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해안길에서 만난 풍경
경주를 여행하다보면 14번국도 끝자락에서 감은사지삼층석탑과 이견대, 경주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봉길대왕암에 도착하게 된다. 경주 문무왕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경주여행의 종점이던 14번 국도에서 다시 31번 국도를 따라 감은사지에서 약 9.6km 달려가면 탁 트인 청아한 하늘아래 손부채를 펼쳐 놓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읍천항 주상절리를 만나게 된다.
▲ 경주 읍천항 주상절리
경주IC – 감은사지(사적 제31호) - 이견대 –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 - 읍천항 – 읍천항 주상절리
"감은사지"에서 문무대왕을 떠올리다.
14번 도로변에서 왼편 언덕 위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2기의 대형 탑이 바로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석탑 앞 무료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감은사지로 들어서면 사찰 흔적임을 말해주는 석축과 탑을 만나게 된다. 감은사지는 신라 당시 "감은사"의 절터로 문무왕과 밀접한 관련성을 부여하는 곳으로 상당한 규모의 사찰 터가 탑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전설속의 사찰로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이 왜군을 진압하기 위해 감은사를 짓지만 미완성 상태로 남겨두고 죽음을 맞이하자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사찰을 만드니 신문왕 2년(682)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 감은사지 동탑과 서탑 그리고 뒷편으로 금당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석탑의 규모는 결코 화려하거나 섬세하지 않은 반면 웅장하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기백을 담고 두 탑이 닮아 있다. 구전에 의하면 문무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어 왜구를 격퇴시키고자 동해안 가까이 만든 사찰로 완공하기 전에 문무왕이 죽음에 이른다. 문무왕의 죽음 그 사후에 신문왕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사찰을 완성하고 감은사라 불렀다고 전하며, 탑은 이 13.4m로 신라시대 석탑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신문왕이 사찰을 완성하고 금당아래 용혈(龍穴)을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불경소리를 듣고 싶으면 늘 해류를 따라 찾아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두었다고 전하며, 지금은 장대석이 늘려져 있지만 법당의 섬돌 아래를 해가 뜨는 동쪽방향으로 굴을 만들고 장대석을 올려 빈 공간으로 물이 흘러들어 사후 문무왕이 용이 되고 수중릉에서 이곳까지 왕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라는 것이다.
만파식적을 얻었다 전하는 "이견대"
감은사지를 나오면 대본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31번 국도와 함께 동해바다를 만나게 된다. 잠시 포항방향으로 300m 정도이동하면 이견대와 함께 동해바다와 경주 대종천에서 흘러내린 민물이 합류하면서 절묘한 그림을 연출하며, 이견대에 올라서서 문무대왕릉을 조망할 수 있다.
▲ 만파식적을 얻은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복원한 이견대
이견대는 선왕을 그리워하는 신문왕이 만든 제사 터이자 만파식적을 얻는 등 호국의 성지라 불러도 좋을 만큼 문무왕 관련 절대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견대를 두고 1970년 발굴을 통해 신라시대 건물터로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이견대의 옛 단서 중 조선 숙종 사람인 최명암의 명암문집에는 "마주보는 산, 바다 문 활짝 열려 그 사이 높이 솟은 이견대"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이견대는 적어도 마주보는 산이 있어야 하고 그 산사이로 바다가 펼쳐지면서 이견대가 떠 있는 형상이라고 하고 있다.
▲ 이견대에서 바라 본 수중문무대왕릉 전경
죽어서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바다 수중에 유골을 안치하니 곧 수중대왕릉(문무대왕릉. 사적 제158호)이다.
문 무 왕 : 나는 죽어서 용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의스님 : 아무리 용이 영물이라 하나 축생인데, 대왕 같은 분이 짐승으로 태어나서야 되겠습니까.
문 무 왕 : 아닙니다. 비록 짐승이지만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면 여한이 없으리 이다.
왕이 죽음에 일러 죽어 용이 되길 유언하니 이를 받들어 화장 한 후 수중릉에 안치하였는데 1년 후인 682년 오월 초하루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위에 떠서 옮겨 다녀 진상을 살펴 신문왕에게 고하니 문무왕이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수호하며, 김유신도 33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인간 세계에 내려와 대신이 되어 두 분이 힘을 합쳐 나라를 지킬 보물을 줄 것이라 말하니 즉시 임금이 5월 7일 이견대로 행차하니 만파식전을 얻었다 한다.
