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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포항시 고인돌 암각화 여행 인비리고인돌 ~ 칠포리 암각화

허영꺼멍 2014. 1. 27. 17:28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

보고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머리가 복잡해지고 생각이 깊어만 지는 일반인은 관심이 없는

바로 암각화 여행길이다. 화려한 암각화가 아닌, 생각이 필요한 진정한 여행자의 몫이다.

 

고인돌이 점점 시대를 달리하면서 기존의 자리를 내 놓고 옮겨 가거나 천재지변으로 함몰, 파괴되는 수난을 겪는 과정을 통해 고인돌의 중요성은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왔는데 가장 큰 이유는 고인돌이 위치한 곳이 주로 평지로 논밭을 일구는데 큰 장애가 되거나 그저 평범한 바위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많은 고인돌이 사라졌다. 오늘 찾아가는 여행은 바로 고인돌 이야기이다.

 

포항시 인비리 고인돌 암각화

 

 ▲ 논 둑을 따라 앞쪽에 성혈군이 있는 고인돌과 뒷편에 돌칼이 그려진 고인돌이 있다.

 

포항시 인비리 고인돌 암각화 역시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옮겨져 있는데 지금 돌검이 그려진 고인돌 바위는 서 있는 모습이고 그 옆에 둥글납작한 돌이 함께 딸려있지만 본래 돌검이 가로방향이 아니라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인비리 고인돌은 여전히 예전 그 모습으로 서 있었다.

 

▲ 정면에서 오른쪽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그려 놓았다.

 

바위에 새긴 돌검은 모두 2개이며 하나는 화살촉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유심이 살펴보면 돌촉이라기보다는 미완성된 돌칼로 짐작할 수 있으며, 첫 번째 석검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점과 돌검의 칼집안 칼의 크기와 비슷한 점. 즉 같은 목적으로 그림을 새겼다는 것으로 완성했다면 세 자루의 돌검이 그려졌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는데 그 이유로 석촉이 세모형에 가까운 것은 당시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돌을 깎거나 쇠로 화살촉을 만든다 하여도 결국 화살촉은 어딘가에 부착되어야 되는 것으로 만약 화살촉이라면 화살대와 연결하는 꽃음부위가 있어야 한다.

 

▲ 인비리 암각화 고인돌 측면 모습

 

인비리암각화 안내글을 옮겨보면 "고인돌 덮개돌의 측면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부분은 가로 세로 높이 135 x 240 x 140cm 의 편평한 면으로 마제석검 2자루와 마제석촉 1점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를 새긴 방법은 먼저 쪼라내기를 한 후 새겨진 홈을 갈아서 표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돌칼 즉, 우리표현데로 석검이라 하면 되지만 일본식 마제석검으로 기록해 놓았다.

 

 ▲ 암각 모습으로 돌칼의 표현은 정확하다. 윗편 칼은 손잡이가 뚜껍고 칼이 길지만 아래는 손잡이가 크고 칼날은 적다. 

   

우리나라 고인돌 암각화 중 인비리 암각화에 그려진 석검으로 여수 오림동 암각화가 유일하다는 사실은 한반도의 고대사연구에 있어 큰 단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지만 인비리 암각화는 보호시설 없이 방치되고 있다.

 

 

▲ 인비리 암각화 입구에 있는 성혈이 있는 고인돌

 

▲ 성혈과 함께 서로 연결한 홈이 확인되고 있다.

 

   

 ▲ 고인돌 상부에 모여 있는 성혈군

 

인비리고인돌암각화는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 48-4(포항시 북구 기북로 48-1) 입력 후 도착하면 도로 건너편에 있는 논 길 두곳에 돌무더기가 있는데 안쪽에 있는 고인돌이다.

 

 

 

포항 칠포리 암각화를 찾아서 다시 길을 떠난다.

포항시 인비리고인돌암각화에서 칠포리암각화군까지 약 33.2km 거리를 달린다.

