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지방에서 만나는 석장승이 있는,
비봉산 대곡사
창건 역사를 신라말 ~ 고려초로 추정하고 있으며, 9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 알려져 있지만 현존하는 암자로는 적조암 뿐으로 오늘의 여행은 대곡사를 거쳐 적조암까지 걸어 본다.
▲ 석장승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말사인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 인도 승려 지공과 혜근이 원과 고려 두 나라를 다니면서 불법을 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의성군 다인면 비봉산 자락에 대국사를 창건하였다 전한다. 그 후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선조 38년(1605) 탄우가 대웅전 및 범종각 요사채를 새로 짓고 숙종 13년(1687) 태전이 중건하면서 비봉산 태행봉에서 바라보니 100리나 되는 긴 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하여 대국사를 대곡사로 개칭하였다 전하지만 대곡사에 남아있는 유물 대부분이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어 이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된 사찰로 보인다. 추정근거로 대곡사 범종각에 있는 제대국사란 편액은 고려 초기 문인으로 알려진 이규보(1168-1241)로 대곡사에 머물며 이규보가 시를 지었다는 것과 1960년 발견된 금동불상 및 청석탑 양식이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 대국사 일주문을 지나면 세심교가 있다.
네비양이 입력된 주소를 멋대로 찾아다니면서 여행자를 골탕 먹인다. 처음 찾는 길도 아닌데 어찌된 것이 전혀 낯선 곳으로 안내하다보니 덕분에 산 좋고 물 좋은 의성군 변두리 마을 여행은 잘 하였지만 차는 무슨 고생인가. 바퀴가 진흙탕에 빠지고 회전할 공간이 없어 후진을 하면서 문명사회를 차단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창문을 열고 주민에게 요청을 구했다.
▲ 세심교 건너 왼편 고목나무 옆 석장승 1기와 오른쪽 석장승과 부도, 그리고 정면으로 범종루가 보인다.
대곡사로 들어선다. 세심교를 건너는데 개 한 마리가 방문객을 보고 짖는다. 다행스럽게도 목줄에 묶여 있으니 감히 덤비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절집을 끼웃 꺼리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고목나무 옆에 석장승 1기가 나를 반겨준다. 한때 전국에 있는 석장승을 찾아 여행하면서 서너 번 만난 사이가 아닌가. 대곡사 석장승을 가만 바라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릿속 기억을 더듬다 보니 남원 실상사 초입에서 만나는 바로 그 석장승과 형제라 할 만큼 조각 수법이나 벙거지를 쓴 모습, 팔자수염이 닮아 있다. 본래는 남녀 2기의 석장승 또는 더 많은 다수의 석장승을 만들었을 것이지만 현재는 1기만 사찰 입구에 서 있다.
▲ 실상사에서 본 듯한 닮은꼴 석장승
▲ 얼굴만 있는 석장승 1기
▲ 왼쪽부터 석종형부도, 석등 2기, 석장승 1기
석장승 옆으로 보기 드문 석종형부도 1기와 석등 연꽃모양을 한 하대석 2기 그리고 석장승 얼굴 1기가 있다. 석장승은 눈이 쭉 찢어지고 앙칼스럽다. 마을 공사 중 발견된 것을 적조암에 옮겨 두었다가 다시 대곡사 입구로 옮겨 놓은 것이다.
▲ 석종형 부도와 연꽃 대좌
▲ 석종형 부도
▲ 석장승
▲ 범종루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고목나무 사이로 단청칠을 하지 않은 빈 종각이 시선을 끈다. 화려하지 않지만 고풍스러운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을 올린 중층의 누각에 오르면 대웅전을 비롯하여 절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종각의 주인이던 범종은 용문사로 옮겨갔으며. 지금은 옆에 새롭게 만든 종각이 있다.
▲ 범종루 2층 누각 전경
범종루(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61호) 2층에는 대곡사에 머물던 이규보가 쓴 시 제대국사(題大國寺)가 걸려 있다.
