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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 이성계 전설이 있는 남해 금산

허영꺼멍 2014. 1. 26. 10:30

 

 

이성계가 이름을 하사한 금산(錦山)

명승 제39호

 

 ▲ 금산의 출입문 역활을 하는 자연동굴 쌍홍문

 

한려해상 중 유일한 산악공원 남해 금산에는 전국 3대 기도도량으로 알려진 보리암과 부석대에 터 잡은 부소암 그리고 봉화대를 비롯하여 제각기 전설을 가진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남해 금산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3곳이 있다. 걷기 귀찮은 여행객이 구두발로도 갈 수 있는 금산분소가 있는 복곡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버스를 이용하거나 자신의 승용차로 정산 부근까지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과, 상주해수욕장 방향 금산휴게소를 출발하여 재두여관-쌍홍문으로 오르는 길, 그리고 두모계곡에서 부소암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 복곡에서 버스로 제2복곡 주차장으로 오르는 길 앞선 차량이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자 추월하는 등 난폭운전을 일삼아 위험을

감수하여야 했다. 정원 39명을 채워 오르면서 여행객은 안전은 뒷전인 버스의 횡포

 

오늘의 여행코스는 두모계곡-부소암-복곡헬기장- 봉화대-보리암-쌍홍굴 순으로 여행을 준비하였지만 도착 당시 굵은 빗방울과 짙은 안개로 인하여 코스를 변경하여 복곡주차장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보리암으로 향한 후 부석사와 정상에 있는 봉화대를 경유하여 하산하여야 했다.

 

▲ 복곡 제2주차장으로 보리암으로 가는 길은 1km 정도 이어진다. 빗방울과 안개가 길을 가려 놓는다.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자신이 가는 길을 가로 막았다며, 못살게 가지를 흔들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빠져 나간다. 숱한 세월을 뿌리 내리고 살았을, 조금씩 흔들리다 언젠가는 실바람에 넘어져 자연으로 돌아 갈 불안한 존재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여 뿌리내리며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려 하지만 사람들은 둔탁한 등산화로 흙을 걷어내며 돌출된 혈관을 딛고 길 따른다.

 

 

삼불암을 만나다.

 

 

 ▲ 금산의 전설 삼불암 정상에 두개의 바위는 서 있지만 하나는 누워져 있다.

금산 전설의 위엄

"삼불암" 

금산은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온 산을 휘감고 신라 원효에 의하여 보광산으로 불린 이곳에 사찰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성계가 보광산에 머물면서 백일기도를 통해 조선왕조 개국을 염원하면서 훗날 왕이 되면 반드시 금으로 치장해 주겠노라며 스스로 약속을 하였는데 어느 날 이성계는 현몽을 받게 이른다.

" 너의 백일기도로 정성을 다해 심불암 두 개가 일으켜 세워지면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고, 새 개를 세우면 천자를 다스릴 것이다" 금산에는 원래 부처님의 좌상을 닮은 바위 새 개가 누워 있었는데 이 바위가 부처 좌상을 닮았다 하여 심불암이라 불렀다 한다. 이성계가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렸지만 새 개의 바위 중 두 개만 세워지고 하나는 누워져 있는데 이성계의 치성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성계가 왕이 될 무렵 금산을 찾아 선유제를 지내니 금산에 있는 조선태조기단으로 처음에는 금산의 심장부인 중조봉 아래에 전각을 만들고 전패를 모셨지만 전각이 낡아 1903년 용문사 후원으로 옮기고 의정부 윤정구의 지휘로 비각을 짓고 금산영웅기적비와 대한중흥송덕축성비를 세웠다.

 

빗방울이 잠시 멈춘 보리암

 

▲ 빗방울이 잠시 멈추자 모습을 보이는 보리암 입구에서 바라본 암자

 

▲ 빗방울이 잠시 멈춘사이 보리암의 풍경을 보여준다.

 

3기도도량 보리암은 동해 낙산사 홍련암, 서해 보문사, 남해 보리암이 3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683(신문왕 3 )년 원효에 의하여 창건되고 보광상의 지명을 따서 보광사라 부른 후 이성계가 왕이 되자 금으로 치장해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광산을 금산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보광사는 보리암으로 바뀌게 된다. 산비탈 암반에 자리한 탓에 규모가 크지 않고 마당이 거의 없지만 사찰 내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및 석탑으로는 인도에서 허황옥공주가 가져왔다는 구전이 있는 삼층석탑과 해뜨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 보리암 전경으로 보리암 입구는 가파른 계단길로 이어진다. 입구에 있는 암벽에는 한문으로 이름을 남겨 놓은 바위가 있으며, 약수터와 범종, 보광전, 간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보리암 삼층석탑 그리고 해수관음보살

  

 ▲ 보리암 삼층석탑과 관세음보살상 그리고 뒷편으로 화엄봉이 자리잡고 있다.