 

 일단 먹고 다시 출발

 

 ▲ 아무리 급해도 밥은 챙겨먹어야 하는 것. 칠포리 들어서기 전 국도에서 만나는 소문난 해물짬뽕집에서 한끼 해결

 

▲ 올려진 홍합을 제거하고 나면 이런 모습으로 변한다. 해물짬뽕이 분명하다. 가격은 육천원

 

 

칠포리암각화군

 

포항에는 인비리 고인돌 외에도 칠포리에 많은 고인돌군과 암각화가 그려진 바위가 좁은 계곡을 차지하고 있는데 보통 칠포리 암각화군 및 칠포리 고인돌 군으로 불린다. 모두 반경 2~3km에 위치하는 것으로 동일집단이 동일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검파형 암각화의 시초가 포항 칠포리 해안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 칠포리암각화군으로 올라가는 길

 

▲ 예전에 찾았을 당시와 비교해 보면 오른쪽 평지 암각화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범선레스토랑 뒤편에는 크고 작은 고인돌이 곤륜산에 자리 잡고 바위에는 많은 성혈의 흔적과 최근 누군가 남긴 이름과 윷판도 확인 할 수 있는가 하면, 뒤편에는 많은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앞쪽바위에는 성혈이, 뒤쪽에는 암각화가,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고인돌이 밀집된 것으로 봐서는 당시 상당한 부족이 해안을 끼고 주거했을 가능성이 많은데 바위에 그려진 암각화에서는 허리윤곽이 잘록한 그림만이 확인되고 있다.

 

 

▲ 언덕 위 땅 속에 파묻혀 있는 암반 윗 부분에 성혈과 암각화를 그려 놓았다. 

▲ 주변에 성혈과 희미한 암각화 그림이 관찰되고 있다.

 

 ▲ 가장 많은 그리고 비슷한 문양이 표현되어 있는 암각화

 

안내글을 옮겨보면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이 바위 그림들은 1989년 처음 발견된 이래 1994년까지 추가로 발견되어 그 규모에 있어 한국 최대의 암각화군이다. 곤륜산의 서북쪽 기슭 개울을 끼고 돌출한 길이 3m, 높이 2m 의 사암질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이 암각화는 아래위가 긴 장방형으로 양쪽 면을 곡선으로 표현하였는데, 대체로 위쪽이 아래쪽보다 크게 묘사되고 있다. 이 일대는 성혈이 묘사된 지석묘가 분포한다. 그 중에 곤륜산에서 해안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국도를 끼고 길이 2.9m, 폭 1.2m 가량의 고인돌의 동쪽면 개석에 윗면이 V 자형으로 묘사된 검파형암각과 삼각형 화살촉이 각각 1개씩 그려져 있다.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앙의례를 반영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단으로서의 서역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고 기록하고 있다.

 

▲ 아직도 무엇을 표현 한 것인지 미스테리로 경상북도 지정문화재(유형 문화재 제249호)이다.

 

산길에서 만나는 작은 계곡 바위에는 6개의 암각화가 사암 바위면에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계곡 건너편에는 땅속에 상당부분 묻혀 있는 바위의 상부면에 암각화를 남겨 놓았다. 또한 큰 바위 주변으로 흩어져 있는 바위 곳곳에서 암각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규모의 암각화를 쪼아 파기 수법으로 조성했다는 증거로 왜 이 일대에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암각화가 제각기 구분되어져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 풀리지 않는 의문의 형상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이 일대는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집단으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경 2~3km 이내를 살펴보면 곤륜산을 중심으로 산허리 햇볕이 잘 드는 부분 암반층에 성혈과 윷판이 있지만 성혈과 성혈이 연결된 선은 없다. 곤륜산 앞 해안에 위치한 마을과 이 일대는 상당한 고인돌에서 석검, 석촉이 그려진 고인돌 및 성혈이 없는 고인돌, 연결된 성혈이 있는 고인돌 등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고인돌의 형태가 모두 모여 있는가 하면, 곤륜산 뒤편으로는 검파형 그림이 계곡을 따라 새겨놓았다.

 

 ▲ 검파형 암각화가 있는 계곡

 

 ▲ 앞쪽 땅에 묻혀 있는 암각화 건너편으로 검파형 암각화가 있으며, 중간에는 계곡이다.