石路高低平不平 閑騎果下彈鞭行 輕風靜歸煙光去 落月時兼曉色明 短麓前頭着寺枋 橫舟側畔問灘名 孤村何處吹寒笛 抱病他鄕易惱情(석로고저평불평 한기과하탄편행 경풍정귀연광거 낙월시겸효색명 단록전두착사방 횡주측반문탄명 고촌하처취한적 포병타향이뇌정) 돌길이 높고 낮아 울퉁불퉁한데/ 한가하게 과하마 타고 채찍질을해 간다/ 가벼운 바람은 조용히 연기빛을 쓸어가고/ 지는 달은 새벽빛과 함께 밝구나/ 짧은 기슭 앞머리에서 절의 전각을 보고/ 비낀 배 곁에서 여울 이름을 묻는다/ 외로운 마을 어느곳에서 부는지 쓸쓸한 피리소리/ 타향에서 병을 앓으니 쉽게 슬퍼지는구나
▲ 정면 대웅전과 중앙에 다층석탑 그리고 오른편으로 명부전과 왼편으로 요사채가 보인다.
종각을 내려서면 흩어져 있던 석탑 부재로 만든 탑이 좌, 우에 있다. 탑의 부재와 부도의 부재가 혼합되어 적당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 대웅전 및 대웅전 오른편 뒷편으로 산신각이 보인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을 올린 전각으로 고려 공민왕 17년(1368) 건립된 후 조선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으로 대부분 소실된 후 동왕 38년(1605)에 탄우대사와 숙종 13년(1687) 태전선사가 중창하였다 한다. 현재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60호이다. 자연석을 이용한 막돌쌓기 기단 위 건물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 중기로 추정하고 있다. 주불로 금동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협시불로 소조로 만든 소형 13위의 여래좌상을 두었다.
▲ 대곡사 다층석탑
첫눈에 대곡사다층석탑(문화재자료 제405호)이 시선을 끈다. 국내에서 몇 없는 희귀한 석탑형식으로 대곡사 다층석탑은 점판암으로 조성된 높이 173cm의 청석탑이다. 탑의 상륜부는 유실된 상태이며, 6층과 7층 사이 급격한 체감비율을 통해 한 층의 지붕돌이 파손되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13층탑으로 지금은 12층만 남아 있다.
▲ 다층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 대웅전에서 바라본 범종루
▲ 수리중인 명부전
명부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올린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중심불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직부, 사자, 판관, 녹사, 금강역사상을 봉안하고 있다.
▲ 범종루 앞 전경
▲ 산신각
산신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으로 1990년 조성하면서 산신상과 산신탱을 모시고 있다.
대곡사에는 본래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 53선지식인을 표현하는 53불전이 있었는데 1850년 주지였던 정인조가 53불전을 헐고 사찰소유의 땅을 매각하면서 불상을 방치하였고 일제강점기 당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이 비봉산 동굴로 불상을 옮겨 기도를 한 후 득남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인찬 주지가 다시 불상을 모셔왔는데 53불 중 겨우 13불만 남아 있었다 전하며, 지금도 소조불인 13불 중 가운데 모신 불상만 개금을 하여 금색이고 나머지 12불은 흰색으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대곡사 토지매각과 관련하여 1828년 안동 류 씨 집안과 묘소자리를 놓고 송사를 벌려 당시 주지승이 거제도로 유배를 갔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곡사도 중창 바람을 피해갈 수 없나보다. 빛바랜 대웅전이 곧 무너질 듯 위태위태해 보이는가 하면 명부전은 수리하느라 속살을 다 내보이고 있다.
적조암
▲ 독특한 모습의 적조암 요사채인 구포루
▲ 적조암 극락전
▲ 루각형식으로 만들어진 적조암 구포루
▲ 누군가 쉬어가기 좋은 고목나무 아래 작은 의자
▲ 무서운 진도개
대곡사에서 약 1.2km 산길을 따라 이동하면 대곡사의 유일한 현존하는 암자인 적조암에 도착한다. 적조암은 정면 극락전과 우측 삼성각 그리고 고택에서나 만날 수 있는 요사채인 구포루를 만날 수 있다. 방문 당일 극락전만 올려다보고는 급하게 길을 내려서야 했다. 진돗개 2마리 중 한 마리가 유독 산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따라 다니며 짖는다. 스님이 개들을 불러 보지만 소용이 없다. 산중에서 만난 늑대나 다름없이 따라 다니면서 위협을 하는 개들을 피해 적조암을 황급히 빠져 나와야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작은 풍경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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