 

보리암 삼층석탑은 시도유형문화재 74호로 보리암전삼층석탑이라고도 한다. 2층기단 위 3층 탑신을 올린 탑으로 김수로 왕비였던 허황옥 공주가 가야로 올 때 사리를 가져와 원효대사가 탑에 모셨다는 탑은 전설과 거리가 먼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삼층석탑

 

보리암 앞에 있는 삼층석탑 앞에서 나침반을 올려놓으면 나침반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멋대로 움직이는 신기한 현상을 만날 수 있다. 석탑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멀쩡하던 나침반이 삼층석탑 앞에서는 꼼짝없이 무용지물이 되 다보니 다들 한번쯤 실험해 보곤 한다. 이적현상을 보이는 삼층석탑의 자기반란은 탑 전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속의 원 부분으로 꼭 이 부분만 신비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더욱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삼층석탑은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보리암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큼직한 안내판을 내 걸고 있다.

  

 ▲ 기도하는 모녀의 풍경으로 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도중이다.

 

▲ 3대 기도도량을 말해주고 있는 관세음보살상

 

 

금산의 첫 관문 역활을 하는 쌍홍문

 보리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서면 용굴과 함께 아래에 쌍홍문과 장군봉이 나온다.

 

▲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 쌍홍문은 자연 동굴이다.

 

 ▲ 동굴 속에서 만나는 소원 구멍. 바위속 구멍 3개에 돌을 각자 넣으면 득남하거나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한다.

 

쌍홍문에서 바라보는 남해 상주해수욕장은 한눈에 들어오면서 상주 방향에서 올라오던 등산객의 쉼터로 자리 잡고 다들 쌍홍문 입구에서 작은 돌멩이를 바위에 던져 넣는다. 돌이 동굴에 들어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이지만 꼭 아들을 점지하는 것이 아니라도 재미삼아 너나없이 돌을 던지기 바쁘다.

 

 ▲ 쌍홍문 내부 통로길

 

 ▲ 쌍홍문에서 바라본 상주 방향 금산 등산로 전경

 

 ▲ 쌍홍문에서 바라 본 풍경

 

 ▲ 쌍홍문은 앞으로 구멍이 2개 있으며, 하늘을 볼 수 있는 윗편도 일부 뚫어져 있다.

▲ 쌍홍문 입구에 있는 장군봉은 사시사철 푸른 송악이 자라고 있다.

 

 ▲ 쌍홍문 윗편에 있는 용굴로 비를 피해 들어오는 여행객

 

 

금산 정산에 위치한 봉화대

 

쌍홍문을 떠나 산길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다양한 코스로 나누어 지지만 일단 정상을 목표로 오른다. 보리암에서 정상까지는 200m 정도이다.

 

▲ 남해 금산의 정상에 있는 봉수대를 찾았을 때 안개가 심하여 전방을 확인 할 수 없었다.

 

봉화대가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대마도가 보여 낮이면 이리의 배설물로, 밤이면 불을 피워 왜적 침입 사실을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였지만 지금은 등산 표적으로 삼을 뿐이다. 금산 정상에 있는 시도기념물 제 87호 봉수대는 고려 명종 당시 설치된 것으로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봉화는 둘레가 26m, 높이 4.5m로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것이며, 동쪽으로 창선면 대방리 봉수대가 신호를 받아 진주로 이어지며, 서쪽은 남면 봉수대를 거쳐 바다건너 순천 돌산도 봉수대로, 북쪽은 이동면 원산봉수대로 이어지면서 해상 상황을 조정에 보고했다.

 

 ▲ 봉화대 오르는 계단

 

 ▲ 봉화대로 오르는 주변 암벽에는 한자로 음각해 놓은

다양한 글과 이름을 볼 수 있다.

 

부소대 부소암으로 가는 길

아쉬움이 남는다. 부소암으로 가는 길이 짙은 안개에 가려져 겨우 시야가 2m 남짓 확보된다. 빗길과 얼어있던 산길이 녹아 나면서 등산화는 질척이는 땅의 기운을 전부 메달고 가는 느낌이다. 이 길은 봄이되면 주변을 따라 털진달래가 피어나 아름다운 길을 연출하는 곳이다. 보리암에서 약 700m 지점이다.

