있어 당일 여행으로 다 볼 수는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창녕에는 우포늪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하고 우리나라 문화유산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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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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