 

 ▲ 내려서면서 바라본 전경

 

암각화군을 내려 큰 길을 따라 해안길로 접근하면 마을 입구에서 3기의 고인돌을 만나게 되는데 전혀 이정표가 없어 일반인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해안로 1512번 길 입구에서 도로 건너 산 쪽으로 보면 2기의 재단형식 고인돌이 있으며, 도로변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도로변에서 만난 고인돌 1기

 

 ▲ 너무 오랜 만남일까? 고인돌에 새겨져 있는 검파형 문양과 석촉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 마을입구 도로변에 있는 칠포리 10호 고인돌

 

주민에 의하면 전쟁이 끝날 무렵 남은 탄약을 이 일대의 고인돌을 향해 발사하면서 상당수의 고인돌이 파손되었다 한다. 마을입구에 있는 칠포리 10호 고인돌 1기에서 검파형 문양과 석촉이 나왔다. 칠포리 10호 고인돌은 길이 200cm, 50cm, 높이 100cm로 윗면에는 성혈구멍을 확인할 수 있다.

 

언덕길에서 만나는 고인돌 재단

 

 ▲ 칠포리 성혈바위(제단)

 

안내판을 옮겨보면 "길이 240cm, 높이 85cm 의 방방형에 가까운 바위 윗면에는 지름 6~14cm, 깊이 3~8cm의 성혈이 다수 있다. 성혈과 성혈 사이는 좁은 홈으로 연결되어 있다. 모역식 고인돌의 일종이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언덕길에서 만난 독특한 재단 고인돌

 

 ▲ 독특한 모습과 함께 재단형식을 완벽하게 갖춘 고인돌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 방형의 바위와 방형의 적석구조물로 구성되는 제단은 그 위에 크고 작은 바위구멍 65개가 조사되는데, 이것은 바위구멍사이를 선각으로 서로 연결한 것이 있어서 주목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은 영일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다수 발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성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 고인돌 앞에 재단식 돌이 배치되어 있다.

 

▲ 재단식 고인돌은 다른 돌과 달리 양지바르고 전망이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고인돌로부터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중간 중간 크고 작은 고인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윗부분 평지에 자리한 고인돌은 연결된 성혈을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연결된 고인돌은 경남 함안군 대산면 고인돌과 경북 고령 일대의 성혈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결되는 성혈은 흔치 않다.

 

 

칠포리 암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집단생활을 하던 몇 개 단위의 집단이 존재했고 저마다 제각기 다른 영혼을 세계를 믿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곧 한반도를 남하 하면서 해안선 가까이 있던 집단은 경북 청도, 고령과 경남 함안을 거쳐 전남 여수방향으로 향하고, 산속에 있던 집단은 경북 영주를 거쳐 영천 그리고 멀리 전북 남원까지 내려간 것으로 추정을 해 본다.

 

인근에 있는 칠포해수욕장

 

 ▲ 칠포해수욕장 입구

 

 ▲ 칠포해수욕장은 그 범위가 광활하다 할 만큼 넓지만 모래질이 좋지 않다.

 

 

 

 

 

한떄 암각화에 빠져 전국에 있는 암각화를 찾아 일년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남들은 그깟 돌에 무슨 의미가 있고 볼것이 있냐고 말하지만 그건 암각화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일 뿐이다. 암각화는 고대의 흔적을 기록한 타임캡슐이다. 오늘날의 모든 지식을 다 동원하여도 풀리지 않는 의문 투성이다. 암각화에 그려진 도데체 알 수 없는 그림과 별자리의 흔적이거나 주술적 의미로 보는 성혈군들 그리고 산짐승부터 바다 고래까지 그 범위는 정말 다양하다. 문제는 암각화를 외국적 서적에 의존하여 외국 견해를 쫒다보니 우리의 암각화는 보잘것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울산에 있는 반구대암각화 수몰을 막기 위한 조치가 발표되니 인터넷에서는 암각화를 그냥 탁본만 떠고 버려두자는 의견부터 바위를 통째로 뽑아 옮기면 된다는 의견까지 정말 우리나라의 문화의식 수준을 반영해 주고 있다.

 

 

암각화는 오래 보존될 수 없는 지구의 환경 조건으로 보전이 시급하지만 문화재청을 비롯하여 우리정부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늘 안타깝다. 일부 학자나 단체들의 몫이 아니라 잘 보존하여 후손으로 물려주도록 각 부처의 협조와 노력 그리고 시민의식이 필요하겠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