국내 최초 수중릉 "문무대왕릉"
경주 문화유산의 끝자락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도착하면 망망대해 동해바다 해안가에 작은 바위섬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곳을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라 한다. 사적 제158호 문무왕의 릉이 경주시에서 흔하게 만나는 대형급 고분이 아닌가에 관한 이야기로는 불교 방식으로 죽음 사후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동해에 장사를 지내라는 유언에 따른 국내 첫 수중릉 무덤인 것으로 대왕암은 둘레가 200m 정도의 암초 안쪽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 정도의 큰 돌이 남북으로 걸쳐있어 그곳에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 수중릉에는 일반인의 접근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개인적 생각으로 수중대왕릉에 접근해 보면 참으로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점이다. 당시 장례는 4세기 경우 토광묘를 비롯하여 소형 석곽묘에서 적석목곽분(땅을 고른 후 돌을 깔고 나무곽을 세워놓고 그 속에 다시 나무관을 넣는)으로 변화를 하며 6세기는 적석목곽분을 대체하는 횡열식 석실(합장이 가능한 일명 부부묘/황남대총)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왜 문무왕은 최초로 화장을 택했을까? 또한 대왕바위로 알려지기 전에 댕바위로 불리던 곳이 대왕암으로 된 근거를 뭘까 하는 부분이다.
▲ 문무대왕릉 전경
문무대왕릉을 두고 확실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대왕암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에 좌우가 열십자로 갈라지고 중앙에는 거북등 모양의 큰 돌이 올려놓았으며, 대왕암의 웅덩이 수심은1.5m로 안쪽을 인위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지만 그러면 당시 문무왕의 대단한 인물로 바위에 문무대왕수증릉이란 어떤 표기마저 해 놓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지 않은가.
문무왕은 자신이 죽고 열흘 뒤 화장을 하라고 유언을 한다. 화장터는 고문외정(고문의 바깥뜰)인데 당시의 고문와정은 알길이 없고 단지 1970년 형체식별조차 어려운 탑과 불상을 발견하였는데 탑 이름을 능지탑으로 부르며, 일반적인 탑 형태와는 다른 것으로 보아 고문와정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볼 뿐이다.
부채를 펼쳐 놓은듯 독특한 "읍천항 주상절리"
감은사지 그리고 이견대를 거쳐 문무대왕릉이 있는 31번 국도를 따라 약 7.4km 달리면 읍천항에 도착하게 된다. 읍천항은 항구 내 담장에 그려진 벽화와 해안길을 따라 하서항까지 이어지는 피도소리길은 온통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형성되어 신비감을 더해 준다.
▲ 읍천항 주변 솟아 오른 바위섬 대부분이 주상절리이다.
국내 내륙에도 주상절리지역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단지 알려져 있지 않거나 찾아가기 힘든 곳에 위치한 이유로 국내 주상절리는 외면을 받아 왔지만 광주 무등산 절리대 개방과 경주 읍천항 주변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우리나라 주상절리 여행문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상절리는 한반도 생성과정에서 솟아오른 용암(섭씨 1100도)이 흘러 급격히 식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수축으로 인해 생성되는데 보통 4~6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 15도 각도로 누워 있는 주상절리대
부채꼴 주상절리라는 희소성으로 국내 내륙의 주상절리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군부대 철수하는 과정에서 알려진 부채꼴 주상절리가 경주 읍천항에서 약 500m 지점에 있다. 경주 읍천항주상절리는 주상절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보여주는 주상절리 전시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서 있는 주상절리부터 누워있거나 비스듬한 모습, 쌓여 있거나 돌출되어 하나의 작은 섬처럼 보이는 절리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유일한 부채꼴형식의 주상절리가 옛 군부대 초소 아래에 위치해 있다.
▲ 부채꼴 주상절리
주상절리는 사각형부터 오각형, 육각형 등 다양한 형태로 확인되며, 신생대 제3기~제4기 현무암질 용암이 분출하면서 급격하게 식는 과정을 통해 수축작용으로 1100도 용암이 순식간에 굳어지면서 벌집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 쌓아둔 책을 한권 뽑아내자 책이 한쪽으로 기울 듯 차곡차곡 닮은꼴 모습이 비스듬하게 서 있다.
▲ 읍천항 등대
옛 재돌로 불리는 이곳 경주 읍천 주상절리는 아직 정식 명칭이 없다. 해변대 군부대가 있던 곳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절리는 군부대 철수 후 알려지기가 시작하였는데 동해안 자락에서 만나는 주상절리 중 부채를 펼쳐 놓은 듯 한 모습 때문에 많은 사진작가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 읍천항 내 벽화
읍천항이 자리한 이 일대의 해안은 항구가 들어서기 전까지 주변에 바위가 많아서 배를 가까이 접안하기 힘든 곳이었다. 바로 인근 해안에 읍천 주상절리가 있는 읍천항은 읍천1리, 읍천2리를 합쳐 약 200여 가구로 미역과 전복을 소득원으로 하는 소박한 어촌마을이였지만 2010년 월성원자력본주에서 아름다운 지역 만들기 사업일환으로 52개 팀 150여명의 화가를 초대하여 마을 벽면을 물감으로 물들이기 시작하였고 50여점의 작품이 벽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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