 

▲ 부소암 가는 길을 가려 놓은 모습. 신비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 부소암 가는 길이 어둡고 습하다.  ▲ 철교형 다리가 운무에 가려있다.

 ▲ 철책계단이 보일듯 말듯.

 

출발할 때 비가 그칠것이라던 이야기는 정상에 머무는 동안 굵은 빗방울로 변해 동굴속에 비를 피해 있다 빗방울이 그치면 걷는 여행을 하였지만 부소암으로 가는 길목은 심한 안개로 인하여 부소대를 눈 앞에 두고도 확인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암자에 도착하니 철문이 닫혀 있어 살짝 밀어 보니 열린다. 주인은 오늘 출타를 하였는지 반겨주는 이가 없는, 열쇠로 채워져 있었다.

 

▲ 부소암 벽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와 할머니

 

금산에서 가장 웅장한 부소대(법왕대)를 돌아 진입하면 작은 암자가 있는데 바로 부소암이다.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남해에 유배가 되었다는 다소 황당한 전설이 있다. 다른 전설로는 단군의 셋째 아들 부소가 전국을 떠돌다 이곳에서 천일 기도를 하였다고도 한다.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다. 암자가 있는 절집 벽에는 산신할멈인지 천황할멈인지 모를 할머니가 호랑이를 타고 달리고 있다. 보물 제1736대광방불화엄경 진본 권53’을 보유하고 있는 암자이다.

 

▲ 바위 그림 옆에는 독특한 부처와 함께 물을 받기 위한 큰 홈이 보인다.

 

▲ 부소암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지만 찾은 당일 아쉽게도 안개속만 헤메며 따뜻한 봄날 다시 찾아올 것을..

 

 

흔들바위와 금산산장

 

▲ 금산산장으로 내려서는 입구에 있는 흔들바위는 몇명이 흔들어도 조금씩 까딱까딱 한다.

 

 ▲ 산중 산장인 금산산장은 지금 부산산장으로 불리고 있다.

 

금산 산장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 1.5리터병에 담아서 8천원, 전구지 찌짐 손바닥 만한거 8천원, 백반식사를 비롯 숙박까지 할 수 있다. 빗방울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방에 들어가 잠시 쉬는데 식당 방바닥이 얼마나 따끈하던지...

 

▲ 단군성전

 

▲ 화엄봉

 

▲ 제석봉

 

 

금산에서 눈여겨 볼 것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바위들의 전설이다. 금산에서 가장 큰 바위로 조선시대 숙종 임금시절 전라도 돌산에서 머슴살이를 위해 남해로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돌쇠의 주인이 과부댁인데 돌쇠는 과수댁에 반해 애간장을 태우다 상사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눈치 챈 과수댁이 돌쇠를 금산으로 불러 바위에서 사랑을 하니 훗날 상사바위라 하여 지금도 상사풀이 할 때 사용한 샘이 벼랑에 남아 있는데 그 샘을 구정암이라 부른다. 상사바위를 내려서면 쌍홍문이 기다리고 있다. 쌍홍문은 흡사 거인의 코 구멍처럼 구멍이 뻥 뚫어져 있고 금산으로 오르는 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조금 위로는 용이 살았다는 용 굴은 신도들이 촛불을 켜 놓고 꺼지 않는 바람에 입구를 아예 봉쇄해 버려 아쉽다.

  

 

자연스러운 공감과 소통을 한다. 사랑은 포근한 가슴을 열어 보이며 안아주는 행위라면 자연과의 사랑은 소박한 관심으로부터 사랑을 배워간다. 마치 숲속을 거닐며 저 만치 숲속 한줌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어 줄 때 나는 숲속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을 느낀다. 안개속을 여행하면서  요정의 세상을 여행하고 돌아 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복곡지역 버스기사님

제발 안전운행합시다. 언덕길 일반 승용차 올라가려면 숨 헐떡 입니다. 그걸 못 참아주고 늣게 간다고 뒷차를 위협하고 그것도 모자라 결국은 커브길에서 추월을 합니까? 하산길에 정원수 채워서 내려 가겠다고 좌석 두개 남았지만 끝까지 버티시고, 차 안에서는 아이가 배고파 우는데..

이러지 좀 맙시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